"삐졌습니까 휴먼."


"아뇨 안 삐졌는데요. 애초에 직장 상사한테 삐지고 그럴 정도로 사회 물 덜 먹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몸은 솔직하군요 휴먼."


"안 삐졌습니다."


물론 어제 맞은 부상이 아직도 건재했지만, 정말로 안 삐졌다. 그냥 조금 섭섭하고, 말을 섞기 싫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도였다. 


이 빌어먹을 동네, 남자까지도 가능을 외치는 미친 유사 해병 새끼들에 약에 쩔어서 지내는 놈들, 총기를 무슨 악세사리처럼 들고다니는 용병들, 틈만 나면 지갑을 쌔비려는 애새끼들까지. 이 동네는 씨발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마음 약한 소시민인 나는 어쩔 수 없이 MK3 고폭수류 방범 부저와 귀엽기 귀여운 사시미칼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라운드 원에 살았으면 이런 것들은 필요가 없었을 텐데. 


"안전하게 지내라는 뜻이었습니다 휴먼,"

대체 얘는 날 어쩌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 내가 작업을 친 그 레비아라고 하는 여자아이도 순둥순둥해 보였고 잘 웃는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나한테 다른 데서 일해볼 생각 없냐고 한 그 하늘색 머리 꼬마도 사람 하나는 좋아보였다.


헤이븐 랜드 티켓을 할인해 줄테니 잠깐 따라오라던 직원도 굉장히 인상이 좋았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저 셋 다 합쳐도 무턱대고 사람 패는 기계보다 안전하지 않겠는가.


"어제는 아파서 보육원 일도 결근했다고 들었습니다 휴먼. 그러면 미..."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 


그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고, 사과를 하면 들어주는 것이 도리. 


내 안의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어린 양아. 사람은 용서하기에 비로소 사람이란다. 그래 전부 용서하고 훌훌 털어버리자꾸나.]


"... 뤄둔 일은 오늘 내로 처리하십시오."


[........ 와 저건 좀.]


참자. 그래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할렐루야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좆같은 직장.


여기에 리타랑 대시의 사진만 없었다면 진작에 고폭수류 방범부저 당기고 튀었을 것이다. 


"그리고 휴먼이 도망치다가 깨먹은 유리 비용은 월급에서 제할 테니 그리 알아두십시오."


"허허 그냥 죽이겠다는 말을 돌려서도 하시네요."


그래도 참아야만 했다. 나는 성숙한 어른이니까. 저런 유치한 로봇이 화를 돋운다고 해서 욕을 하는 놈이 아니었


"그리고 느낌이 좋지 않으니 그 술집도 어지간해서는 가지 마십시오 휴먼."


"허허 그로니아가 선진국되는 소리 하고 계시네요."

"느낌이 안 좋아서 해주는 충고입니다 휴먼. 어떻게 당신이 가르치는 레이첼보다 멍청할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교사와 제자 포지션을 바꾸는 게 옳아 보입니다."


"저도 느낌이 안 좋은데 직장상사를 타이탄으로 바꾸고 싶네요."


그렇게 싸움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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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잘 곳이 없어서 보육원을 찾아오셨다고요?"

"응 쇠파이프로 592대 맞고, 주먹으로 322대 맞고 쫓겨났거든. 어 눈깔 빠져나올라 그런다. 그리고 목발 좀 주겠니?"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그 착한 아이가 이렇게까지 해요."

타이탄이 더 낫다던가, 마음씨가 타이탄보다 고약하다던가, 퓨처앳워의 걸작품은 타이탄이라던가.... 그런 말을 한 거 뿐이다.


"착하긴 개뿔. 너 걔가 수금 활동 하는 건 본 적이 없지? 아주 야쿠자 줘패는 게 닌자 저리가라야."

나는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레이첼네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원장하고도 술친구기도 하고, 아이들하고도 친해서 별다른 탈은 없었다. 


"그런데 아저씨 언제 돌아갈 생각이에요?"

".... 몰라 그 빌어먹을 사장이 나보고 나가라고 했는데."

"화해할 생각은 있어요?"

"개쩌는 사이보그 말이 등장해서 내 머리카락을 씹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어."


메가트론 같은 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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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저씨가 화가 많이 난 거 같던데 넌 어떻게 생각해?"


레이첼은 호라이즌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으나,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휴먼은 저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했습니다."

"그래도 아저씨 어지간해서는 화 잘 안내는데. 누가 자기가 먹을 후라이드 치킨 껍질만 홀랑 가져가도 웃어넘기는 아저씨잖아. 그러 아저씨가 화를 냈다면, 분명 보통 일이 아닌데.... 화해할 생각은 없는 거야?"

"거대한 함선이 저 하늘에서 추락하다가 더 거대한 양한테 가로막히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둘이 어떻게 성격이 하나같이 똑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