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원 위.
동토를 끄집어내어 억지로 쌓아올린 토대 위에서 우레가 터져나온다.
능선 아래의 숲을 가르고, 무너진 건물을 스치고서 잔해 투성이의 공터로 곧게 뻗는다.
진군하는 검은 병사들 위를 스치듯이 지나간 번개. 향한 곳은 설원보다 짙은 은빛 머리칼의 여자.
불길한 붉은 눈이, 뿜어진 번개를 안광과 함께 돌아보지만, 늦다. 포신을 떠나올 때보다 더한 굉음을 남기고서 눈밭이 타오른다.
순간적으로 기화한 연기. 그 너머로 떠오르는 백금발의 태양은 점점 고도를 높이고.
그 아래로 무수한 비가 내린다. 열화와도 같은 열기를 머금은, 강철의 눈보라가 인다.
그런 굉음 속에서 백금발의 태양이 쥔 무전기 겸 녹음기가 치익하고 잔뜩 열화 된 목소리를 내뱉는다.
"대장님. 전 포대 및 전차 확보 완료했습니다!"
니콜라이의 목소리.
그는 메이즈 전대의 포격 지원병이다.
자체 AI, 독립형 제어시스템 이오. 그리고 통합 지휘망을 통해서 완전 자동화를 이룬 구관리국의 기갑병기도 결국은 병기다.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시스템에게만 맡겨진 포대와 전차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류드밀라가 정비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관제사 시절 익힌 정비기술에 지나지 않으니까.
"알겠다. 후방은 맡기지."
니콜라이라면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정보오염으로 파손 된 OS까지 복구가 가능하다.
이건 이 기술을 제공한 사람도 가능은 하겠지만, 야전에서의 속도라면 니콜라이를 따라 올 수 없을 것이다.
류드밀라는 그렇게 말한 뒤에 후방의 전차 몇 대에 할애한 힘을 뺀다. 이오가 작동하지 않아 염동력으로 수동 조작을 하고 있던 타라스크 몇 기. 기갑을 덮고 있던 보라색 일그러짐이 사라지고, 수동 조작 콕핏으로 들어가는 검은 병사들.
류드밀라는 뒤돌아보지 않고, 근처 잔해에서 함포 하나를 주워든다.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곡예를 하듯이 들어올려진 함포. 과거 메이즈 전대의 함선. 그 주포 중 하나이자 마지막.
본래 함의 엔진인 이터니움 드라이브에서 제공 되는 에너지를 이용한 이터니움 에너지포였지만 그 부분은 문제 없다.
류드밀라의 CRF 활용은 본인의 치밀하다시피한 염동력 조작과 합쳐져 지금은 본래 고출력 입자포인 이 주포를
단발로 소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전대장은 전장 위를 내달린다.
그녀의 발 밑에는 강철의 눈보라.
그 아래에는 질주하는 검은 번개들.
설원 위를 가득 매우는 함성과 굉음. 그 중 하나 눈밭을 헤치며 앞서 나가는 검사가 여럿.
강철의 눈보라 (전)
-32
"산개해라! 아군 소총의 사선에 서지 마라!"
옐레나가 외치며 솔리키타티오를 둘러싸듯 설원 위를 달린다. 그녀는 관리국 검사들의 분대장이다.
본래 백병전에서 카운터를 보조할 목적으로 양산 된 일반인 클론병. 포격전대에서는 알렉스와 함께 포대 호위 임무를 맡거나 혹은, 지금처럼.
"큭...! 날파리들이 흩어진다고 해서...!"
솔리키타티오가 포격 속에서 오른손을 든다. 자신을 포위하기 위해서 양 옆을 돌며 다가오는 검사들의 진로를 향해 날아드는 쐐기검. 번쩍임과 동시에 날아드는 쐐기는 순식간에 눈을 파헤치며 설원 위의 낙뢰가 된다. 그런 뒤에 남은 것은 쐐기검 하나. 형체도 없이 사라진 관리국 검사들.
"뭣...!"
였어야 했다. 그렇다. 그녀들은 약하다. 눈 앞의 침식체에 비하자면 날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들의 슈트는 다른 병사들과는 좀 다른 것이다. 어디까지나 보조에 지나지 않는 일반병 클론.
생존성을 극대화시킨 입체기동 강화슈트를 입고, 눈밭 위를 질주하는 그녀들은 이미 쐐기검을 지나치고서 솔라키타티오의 사각에 들어 서있다.
무시했던 존재들의 꿈틀거림에 솔라키타티오가 잠시 움찔하는 사이 정면에서 날아드는 소총의 탄환. 위에서 쏟아붓는 강철의 비. 다급하게 오른손을 뻗어 쐐기검 하나를 박아넣는 사이, 왼쪽편에서 날아드는 검사 하나. 슈라였다. 이터니움 공진 블레이드가 설원 위에서 눈을 헤집고, 순식간에 검붉은 섬광처럼 변한다. 솔라키타티오의 왼쪽 허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슈라. 큭, 하고 솔라키타티오는 격앙 된 표정으로 노려본다. 데미지보다, 이 딴 벌레에게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그녀의 부아를 돋게 만든다.
"지금이다 쏴라!"
그런 뒤에 갑자기 후두부에서 쏟아지는 포격. 전방위에서 쏟아지며 두들기는 포격에 솔라키타티오는 다시 하나 쐐기검을 방어용으로 꺼낼 수 밖에 없다. 이걸로 지금까지 총4개. 차원이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방법도 있으나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망설임을 노리고 이번엔 오른쪽이다. 옐레나가 아군의 사선을 곡예라도 하듯이 피해가며 앞 뒤, 쐐기검 사이로 몸을 숨긴 솔라키타티오를 향해 달려든다.
이것이 그녀들이 싸우는 방법이다.
포격전대인 메이즈 전대에서 아군의 사선을 방해하지 않고, 그 기동력을 살려서 두들긴다.
유격대의 활약으로 솔라키타티오가 신경이 팔린 사이.
후방의 번개들이 몇 줄 더 추가된다.
포대와 기갑의 수리가 끝나가고 있다.
"큭...! 기어오르지마라!"
돌진하는 옐레나를 향해 쏘아지는 쐐기검. 옐레나는 직감했다. 제아무리 이터니움 합금으로 만들어 순간적인 출력으로 함선의 장갑조차 자를 수 있는 이 블레이드라도 맞부딪히면 그대로 칼째로 분쇄당한다.
돌진하는 와중에 몸을 꺾는다. 관성으로 허리와 무릎의 관절이 모조리 닳아서 스파크가 튄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들지만 늦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전대장처럼 쐐기 하나라도 묶어두겠다.
그녀는 칼을 역수로 쥔 칼에 힘을 준다. 쐐기가 배를 꿰뚫는 그 순간 블레이드의 출력을 높여 그녀도 쐐기를 꿰뚫을 것이다. 그걸로 잠시나마 이 쐐기를 묶어두리라. 이 목숨으로.
"그러니까 말했잖아?"
"이런 위험한 거... 던지지 말라고!"
결사의 각오 앞에, 대검 하나가 막아선다.
본래 플라즈마포의 포신. 진동하며 쐐기를 미끄러트리며 진로를 바꾼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 쐐기 검.
"부전대장...!"
알렉스였다. 포격전대의 접근전을 맡는 부전대장. 포대 호위의 최고전력. 마지막 보루.
그녀가 질주해서 따라온 것이다.
그 누가 그랬던가.
포격전대에 근접 전력이 구태여 필요하냐고.
그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이 알렉스는 번개가 된다. 자신의 몸만한 대검을 들고서 눈밭을 헤치며 달린다. 솔라리키타오는 쏟아붓는 포격 속에서 자신을 향해 질주하는 알렉스를 보고서 한 눈에 그 존재를 파악한다. 이리다. 딱총새우들의 무리 속에 새하얀 이리 하나가 그림자를 두른 채 달려오고 있다.
다른 날파리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건가?
질주하는 알렉스. 그 뒤, 허공에서 생겨나는 쐐기검. 알렉스가 파동을 감지고하서 몸을 돌려 쳐낼 준비를 하자 이번엔 앞에서 생성을 끝마친다. 차원이동을 응용한 워프. 설원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 칼날을 들이미는 암살자. 시계가 째깍하고, 디바이스가 붉게 운다. 알렉스는 자신의 몸을 펌프질한다. 심장을 떠난 피가 순식간에 되돌아오고, 근육이 미친듯이 움직인다. 신체가 왜곡 될 정도의 강한 생명의 박동.
라이프 오버드라이브.
일렉기타의 현을 재빠르게 스크래치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재빨리 몸을 튼다.
과출력으로 붉게 달아오른 블레이드가 쐐기검을 쳐낸다.
훗, 하고 만면의 미소를 띄운 알렉스. 팽그르르 돌며 앞을 가리던 쐐기검이 사라지고
그 곳에는 솔라키타티오의 일그러진 얼굴.
"버러지들이. 너희들과 춤은 출 필요는 없지."
"앞이 비었다."
대신, 불길한 웃음.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알렉스가 아닌, 솔라키타티오의 정면으로 뻗는 팔.
"읏...!"
그녀의 전방을 가리고 있던 쐐기검 앞에서 생겨나는 쐐기검 세 자루.
전방에는 소총을 쏘며 화력투사 중인 소총병들. 사선확보를 위해 살짝 비켜나있던 방패병들이 달려든다.
1파는 가까스로 막아내지만, 2파는 갑자기 땅에 고꾸라 박더니 지면을 헤집는다. 파헤쳐진 동토는 돌덩이처럼 산산조각나며 그 위에 선 방패병들을 날려버린다. 그런 뒤에 3파.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알렉스도 반응하며 뛰쳐나가나 늦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소초병들. 그들을 노리고 마지막으로 쏟아지는 쐐기검.
하나로 그 곳에 서 있던 50명의 사지를 폭죽으로 만들 절망이 다가간다.
그 곳에 방패병 하나가 달려든다. 2파에 걸친 공격에도 운 좋게 뒤로 밀려난 탓에 소총병 앞에 굴러떨어졌다. 이제는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정도의 신체능력 덕택에 곧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른다. 방패병 여럿이 방패를 맞대고서 막아선다면 모른다.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방패째로 꿰뚫려 죽을 것이다. 기껏해야 후방의 소총병들이 전멸할 것을 7할까지로 낮출 정도.
그럼에도 그는 일어선다. 방패를 들고 막아선다.
소총병들도 재빨리 그의 뒤로 붙는다. 제일 끝에 선 양익은 생존을 포기하고서 계속해서 화기를 달구어댄다.
그럼에도 절망은 다가온다. 죽음이 날아든다.
방패병은 이를 악물고서 방패를 쥔다. 바이저를 통해서 방패 바깥의 상황이 모조리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서슬퍼런 그림리퍼의 낫. 바이저를 끄고서, 눈 앞이 어둠으로 물든다. 방패의 안쪽면만이 들어온다. 허리를 낮추고, 닥칠 충격에 이를 악문다. 결사의 각오. '용기란 두려움을 안고서 그럼에도 나아가는 것이다'라 했나. 두려움 속에서 남자는 각오를 다진다.
"그러니까 말했을텐데."
"내 전대원들에게"
상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새빨간 플라즈마 에너지가 쐐기검 위에서 도끼질이라도 하듯이 내려찍힌다.
"손대지 못하게 할 거라고."
류드밀라.
상공에서 염동력을 이용한 포격에 집중하며, 지휘를 하던 그녀가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재생을 마치지 못한 왼 팔. 펄럭이며 휘날리는 코트.
그녀 옆에서 달궈진 포신을 식히며 연기를 뿜는 주포.
"전대장님...!"
"사람 간 떨어지게 하고 있어. 흥."
류드밀라는 다시 한 번 전장에 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 발 밑에는 그녀의 병사들이 있다.
20년간 몸이 문드러지고, 이젠 마음밖에 남지 않게 될 때까지 싸우게 만든. 소중한 이들이 있다.
솔라키타티오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류드밀라를 바라보며 눈썹을 모은다.
그 불길한 붉은 눈. 이전에는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웠지만 이제, 류드밀라에게 그런 것은 없다.
적은 혼자다.
왕의 충신과 관리국의 전대장.
전대장에게는 전대원이 있다.
충신에게는 병사도, 가족도 없다.
하지만 류드밀라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
죽어가는 몸으로 그녀의 어깨 위에서 내려왔다.
사력으로, 모든 걸 쥐어짜내어서라도.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서.
그들은 두려움을 아는 병사다.
두려움을 알아야, 나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야 이겨냈을 때의 자신에게 고취될 수 있다.
"전원, 두려워 마라! 적은 혼자다. 우리는 전대."
"내가 길을 열겠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들을 고양하는 류드밀라의 말.
터져나오는 함성과 함께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병사들은.
전대장의 마음에 하나 되어
뜨겁게 들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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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씬 좆노잼이네.
미안.
아래는 작성하는데 도움이 된 브금.
멈추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