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는 있으셨습니까?"

"......재미?"

"만화 말입니다."

"아... 응."

"원하신다면 매일 이용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제 이름을 대고 이용하시면 됩니다. 돈은 어차피 제 지갑에서 빠져나가니까요."

"...이렇게 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했던 말 기억 하십니까?"

"...아니, 전혀."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이라고... 그 눈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전 당신을 도울 계획입니다."

"...어째서?"

"그게 바로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이 사람의 속셈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로선 주는 선의를 거절할 신세도 못되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역시...당신 이상해..."

"하하, 제가 좀 맛이 갔다고 샤렌에게 자주 듣죠."

"...샤렌?"

"저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꽃이야?"

"꽃...이요?"

"그 아이를... 꽃처럼 기르고 있어?"

"흐음...꽃이라... 뭐, 소중하게 기른다는 뜻에서는 꽃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꽃처럼 얌전히 기르기보다는 이 세상의 좋은 면, 나쁜 면 모두 겪어보게 하고 싶네요. 다시 말해 인간으로 기르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
꽃처럼 기르고 싶다고 했으면 죽이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가도록 하죠. 제가 잘 아는 가게가 있습니다."

"......응."

"아, 참고로 제 집은 이데아 씨가 쓰시면 됩니다. 전 사무소에서 잘 거라서요."

"당신 집인데 왜 당신이 나가?"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 열쇠입니다. 부디 막 어지르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1주일이 지났다.
그 간의 일상은 항상 똑같았다.
식사는 편의점에서 때우고,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은 만화방에서 보냈다.
읽다 보니 책장 한 면은 다 정복한 것 같다....
멘션에서는 날 추적하는 걸 포기한 것 같았다.
부상도 거의 다 치료 되었다.
그러니 난 이제 완전한 자유의 몸이라 할 수 있다.
딱히 해방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뭔가 변화가 있던 것도 아니다.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르네라는 남자가 그 날 이후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막막하다.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둠 속에 숨어 살다가 밝은 빛으로 나오니 정작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멘션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머리를 식히러 창 밖에 나간다.
도시의 아침은 언제나 복잡하다.

"......후우..."
높은 빌딩 숲을 바라보며 이틀 전 구입한 담배를 핀다.
담배에 대해서는 피면 빨리 죽는다는 것만 알고 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조금 일찍 죽어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한 개비에 불을 붙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파트 내부에서는 금연이라고 한다.
하얀 연기를 떠나보내며 내가 도망친 날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미치겠네."
담배 연기처럼 떠나보내 보려고 했지만 쉬이 날아가지 않는 기억이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애, 애들과 누나는 내가 지켜...! 절대 물러서지 않아!"

"크윽...하아...하아...!"
머리가 아파온다.
부억장에 있는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낸다.
...일주일 전만 해도 가득 차있던 타이레놀도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릴까?
베란다 난간에서 날아오르듯 뛰어내리면 모든 게 끝날 노릇이다.

"...관두자."
뭔가 죽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여러 색으로 가득한 세상에 나 혼자만 무채색인 기분이다.

"...만화방이나 가자."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벗은 오직 만화뿐이다.
만화는 재밌다.
재밌는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기분이 고양 되는 걸 보니 만화는 재밌는 게 맞는 것 같다.

"신들의 힘이...그 권능이...그들이 안배해 놓은 피할 수 없는 세계의 법칙이..."
...읽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다.
또 무료한 시간을 부질 없이 보낼 때이다.
뚜루루루루-
전화가 울린다.
르네 씨가 마련해 준 휴대폰이다.

"...여보세요?"

"아, 이데아 씨. 혹시 저녁은 드셨습니까?"
오랜만에 들으니 조금 반가운 목소리다.

"아니, 아직."

"잘 됐네요. 주소를 보내 드릴 테니 받은 주소로 와주세요."

"주소를... 보낸다고...?"

"...보냈습니다. 그럼 잘 찾아오세요. 모르겠으면 다시 연락하시고요."
뚝

"......주소."
르네 씨의 말대로 주소가 발송되었다.

"...여긴가...?"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길을 잘 찾는 것도 있겠지만
여기가 종종 말하던 사무소인가?
천천히 들어선다.

"...실례."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사무소?"

"네, 제 누추한 사무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저분해."

"하하, 확실히 집에 비해서는 지저분하긴 하죠."

"청소부터 하자."

"...이 시간에요?"

"응."
전직 메이드로서 너저분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휴, 힘들다. 이제 됐습니까?"

"응, 이 정도면 합격이야."

"전에 청소 업체에서 일 하셨습니까? 이런 것에 매우 까다롭군요."

"...아니."

"뭐, 그건 됐고. 오늘의 저녁 식사입니다."

"...이건?"

"캔맥주와 쥐포입니다.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불렀습니다."

"......됐어."

"...당신 내면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입니다."

"......"

"일단 앉으세요. 술은 마시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는다.
수상쩍은 남자가 건네는 술이다.
원래라면 마시지 말아야 하지만...

"...무엇을 위해 술잔을 들지?"

"건배사 말입니까? ...당신을 위하여는 어떻습니까?"

"...당신을 위하여."

"당신을 위하여."
짠~
"...그래서 난 무얼 대답해야 하지?"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으니까."

"제가 당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알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당신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던 날.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게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사람의 기억을 원해?"

"...네, 원합니다."

"...해결할 수 있어?"

"...네?"

"매일매일 머리의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해결해줄 수 있어? 자꾸만 심장이 옥죄어 오는 이 기분을 해결해 줄 수 있어? 내가 당신에게 말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설령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하게 만들어보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돕겠다고 말했으니까요."

"...역시, 당신은 맛이 간 사람이야."
Flower and Butterfly - 꽃의 장 (4)
드디어 밝혀지는 그 날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