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허억… 하느억…!”
무릎까지 차오른 눈. 그리고 그 위로 솟아난 새까만 나무들. 푸르지 않고 잎이 적어, 마치 생크림 케익 위에 빼빼로를 꽃아 넣은 것 같다. 그 사이를 짐승처럼 달린다. 허우적대며 달린다. 눈 앞에는 번쩍이는 불꽃과 철이 타는 지독한 냄새. 기름 화재 특유의 폐 안쪽이 쿡쿡 쑤시는 냄새. 연기. 그리고 이어지는 굉음. 누군가의 비명. 콘크리트와 철판의 난타가 이어진다.
“허억… 허억…!”
이렇게 달린 건 도대체 얼마만일까. 개처럼 헤엄치듯이,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기면서까지 뛴 건 얼마만일까. 그 새끼 말대로, 정말 쓰레기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류드…! 밀라아아악!!!“
그녀는 버티고 있었다. 절벽에 매달려서 손톱을 세우고서 버티고 있었다. 몸이 떨어져 나간 뒤에, 그 손톱도 모조리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스러져가고, 바들바들 떨면서도 버티고 있었다.
결국엔 마음만 남아, 손이 없다면 이빨로 물어서라도 버티겠다고 그렇게 절벽에 달라 붙어 있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녀를 모욕한 건 나였다.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다.
-금상 욕하면서 게임 왜 하노? ㅋㅋㅋㅋ 니가 분탕임
-이정도면 안접고 하는 놈들이 분탕 아님?
-이제부터 여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네 다음 좆망겜~ ㅋㅋㅋㅋㅋㅋ
“허억… 허억…! 류드밀라!!!”
불러서 어쩔거야. 만나서 어쩔거야. 이미 다 끝났다. 본래라면 이 끝없는 기다림. 그저 사념만 남은 그녀와 그 동료들의 노력은. 끝없는 미로는 여기서…! 보답 받아야 했었다. 그걸 내가 짓밟았다. 침을 뱉고, 조롱했다. 그리고 이윽고
-…만약, 그녀가 삶에 대한, 자신의 사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아직 가지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네만... 그녀는 이미 결말을 알고 포기하고 있었지.
완전히 망쳐버렸다.
아니야…!
포기하게 만든 건 내가 아니야! 보자마자 빈게 그렇게 잘 못 한 거야? 그게 더 빠르잖아… 20년간의 노력. 겨우 그 1초 전에 손을 놔버렸다고, 잡아주지 않는 건 너무 하잖아!
전부 소각한다니…! 그 마음이 뭐가 되는데? 사념만으로 남아서 메이즈 전대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이 뭐가 되는데? 자기자신이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고, 이미 옛적에 그림자가 된 줄도 모르고 끝까지 버틴 노력은 어디로 가는건데?!
아…
아아아아…
하, 하하하…
그래, 그걸 내가 말할 자격은 없다.
스비갤에서 게임을 접으라고 분탕치던 나에겐 자격이 없다.
따돌림 당했다고 그 화를 전부 엄마한테, 세상에게 돌리며 이렇게 살아 온 나에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실은, 있지.
너희들이 부러웠어.
나는 이제 즐거울 수 없는데, 노력할 수도 없는데, 무엇하나 제대로 마주하기 두려운데————-
"나는 그저, 내가 구하고 싶었던 모든 걸 위해서. 모든 걸로 부딪히는 것 뿐이다."
-그래도 게임 계속하면서 의견 내야 개선 될 거 아님?
눈부시단 말이야. 너희들도 나처럼 포기하라고. 제발, 이 모든게 세상과 특정 쓰레기들 때문이라고 말해 줘. 내 탓은, 내 잘못은 하나도 없게끔 말해 줘. 나약한 내 자신이…! 단 한스푼도 잘 못한 게 아니라고 말해 줘.
"...미안하군."
"침식증후군에 걸렸었지. 내가 그만, 간만에 하는 대화라서 들떴어."
"크게 데인 곳은 없나?"
저 어설프게 웃는 얼굴이, 설령 이제는 사람조차 아니게 되었다지만… 그래도, 언젠가 환하게 웃을 수 있게…!
그래도 언젠가 보답 받은 이야기잖아. 이건 그런 거잖아. 류드밀라…! 류드밀라…!
“으아악!”
그렇게 헤집으며 기던 숲. 설원의 숲 위로 빛이 번쩍인다. 뜨겁다. 순식간에 모든게 다 뜨겁다. 기침을 하면, 목구멍이 다 타들어갈 것 같아서 지면만 바라보다가 겨우 눈을 뜬다.
“…”
발 아래에는 새까만 흙. 언제 눈이 있었는지 모를만큼 척박한 땅. 습기 하나 없고, 오히려 치이익하는 열기가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린 순간.

“류드…밀라…“
코트도 없는 민소매 제복 차림의 류드밀라가 나무에 처박힌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치이익하는 열기. 마찰열로 타들어가고 있는 나무들. 류드밀라 앞에는 도대체 뭐가 날아왔길래 이렇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검게 그을린 자국이 커다랗다. 그게 이 앞의 전장까지 이어진다. 나무와 눈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타이어가 미끄러진 것처럼 크고 커다란 자욱.
”커헉… 윽…!“
“류드밀라…! 괜찮아?”
괜찮을리가 있나. 양 팔이 날아갔다. 흰 제복은 그을리고, 온갖 곳에서 흘린 피때문에 검붉게 변해 있었다.
류드밀라는 상반신을 흔들며 고통에 신음한다. 그러면서 몇차례나 더 쏟아낸다. 그와 동시에 치지지직, 번갯불이 튀며 날아간 양 어깨의 끝부분의 뼈가 조금씩 가려지고 있다. 재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래서야 도대체 언제쯤…
“아, 어… 아… 너로군… 여, 여긴 전장이다… 어떻게…?”
일어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류드밀라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새하얀 얼굴은 썩어버린 복숭아처럼 괴상망측한 색깔. 그리고 물렁물렁해져서 만지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다.
“아, 아… 그렇군. 관리자님은 포기하셨지… 쿨럭…
침식체 증후군이라지만 민간인도 버리기로 하신건가…커흡, 쿨럭…“
아…
아직도…
아직도 그딴 새끼를 관라자님이라고 부르는거야?
이젠 알잖아? 이제 알고 있잖아. 이제…
”도, 도망가자. 왜… 왜 싸우고 있어?! 이제 니가 지켜야 할 건 없어. 이… 이수연이…!“
”관리자가 다 죽여버렸다고!!!“
이제 니가 얽메일 건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까지 분투한들 전부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니 바람은, 너의 존재이유는 전부 사라졌다. 그러니까…
”…아니…”
류드밀라가 이제 겨우 팔꿈치의 반 정도 재생하기 시작한 팔로 나무를 짚고 일어선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일어선다. 뭐하려는거야.
“확실히… 이제 내가 지켜야 할 전대원은 없다. 재생력도… 후후 웃기지? 내가 그림자라는 걸 깨닫자마자 이렇게…하지만…”
”그럼 왜!!!“
”눈 앞에 있는 건 침식체다. 내버려두면 누군가를 덮치겠지… 나는…설령 내가… 류드밀라도, 전대장도, 그 무엇조차 아니더라도…“
피를 보는게 무서웠다.
관제 지망이었지만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전우들을, 더이상 돌아올 수 없는 전우들에게 돌아오라, 돌격해라 말하는게 무서웠다.
그러니까 그녀는 손을 든다. 팔꿈치밖에 없는 아직 재생 중인 손. 그리고 왼팔은 입가에, 이제는 무전기도 손가락도 없는 팔을.
비틀비틀 거리며 나아간다.
가지 마. 하지 마.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거기엔…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은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버림받았다. 운명에게, 노력에게, 시간에게, 모든게 너를 저버렸는데.
왜 아직도…?
“작전… 쿨럭… 작전…기록녹음… 지금부터 그림자 류드밀라는, 혹시모를 사태를 대비해 마지막까지 이곳의 도플갱어들과 싸우겠다…“
그렇게 떨고있는 다리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로 말한 뒤 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보이는 미소.
“미안하지만 무전기가 없군… 가능하다면 이걸 관리자님께 전해 주겠나? 솔개도 어디갔는지 보이지가 않아… 하하…“
그 솔개는 곰돌이다. 날개따윈 없다. 날아가지도 못하는 그저 조악한 곰 인형이다. 하지만 그녀는 걸어간다. 마치 병에 걸린 좀비처럼 몸뚱이를 흔들며 겨우겨우 일어서서 걷고 있다. 걸을 때마다 살점 같은게 장기 같은 분홍색들이 노란색들이 타오르는 대지 위로 떨어진다. 비틀비틀, 그 아래에는 치이익… 곱창 요리점의 향.
“바퀴벌레 같은 년. 아직도 숨이 붙어있다니…!”
“…!”
그 위로 떠오르는 기갑. 이프리크와 타라스크. 그리고 그걸 들어올린 새하얀 코트. 그 위로 춤을 추고 있는 백금발. 분홍빛 눈동자.
도플갱어 류드밀라다.
”누가 아니래? 근데 뭐… 이제 재생도 제대로 못하는 모양이네.“
킹, 킷, 킷, 커다란 블레이드가 타버린 지면과 부딪히며 끌리는 소리. 도플갱어 알렉스.
”드디어 이 버러지같은 년을 처리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좌우를 에워싸듯이 나타나는 검은 무리들.
”그래도 애들아 조심해? 우리 전대장 지금 흥분했거든. 잘못하면 같이 날아갈지도 몰라“
도플갱어 메이즈 전대.
“…류드…!”
손을 든다.
새하얀 코트가 하늘을 뒤덮는 구름처럼 커다랗게 보인다. 높게 들어올린 오른손. 왼손은 입가, 입가에는 무전기.
그리고 쏟아지는 철의 비. 끝났다. 번쩍이고 이 숲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지. 눈을 감는다.
뜨거운 것들이 잔뜩 반짝이는 것만을 느낀다
.
.
.
그리고 곧, 휘유유유우 하고 눈보라가 나를 반길…
“커헙… 웃… 우우… 쿨럭…”
대신에 류드밀라의 뜨거운 무언가. 침식체도 사람이구나 하게 알게 만드는 뜨거운 것. 생명의 근원. 숨쉬고 움직이는 원천.
“괜… 찮나…?”
“류드밀라… 너…! 왜…!”
류드밀라는 내 어깨에 턱을 기대고서 겨우 버티고 있다.
아니, 매달려 있는거다. 대롱대롱.
툭, 하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듯이.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같은 게 옆을 스쳐 떨어진다.
두 가닥의 담배꽁초. 새까맣게 탄… 류드밀라의 하반신.
“그러게… 하… 하하… 이래서야… 원본이 남긴 사념조차 다하지 못할 법하군…”
“아… 아아…!”
“가짜조차도 되지… 쿨럭… 아… 하으…”
왜 날 감싼거야. 어차피 나는…!
“흐…흐흐흐… 사념이 남을 정도로 자기 전대원을 지키고… 싶었는데… 자기 전대원은… 지키지 못한… 주제에…”
“이래서야… 전대장도 그림자도… 실격이로군…”
뜨겁다. 뜨거워. 전부 뜨겁다. 하지만 너무 불안하다. 금새 꺼질듯이 타들어가는 불꽃같다. 어깨위로 떨어지는 이 뜨겁고 진한 액체도. 그 액체가 만들어내는 쇠냄새도.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늘어진 류드밀라의 모든 것. 전부가 너무 선명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저, 정신 차려..! 도, 도망 가자…! 너 그림자잖아. 이 정도는 금방 재생하잖아?! 야…! 야…! 야!!!”
“…그러네, 그러고보니 보르시치도… 대화도… 네가 처음이었군… 어쩌면…”
“개소리 하지말고 정신 좀 차려! 정신 차리라고 씨발!!!”
“그게 내… 원본의 사념이 아닌… 순수한 내…감…”
”드디어…! 드디어다…! 드디어 난 완전한 존재가 된다…! 이 바퀴벌레같은 자식아…!“
하늘 위에는 대포. 가까워져오는 대포. 하얀, 눈과 강철의 악마.
그리고, 왼쪽편에서 느껴지는 한기.
열기.
익숙한 목소리.
”하늘에서 칼을 조심해야한다고 배운 적은 없겠지. 안 그래?“
모든 걸 뒤덮는 새빨간, 한 없이 뜨거운 무언가.
전부를 ”소각“하기 위한 힘.
바퀴벌레를 한데 모아 박멸하기 위한 고열의 에너지.
전부 끝났네라는 건 이런 거였구나.
그래, 어차피 가망성이 안 보였으니 정리하려는 거였지?
모든 게 사라진다. 재 하나 남기지 않고
그러보니 이렇게 죽는 건 또 처음인 것 같다.
그래 언제 누렁이 궁… 아니지 이수연 스트라이크를 맞아 보겠어? 안 그래?
모든 것윽 지우는 새빨간 고 에너지 속에서 어딘가 따스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니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아… 아하하하… 하하, 하하하
아….
아~ 알렉스 젖통 쥐고 아득바득 질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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