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좀 공주님 노릇 해보나 했는데...

셋이 다 이런 시계같은게 생겨가지곤 빠지지도 못하겠네.



걱정 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멋있는척 해보겠어?

철수가 우리 구한다고 이렇게 다쳤는데, 우리도 도와 줘야지.


여긴 괜찮을 것 같으니까 잔말 말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쉬고나 있어.





아, 진짜.

다음에 알파월드에 가면 그때 자유이용권이나 전부 쏘라고!


...근데 그게 그때까지 남아있을지 모르겠네.















그... 근처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면 구해올게!

우린 완전 괜찮으니까 우리가 뭐라도 해야지!


...엄마한테 들키면 죽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우리가 안 가면 어떻게 하게?

뭐라도 튀어나오면 그 다리론 도망도 못갈거 아냐?

착각 마. 네가 우릴 미끼로 쓰는게 아니라, 우리가 널 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너 좋다는 미리네랑 같이 운동이라도 해 두지 그랬어.



정말... 다들 이렇게 되기 전에 솔직하게 얘기나 할 것이지.

바보들.












아 김철수.


아까 너 좀 멋있었다?











......





그녀들이 멀어져 간다.



다들 아무 걱정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팔다리는 굳고, 얼굴은 어색해다. 뭔가 강해지긴 했지만 나나 쟤들이나 고작 학생일 뿐이니, 무서운건 마찬가지겠지. 조그만 괴물들은 나름 잘 때려잡았지만 저 밖에 더 뭐가 있을줄 알고? 지금도 저렇게 온갖 기괴한 괴성이 울리고 있는데.

나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러니까... 내가 다치지 않았다면 저렇게 억지로 밖으로 나가진 않았을 거다. 우리 학교가 박살나는걸 보고 도망온 판국에, 다들 건물 안에나 숨어있지 뭐하러 괴물들을 잡으러 가겠어. 나만 아니었다면.



쟤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닐걸.

네가 들고있는 것들을 봐. 혹시 싸우게 되면 망가질지 모른다고, 몸에 덮고 있으라고, 아예 대놓고 그냥 가지고 있어달라고 준 물건들. 손때묻은 헤드셋에 늘 입고다니던 재킷, 아끼던 인형. 다시 와서 가져갈 거라고? 이건 그냥 유품이야. 걔들도 그 생각으로 준 거라고.


평생 스스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끌려다니다가, 이젠 네 손으로 쟤들까지 전부 죽였지. 병신같은 놈.

가만히 있으면 뭐라도 될 것 같았어?








...난......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친다.




시간이 느려진다.




시야가 좁아진다.




전신이 타오르는 것만 같다.





그리고...


다리의 통증이 사라지고, 동시에 왼손에서 전해지는 기묘한 감각. 손을 내려다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아마 이 사건과 관계있을, 정체불명의 손목시계.





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까지 늦었잖아.


그래. 이게 김철수지. 이게 김철수야...








순간, 다시금 괴성이 들려온다.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거대한 크기로. 밖에서 걔들이 싸우고 있는 걸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건 아닐거다. 난 이번에도 늦었으니까.



그냥. 할 일이 알아서 와주겠다는데, 힘이 생겼으면 써야지.



계단 난간에서 튀어나온 낡은 쇠파이프를 집어든다. 내 힘이 정확히 어느 정도일지는 모른다. 학교에 있을 때 봤던 녀석처럼 별 발악도 못하고 죽어버릴지도 모르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걔들도 그딴걸 저울질하면서 싸우지 않았는데.













드디어 건물 밖으로 나온다. 고작해야 서른 걸음.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 그렇게 틀어박혀 있던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모습을 드러내는 바깥 세상은 사방이 연기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눈앞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질량과, 절대 인간의 것이 아닌 위압적인 열기.








"괴물 새끼야! 어서 덤벼!"





목소리를 쥐어짜내자 안개 너머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다가온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내가 오늘 죽더라도, 최소한 너 하나는 죽여주고 가야지.





시간이 느려진다.


혈류가 가속되고 손에 쥔 쇠파이프가 악력에 으스러진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고, 난 그대로 발을 내딛어 쇠파이프를...































구구구구구구











?








쿠르르르



정지! 정지!

여기 생존자가 있어!




북극성 북극성 여기는 발행인. 현재 민간인 생존자를 발견...






끼이이익











어... 어어어...












학생, 괜찮니? 다친 덴 없어? 정말 다행이다!

비사고 학생 같은데, 학교에 있던 친구들도 전부 구조돼서 무사해!



아, 너무 급하게 말했지. 아직 정신이 없구나.

그럼 일단...





뭐? 여자애들? 그......


아니다. 일단 대피소로 간 다음 얘기하자.












슈우우우우우
































온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남파간첩의 테러 이후 3주가 지났습니다.

정부는 비사고등학교 '영웅 동아리'의 뜨거운 희생과 헌신에 훈장을...



































분명 분위기 잡고 가니 괴물들은 국군 아저씨들이 전부 해치웠으니 걱정말라고 전개였는데

살을 붙이다보니 언젠가부터 끔찍한 안개영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