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 모양이네?"
슥하고 돌아보는 얼굴에는 묘한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좀 더 다른 종류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미묘하게 띈 웃음기는 아마 원판이 그렇게 생긴 거겠지.
그래, 아마도 저건 재미난 걸 발견한 얼굴일지도 모른다.
상반신을 일으킨다.
알렉스는 여전히 기타를 쥔 채 나를 돌아보고 있다.
찰랑이는 은발이 몰아치는 눈보라, 그 우풍에 연처럼 휘날린다. 새어드는 우풍은 마치 갈라지는 창처럼.
혹은 유성우처럼 알렉스를 넘어 나에게까지 닿고 있다.
"...어떻게 된..."
그 한기에 겨우 정신을 차린다.
도붕이한테 쫓겼었는데... 그러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그리고 지금 눈 앞에는 기타를 쥔 알렉스.
익숙한 멜로디.
알렉스.
잠깐, 알렉스라고?
지금 타이밍에 알렉스가...
"그래서 너. 도대체 뭐야?"
"뭐냐니..."
"모처럼 비밀기지처럼 쓰고 있었는데, 거기 천장을 뚫으면서 나타난 이상한 인..."
그녀는 오른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서, 자연스레 흐음하고 나를 바라본다.
"아니지. 뭐라고 해야되지 너를...?"
"인간도 아냐. 그렇다고 침식체도 아냐. 카운터 같은데 침식파도 나오고... 입고 있는 관리국제 슈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서 도플갱어...도 아닌 거 같고, 게다가 그 존재들 같은 흉흉한 기운까지 흘러.
넌 도대체 뭐니?"
"무슨...소리야...? 나는 인..."
확, 하고 정신이 든다.
알렉스가 이 타이밍에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리가 없다.
불어드는 우풍과 한기가 꿈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계속해서 뜨거운 오른쪽 다리도 확실하게 알려준다.
도플갱어인가.
그렇다면 인간이라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도플갱어들은 원본을 흡수하지 못해서 계속해서 깎여나가는 생명을 서로를 잡아먹으며, 또는 이 이면세계에
표류한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버텨왔다.
실제로 앞 전 루프 때 무자비하게 당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제와서 살고 싶다고?
후...후후...
추하게도, 울면서 발버둥 쳤었지.
이제와서 뭘 말하든 의미 없는데.
그래도 살고 싶다고...
어차피 루프 할텐데.
고개를 든다.
눈 앞에는 빨간 눈동자. 루비라고 하는걸까. 게임에서밖에 본 적 없어서 잘 모른다.
새빨간데, 살짝 옅고 빛나는 광채. 도렉스쟝...
아니, 그 도렉스와는 다른 지금의 도렉스. 그녀의 눈동자.
입을 뗀다.
어쩐지 안쪽 입술이 쩌억하고 떨어져서 기분 나쁘다.
"난..."
"그래 넌?"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야."
아~ 알렉스 젖통 쥐고 아득바득 질싸하고 싶다~
-39
"..."
커다랗게 변하는 눈동자.
동시에 세모를 그리며 아랫입술이 모이다가 떨어진다.
"무슨 쌩뚱맞은 소리람? 혹시 떨어질 때 머리라도 다친거야?"
그러면서 언제나처럼.... 아니지. 언제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들과 다른 사람이다. 사람? 사람이라고 해도 되나?
도플갱어잖아.
살아 줘. 거짓말쟁이 추남.
웁, 하고 토가 나올 것 같아서 헬멧 위로 손을 뻗는다.
하아, 하아. 하아 하고 숨을 고르며 간신히 구역질을 억누르고서 버틴다.
미안. 미안해.
도렉스쟝. 도와줬는데. 나한테 이 얼굴과 힘을 줬는데도.
결국 아무것도...
"곤란한데..."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
간신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올려다 본 곳에는 도플갱어 알렉스가 전대복을 입은 채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잡아 먹으려는 걸까.
하, 하하...
이전처럼 사도의 전령이니 뭐니.
혹은 같은 편이니 뭐니.
입을 열 힘도 없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왜냐면 의미가 없으니까.
죽는...걸까.
난 죽고 싶은걸까.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다 똑같아."
"흐응?"
"잡아먹으려는거지? 도플갱어니까. 존재의 힘이 필요할 거 아냐."
다시끔 우풍이 불어온다.
헬멧 위로도, 아 헬멧.
이거 바이저가 열려있어.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러면 얼굴을 봤을텐데.
내가 원본인줄 알고 나를...!
허둥지둥 얼굴을 양 손으로 가리며 도플갱어 알렉스를 올려다 본다.
거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서, 양팔을 허리에 댄 여성이 하나.
"아닌데? 이런 괴생명체를 어떻게 먹는대?"
"뭐...?"
"먹으면 탈 나게 생겼잖아. 얼굴은 나랑 똑같은데 원본은 아니야."
"침식체도 아니고, 카운터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이렇게나 수상하면 딱 봐도 독버섯이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또각또각 내 오른쪽 편의 공동으로 걸어간다.
잠깐, 공동? 이 설원에 그럴만한 공간이 있나?
무너진 건물 잔해라면... 아니. 없다.
이렇게 작은 공동. 마치 무언갈 숨기기 위해서...
"게다가, 이곳은 내 비밀기지니까. 여기서 그런 짓 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하나."
여기였구나.
도렉스쟝이 말한 그 좌표.
"그래서. 너 정체가 뭐야?"
돌아본다.
두 팔을 뒤로 한 채. 오른팔은 왼팔의 팔뚝을 붙잡은 채. 걸음이 멈추고, 돌아본다.
휘우우우, 하고 우풍이 불어들지만 그녀의 찰랑이는 머리칼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 뒤에 거대한 무언가 덕택에.
...여기였구나.
저거였구나.
"게다가, 하나 더."
그녀는 붙잡은 손을 풀고서 오른손을 뺨에 가져다 댄다.
긁적긁적. 까만 장갑이 새하얀 뺨. 아니지. 살짝 달아오른 뺨 위를 몇 번이고 쓸어내린다.
"어떻게 그 멜로디를 아는거야?"
"잠결에 흥얼거리는 거... 넌 그 멜로디에 대해서 뭔가 아는거야?"
멜로디라니?
무슨 소리지?
"뭘... 말하는거야?"
"바, 방금 들었잖...아!"
"내가 기타 친 거에 니가 맞... 췄잖아!"
내가?
미안하지만 음악은 하나도 모른다.
쏘유 리멤버 말고는 하나도 몰라.
무슨 소리지.
하고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자 성큼성큼 그녀가 다가온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붉게 달아오른 뺨은 소녀가 같기도 해서 이상... 억!
"그... 그그...! 아, 알면...! 나... 나한테 알려 줘!"
"뭐... 뭘 말하는거야...!"
멱살을 잡힌 채 들어 올려진다.
힘 존나 쎄네. 도플갱어 알렉스. 아니, 당연하지. 얘는 카운터의 침식체니까.
아니 그보다. 이럴 수가 있나? 이게 알렉스...?
그... 캐릭터가 많이 다르신...
"그 멜로디! 너...! 너는 익숙하게 흥얼거렸잖아!"
"난 알아야겠어! 그게 뭔지!"
.
.
.
도렉스쟝은.... 아니, 도플갱어 알렉스. 그러니까 지금의 그녀는 좀 다른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이건 도플갱어인 그녀의 원래 성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도플갱어 류드밀라도 확연히 원본과 성격이 달랐잖아.
그 근저가 원본에 대한 적개심이든, 혹은 열등감이든.
결국 이렇게 뒤틀리는거라고 한다면 당연할지도.
"자, 다시 해 봐. 연주 해볼테니까."
"아, 아니 그러니까 난 모른다니까."
"해보라고!"
"아니... 애초에 왜 이런거에 집착해?"
"..."
"흐응? 그런걸 묻네?"
"네... 해볼게요."
그녀는 아마.
도플갱어니까.
원본이 가진 구성요소만 떼온 침식체니까.
그 일부분에 더더욱 짓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확한 이유 없이, 결과만이 남으니까.
자신의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에 원인은 설명 하나 없이, 만들어진 결과만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왜? 에 집착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레리의 노래였지. 이거?
내가 알리가 있나.
"아니야! 다시!"
"아니, 그러니까 진짜 모른다니까...!"
"너 자면서 흥얼거린 게 딱 맞았다니까?"
"우연이겠지."
"아냐, 뭔가... 여기가... 됐으니까 다시...!"
기타는 우연찮게 건물 잔해 속에서 발견한 것. 이곳도 마찬가지.
아니, 서순이 반대로. 여기에 고철을 버리러 왔다가 발견한 것이다.
'저건 우린 쓸 수는 없지만, 바퀴벌레한테 넘어가면 곤란하거든.'
지금은 밤. 그 녀석도 없으니까 딱 연습하기 좋은 날.
그러니까 크게 소리내서 노래 하라는 그녀의 억지에
나는 어째서인지 따르고 있다.
노래같은 거 하나도 모르는데.
"...너 설마 진짜 모르는거야?"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니까 모른다니까."
"아닌데, 분명히 그게 딱 맞았는데..."
"애초에 난 기타도 칠 줄 몰라."
"누군 칠 줄 아는 줄 알아?"
무슨 소리지.
칠 줄 모르면, 여태껏 뭐한 거야.
"연습... 한 거야...! 원본의 멜로디. 이거...!"
원본이라니.
지금의 알렉스는 기타를 칠 줄 모를텐데. 그럼 이거...
순전히 기억 속의 음만 더듬으면서 연습한거라고?
제로부터?
"굉장하네."
"됐으니까. 다시 한 번 해봐. 자 하나~ 둘~"
나는 알고 있다.
알렉스는 본래 음악을 싫어한다는 것을.
뭐였더라. 뭐시기 음악대였나 뭐였나.
카운터 케이스를 자세히 봤어야 했는데.
아무튼 자신을 만들어 낸 그 적대조직의 손에서 태어난 클론. 실패작.
하지만 발레리의 기타를 듣고 그를 추억하며, 배우기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 그것뿐이다.
멜로디따위 알 턱이 없지. 나는 음악이랑 무관한 사람이다. 쏘유 리멤버도
쏘유 리멤버 이외에는 가사도 몰라. 불러 본 적도 없어.
근데, 어째서일까.
이 억지에 이끌려 되는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째서인지.
엄청 따스하다.
"아--------------냐! 이게 아냐!"
"너 진짜 제대로 안 해?"
"분명히 그 때는 착착 감기는... 그게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게 뭔데..."
"그건 니가 알 거 아냐?!"
그건 그렇고, 이거 캐붕이 너무 심한데.
흠... 흠...
뭐...이런 것도 나쁘지 않나. 알렉스의 외모를 가지고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나도 새로워서 발기하지요~
흠 하고, 이 기분에 정신이 녹아버린다. 눈 앞에서 알렉스라면 보여주지 못할 이 다채로운 모습에 뭔가가
점점 녹아드는 기분이 든다.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숙제를 하지 않은 채 게임에 몰두하는 것 같은 달콤하면서 아슬아슬한 기분.
눈 앞에서 놓쳐버린 풍선처럼
알아차리지도 못한 유성처럼
어라. 이상하다.
이상해.
놓쳐버린 풍선...?
새빨간 하늘.
어린 여자아이...
뭐지 이건...?
"미안하지만 잠시 중단할게."
"응...? 이제 감 잡아간다고 더 하자고 한 건..."
"무선이 들어왔어. 부대를 탈영한 모양이야."
"탈영?"
"잠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니까. 우리 애들은..."
"상황 확인하고 올테니까. 넌 가만히 여기에 있어."
가능성은 바로 머리를 스친다. 도붕이다.
도플갱어 류드밀라가 여기에 와서 작전시간이라면, 그녀가 이렇게 말할 리가 없을테니.
분탕이라면 그 자식 밖에 없다.
"전대장이 올 때까지만 참으면 되는데 멍청한 놈들..."
"이제야 드디어 그 좆같은 인생을 나한테 주고 싶어졌노?"
화악, 하고 엉덩이 골과 겨드랑이가 젖어든다.
그 새끼다... 그 새끼가 아니면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없다.
뭐지, 뭐 하려고 하는거지.
나를 노리는 거겠지?
그 녀석이라면 가능하다.
아니 그 녀석이라면 마땅히 그럴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분명히 잠긴 함선을 열 방법을 찾았다고 부대원들을 꼬드겨서, 나를 수색하러 온 것일거다.
그러면...
"커, 흐읏....흐흣...!"
"야 이 새끼들아 뭐하냐고, 얼른 쏘라고!"
"우리가 다 죽어도 상관 없다? 이 씨발년이 장난치나!"
"이 배신자가...!"
그, 그 때처럼...
알렉스가...
도렉스가...
"자, 잠깐만...! 나도...!"
말을 꺼내며 손을 뻗지만 이미 그녀는 없다.
저 멀리 눈보라 속을 헤치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
손이 떨린다.
아직 낫지 않은 발이 떨린다.
파고드는 한기 때문이다.
파고드는...
어째서일까.
의미도 없는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도움도 안 될텐데.
그녀를 쫓는다.
그녀는 이미 내가 알던 그녀들이 아닌데.
그럼에도 눈보라 속을 헤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