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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실행에 옮길 정도로 과격해졌군."

"이미 몇 번이고 생각했던 고민입니다. 당신 말대로 나의 고집만으로 여기까지 힘들게 끌고 온 것일 수 있죠."

"... 다행히 몸에 상처도... 재활도 필요 없을 것 같군."

"어제에 이어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 내 아버지와 동생을 사랑했습니까?"

"... 물론. 그이는 가장 멋진 사람이었고, 소성이는 많은 사랑이 있었기에 아팠네."

"되었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지금이라도 출격 가능합니다. 심의 처리만 어떻게 돌려보시죠."

"감봉 2년으로 끝내보지."

"감사하다고 하죠."

이제 혼자가 아닐 것이다. 언제나 혼자였던 동생이... 드디어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 왔습니까."

"뭐 그리 죽상이야. 내가 사고 친 동안 누구 죽었어?"

"..."

"아무도 안 죽었네. 그럼 뒤지게 뛰어야지."

"전대장님. 괜찮은 것 맞으십니까?"

"뭐. 내가 지금 정신 나간 것 같냐?"

"... 우시고 계십니다."

"알아. 니들 다 살아있어서 감동적이라 그런다."

아무도 이어서 말을 하지 않았다.


"... 지랄들 말고 각자 장비나 점검하십시요."

정적을 깬 것은 나유린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사고 나면 절반 이상 죽습니다."

"알아. 그리고 몸도 그렇게 예전 같지 않아서 사고도 못 쳐."

"... 지휘하실 겁니까?"

"아니. 언제나와 같이 뛰어다닐거야."

"...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들 힘들어. 다들 괜찮지 않아. 그럼에도 다 하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제는 그것을 하러 간다.

"...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꼽주는 겁니까?"

"그래. 그 때처럼 할 거면서 안 할 거라고 뻐기지 말라고. 나도 다음에는 몇 번이나 더 물어봐줄테니까."

"... 진짜 뒤질 때가 오셨나 봅니다."

"늙은 거 맞으니까 조용히 해라."




"... 결국 쟁취한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판이 되어버렸나."

손가락을 책상으로 두드리면서 다음을 계획한다.

"솔리키타티오. 그 녀석은 지금 쯤 다시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터."

"... 튈 준비를 해야겠군."

차원 이동. 과연 그 사람 없이 순탄하게 돌아갈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직책이었으니까.


"... 와. 이게 신기술이지."

함선이다. 거대한 함선이다. SF에 나올 법한 거대한 함선이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군. 자네의 기억 속에도 있을 기억이지 않나."

"... 진짜 가능한 겁니까?"

차원 이동용 함선. 아니 방주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동할 준비는 해야겠지."

"... 도망. 잘 갈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만들어 봐야지. 3척 정도면 만들어질 것이네."

"그럼..."

"아마 지금 인류 모두를 수용해서 가기는 조금 빡셀걸세"

"... 3척만 제작하는 건. 역시."

"아마 아슬아슬하게 딱 타이밍이 맞겠지."

"... 다른 곳에 설계도를 뿌리면 안됩니까?"

"이 기술로 다른 짓을 한다면 더 위험하지. 서로 전쟁이라도 시작하겠다고 물자나 시간을 낭비한다면 더 최악 아닌가."

"아버지가 그랬죠. 밑져야 본전이라고.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자네가 이곳에 오기 전에 공격 받은 게 누구인지 까먹었나 보군."

"... 그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니까 일어난 일이겠죠."

"사람이란 언제나 모르네. 당연하듯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때에 문제가 터지지."

"... 하아. 그냥 일단 넘기고 보면 안됩니까? 어짜피 우리가 먼저 완성할 텐데요."

"고집을 꺽을 생각을 안 하는 군."

"당신이 말했잖아요. 시간 벌이라고. 그럼 그 시간동안 뭐라도 꼴아박아 봐야죠. 연명 치료가 그런 거에요."

"... 자네가 할 말인가?"

"가능성의 문제라고 봅시다. 나는 포기했으니까. 다른 사람 중에서 성공하도록 해보죠. 나도 결국 다른 사람이 성공시켰다고요. 자신을 과신하면 꼭 문제 터집니다."

생각한다. 먹혔다. 이러면 넘길 것이다.



"아니... 그냥 본인이 넘길 것이지..."

거래가 들어왔다. 넘기는 조건이 생겼다. 내가 직접 건네주라고 했다.

"... 하아."

커피를 들이킨다. 단 게 취향이다. 당분이 생각하는데 중요하다. 카페인이 있어봤자 크게 다를 거 없다.

"기술 제공이라 무슨 바람인지는 잘 모르겠군."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성격이 조금 변한 것 말고 잘 지내는 것 같군. 물론 자네가."

"머리가 희어지고, 눈 하나가 아직 잘 안 보이는 것 말고는 다를 게 없죠."

신기하게도 눈은 얼마 전에 회복되었다. 급격하게 좋아져서 아직 쨍한 느낌과 초점이 원하는 대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마리아 소령... 아니 지금 그러니까..."

"어제부로 중령이 확정되었으니까 맞는 판단이네."

"... 기억은 하는 데 여기저기서 아직이다. 지금은 맞다 하니까 헷갈리네요."

"뭐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고 능력이 있고, 사람다운가...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

"사람답다는게 잘 모르겠지만..."

서류를 꺼냈다. 메일로 제공하지는 않는단다. 이런 걸 함부로 유출할 생각이냐면서 타박먹었다.

"대충 보여드릴 것은 이겁니다."

"이걸 만들어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함선? 그런 건 아무래도 크기가 커서..."

이맛살을 찌뿌린다.

"... 노안이십니까? 돋보기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는데 드릴까요?"

"... 이건 조금 조언을 들어야겠군. 자네가 무슨 생각인지도 들어봐야겠고."

"저도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 그쪽에서 부르신 전문가에게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조금 더 좋겠죠."

"내가 알기로 그런 사람을 협상에 세우는 이상한 사람은 없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커피 대신에 물이나 더 따랐다.


"... 중령님. 부르셨습니까?"

"이것 좀 봐줄 수 있겠나?"

"... 이건."

"저도 잘 모르니까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걸 전달하라는 얘기만 들어서요."

"...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 아무튼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아니 이건... 너무 귀한 데...?"

"설명 좀 부탁하겠네."

"이미 아득히 우리의 기술을 넘어서 있습니다. 물론 기술의 특이점이 빠르게 온다면 30년 안으로 가능합니다만..."

"이미 그 특이점부터가 논외란 이야기군."

"그렇습니다."

"이제 자네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할 차례군."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십니까?"

"대중적인 이야기이지. 그게 이 함선... 그렇군 이게 방주라는 것인가?"

"반은 맞습니다. 다만 저희에게는 때가 없습니다. 비는 이미 내리고 있죠. 서두르더라도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적이 무엇인가?"

"방주로 이 세계를 떠나는 것."

"..."

"... 아 그래서. 그런 이유로 이게 그런..."

"가능할 겁니다. 만들 수만 있다면요. 물론 후속적인 문제가 따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고민해도 늦지 않을겁니다. 적어도 그 때에 고민할 시간이라도 있죠. 늦으면 그런 것도 없습니다."

"... 자네는 누군가."

"별거 아닙니다. 운이 없는 면허정지 된 의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답입니다. 좋은 결론이 나기를 바랍니다."

"... 그냥 가는 건가?"

"말 그대로 드리려고 왔었으니까요. 빠르게 좀 만들어 주시죠. 여유 되면 두 척 만드셔서 여유가 생기면 좋겠네요."

"왜 나한테 주고 가는 것이지?"

"우연입니다. 그 날 폐를 끼친 것도 있었고요. 아는 사람이 의사 말고 없어서요. 제가 이걸 의사들에게 뿌려봤자 뭐합니까. 수뇌부 혹은 한 자리 하는 사람에게 풀어야 방법이 생기겠죠."
"... 의사란 건 다 자네 같나?"

"그래야 의사니까요. 적군이든, 아군이든, 할 수만 있으면 살립니다. 그게 우리의 약속입니다."

이후 자리를 떴다. 문제가 있다. 지금부터 세계 순방이다. 할 수 있는 곳에 다 뿌린다. 물론 사고치지 않을 곳들을 골라내긴 했다.



"전대장님. 이거 진짜로 꼴아박는 거 맞습니까?"

"... 나도 불안하다. 근데 이젠 시간이 없다."

"젠장."

"강하 준비 완료했습니다."

"시간이 없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안전이다! 빠르게 코어만 부수고 부상한다!"

[램프도어 오픈합니다. 3... 2... 1... 오픈.]

"잘 갔다 와라!!"

"당신도 죽지나 마시죠!"

"빠르게 끝내고 봅시다!!"

현재 부숴야 하는 코어는 3군데. 지금 전대 병력의 마지막이 떨어졌다.

코어 하나의 전대 전력의 절반을 투자했다. 그 만큼 속도가 필요했다.

"자 빠르게 이동하자고."

[마지막 델타 지점으로 이동. 곧 이어 알파로 재 이동.]

[이후 2분 후 다시 델타 지점으로 복귀 예정입니다.]

"... 후우."

나 혼자서 나머지 하나를 부숴야 한다. 최대한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가자. 빠르게."

[오픈합니다. 3...2...1... 오픈.]

곧바로 창을 들고 떨어졌다. 이 정도 높이면 중력과 출력으로 충분히 터트릴 수 있다.


쾅!


물론 무리 없이 터졌다. 곧바로 옆에 있던 4종들이 들러 붙는다.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을 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놈들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손목, 그리고 손 끝에 힘을 쏟아서 던진다. 힘을 끌어내는 감각을 기억한다.

물론 강제로 쥐어 짜내어지는 감각이었기에 강약 조절에는 아직도 난항을 겪는다.

그래도 충분하다. 한계까지 짜내지는 않으니까.

머리들을 터트린다. 2분까지 대충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

"그래도... 빠르게 끝나겠지?"

[여기는 알파. 곧 합류한다.]

[젠장 좀 빨리 좀 도와줘!]

역시 베타 포인트가 조금 걱정이었는데 기어코 사고가 터질 것 같다.


"... 변경한다. 베타 포인트에서 복귀한다. 내가 그쪽으로 이동할게."

조금 거리가 있지만 못 갈 곳도 아니다. 그럴 걸 생각해서 배치한 것이기도 하고.

[확인했습니다. 이쪽도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빠듯하다. 문제는 이걸 끝으로 한번 올라가서 상황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속 고심도 다이브 네 번은 무리가 있기에 하지 않는다.

"빠릿하게 움직여도 부족해! 미안하지만 좀 더 굴러라!"

[진짜 오늘 죽을 맛이네...]

"통신으로 잡담하지 말고. 유언 아니면 하지마라."

[... 하 젠장. 여기는 베타. 멀리서 뭔가 이상한 게 보입니다. 저만 눈이 이상한 겁니까?]

고개를 돌렸다. 아무 이상도 없다.

... 이미 가망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 미안하다."

[젠장. 나는 람보다아아!!!!]

곧 이어 무전에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이번 작전에는 사전에 고지한 대로 시체는 회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마라...



[여기는 스텔라. 베타 포인트에 곧 도착합니다.]

"... 나도 곧 도착한다."

[미안하지만 조금 더 서둘러 주기를 바란다. 이곳의 코어는 파괴했다.]

"... 젠장."

유언이다. 보고가 아니다.

또 하나가 폭발했다. 벌써 10명째다.

"문 열어! 곧바로 애들 태워!!"

[전대장님? 어쩌시려고-]

"나유린! 강하해! 시간 끈다!"

[확인했습니다. 3초 후 강하합니다.]

"시발... 오늘따라 일이 더럽게 안 풀리네..."

[부전대장님? 벌써 오셨습니까?]

[... 미안하지만 아직 강하 중입니다.]

[하하하... 참 이거 좀만 버틸 수 있으면 좋았겠는데요.]

[아들아! 사랑한다! 그러니 꼭 살아남아라!!!]

가까운 데서 폭음이 들렸다. 열 하나.


"거의 다 왔다! 빨리 정리해!!"

["야! 달려! 부전대장님 쪽으로 붙어!"]

목소리가 두 번 들렸다. 꽤나 가까워졌다.

창은 소모품이다. 그러니 무리의 뒤로 따라붙는 놈들을 향해 던졌다.

긴 궤적을 시체로 남기며 사라졌다.

"나유린. 빠르게 부상한다. 램프도어 열고 애들 다 격리벽 안으로 모아."

[미쳤습니까? 다이브 중에 올라타서 오시겠다고요?]

"아직 함선 내구도면 문짝 안 날라가."

[돌아버리겠네... 들었지! 빨리 움직여!]

이제서야 손발이 맞는다. 웃기네.

뒤에서 어그로를 끈다. 앞에서는 무작정 달려나가며 튄다. 서둘러야 한다.


"... 이제 나도 간다!"

[지금 전원 탑승까지 3명 남았습니다!]

"말한대로 격벽 내리고 안으로 피해!!"

[튕겨져 나가서 죽으면 진짜 개죽음입니다!]

굳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안다.

죽어라 달려간다. 한 번에 멀리 이동할 수 없다. 집중력이 너무 갉아먹힌다.

[급부상 준비!]

충분하다. 늦지 않게 탈 수 있다.

3

다시 한번 도약한다. 50m

2

또 도약했다. 20m!

1

비집고 틈으로 들어간다. 이젠 거리를 모른다.


튕겨져 나왔다. 실패한 건가?

정신을 차리리 나는 공중에 떠있고 램프도어는 내 뒤에 있었다. 날라간다.

급부상하는 함선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 문 닫아!!!"

[진짜로 했네! 빨리 안으로 들어오세요!!]

문이 닫혀가면서 턱이 생겼다. 살았다.

"... 하아. 하아."

[전대장님? 의식 있습니까? 잔량은 충분해요?]

워치를 봤다. ... 진짜 아슬아슬했다.

"이터니움 가져와... 진짜 오늘 일진 너무 사납다."

문이 닫히고 격벽이 올라간다.

"빨리! 이것부터 받으십쇼!"

이터니움이다. 뭐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가지고 있네.

"야! 들 거!"

"두 다리 멀쩡하다. 그냥 진 빠지네..."

내가 진짜 이런 짓 두 번 다시 하나 봐라...

"축하합니다. 괴담 하나 또 챙기셨네요. 다이브 중에 뒤따라 오는 괴생명체."

"너는 얼굴 보자마자 할 소리가 그거냐?"

생각해보니까 진짜 괴담인데. 웃음만 나왔다. 죽었으면 원령이 나오는 괴담이 될거다.


"... 지금 현실 상황은?"

하아. 식염수 하나 들이키니까 살만하다.

"안 좋습니다. 상세한 것은 전달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령관께서 이미 출격하셨다는 소식 말고는 없습니다."

"... 좆됬네. 빨리 지금 있는 자원으로 정비해라. 거기도 만만치 않은 지옥도 일거다."

"그리고 각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현재 사람을 모으고 있답니다."

"... 결국 성공했나 보네."

"우리 쪽은 언제든 준비 완료했습니다."

"... 그렇지만 아직 시간이 부족한 것이겠지."

"네. 아직 예상 인원의 30%도 안됩니다."

"옘병. 얼마나 걸릴 것 같데?"

"최대 8시간 이랍니다."

"지랄... 사람만 실으라니까. 다른 거 싣는 거 아니야?"

"아마 그럴 겁니다. 근데 문제는 다른 걸 먼저 실었을 겁니다."

"아주 개지랄 났다."

후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사망자 가족에게 연락 됐냐?"

"아뇨. 지금은 그냥 누군지만 파악하고 있습니다."

"... 하아. 이 난리통에 살아 남아줬으면 하는데."

늘어나는 게 시체와 한숨 뿐이다.

"부상까지 얼마나 남았냐."

"2분 후 급부상합니다."

"얘들아! 장비 챙겨라! 2분 후 또 다시 출격이다!"

"" 예! ""

"능글스러운 놈들..."

분명 피로가 몸을 조여올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란 것은 거기는 고심도까지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아직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할 것이다.


"... 우리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 버티고 버텨라."

마지막 다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기에.

두고 갈 수 없기에.

지켜야 할 것이 지금의 나보다 가치 있다고 믿기에.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


"살아서 보자."

우리는 다짐한다.






2시간이 지났다. 희소식은 4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2시간이 줄었다.

절망은 그 2시간으로 줄어든 이유다. 그 만큼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 버텨! 이 악물고 버텨!!!"

오늘 내 기억 속의 25명이 쓰러졌다.

[또 옵니다!]

"흘려! 맞서지 마! 세 그룹으로 모여서 응전한다!"

[니미럴... 그림자다! 그림자가 있다!]

"뭐?"

[쫄지 마세요. 그럴 때 당황하지 말고 위치나 보고하세요.]

[10시. 500 미터!! 셋입니다!]

"... 나유린."

[저 혼자 격추합니다. 따라 붙는 녀석 있으면 브리핑 해주세요.]

"그림자다. 흔들리지 마."

[여기 중에서 그런 이유로 흔들리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합니다. 다른 놈들은 다 무서워서 기피하지.]

"... 나만 그런 거야?"

[알아서 합니다. 나머지나 살피세요.]

말 안해도 그럴 것이다. 정말로 의지 되는 부전대장이다. 막고라만 아니였으면 아직까지 전대장이었을 녀석이다.

"알아서 사려라. 들러 붙으면 이쪽에서 견제한다. 버티는 게 목적이야! 잊지 마!"





[여기는 중앙함대. 연락드립니다.]

"바빠! 빠르게 말해!"

경고 레벨이 올라갔다. 4.7이다. 이러다 5까지 얼마 안 있으면 당도한다.

[사령관께서 전사하셨습니다.]


니미럴. 손이 멈췄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 다음 책임자 있을 거 아니야! 그 녀석한테 넘겨!!"

[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 그럼 계속 내려가서 책임자 찾으라고!!!"

[... 그래서 연락드렸습니다.]

"씨발!!!"

[방침을 정해주십시오.]

"다를 거 없어. 버텨! 저쪽에서 준비가 될 때 까지. 죽어라 버텨!"

[현재 예상 시간으로 40분 입니다. 상세 지령은 다른 지휘관들에게 일임할까요?]

"... 지금 남아있는 전술지도관은?"

[... 현재 여력이 있으신 분은 박정자 교수님이십니다.]

"걔가? 왜?"

[원래 사무직들은 다 배우게 합니다. 정 안되면 이거라도 시킬 수 있도록 훈련시킵니다.]

"민간인 아니야?"

[직급 있습니다. 군무원 취급 아닙니다.]


"... 그럼 걔 시켜! 뭘 또 물어보고 있어!!"

[저한테 화풀이하지 마세요. 지금 저희도 미쳐 돌아갑니다. 각지에서 사망 신고 분류하는 것 만큼 난리통이 없습니다.]

"잡담할 거면 끊어!"

[집결지는 지정해주시죠. 유일하게 그것만이 안 정해졌습니다.]

'... 어디로?'

"... 이곳으로 모여."

[확인했습니다. 이후 통신은 통보식으로 하겠습니다. 아웃.]


"얘들아... 40분이다. 40분만 버티면 된다."

숨이 가쁘다.

"이곳이 전 인류의 집결지다. 이제 목적이 다르다. 버티는 게 끝이 아니야. 이 곳을 사수해야 한다."

[40분! 40분이다! 스톱워치 돌려! 이터니움 재보급해! 마지막이다!!]

"... 현 시점으로 밀려오는 적을 막는다. 전대를 재 편성한다. 부전대장의 통솔 아래 좌측에서 한 곳."

"우측에서 하나."

"가운데는 내가 막는다."

[내가 미친 또 자살 작전 제안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운데가 제일 부담이 있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쪽에서 저지만 한다면 옆으로 샐 거다. 내가 버티는 동안 옆에서 새는 것과 버텨야한다. 바깥이 제일 위험해."

[우측이 너무 약합니다.]

"너가 뛰어다녀야 할 거다."

[장난하십니까? 제가 무슨 순간이동 능력자도 아니고 어떻게 합니까?]

"... 미안하다. 이건 해야만 하는거라 어쩔 수 없다. 내가 우측으로 가면 그냥 비어버린다. 너무 선이 짧아져. 강제로 전선을 유지할 수 없어."

[옘병할...]

한숨이 들렸다.


"... 지금부터 이곳을 사수한다. 함선에서 화물 내려서 전부 배분해. 스텔라도 여차하면 꼴아박을 용도로 쓴다."

[... 확인했습니다.]

"지금부터 무전은 중앙 함대의 회선을 사용한다. 비전투원은 전부 복귀해라. 수고했다."

[모두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무운을 빕니다.]

막바지다. 아낄 화물은 단 하나. 이터니움이다. 그것 양만 잘 조절해서 써야 한다.



40분. 이 세계의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을 시간이다.

활을 꺼냈다. 아마 쏜다면 그게 마지막 한발 일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쓸 창들과 붕대들도 많다. 아마 이게 다 떨어지고 나만 남는다면 쓰리라.

"후우... 한다."

해낸다. 루틴이다. 붕대를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당겼다.

버틴다. 



30분. 함선 한 대가 이곳으로 도약한다는 통신이 왔다.

28분. 한 대 더.

25분. 이제 슬슬 온다.


22분. 한 대가 격추되었다는 소식이다.

인원 전부 사망처리되었다. 근방 3km에 살아남은 것이 없단다.


18분. 한 대가 온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대다.

[... 우측. 반쯤 사망했습니다.]

"... 18분. 좀만 더 버티자."

[확인했습니다.]

[이새끼들아!!! 정신 차려!! 18분이다! 좀만 더 버텨!!!]

각 곳에서 격려와 힐난이 이어졌다. 다들 이제 슬슬 무리를 넘어 한계다. 그럼에도 버텨줘야 한다.

"18분... 진짜 시발..."


15분. 남은 두 대가 도착했다.

[... 최악의 통보입니다. 현 구역에 경고레벨 5가 되었습니다.]

"... 도약 준비는."

[그것까지 포함해서 15분 입니다. 좌표 연산과 그 곳까지 충돌 없이 도착하려면 계산이 복잡합니다.]

"... 알았어. 그 후 도약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입니다. 대충 다이브랑 비슷합니다.]

"남은 전투가능 인원들은?"

[아직 도착 못했습니다. 거기서 지금 다이브 후 다시 부상해서 온답니다. 1분 후 도착입니다.]

"... 애들에게 그 내용 강조해서 알려. 희망이라도 줘야 할 판이야."

[확인했습니다.]


14분. 균열이 생겼다. 제발 침식체만 아니여라.

[여기는 델타포스. 현지에 지금 막 도착했다.]

"... 여기는 가루다. 시발 이거 이름 바꾼다는 거 깜빡했네."

[지금 이것들을 상대한 건가? 용케 살아 있군. 대단한 저력이네.]

"그럼 좀 도와주시죠. 저희 지금 남은 인원이 없어서요."

[걱정 말게. 말 안해도 곧 가네.]

곧바로 푸른 빛 기둥이 전장 곳곳에 내려 앉았다.

"... 허미 이게 판타지지."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고 적들을 포격한다. 혼란도 잠시. 곧바로 점조직이 된 이들을 사냥하러 달려든다.

그렇지만 문제는 또 다시 빛 기둥이 내려앉았다.

아직도 온다는 뜻이다.

"... 하 좀만 숨 좀 돌리겠습니다."

[길게는 못 해주네. 이것도 우리가 누구 하나를 쥐어짜는 거라서 말이지.]

"후우 괜찮습니다. 이제 곧 집 나간 형제들도 오거든요."

[그것 참 다행인 소식이로군.]


[야! 돌팔이! 아직 살아있냐!]

"니미럴. 또 그렇게 부르네."

곧 이어서 균열 사이로 함대들이 나타났다. 할 만 하다. 생존한다. 이겼다.

[이걸 버티네... 5레벨? 이거 고심도 다이브 말고 못 보던 수친데...]

[여. 목숨 빚 갚으러 왔다고. 늦은 건 미안하다.]


13분. 이쪽의 화력이 이제는 압도적이다.

12분. 

11분.

[...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보인다."

하늘에 가장 크게 빛나는 붉은 빛이 보인다. 저걸 본 기억이 있다. 아니 기억들이 있다.

[버틸 수 있습니까?]

"... 더 속도는 못 올리지?"

[... 1분 정도는 단축 가능할 겁니다.]

"그래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재앙이 온다.

"전부에게 알려. 다 빼. 저건 싸울게 아니야."

[전원에게 공지합니다. 현 시간 부로 경고레벨을 6으로 상승합니다. 전투 인원들은 전부 퇴각을 염두해두시길 바랍니다.]


"후우..."

잠시 인-이어를 뺐다. 한 동안 시끄러울 거다.

청각의 보호와 함께 창들과 함선을 준비시켰다.

[-려요? 설마 죽었습니까?]

"안 죽었다. 애들 얼마나 버틸 수 있냐."

[미친 소리... 지금 못 들었어요? 6레벨입니다! 버티고 자시고가 지금 병력으론 불가능해요!]

"그렇지? 근데 미안하다. 퇴각은 다른 놈들에게 도움 받아라."

[함선 벌써 꼬라박으셨습니까?!]

아니 지금 꼴아박으러 간다.

[... 답이 없는 거 보면 지금 꼴아박나 보군요.]

"이젠 척척이네. 그렇게 됬으니까 알아서 퇴각해라."


"제가 자살 작전은 안된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 지금 등 뒤에 있는거 맞지?

"사람이 말하면 대답이나 하시죠."

"... 언제 왔냐?"

"그게 중요한 겁니까?"

응... 진짜 개 무섭거든. 뒤에서 뭐가 날라와도 죽어야 했단 소리다.

"... 하아. 안 쏘니까 표정이나 푸시죠. 어쩔 생각입니까."

"버텨야지. 뭐. 간단한 문제니까 간단한 답이야."

"... 들었냐. 돌아가면 탕수육이다."

[먼저 내기 걸고 한 쪽에 모두가 몰리면 재미없다고 하신 분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게 내기에요?]

"왜 나 모르게 내기하냐."

"알면 뭐 결과가 바뀝니까?"

할 말이 없긴 하다.

"아무튼 갈거니까. 퇴각해라."

[뭔 개소리입니까? 아직 할만 합니다.]

[못 보던 애송이들에게 뒤나 보이며 빼라고요? 와 다른 전대에게 놀림감입니다.]


[뭐야? 돌팔이. 꼴아박을 거냐? 옆에는 비워둬라?]

[미친 놈. 목숨 빚을 지워뒀더니 아예 배째라고 행동하는 군.]

"니들은 왜 또 와서 지랄이야. 애들 데리고 빼."

타 전대장들이다. 너넨 또, 왜, 어떻게 이 회선에 끼어든거야?


[6레벨이면 곧 오는 게 6종이지? 시발 그딴 게 있다고?]

"아직 5종 뜬 적 없다."

[그럼 저 붉은 빛이 6종이겠네.]

감도 좋아요... 제발 아가리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애들 데리고 꺼져."

[야 세피라 놈들인가? 오랜만인데?]

"... 제발 입 좀 조심하고. 넌 또 그걸 어디서 들었는데?"

[사령관. 죽기 전에 말씀해주시더라고. 미친놈이 무조건 꼴아박을 테니까. 알아서 판단하라고.]

"아니 그 인간은. 왜 그런 말을 하고 뒤져서... 계획이나 던져줄 것이지."


[버티래. 그거 말고 없었어. 우리가 뭐 다른 목적으로 모였었냐?]

[미치광이 둘에게 둘러 쌓이니 내가 비정상인으로 느껴지네. 미친놈들아. 저거랑 싸우겠다고?]

"그러니까 빼라고. 10분은 버텨야 하니까."

[... 10분이라. 그럼 할만하지.]

[봐! 저 놈도 미친놈이라니까?]

"이게 할 만하다고?"

진짜 개소리를 들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다른 놈들 함선에 얻어 타서 사람만 퇴각 시키면... 세 대 정도 꼴아박을 수 있어. 물론 우리들로만 한정한다면 말이지만.. 만약 더 꼴아 박을 수 있다면?]

상상 이상의 미친 계획이다.


"미친놈아 얼마나 물자를 갈아넣으려고...."

[어짜피 방주 말고 다른 함선은 버틸 수 있는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폐기 처분인데 그냥 꼴아박아.]

"... 아 진짜 미친놈 투성이네."

[우린 준비 끝났다. 먼저 꼴아박는다.]

시발...


9분. 한 대가 터져나가며 전선을 앞당겼다.

[그럼 우리도 먼저 간다. 알아서 뺄 준비 하던지.]

8분 50초 또 한 대가 꼴아박았다.

[... 전대장님 정도면 약과가 맞구나.]

[양반이지. 적어도 우리가 정상이잖냐.]


"... 어디가서 울고 싶다."

[감동입니까? 캬. 역시 우리가 최고죠?]

"축하드립니다. 충신들만 모였네요."

"... 나유린 애들 책임지고 빼. 하늘에서 날개달린 게 떨어지면 끝이야. 그건 곧바로 튀어서 이제부터 기도해서 운이 닿기를 바래야 한다. 그것만 약속해."

"애도 아니고 무슨 약속입니까."

"니들 꼴아박다 죽는 꼴이 보여서 그런다. 제발 그건 지키자. 그건 정말로 개죽음이야."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양보할 수 없는 선이다. 그것과 싸우는 것은 개죽음이다.

"... 알겠습니다. 그 때는 빼죠. 물론 걸어서 튀어야겠지만요."

"오케이... 그럼 가자. 이미 거의 다 왔지?"

[... 발소리 들렸습니까?]

"니들 성격이야 내가 잘 알지."


8분.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분산해서 다른 전대에 가세시켰다. 

곧바로 스텔라를 꼴아박았다. 물론 나는 잘 탈출했다.


"자 마지막 싸움이다. 이 징글징글 한 것아!!!"

거의 벌레때다. 수 없이 모여온다.

창을 던진다. 땅이 순간 보였지만 곧바로 매워진다.

다시 던진다.

이짓거리를 반복해야 한다.


5분. 불안하다. 곧 오는건가?

하늘을 본다. 아직 반응이 없다. 내려오는 순간이 중요하다.

"야. 아직 두 다리 전부 멀쩡하지?"

[시발! 최고다! 이게 싸움이지!]

[아직 할만 하다. 5분... 퇴각까지 포함한다면 할 만하다.]

저게 사람들인가. 나는 이제 슬슬 힘든데...

"이 나이 먹고 여기 있는 게 문제였나..."

[아뇨. 허세입니다. 다 반쯤 뒤져가는 게 맞아요. 얼마 못 버틸 수 있습니다.]

[허세라고? 하하하! 그럼 더 날뛰면 믿겠네!!]

"... 니가 고생 좀 해라."

[하... 노인네 뒤치닥에서 벗어나니 미친 정신병 환자 뒤치닥거리네요.]

"... 미안... 하다..."

[이 악물지 마시죠.]

"... 야. 빼."


4분 30초. 

붉은 빛기둥이 내려 앉았다.


날개를 단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


굉음 말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재앙이 도래했다.


"나유린! 퇴각해! 당장!!"

마지막 창이다. 죽이긴 힘들 수 있다. 근데 던져야 한다. 안 던지면 더 큰일이 터진다.


쾅-!


곧바로 충돌했다.

원하는 소리가 아니다. 꿰뚫지 못했다.


"저게 시발... 진짜."


[뺀다. 이런 게 6종이군. 가망 없다.]

한 녀석이 퇴로를 뚫는다.

[... 와 시부렐... 나머지 튀어라. 내가 막는다.]

... 싸우기로 한 녀석이 있다.

한놈 더 인가. 굳이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놈이니까. 뭐라 말을 못 하겠다. 못 말린다.


떨어져 내린다. 차라리 저 흰 게 눈이었으면 좋겠다.

하염 없는 절망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붕대를 잡아 쥔다.

"내가 붙잡아 둔다. 그 후에 막타만 꽂아."

[하하. 이 새끼 발정났네!]

"진짜 니 아가리 부터 막아야 할 것 같다. 너지? 다른 곳에 소문 낸 거?"

[몰랐어?]

"아니. 시발. 뭐 이리 당당해?"

그리고 내 잘못이란 것을 깨달았다.

"... 하아 내가 대화라는 수단을 생각한 잘못 이지."


4분. 실제로는 처음본다. 이게 묶는다고 해결이 되는 건가?

"여기다! 어서 서둘러서 묶어봐!"

상처투성이다. 아니 말이 상처지 이미 중상이다. 저러고 움직이는 건가?

묶는다. 아니 겨우 손 하나를 한 바퀴 감았다.

"이런.... 오래...!!"

검광이 빗발쳤다. 진짜로 처음봤다. 검이 빗발치는 것은 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에 반사되는 흔적만이 남는 것은 처음본다. 저러니 전대장을 하는 거구나.

"... 얕아. 알아서 피해라."

"그럼 멍하니 있지 말고 튀던가!!!"

결국 힘 싸움에 못 이겨서 날라갔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위험하다. 곧바로 틈을 비집고 다른 곳으로 착지했다. 

"... 위험한데 이곳에서 오래 버티지도 못해."

워치를 확인했다. 상당한 속도다.


3분 20초.


"... 야 아직 살아있냐?"

"시발... 이래서 계속 도망갔던 건가?"

"... 아니. 이건 시작이야."

"하하하, 참 진짜 지랄 맞아요. 이런 놈들을 때려 잡을 수 있어야 할 만하다는 거잖아?"

"... 아니 그걸로도 부족할지 모르지."

"얼마나 남았냐."

"3분 10초."

"... 빼라. 빼서 쏠 준비해."

넝마가 일어났다. 죽는다.

"... 미안. 그냥 말렸어야 했었어."

"죽을 때 까지 싸우다니. 이게 영웅담이지. 참 승리라는 결말만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빨리 가. 자리 잡고 쏠 준비해."

"어짜피 한 발이야."


"아니. 더 쏠 수 있어."

"... 솔직히 두 발까지는 기적이야."

"아니. 더 쏠 수 있어!"

"미친 놈아! 이상한 희망에 취해 있지 마!!"

"할 수 있어. 너라면. 가능해."

"뭔 중2병 멘트야! 미친놈! 전투고 뭐고-!"

피했다. 거의 좀 작은 건물만한 두께의 팔이 내리 찍혔다.

".... 야 미친놈아. 살았냐?"

".... 야! 잭!"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 멀쩡하네. 거의 마법의 단어인데."

"멀쩡은 개뿔... 잘 들어. 쏠 수 있어. 활은 한 발일지 몰라도. 쏠 수 있어. 그걸로 쏘는 게 아니야."

"... 야 너 팔이."

"20초 움직이면 장한 거니까 빨리 튀어. 명심해. 활로 쏘는 게 끝이 아니야. 문구를 기억해."

곧바로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강제로 이끌리 듯 앞으로 나갔다.

"뭔 개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나는 뒤로 물러났다.


2분 45초.


자리를 잡았다. 함선 옆 말고는 멀쩡히 사격 할 만한 곳이 없다.

[현재 통신합니다. 다른 인원들 전부 퇴각했습니다.]

"... 이제 얼마나 남았지?"

[시간이면 2분 43초. 사람 수면... 20억입니다.]

".... 그래. 아직 그렇게 죽지는 않았군."

많이 죽었지만... 넘어만 갈 수 있다면 충분히 재시작을 노릴만 할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이면 아마 퇴각 하셔도 될 겁니다.]

"더 버텨. 남은 녀석들이 이곳으로 올 때까지 위치를 사수한다."

세피라의 수호자들이 이곳을 넘어가면 끝이다. 문제는 또 내려온다.

[.... 아직 퇴각 안한 분들도 있습니다. 강제로 이송할까요?]

"물론 죽을 것 같으면 빼라. 송장 이미 충분히 많이 만들었다."

참으로 힘들다. 이 새끼들 영웅심이 너무 높다.


"... 시발. 이거 목숨 걸고 쏘는 건데 말이지."

활을 꺼냈다. 참으로 어렵다.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활은 한번이 최대다.

BEYOND HORIZON

경계를 넘어? 무슨 경계... 은하수라도 말하는 거야?

하늘을 봤다. 별을 개뿔. 제대로 하늘이 보이면 다행이다.

"뒤질 때는 또 밤하늘은 못 봐요."

아빠... 또 왜 와서 난장을 피워. 가뜩이나 심란한데.

"...인생 지뢰밭이네."

이제 힘들다. 2분 35초. 7초 밖에 안 지났다.

거의 지척이다. 할 수 있을까? 과연 한 발로 적을 죽일 수 있을까?

아빠. 이게 무슨 문구야... 왜 이런 걸 새겼어.

... 새긴 게 아니라. 새겨진 걸 받은 거구나. 미안. 작명 센스가 최악인 게 아니였구나. ##이라 짓길래 진짜로 아빠 센스가 문제인 줄 알았어. 동생이 소성이란 이름을 받을 때 그냥 만들기 귀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 탓이구나? 그런 걸로 할께.

"... 하아 경계를 넘어가 뭔데."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한 발이라도 쏠 준비를 해야 한다.


"...후우.. 역시 이게 마지막이야."

놓으면 죽는다. 느껴진다.

[.... 여기는 중앙함선입니다. 나유린입니다. 아직 살아있습니까?]

"그래 아직 살아있다."

"... 아직은"

[... 끝까지 자살하시려고 발악이시군요.]

"그래... 그렇다고 하자."

힘들다. 부들대는 팔이 나의 마지막 시야다.


[미안한 소식입니다.]

"... 말해."

[연산에 방해를 받았습니다. 5분이 더 필요합니다....]

"... 하 시발..."

[미안합니다. 우리는 졌습니다. 편하게 내려 놓으십시오.]

"내가 지금 그딴 말이나 들으려고 여기 선 줄 알아?"

"내가 지금 시간이 부족해서 포기하겠다고 여기 서 있는 줄 아냐고!!!"

[미안합니다....]

"지랄 마. 5분? 5분이면 되냐?"

[... 불가능합니다. 계속해서 시간이 늘어납니다.]

"그럼 버티면 언젠가 출발 한다는 거지?"

[... 당신 잘못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알아. 그러면 살아남아야지."


'인간은 파멸할지라도 패배하지 않아. 시적인 문구지. 무엇이 파멸이고 패배를 구분 지을까...'

포기하지 않는 거 그리고 살아남는 거

둘 다 똑같은 말이야. 그거 내 앞에서 읽어주다가 엄마한테 대가리 덜 깨졌지. 아빠?

'##아. 만약 패배와 파멸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래?'

아빠. 그딴 판에 올라갔으면 판을 뒤엎어. 왜 그딴 곳에서 놀고 있는건데.

빡치니까 조금 숨이 가빠온다.


"잘 들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나는 도왔어."

"시간이 부족하다고? 그럼 내가 어떻게든 해."

"그러니까 닥치고 계산기 두들기라고 해."

"포기하라고?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화살에 무게가 더 실린다. 그래 분노가 나를 키우는구나.

"절망이 눈 앞에 있다고 희망을 버려? 어떤 새끼가 그딴 생각으로 의사를 해."

쏴야 할 곳이 보인다. 심장? 저건 가?

"그딴 놈은 단 하나야. 영구 제명이라고! 차라리 희망이 없다고 포기해!"

등이 간지럽다. 이게 내 한계인가 보다.


"... 유언이니까 잘 들어. 절대로 포기하지 마."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기 때문이 아니야."

이젠 너무 가깝다. 그리고 수도 많다.

"누군가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야."

손에 힘을 푼다. 충분하다. 이거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거다.

"우리 스스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빨려나가 듯 힘이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힘이 차오른다.

"그러니까 포기한 새끼가 있으면 밖으로 던져서 싸우게라도 시켜."

세상이 뚫렸다. 세상을 위협하는 거인이 무너졌다.

뒤따라 달려오던 거인도 쓰러졌다.


곧바로 다시 당긴다. 활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그러니까 서둘러."

다시 쐈다. 왼쪽의 시야가 사라졌다. 눈이 버티지 못 했다.

아무리 쏴도 다시 온다.

팔은 다행히도 움직인다.

"... 후우... 아직 쏠 수 있으니까. 버텨줄게. 몇 분이고, 몇 십분이 걸리더라도."

[... 알겠습니다. 다음 통신은 차원 이동할 때에 연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


팔이 후들거린다. 어째서인가 구멍이 뚫렸더라도 다시 일어난다.

"... 갑자기 좀비물이 되어버렸는데."

재차 시위를 당긴다.

몇 몇 기억이 선명해진다.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내가 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하는 것이지?

"... 시야가 달라."

뭐지 어떻게 저걸 보는 것이지? 저런 건 무엇이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하고 괴상망측한 것들이 보인다. 뭘 봐온 것이지?

"... 시야의 넘어."

그건가? 틈? 틈의 너머가 이런 광경이라고?

"아니 그 압력 속에서 눈을 뜬다고?"

문제는 그걸 실험해볼 시간이 없다. 곧바로 일어나서 다시 온다.

과감하게 틈에 몸을 던졌다. 엄청난 압력이다. 여기서 눈을 뜨면 곧바로 짓뭉개질 것 같다.

"이미 왼 눈은 맛이 갔는데..."

오른눈도 잃을 판이다. 한 눈만 뜬다는 편법도 없다.

도박이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 성공이다."

물론 오래는 못 볼 것 같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버텨줄 몸뚱아리가 아니다.

보이는 것은 균열들이다. 그 너머로 붉은 빛이 뿜어져 나간다.

곧바로 조준하고 쐈다.

사격의 반동으로 나는 튕겨져 나왔다.

곧바로 눈을 눌렀다. 아마 혈관이 터진 것 같다. 이거 실명할 것 같은데?

"... 새빨갛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문제는 그림자는 검은 색이라는 거다. 이거 내 눈의 문제가 아닌데?

곧바로 고개를 들어서 위를 바라보았다.

녀석들의 가슴 부위에서 빛이 새어 나오면서 검게 썩어간다.


"... 그래 죽는구나."

찾았다. 버텨줄 만 하다. 다른 놈들도 위험을 감지했는지 전부 내 쪽으로 달려온다. 지금까지 저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 하아. 후우. 숨만 좀 돌리고 싶은데..."

아까의 방식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다가 죽는다.

하지만 감각은 기억한다.

활을 당겼다. 시야의 너머. 내게 보여지는 것 너머. 기억한다.

눈을 감았다. 애초에 볼 필요가 없다.

곧바로 틈에 몸을 던지며 빠져나왔다. 그 도중에 시위를 놨다.

우당탕탕하며 바닥을 굴렀다.

"... 그래도 슬슬 한계인가 보네."

남은 시야가 흐릿하다. 경험해본 적 있다. 앞으로 2 발.

"... 한다."

다시 시위를 당겼다. 한 번에 모두를 꿰뚫어야 한다.

방법이 필요하다.


왜 활은 필요 없다고 한 거지? 활이 없이 쏠 수 있다고? 뭘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

"... 잠만 아빠... 정말로 작명 센스가 최악인 거야?"


옛날에 어느 한 형제가 태어났습니다.


"설마?"

일단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도 나도. 그러니 나머지 한 발에 걸어야 한다. 지금은 시간벌이 용으로 하나를 쏜다.

틈에 몸을 던지고 다시 쐈다. 거의 절반 정도가 으스러졌다. 도망만 다닌다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다시 내려온다.


그러나 그 둘의 태생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바로 천지왕이 그들의 아버지였던 거에요!


"아빠. 진짜 그거면 자아도취야..."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진실을 알려줘야만 했습니다.

슬프지만 그들이 떠날 것을 알더라도 알려줘야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겨둔 씨앗을 통해 아빠를 만날 길이 열렸습니다.


"아빠. 만약 그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라면 수정할 게 좀 많아."


아버지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꿈을 꾸었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와 달들을 떨굴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해와 달들은 매번 지평선 넘어로 숨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남달랐어요! 그들이 어디에 숨어있다 하더라도...


"쏘아서 떨어뜨릴 자신이 있었습니다."


"... 아빠. 다음에는 제발 이런 건 도움 좀 받아서 읽어."

"힘의 기원을 그딴식으로 풀어서 말하지 말라고!!"

 

'자 동생아. 잘 보렴. 이게 우리가 쏴서 떨어뜨릴 해와 달들이야.'

'형? 맞출 수 있어?'

'그럼.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다 하더라도. 이 활만 있다면 어렵지 않단다.'

'그 활이 뭔데?'

'낙원. 희망. 다른 말로 하면'


"진짜 아빠... 

너무 사랑해."

활을 당겼다. 아니 상관 없다. 활은 이미 나에게 버릇인 것이다.


'왜 사람들은 하늘을 반구라고 생각했을까?"

'단면을 만들면 딱 반원이네.'

'그래서 사람들은 천궁도라고 지은 걸지도 몰라'

'아빠... 그거 한자 달라... 쪽팔려.'


"내가 진짜 언어유희 감각은 떨어지면 아빠 탓이야."


공간이 일그러진다. 땅이 움푹 파들어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도 예쁘지 않니? 밤 하늘은 아름다워.

해가 떠있으면 안 보이는 것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좀 꺼져라 너희들 덩치 때문에 하늘이 안 보여."

"안 꺼지면 거기 서있어."

"지금 당장 별로 만들어 줄테니까."


하늘을 활 삼아.

지평선을 시위 삼아.

당긴다.


땅이 튀어올랐다. 일그러졌던 공간들이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푸른 빛이 솟구쳤다.

수많은 거인들이 꿰뚫렸다. 빛을 내 뿜으며 검게 으스러진다.

"...후우..."

그리고 그 수 만큼 다시 녀석들이 내려왔다.

목숨이 남아있다. 문제는 아마 다른 것이다. 내 손에 감각이 없다. 조금 다른 감각이다. 변질 되고 있다.

"...."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사고를 쳐놓고 아직도 무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다만 조금만 더... 내가 사람으로 있을 동안 저들의 작별을 듣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의 끝에서 형은 무엇이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직 저들이 이곳에 남게 둘 수는 없다.


다시 팔을 당긴다. 그렇게 생각했다.



"... 당신이 그 세계의 대적자였군요."

나유빈은 이해했다. 저 뒤에 있는 것은 방주다. 어떻게 해서 양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해내었다.

세계가 마지막까지 함께 해줄 자를 선택했다.

이미 그의 모습은 사람의 형색이 아니다. 손은 검게 물들어 세 손가락만 남은 앙상한 가지처럼 되어버렸다. 왼쪽 눈은 이미 검게 물들었다. 등에는 검은색의 작은 여섯 날개가 보였다.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미 그는 활을 당기지 않는다. 활을 당길 필요가 없다. 애초에 그 활은 테크레벨 5 밖에 안된다. 스승님의 드래곤 버스터와 비교하기도 애매한 5레벨이다.

"... 천근(天根: 하늘의 끝을 상상하여 이르는 말)."

"당신은 어째서 이곳에 왔을까요."

"... 어떻게 이곳에 당도했을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왜 지금은 사람인지도... 유일하게 아는 것은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군요."

"김철수 씨. 아니... [DATA EXPUNGED]인가요?"


과연 그랬던 거군요.

확실히 그 혈통의 인자라면 가능한 일이겠네요.


한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이내 패색이 짙어졌다.

"... 이런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곳에는 어쩐일이신가요?"

"후훗. 별거 아니랍니다. 그냥 근처에 새로운 지식이 있어서 왔답니다."

가아그셰블라의 파편이다. 아니 본체인가?

"... 그럼 근처를 둘러싼 것을 치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머. 죄송하지만 만찬을 마다하는 성격은 아니여서요."

"하하. 저는 먹을 것이 아닌데요?"

"물론... 아직 제가 조리라는 것을 잘 몰라서요... 요리가 되어있지 않다고 해도 괜찮답니다?"

"... 굳이 분란을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상대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오래 버티진 못 한다. 공간이 너무 안 좋다. 상대도 진심으로 온다.

"...멋진 상차림이네요."


빛과 불가의한 어둠이 격돌했다.

서로를 터트리며 잠식한다.

다만 어둠은 빛이 없는 곳 전부에 있다.



"... 하 젠장. 괜히 떠올린 것 같은데."

일어났다. 머리 아프다. 아니 더 앞의 기억도 있다. 근데 그건 필요 없다. 나는 거기서 모두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균열을 열고 함선들이 다 떠나간다. 그때는 마주하지 못했었다. 지금이라도 마주하게 되었다.


"... 그래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어라."

"근데 왜 근처에 이딴 것들이 깔리고 난 묶여 있냐?"

'기억해. 이건 개목걸이야. 새에게 달아봤자 너무 크거든. 그러니까 너가 무엇인지 잊지 마. 이름을 받친 이유도...'

"... 잠만 이게 왜 있어?"

가아그셰블라의 흔적이다.

"... 옘병. 일 났다. 최악인데 이게..."

나유빈이 위험하다. 가아그셰블라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무슨 짓 들을 했는지 기억한다. 지금 최고로 위험하다.


"니미럴. 빨리 튀어야 한다."

틈을 넘어가서 빠져나왔다. 그 녀석 말이 맞다. 개 목걸이는 나에게 크다. 근데 일단 수거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끈이다. 다루는 데 이골이 났다.


"나유빈 어딨냐!!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마주치지 마라... 그것 만은 안된다. 일 났다... 지금 빨리 나를 만나야 한다. '나'를 만나기 전에.




"겁 먹지 마세요. 언젠가 겪을 일이니까."


곧바로 도약했다. 그 위치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날개를 활짝 폈다. 그리고 블래스터의 출력을 높였다.


지면을 구워버렸다. 겨우 그래서야 어둠이 물러갔다.


"... 상상 이상이군요."

"심상 공간 이니까요."

"말 장난입니까? 꽤나 사람 흉내를 잘 내시는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곧바로 위를 바라보았다. 검은 괴조가 날아왔다.

"김철수 씨?"

아니다 분위기가 다르다. 그렇지만 기억의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앞의 가아그셰블라에게 달려들었다.

"어라? 순순히 날아들어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촉수가 검은 괴조를 휘감는다. 붙잡혔다. 그리고 동시에 터져나갔다.

"이런. 당연히 틈으로 들어가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하늘에 세 개의 화살이 생긴다. 곧바로 사방으로 퍼지며 갈라진다.


"... 아하. 당신... 부외자가 되었었군요?"

그 말과 동시에 수많은 균열들 속에서 파편들이 흘러나와 짓뭉개버렸다.

"그럼 망설일 이유도... 감수할 위험도 없겠네요."

후훗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근처에 수많은 파편들이 생겨났다.


"... 좋아요. 상대해드리죠."

나유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세상에 이런 걸 풀어놓는 것 보단 낫다.

"당신도 좋지만 지금은 수많은 만찬이 준비되었네요. 기다려주시겠어요? 아... 아니네요. 당신도 만찬에 참가했군요?"

"그게 무슨 말인-"

나를 노리고 화살들이 쏘아졌다. 곧바로 맞받아쳤다. 지금 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렇군요. 지금 대략 보이는 것만 해도 50은 넘어보이네요."

피해야 한다. 하나가 세 발만 쏘아도 150 발이 넘는다.


"나유빈!!! 어딨어!!!"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김철수 본인이다. 위험하다. 그가 여기로 오면 그냥 공간채로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아하 저게 본체인가요?"

"... 니미럴 거기서 뭐하냐 멍청아! 당장 튀어!!!"

"제가 할 소리입니다!!!"


서로 뛰었다. 그 곳에 있으면 죽는다.

수 많은 곳에 화살들이 날라온다. 동시에 이쪽도 대응 사격한다.

"시발... 지금 저 돼지를 신경 쓸게 아니야!!"

"뭐 또 숨기고 계신거 있으십니까? 그리고 기억은 되찾으셨습니까?"

"머리나 숙여. 기억은 아마 다 찾았을거다."

"뭐가 위험한겁니까."

"일단 저딴 게 217개나 더 있다는 거."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겁니까?!"

"제정신을 유지 못하니까 제정신의 나를 덮어 씌웠어."

"그게 무슨... 최면 그런겁니까?"

"멘탈 프린팅."

"... 미친 인간."

"적어도 자신에게 자신의 기억을 씌우면 버텨져. 엄연히 인격이니까... 상호 보완도 되고."

"... 미쳐버린 당신이란 거죠? 제가 지금 당장 당신 머리를 날려버리지 않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살고 싶으니까 참고 있구나... 젠장. 하필 저 녀석이라 위험하다. 다른 놈이면 시간이라도 끌겠는데..."

"... 지금 한 30명의 당신이 식사 당한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엔 저기가 가장 큰 문제 인데요."

"... 아니 한 놈 더 온다."

"친구를 좀 가려서 사귀지는 못하십니까? 또 누구입니까!"

"타기리온."

"... 가장 무성의할 녀석이 이곳에 왜 옵니까?"

"솔리키타티오가 벼르고 있을거다. 나를 데려가지 못했거든. 아마 얼마 안있으면 튀어나올 걸?"


잘 알고 있구나.

예전에는 방해를 받았고, 그동안 숨어 지냈던 것 같지만

이제는 답을 할 차례다. 왕께서 너를 진상하라 하셨다.

선객이 있는 것 같지만 걱정 마라. 곧 그분도 직접 오실 것이다.


"지랄났다..."

"... 무슨 생각입니까."

"왜 탈출 기회를 안 보냐고?"

"도망칠 생각이 없어보시길래 한 말입니다."

"나는 믿는 빽이 있는데 너는 없을 것 같아서. 너만이면 충분하게 돌려보낼 수 있겠지. 물론 저 둘이 좀 많이 방심해줘야겠지만..."

"그 믿는 빽이 다른 마왕입니까?"

"아니 나도 몰라. 대충 비슷한 거겠지."

"... 데미고르곤이 동료라니.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군요."

"잡소리 그만하고 빨리 주변이나 정리해. 진짜로 쌈싸먹힌다."

"그래서 기다리는 이유는 못 들었습니다. 저만 도망갈거면 충분히 어그로는 끌어주시겠죠."

붙어있던 둘이 떨어졌다. 그 사이와 주변으로 십자가와 파편들이 날라들었다.


"... 우리 빽이 언제오나 기다리고 있지."

"얼마나 든든한지 궁금하네요!"

"걱정마라. 아마 내구도 하나는 끝장날 거다. 지금 내가 여기까지 존재하는 것만 봐도 증명이야."

"무슨 이야기입니까?"

"니 스승이 제대로 힘을 써 보였는데 그 녀석이 안 나타났잖냐."

"... 하 발상의 전환이군요. 정말로 믿을만한 빽입니다. 설마 아스모데우스를 상대로 버틴겁니까?"

"아마도... 그 녀석 성격 상 도발이나 하지. 협상은 갖다 버렸을 테니까. 그래도 적당히 서로 간 보다가 물러났겠지."

"... 그 말은 이미 죽어버렸을 거란 뜻으로도 들립니다."

정답이다. 모른다. 나도 확증할 게 없다.


"일단 돌아갈 곳 정도는 만들어줄게. 그 다음은 알아서-"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파편이 곧바로 반겨준다. 화살을 날렸다.

"... 니미럴... 진짜로 눈치채고 게임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고 오네..."

그럼 이쪽도 큰 걸로 쏜다.

내 앞의 공간이 전부 일그러진다.


"좀 치사한데. 니들도 양심 있으면 수긍하자?"

이걸 유지하는 것은 나다. 그러니까 빠르게 채워 넣지 않으면 곧바로 허수공간으로 튕겨나갈 것이다.

일그러짐이 펴졌다. 찢어진 곳도 있다. 앞으로 무수한 화살이 쏘아진다.

파편이 막으며 터진다. 하지만 아직 수가 많다. 그리고 더 많아진다.

계속해서 일그러짐과 펴짐이 반복된다. 동시에 찢어지는 수도 많아진다.


"지금 그게 어떤 행위인지 아시고 계시나요?"

"꼬우면 다같이 있는 데서 붙자고. 왜 쫄리냐? 나도 쫄리니까 이러는 거 아냐."

"...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요?"

찢어진 틈으로 파편들이 세어들어온다. 여기가 어딘지 찾았나 보다.

".... 글쎄. 이제 그걸로 누군가 여기 있단 걸 눈치챘거든."

"설령 다른 분들이 오신다고 하더라도. 당신이란 먹잇감을 내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웃으면서 말하지 마라. 정 든다."


왕이... 오신다...

경배하라... 만물의 왕이시다...

미천한 것들이어... 그분이 오신다...

자매들이어 길을 준비하라


"... 빨리 좀 와라..."

"김철수 씨! 그냥 도망가는 게 낫습니다!!"

"이대로 가면 룰에 어긋나! 세계가 곧바로 부서질거야!!"

"... 지금 그대로 가면 그냥 개죽음입니다!"

"알아! 그러니까 버티고 있잖아!"


문이 열린다.

등불을 비추어라. 길을 열어라.

환호하라. 너희를 위하여 그분이 행차하신다!!


"미안 그건 조금 안될 것 같아서."


"빨리도 온다!!"

경계선의 시위를 당겼다. 나유빈의 뒤에 통로를 만들었다.

"뒤로 뛰어!!!"

"... 쯧. 먼저 갑니다!"


들어가자마자 통로를 닫았다.

"... 자 이제 좀 할만 하겠네."


"조금 뜨거울거야. 개 망나니의 불이거든!!"


세상이 붉게. 아니 알 수 없는 것으로 그을린다.




"... 후우."

겨우 도망쳐 나왔다. 분명 이상 현상이다. 마왕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했다. 게임이 아직 선포되지 않았다. 봉인도 있다. 그렇지만 다들 그런 기색을 비치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었다.

"다만... 그게 전력이면..."

정말로 그게 전력이라면 패 몇 개를 준비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CRF수치도 간당간당하다.

"... 문제는 상상 이상의 전투로 카메라가 전부 부숴졌군요. 협상패로 쓸만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아 그거라면 걱정마라.]

"..."


[총구부터 겨누지 말지?]

"당신은 누굽니까."

[글쎄... 뭐라고 해야할까. 그냥 편하게 형 혹은 늙은이라고 불러.]

"... 제법 사람처럼 행동하시는 분이 많아졌네요."

[사람처럼 행동한다의 기준이 잘 모르겠군. 뭐 내가 내 동족들을 죽이면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가?]

"비꼬지 말고 대답하시죠."

[나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싸울지 말지 선택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그 정도면 너도 침식되기 시작할 걸?]

"... 원하는 게 뭡니까"

[우리 짐덩이 같은 의무관 좀 잘 살펴주라는 것이지. 이 상태면 못 들고 다녀.]


총 위에서 갑작스레 시체가 나타났다. 김철수다.

[뭐 대충 눈치챘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람이 아니니까 심장이 안 뛴다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열심히 마사지 할 필요 없다고 전해달래.]

"제가 여기서 죽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그건 정말로 글쎄군... 추천하진 않아. 몇 번이고 침식 현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녀석이니까. 아까운 패를 자기 손으로 찢어버리는 꼴이지.]

"당신은 아니군요."

[나는 목적이 일치한 비지니스 파트너. 그것 뿐이야.]

"비지니스라. 그럼 제가 그 부탁을 들어주면 뭘 주실 건가요?"

[받아.]

"구형 USB?"

[구형이라 하니까 열 받네.]

"그게 쟁점이 아닙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이 뭡니까."

[네가 썼어야 하는 패. 아마 그거면 먹힐 거다. 대충 반 협박하듯 들어가고 깨갱해주면 알아서 서로 합의 보겠지.]

나유빈은 고민했다. 이건 다룰 수 있는 패인가? 아닌가?

이걸 끼어들게 해도 되는 것인가?


[... 고민하는 것은 좋은데. 나도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내가 득볼 건 다 본 것 같고 알아서 판단해. 참고로 죽이기 쉽지 않을거다. 내구도 운운하는 데 가장 질긴 놈이 저 새끼야. 힐탱 서폿? 시발 밸런스 좆창난 겜이지]

...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아니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잘 모른다. 그저 있다고 생각한 곳으로 총구를 겨눴을 뿐이다.

"... 판이 다시 깔리고 있군요."

관리자도 지금 상황을 예상 했을까?

... 아닐 것이다. 정이 많은 것이지. 단호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최대한 싸움에 낄 사람을 줄일 인간이다.

"하, 말대로 놀아나는 것은 나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패를 더 준비해야 한다. 

김철수를 업었다. 관리자와 협상할 카드... 그리고 분명히 다시 나타날 그 존재에게도 쓸 수 있을 카드.

귀중한 패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그러니 지금은 숙이고 들어가서 판을 측정할 시간이다.



"자. 하나의 겨울이 시작이군. 남은 건 2번... 어떻게든 손해 없이 만들어야 하는데..."

"뭘 생각하는거야."

연갈색 머리의 중년 여성이 물었다.

"대충. 또 이상한 계획이겠죠."

수정구를 바라보는 은발의 여성이 대신 대답했다.


"...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좀 초치지 말래? 하려는 건 뭐... 룰에 끼어들어서 어떻게든 분탕질 치려고 하는 거지."


"... 와 정말 재밌어 보인다."

"조금 더 감정을 싣는 게 비아냥에 좋습니다."


"지금도 충분하거든?"


"괜찮겠어? 이미 정체를 들킨 상황에서 풀어 놓으면 눈치챈 순간 그 근처부터 난리날 텐데"


"그 녀석 이니까... 뭐 3달 안에는 일어나지 않을까? 그럼 자기가 알아서 잘 숨겠지."


"참 잘도 무대책이다."


"그냥 너 좀 나가서 살면 안 되냐?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은데..."


"꼬우면 대책 좀 잘 세워봐."


"핌불베트르. 그거 준비하는 거야."

"아니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보지 말고..."


"하아... 의무관 아저씨 보고 싶다. 그 인간이 있어야 도둑잡기 하듯이 같이 버려버리는데."

"동감입니다."


"... 서럽다. 서러워..."

"그래서 제주도에는 왜 온거야?"

"뭐 여기가 가장 살기 좋지 않을까? 돈이야 어떻게든 할거고..."


"... 나 일 안할건데."


"시발... 내가 소년가장이지..."


"차라리 제가 점술집을 해서 돈이나 벌겠습니다."


"아서라. 차라리 로또 번호를 찍던가."


"... 천재시네요. 역시 연륜입니다."


"그러다 진짜로 걸린다. 넌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야. 강제로 이 세계에 적응하도록 조정한 게 아니라 눈치채지 못하게 숨긴 거라고. 분자 단위로 분해되고 싶냐? 그냥 내가 일한다..."


"4.5등만 주구장창 찍어내면 돈이 복사가 됩니다."


"그건 진짜로 솔깃한데... 안 걸릴려나?"


"난 모르는 일이야. 나중에 아저씨에게 설명할 자신 있으면 해."


" "..." "


"그만 두자. 응. 일해서 받자."

"수지가 안 맞는 돈벌이였군요."


"...하아 진짜 벌써부터 자고 싶어지네..."


단칸방 하나에서 세 명은 나란히 생각한다.

'누가 돈 좀 벌어봐. 난 귀찮아.'

의식이 없을 누군가가 만약이라는 이름으로 답변한다.

'한 놈 빼고 아가리 하고 일어나서 공사판으로 튀어가라. 너는 인형 노가다 잡아줄게.'


겨우 써냈다. 좀 많이 길어서 끊어서 올렸어

다음에는 조금 가벼운 걸로 쓸 거 같음. 일상편 식으로 외전이나 쓸 듯 합니다.


김철수씨의 이야기는 그라운드 원의 신화에서 따왔습니다.


매번 떡밥은 뿌려봤는데 납득 해주면 좋겠다...

작년에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7시간 오버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