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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꼭 틀어주세요.)

 ○ (내용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 (일단 나는 좋아서 올렸는데 켜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음.)

 ○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음…. 찾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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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들이 나섰었던 직후 상황은 이랬다. 총수 리플레이서 킹은 애초부터 지구권의 관리국이 가진 전력이란 전부 코핀 컴퍼니에 집중됬단 것을 알고 있다. 당연히도 그의 입장에선, 오비탈 베이스와 다수의 전력을 잃었긴 했어도, 당장 총공격을 감행해야 했다.

 관리자는 마왕들 셋에 전력을 분산시켜 막으려 했었다. 이때 상황을 그냥 지켜보는 것보다도 나서야만 했던 것이었다. 관리자가 이긴다면 모든 병력들을 집결시켜 자신들을 향해 공격하게 될 것이었고, 마왕들이 이긴다면 달리 지구권을 지배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워질 거다.


 다만 관리자도 딱히 멍청한 것은 아니다. 지금 세 세력, 이들 중에 리플레이서가 움직인단 것을 예상하지 못할리 없었다. 그렇기에 관리국의 모든 활동가능한 태스크 포스를 동원하였고, 미군과 협동해 우주기지 루나 투에 우주군과 전함들을 집결했다. 지금, 에드먼드 장군이 연합군을 그곳에서 지휘하고 있다.


 몇 시간 전, 펜드래곤이 귀환하였고, 또한 힐데와 도마가 그때 시합을 할 즈음에. 우주에선 이미 함대전이 한 번 치뤄졌다. 지구권에 강하하려 준비했던 리플레이서의 우주군을 방해하여 저지했었지만, 목적의 달성관 다르게 큰 피해가 발생한 상태다. 바로 리플레이서 퀸이 엄청나게 많은 전함들을 침몰시킨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거센 저항에 강하작전을 고집할 수 없었던 킹이었었다. 에드먼드 휘하 퀸에 견줄 카운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깊게 밀었다간 관리자의 올림피안 혹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를 성수급의 전력들에 퀸이 역공당할 수도 있다. 그게, 지금 전략적인 상황이다.


 알비온과 코핀들은 이미 귀환했다. 관리자와 에드먼드 둘은 성수급의 전력에서 엘리자베스와 오로치를 먼저 올려보내기로 결정했다. 관리자의 올림피안을 비롯해서 힐데를 지구에 남겨둔 필요는 따로 있었다.


 방금, 그로니아 지역에서 인공침식파를 전부 흡수시켜서 재탄생한 네퀴티아가 다시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고 이에 대응하려고 했던 것이다.


 레지나가 설명하길, 아포크리파에 있던 셰나하고 카르멘은 학회 소속이기도 했고, 레아가 에델의 차원에 도착하자 그녀를 납치했다 말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를 부활시켰던 것이다.


 중파되어진 뉴 오하이오를 내리고, 카린하고 도미닉은 히페리온으로 갈아타서 일단 이면세계를 거쳐 이동해 좌표를 바꾸곤 우주기지 루나 투에 워프하란 지시를 받았다. 이에 따라가는 인원들은 일단 토미들만 있다.

 달리 말하자면, 관리자가 증원으로 보낸 전투원은 지금 프리드웬 기관하고 나나하라 연합만이 전부였다. 카린하고 도미닉은 애초에 이쪽 소속이 아니었고, 토미들은 저쪽에서 고용되진 용병이다. 네퀴티아를 정리한다면 관리자의 올림피안과 힐데와 유빈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사실, 적당한 수준의 카운터들 십몇 명을 보내는 것보단, 리플레이서 퀸이 나타난다면 효과적으로 견제할 힘을 가진 전력이 필요했으니 내린 결정이었다.


 아슈세이버로 관리자가 마중나왔다. 코핀 컴퍼니를 거쳐, 함선에는 관리자의 올림피안, 힐데 및 유빈과 지수와 에이미, 그리고 리타와 대시와 호라이즌, 베로니카와 릴리와 리코리스와 메이슨이 타고 있다.

 일단, 지아는 급히 그녀가 해결할 문제가 생겼고, 도로시들은 적들이 너무나 강해져 더이상 지켜주면서 싸우기 힘들어졌고, 한솔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대기시켰다. 나머지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로니아까지 가는 도중….


 붉은 석양이 지는, 황금빛 태양의 황혼은 아슈세이버의 쓸쓸한 격납고의 바닥을 어루만지듯 비추고 있었다. 달콤하고 끈적이는 바람은 걸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에 부딪쳐 옷깃을 펄럭였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전부 같지만, 그리고 같은 곳을 걷고 있지만,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 지금 느끼는 기분은 제각기 달랐었다.


 단순하게 관리자가 완성시킨 주피터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적인 표정으로 캔커피를 들고 마시면서 걸어오는 힐데.


 레지나와 함께 힘썼지만 레아를 지키지 못했고, 그랬기에 네퀴티아를 되돌리거나 처치하겠다 결심하는 베로니카.


 자신은 휴먼들과 다르게 마음이 없을텐데도, 어째서인지 지는 석양을 보니 아직까지도 세라펠의 목소리가 기억나며 우울한 기분이 느껴지는 호라이즌.


 그들의 눈 앞에는, 얼터니움 리액터를 네 개 장착시킨 올림피안 주피터의 완성형이 서있었다. 외형적으로는 단지 무기만 교체한 검은 타이탄이지만, 묘하게 다른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유빈은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관찰하듯 훑어보다 평가했다.


 "기본형은 제4종 침식체급 기체였는데…."


 "이젠 한계가 없는 힘을 가졌지." 관리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티폰에게도 견주지 못할테니까."


 "관리자, 티폰이라고 했었나?" 힐데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러자 유빈은 손을 빼고 힐데를 보았다.


 "지금, 이 전쟁은 성수나 마왕의 성마대전을 멀찍이 초월했습니다. 가은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거든요."

 "가은? 그렇다면 설마…."

 "……."


 관리자가 대신 말하였다. "에덴으로 갔던 카린들은 그곳에서 침식체 티폰과 마주쳤다고 하더군."


 "사모아 비밀기지에서 찾았던 자료들은 전부 사실인가. 녀석은 얼마나 강하지?" 분명 발키리로서 여러 전설적인 신화적인 존재들을 마주하긴 했었지만, 과거에 티폰을 마주친 경험은 없었다. 관리자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중에 자료를 전달해주지. 그때 혼자 읽어 봐라."


 "……." 힐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커피만 홀짝였다.


 호라이즌은 유심히 쳐다보더니 관리자에게 물었다. "만일 전력을 낸다면 어느 정도입니까?"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 그녀는, 이 정도나 되는 수준의 메카니즘을 설계하고 제작했던 관리자에게 보완을 받을 수 있진 않을까 기대하였다.


 성수라고 불려졌던 시무르그는 아후라 마즈다라는 이름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제작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대신, 관리자라면 자신에게 맞는 추가장비 혹은 확장모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저런 배리어나 런쳐, 혹은 올림피안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자신에게 맞게 커스텀해 강화시켜 준다거나.


 "혹시, 저처럼 침식파에 감염되지 않거나 혹은 신창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겁니까?"


 관리자가 대답했다. "자네의 기체인 시무르그 또한 정점의 기계를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았지. 그렇지만 기초적인 설계사상부터 달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겠습니까?"


 관리자는 바람이 끌고온 먼지를 털어냈다. "만일 적이 공격하면, 자네는 피하면 되지만 나나 올림피안 주피터는 그게 적절한 대처가 아니야. 기체가 위치를 벗어나 날 보호하지 못한다면 안 될테니. 또한, 자넨 정찰이나 강습 같은 목적에 더욱 부합하다 할 수 있어. 진형과 상황에 묶이지 않고 기동력을 발휘해야 하니."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관리자."

 "뭐지?"

 "제가 올림피안 주피터에 장착되진 무기들을 운용하진 못합니까?"


 호라이즌의 말투는 단순한 물음보다는, 요청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관리자는 아마 침식체 티폰을 봤고 그랬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환장시킨 장치들은 전부 엄청난 수준의 에너지를 요구하네. 그렇기에 여태까지 사용하질 못했어.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노바급의 리액터가 필요하지."


 "하나 달아주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네레이터와 배럴과 리조네이터를 전부 하나의 런쳐에 끼워 조립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 구조는 많은 위험을 동반해. 전투 중에 리액터가 유폭되면 치명적 피해를 야기하고, 또 엄청나게 큰 무기를 그렇게 들고 날아야 한다면 비행시의 밸런스도 좋지 않아. 또한 에너지를 많이 공급해도 단순하게 투사하는 방식이면 지금 상대하는 마왕 급의 적들에겐 너무나도 원시적인 공격방식이라 거의 소용없고, 버서틸한 옵션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면 장비 또한 그만큼 복잡해지고 필연적으로 내구성조차 낮아져."


 "그렇다면, 아머처럼 부위에 맞도록 부품을 제작하여 합체시킨다면…?"


 관리자가 대답했다. "나에게는 그게 바로 이것일세. 압도적인 힘을 운용하는 슈트가 아니라, 슈트 자체가 움직이게 만들었다 말해도 좋아. 하지만 자네의 경우는? 시무르그의 설계와 구조는 완성되었어. 기존성능의 저하를 방지하면서 아머를 만든단 발상은 애초에 쉬운 게 아냐." 호라이즌은 묵묵하게 올림피안 주피터를 지켜보았다. "그렇군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여운이 남았다.


 "……." 관리자는 그렇게 멈춰서 고민하는 호라이즌을 말없이 내려보았다.


 시계를 잠시 보았던 베로니카가 물었다. "침식체 마에스트로 네퀴티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셰나와 카르멘은 레아를 변이시켰지만, 급하게 모습을 감췄어."

 "그러면 어떻게 하실건지요?"

 "일단 반응이 나타난 곳에 간 뒤에 조사할 예정이네. …어쨌던간, 이제 된 것 같군. 각자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고 있게나."


 관리자의 말을 듣고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때, 잠시 생각하던 관리자가 말했었다. "유빈 씨… 아니, 호라이즌. 딱히 할 일이 없다면 나랑 잠시 말하지 않겠나?"


 유빈하고 호라이즌이 걸어가다 멈춰서며 몸을 돌렸었다. 유빈은 그가 무엇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호라이즌하고 자신의 공통점이라면 아마 에덴에서 티폰하고 마주쳤던 것이겠지.


 호라이즌도 그렇게 짐작했는지, 바로 물었다. "가은에 대한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자넨 아까부터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더군. 티폰 얘기도 하고 싶지만, 되려 자네가 내게 궁금한 걸 물어봐도 좋겠지."

 "……."


 고개를 끄덕이곤 관리자를 따라가는 호라이즌. 나른하게 바람을 맞던 유빈은 기지개를 피면서 자신의 방으로 갔었다. 조금 누워서 쉬다 저녁이라도 해서 먹을까, 그렇게 하품하며 익숙한 아슈세이버의 복도를 걸어가는 그였다.


 한 시간 뒤….


 유빈은 배가 고파져서 대충 오이나 당근을 썰고 있었다. 리타나 호라이즌을 찾으러 움직일 때는 진짜 오랜 항해를 해서 이번에도 그럴지 몰라 계란도 우유도 마늘도 엄청 샀는데, 에덴으로 가자마자 그날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잘도 침식파에 오염되지 않았군, 이거….'


 마늘의 냄새를 맡아보고 하나 씹어먹은 유빈은 한숨을 쉬었다. 내심 썩었다고 치고 쓰레기통에 버리길 원했지만, 먹어보니 상태가 나쁘지도 않은데 멀쩡한 음식을 그냥 낭비할 수도 없다. 계속 썰면서 대충 생각하던 유빈은 구석에다 놓아둔 김을 보다가 생각했다. '반찬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설마 그냥 오하이오에 두고 왔나?"


 그러고 보니 김치도 고추장도 전부다 그대로 두고 와버렸다….


 함교에 관리자와 에드먼드 장군이 통신하자마자 이것저것 바쁘게 말하다가, 로봇들이 짐을 전부 옮겼다고 하길래 그대로 관리자와 함께 전함으로 옮겨타 여기까지 왔었는데… 아마도 개인용 냉장고에만 넣어둔 물건만 가져왔었던 것이겠지.


 유빈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방의 냉장고는 좁아서 주방에다 일부 놨었는데… 생각해보면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나."


 그리고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혼잣말을 했다. "리조또나 새우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김밥 정도 밖에 만들 수 없는 것 같군."


 그렇게 혼자 김밥을 돌돌 말고는, 깨를 뿌리는 도중, 갑자기 문을 누군가 똑똑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아… 저, 대시예요. 그게…."

 "일단 들어와요, 대시."


 비닐 장갑을 벗고 옆에다 두며 대답했다. 문을 열고 우물쭈물거리면서 그냥 서있는 대시.


 "무슨 일이라도?"


 대시는 머뭇거리다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비비며 대답했다. "아… 저, 자다가 배고파서 깼는데, 베로니카 씨도 그렇구… 아직 요리중이라고 하구… 그래서 어디 과자 같은 거 없나 돌아다녔던 도중에 맛있는 냄새가 나서요." 그러자 유빈은 눈동자를 살짝 돌리면서 생각했다. '아, 그러고 보니… 딱히 식사에 대해서 별 말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플로라 메이드 분들이 같이 합승하셨으니 요리는 그쪽에서 하겠지.'


 "대시, 저쪽에선 무슨 요리를 만들고 있나요?"


 "칠면조 요리하고… 옥수수랑 소세지랑 당근이랑 야채 같은 거 볶고 있고… 아! 또 치즈에다 밀가루랑 땅콩하고 섞어서… 토마토랑 딸기에다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렸던 샐러드도 있었고, 구운 빵에다 달걀을 넣은 것도 있었고…."


 대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왠지 군침이 도는 것 같은 행복한 얼굴을 지었다.


 유빈은 팔짱을 끼면서 고민했다. '으음… 이건 괜히 만들었나.' 그렇게 계속 혼자서 주절거리며 말하던 대시는 배고픈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건 뭔가요오…?"


 "그냥 김밥인데요."

 "김밥?"


 대시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그런지, 어눌한 목소리로 한국어 발음을 따라했다. 유빈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말했다. "라이스볼 비슷한 거예요. 쌀에다 채소랑 햄이랑 넣어서 만드는…."


 "아… 저, 하나 먹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렇게 말하고 유빈은 다시 비닐 장갑을 끼곤, 접시에다 대충 많이 담아줬다.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칠면조랑 별의별 요리를 먹을텐데, 지금 배고프다고 딱히 평소에도 많이 먹는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뭉텅이로 올려주는 유빈을 보고서 대시는 무언가 착각했는지, 너무나도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괜찮아요! 배고프긴 하지만 유빈 씨가 힘들게 만드셨잖아요?!"


 "괜찮아요, 그냥 드세요."

 "아, 아우우우우…."


 남는 재료를 모두 처리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만들진 않았다. 어쨌건,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먹을 때, 갑자기 또 누군가 문을 두들기며 불렀다.


 "저기, 유빈 씨. 안에 있어? 대시는 또 어디에 간 거야…."


 리코리스였다. 먹기는 많이 먹지만, 엄청 느리게 먹던 대시가 우물거리며 대답하였다. "네, 네? 리코리스 언니, 저 여기에 있어요!"


 "…넌 왜 거기에 있는데?"


 젓가락을 놓고 문을 열어주는 유빈. 안에서 대충 김밥과 우유를 상에다 놓고서 먹고 있었던 둘을 보고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요리 다 됬어… 조금 기다리지. 이쪽도 만드는 수고가 있는데 배고프다고 딴거 먹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러자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받은 유빈.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매운거 만들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리코리스는 지난 번에도 엄청 매운 떡볶이를 만들고 한국인이니까 이까짓 정도는 평상시에도 먹지 않냐며 이지수와 허수아에 억지로 품평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불길한데… 혹시 칠면조 요리가 아니라 타바스코 양념치킨 같은 걸 만든 거 아냐?'


 굳은 표정으로 서있는 유빈에게 리코리스가 힐끔 보면서 말했다. "저기, 사장님이 호라이즌하고 같이 부르시던데. 밥 먹으면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유빈 씨도 빨리 와달라고 하시더라."


 "그런가요, 지금 바로 가죠."

 "응. 나는 메이슨 씨도 찾으러 가야겠네."

 "……."


 그렇게 말하곤 리코리스는 총총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어째, 태도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진짜 메이드보다는 사무직 여성과 같은 느낌이 강했다. 표면적인 기품이나 우아함을 신경쓰기 보단, 왠지 명료하고 확실하게 또박또박하게 말하려는 태도도 그렇고….


 유빈이 일어나는 대시를 보며 말했다. "…저, 대시. 입 안에 뭐 넣고서 우물거리며 걸으면 안 됩니다."


 "네? 왜요?"

 "아, 그게…."


 버릇처럼 지적하려고 했었던 유빈이지만, 솔직히 대시는 그런 걸 모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또 잔소리하는 늙은이처럼 보이는 것도 싫어서 그냥 관뒀다. "아뇨, 됬습니다. 그냥 신경쓰지 마세요."


 "……?" 하지만 평상시에 걸어가며 바게트나 여러가지 음식을 먹던 여행객을 많이 봤던 대시에겐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었던 건지 전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아마도 전함 안에선 먹다가 배가 흔들려 위험하니까 그런 충고를 한 것일까?


 어쨌건 둘은 다이닝 룸에 가서 먼저 앉아 있는 힐데와 리타를 보았다. 관리자의 왼쪽엔 호라이즌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이전에 하던 대로 텀블러 컵에 오일을 담아서 빨대로 마시고 있었다. 관리자가 오른쪽 의자를 당기면서 손짓했고, 유빈은 거기 앉았고 대시는 리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이안 주니어의 정비를 하고 있었던 존은 리코리스가 불러서 오기는 했지만, 대충 빨리 먹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이후 릴리가 에이미와 지수를 불러왔는데, 자신도 유빈이랑 호라이즌의 옆에 앉고 싶어하는 에이미를 지수가 제지했다. 그들은 존과 같은 자리에 착석했다.


 잠시 뒤에, 릴리하고 리코리스 둘이 카트를 밀면서 술과 음식이 담긴 접시를 정중하게 놓았다. 평상시엔 이런 것을 먹어보질 못했다며 매우 좋아하며 고맙다고 베로니카하고 릴리하고 리코리스에게 계속 꼬박꼬박 인사하는 대시하고, 부끄러워져서 뭔가 말하려다 그냥 술만 들이키는 리타. 힐데는 빵과 샐러드를 작은 손으로 집어서 먹고 있었다. 원래라면 고기를 잘라 덜어서 맥주랑 같이 마실려고 했겠지만… 왠지 네퀴티아가 곧 나타날 것 같았다.


 투덜거리지는 않았지만,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다 고기 냄새를 맡곤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막상 음식이 오자 이것저것 좋아하며 먹는 존과, 콜라가 마시고 싶은데 콜라가 없다며 칭얼대는 에이미와, 유럽식 요리는 왠지 별로라는 투로 굳이 젓가락을 써서 먹고 있는 지수.

 사실, 칠면조 자체는 리코리스가 요리했기에 어느쪽이냐 묻는다면 정확하겐 미국식이기는 했다. 베로니카가 가르쳐줬던 기법에 리코리스가 어렸을 때 집에서 배웠던 방식을 섞었던 것이니까. 무엇보다 살짝 매콤하게 느껴지는 맛도 있고….


 그래서인지 리코리스가 고기는 자신이 요리했다고 평가를 묻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었다. 아예 먹지를 못하는 호라이즌만 빼고. 이건 그녀가 매운 맛으로 폭주하질 않도록 잡아주었던 베로니카의 공로가 크긴 했었다….


 아무튼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기름을 마시는 호라이즌과, 이것도 저것도 그냥 저냥 먹을 만 해서 안심하는 유빈. 관리자는 잔에 따라둔 과일주를 마시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유빈 씨는 사내 식당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군."


 "카레만 나오는 곳은 처음 봤습니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야."

 "아니… 잠깐, 생각해 보면 그렇겠군요."


 유빈은 뭐라고 말하려다 다시 기억했다. 눈앞의 관리자는 여기온지 한두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리플레이서들이 테라사이드 작전을 시행하고서, 코핀 컴퍼니를 잡고, 올림피안을 사용해 미국의 윌버를 카린과 협공했다가, 펜드래곤과 나나하라와 합류했었다… 그랬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여기 오자마자 엄청나게 바빴었고 이런 문제들은 딱히 신경쓸 시간이 없던 것이겠지.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그쪽도 신경써주시죠. 아무도 고등어 카레가 나오는 곳에선 일하고 싶지 않을테니까."

 "요리를 맛없게 했었나?"

 "아니… 맛없기 보단 어째서 그런 요리를 만드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뼈는 계속 씹혀서 발려 먹기 귀찮지, 밥과 다른 반찬이랑 같이 먹으니까 이상하지… 그런 괴상한 카레 라이스를 주는데 그건 또 군대 생각나더군요."

 "……."


 대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호라이즌이 물었다. "편식하지 말고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휴먼. 애도 아니고 그딴 문제로 투덜거리긴… 우리쪽 대시는 풀도 뜯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왠지 짜증난 표정으로 유빈이 대꾸하려다가 갑자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뭐라고요? 풀?"


 "…잊으십시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얘깁니까. 방금 뭔가 엄청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관리자는 헛기침을 하곤, 말을 하려다가 그냥 포크를 내려놓으면서 멈췄다. "이건… 음?"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저편에서 무언가 음악소리가 이곳까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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