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여자가 다가왔다.
성격도 이름처럼 차가워 보였다.
허리 한 쪽에는 긴 검을 차고 있었다.
"저 사람이 도슨트야?"
"......"
"...르네 씨?"
"응? 아, 미안.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르네 씨 답지 않게 딴 생각을 했네?
"뭐, 그럴 수도 있지."
"......"
"호라이즌...왜 그래?"
"...아뇨, 그냥..."
"저 유키라는 휴먼, 제가 예전에 잘 알던 휴먼과 많이 닮아서 그랬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르네라고 합니다. 이쪽부터 샤렌, 호라이즌, 레이첼입니다."
"환영합니다, 르네 님. 경매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가 갤러리를 구경 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는데, 어떡할래?"
"저는 찬성! 대찬성이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휴먼."
"나도 상관없어."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절 따라오시죠."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르네 씨...나 다리 아퍼......"
"듣겠다고 한 건 너잖아, 좀만 더 참아봐."
"지루해... 더는 못 견디겠어......"
내가 왜 이걸 듣는다고 했을까...
미술품에 관심도 없는데...
그냥 빨리 경매 시간이 오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앉아 있을 수 있으니까.
나와 반대로 레이첼은 신나서 설명을 듣고 있다.
저런 걸 어떻게 듣고 있는 거지?
호라이즌은...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보면 볼수록 우리 또래 여자 아이가 아닌 것 같다.
"르네 씨는 안 지루해?"
"전혀? 난 재밌는 걸?"
"저게 어떻게 재밌을 수가 있어? 대단하네, 레이첼도, 르네 씨도."
"하하, 칭찬 맞지...그거?"
"그럼, 당연하지."
"새로운 걸 알아간다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있어. 그 즐거움이 오늘은 나와 레이첼에게 왔을 뿐이고. 언젠가 너에게도 찾아오겠지. 어쩌면 이미 찾아왔을 수도 있고."
"...어쨌든 난 재미 없어."
"하하, 그래. 그런 너에게 기쁜 소식이 있어. 곧 경매가 시작될 거야. 지루한 설명도 이젠 끝이라는 거지."
"그거 참 희소식이네."
"곧 경매가 시작하겠군요. 경매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경매장은 우리 외에도 수많은 vip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부 진짜 vip들이라 그런지 우리에게는 없는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다.
내부는 커다란 강당같았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기는 했지만 내 눈엔 딱히 별거 없어 보였다.
단상 위에는 진행자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럼 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 네. 고마웠습니다."
"어디 가는 거야?"
"경매가 시작되면 내부에 도슨트는 출입 금지라서. 잠시 물러나는 거야."
"으응, 그렇구나."
"레이첼, 당신도 따라 나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경매는 지루할 텐데요?"
"응? 그래도 돼? 고마워."
"레이첼은 왜 보낸 거야?"
"도슨트를 멀리 떨어뜨리려고.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어."
"이유? 뭔데?"
"그건..."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르네 씨가 무언갈 말하려고 하자 경매가 시작되었다.
"자, 첫 번째 작품입니다."
"40년 전 현재는 사라진 마을의 주민들의 두개골로 만든 항아리입니다. 시작가는 30000크레딧부터 5000크레딧 씩 올라갑니다."
낯선 광경이다.
기묘하면서도 신기하고 두렵기도 한 느낌이다.
여기저기에서 손을 든다.
35000...40000...45000...50000......
그런데 저거 뭐로 만들어졌다고 했지...?
"르네 씨, 저거..."
"......"
"50000크레딧 낙찰되셨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그럼 두 번째 작품으로 넘어가죠."
두 번째 작품이 나온다.
"7개월 전부터 냉동 처리된 얼음 조각 인간입니다. 이번 작품은 50000크레딧부터 시작합니다."
어...어? 저거?
아까와 마찬가지로 작품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평범한 작품에서는 느껴질 수 없는 역겨움
따지고 보면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그랬다.
익숙했다. 하지만 이 익숙함은 현재 내 일상에서의 익숙함이 아니다.
이건... 뒷세계의......
"...르네 씨...저거 혹시..."
"...호라이즌?"
"알고 있습니다, 휴먼. 아까 팔린 작품도 그렇고 지금 것도 그렇고..."
"아니, 이 갤러리의 작품 전체가 인간을 이용했거나 인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 얼음 조각상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