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알고 있다고. 나도.

나도 안다고.




지금 도렉스쟝은 내가 알던 도렉스가 아니야. 이미 예전에, 혹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때의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쫓아가 봐야 달라지는 건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어. 아는데.



"허억... 허억..."



그럼에도 눈보라 속을, 눈밭을 헤치는 내가 있다.

이해가 도무지 가질 않는다. 이상해. 너랑... 너희들이랑 만나면 항상 이상해져 가는 거 같아.

목구멍 아래는 이렇게 뜨거운데 귓볼과 코 끝이 이렇게나 차갑다. 이상해, 목 안 쪽에서는

가래 같은 게 부글부글 끓는데. 이상해.



"허억, 허억..."



도렉스쟝이 한 번 박차고 나간 눈의 자리. 금새 뒤덮으려, 숨기려고 드는 눈보라 속에서 그 흔적을 좇는다.

도플갱어 진영이 어디에 있는지는 대충 안다. 여기는 코핀 함선 바로 뒤. 길게 이어지는 능선의 끝.

함선 쪽으로 직진하면 류드밀라가 고친 포대가 내려다보이는 곳.


함선 기준으로 오른쪽 편의 능선. 그 쪽의 산을 넘은 곳이 그들이 있는 곳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겨우 알게 된 지형. 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



"아악....하악...허억..."



다리가 아파.

아, 아아아...!


눈보라는 그 여느 때보다 매섭게 몰아친다. 눈을 해침과 동시에 그 흔적을 지우려는 듯, 혹은 매우려는 듯.

헬멧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걸 이제서야 욕하면서 헐떡이지만 어쩔 수 없다.


쫓아 가야...





"허억...허억..."



그러고보니.

왜 나는 쫓아가야 하지?




그만 해.




생각해보니 가 봤자,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그만 하라고.




투두둑, 하고 눈가를 무정히 때리는 눈발.

그럼에도 다리를 든다. 오른쪽이 엄청 뜨겁다.

자연스레 돌린 고개. 오른 다리에서는 슈트 바깥으로도 알 수 있게

피가 배어나오고 있다. 동시에 엄청 떨리고 있다.




생각 하지 마.





할 필요 없다.

할 이유도 없고.






그만 하라니까.






어차피. 난 아무것도 못 할 건데. 뭐.






"으읏....허억...허억..."




결국 멈춘다.

결국 이 정도잖아.

알고 있었잖아. 힘들다.


혹시나, 돌아갈 수 있을까 싶어. -아냐 난 절대 그딴 생각은 없었어- 뒤를 돌아본다.

도렉스쟝의 비밀기지 따위는 이미 보이질 않는다. 세상은 온통 새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능선 아래의 숲 외에 색깔을 가지는 놈들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몰아치고, 덮고, 그리고 흐트린다.


색이라고는 올려다 본 곳의 잿빛의 하늘.




"알렉스...."




이렇게 식어가는데. 이렇게 차가운데.

근데도 목구멍 안 쪽은 뜨거워서. 이를 악문다. 콧물이 흘러나온다. 입가에서는 얼어붙지 못한

침이 흘러나온다. 바싹바싹 말라서 손만 대면 금새 터질 것 같은 입술.

마구 떨리는 몸.


살고 싶으면 돌아가야 해.

눈보라 속에서 헬멧도 없이, 침식파 속에서 다친 몸으로


제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리가 없다.




설령 내가 유사 멘탈프린팅에 의한 카운터여도.

그만한 힘은 없다.

그런 건 그 때, 전부 다 썼다. 


애초에 그만한 힘이 있을리가 없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런 거 나와봤자 부끄러울 뿐이지만.

뒤를 돌아본다.



온통 새하얗다. 아니 군데군데 검어서, 하늘이 내리쬐듯 검어서, 기분 나빠.



그럴 만한 걸 가질 자격조차 없는데.






"허억...허억..."






지금


죽으면


어느 시점일까.




.

..

...


...






상관 없잖아.

상관 없다고 했잖아.


포기하자.


아니, 포기가 아니야.

포기한다고 표현 하면 안 된다고.

이건 원래부터 안 되는 거야.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해.

안 했고, 못 했어. 그럴만한.... 뭔가에 뒷받침이 될 만한 무언가를 했어?

아니잖아.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결국 넌 씨발 아무것도 안 한 씹덕 새끼잖아!!!"





"하악....허억...하..."




자존심이 아직도 남았어?

콧물이 대롱대롱, 안 봐도 입가까지 내려 왔어. 입술이 벌써 터졌어.

추워. 뜨겁고, 추워.




"허억...허억..."




멈춘다. 금새 멈춘다. 항상 그랬고, 어제도, 오늘도. 어쩌면 1분 뒤에도 이렇게 멈춘다.

기억 속에서 누구보다 뜨거웠던 감정은 누구보다 빨리 식는다.

알아. 이렇게 된다.


결국 상황이랑, 분위기가 그랬던 거고

꺼지고 나면 금방 식는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씹새끼들...!'




그렇게 분노에 차서 갤에서 몇 번 유동 분탕을 치고 나면 풀린다.

일러 보면서 맥주 두 캔. 딸 두 번이면 곧 풀린다.

알게 뭐야.





"...그만...으으읏, 그만..."






그만 하자.






"아들...우리 그만하자. 응? 그만 하자... 엄마 소원 들어주자? 응? 엄마...엄마...."





추워.

뜨거워.




맞아.


그만 하자.


생각도, 그만 두자.




그러면 편하다.

이미 알고 있고, 그게 편하다고 느껴질만큼 익숙하잖아.


도붕이 그 새끼 말대로야.

난 그냥 개씨발 인생좆망 히키코모리 씹덕인데. 뭘 하려는거야.

뭘 하고 있던거야.

어차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발레리...!'






그래. 미안하다. 발레리.

근데 내가 씨발 미안하면 어쩔건데?

내가 미안한 일을 한 두 번 한 줄 알아?





'발레리...!'




아 좆같은 이름 그만 불러.

힘 빌려 달라고 간지나는 대사 한 번 해봤다 씨발년아.

어쩌라고. 개새끼가. 그래서 솔라미레도랑 싸웠잖아.

근데 씨발 어떻게 안 되잖아.





'발레리...!'





애초에 난 발레리도 아니고...





"발레리!!!"






어...?


하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한 때. 나와 도렉스가 잠시 신세를 졌던 잔해. 거기에 구관리국 병사가 하나.

잔해에 짓눌린 채로 나를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다.

눈보라 속에 전부 흩어졌지만. 나를 향해서.

















아~ 알렉스 젖통 쥐고 아득바득 질싸하고 싶다~

-40


















"히야, 살았어. 발레리. 이 자식. 어? 역시 니가 날 버리지 않을 줄 알았다니까."



스읍하, 하고 내뱉어지는 숨결.

헬멧. 부럽다.



"근데 너 헬멧은 어디 갔... 어? 음...?"


나를 멀뚱히 쳐다보는 구관리국 병사. 팔짱을 낀 채로 오른손을 턱가에 가져다 대고서 갸우뚱.

아니지. 구관리국 병사가 여기에 남아있을리가 없지.

이 녀석은 도플갱어다.


알고있다. 그런데도 구했다.



"...음..."



"너 부전대장이랑 똑 닮았네?! 뭐야. 클론병들은 다 그런가?"


"..."



뭐, 뭐라고 답해야 되지.

애초에 난 왜 이 자식을 구하러 온 거냐고.

젠장.... 젠장...




"뭐, 그럴리가 없지. 모델마다 다 다른 모양이더라고. 애초에 우린 이..."



도플갱어 병사가 헬멧 중앙, 9 문자를 톡톡하고 손가락으로 건드린다.




"이 모습 조차도 침식파가 만들어낸 환영이잖아. 하하하"



"..."



"헬멧 아래도, 헬멧 바깥도 죄다 만들 수 있으니까."



"모델..."


"응?"



"모델마다 다르니까..."




내가 헬멧을 쓰고, 발레리의 슈트를 입었을 때의 음성 아나운스.

VAL-8 어쩌고. 아마도 VAL 모델은 다 같은 얼굴을 가진 클론이겠지.




"아, 아~ 그렇겠지? 아무튼 다행이야. 하~ 살았다니까. 난 니가 날 그 씨발년들처럼

 버리고 간 줄 알고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형제?"



형제?

하고 의문점을 가질 틈도 없이 도플갱어 병사는 내게 안겨든다.

떨쳐내려고 손이 자연스레 오른다. 동시에 남자의 발 밑이 어째서인가 흐릿하게 보여서,

눈을 떨쳐내지 못한다.



"아? 이거? 슬슬 온 거지 뭐겠어."


"왔다고?"


"왜 모르는 척 해?"


"그 씨발년들이 지네들만 좆같이 쳐먹고, 우리한테는 찌꺼기만 준 게 하루 이틀 일인가?"



도플갱어 병사는 익숙한 듯 잔해 더미 안에서 적당한 금속을 떼어내더니 캉캉, 하고 부딪힌다.

뭘 하는거지.

아니 그보다 무슨 소리지?



"어? 슬슬 갈 때가 되었지. 너처럼 애초에 전투병과인 애들의 도플갱어면 모르겠는데.

 난 그런 것도 아니니까."



캉, 캉.

금속을 부딪히고 있다.



"어?"



"새끼. 같이 가자고 해 놓고, 기억상실증이야? 아니면 너도 슬 갈 때가 된 거야?"



금속끼리의 마찰.

캉, 캉에서 킹, 키이잇 하고 점점 소리가 변한다.



"특정 이터니움 합금과 일반 금속끼리 부딪히면 원자의 유동성을 못 이기고

 금새 한 쪽이 녹거든. 원자가 다 빨려버리는거야. 융합해서."



이 새끼 무슨 말을 하는거지?

원자? 그게 그렇게 부딪힌 정도로 금새 빨리면 한 쪽에 원자가 없어져서

폭발...!


"폭발...!"


"그래. 이렇게 가볍게 간이 핵분열이 일어나서 폭발하고, 유독가스를 만드는

 열이 일어나지."



그렇게 말한 뒤 도플갱어는 뒤로 물러난다.

쾅, 하고 잔해가 터져나가면서 불꽃이 인다.


흔들흔들, 9문자를 흔들려고 하는 듯 불꽃이 인다.



"왜 그래? 폭발물 관리병. 다닐이잖아. 나는."



"...아, 아아아... 그치..."



"아 맞다. 넌 헬멧이 없어서 유독하려나? 아니지? 응? 도플갱어인데 

 유독가스가 유해하던가?"



분명히 코 끝을 찌르는 기분 나쁜 냄새는 난다.

하지만 그것보다 오른발에서 쿡쿡, 하고 찌르는 이 뜨거움이 더 기분 나빠.


어거지 카운터인 나니까. 이 정도는 괜찮은 건가.




"아무튼 발레리, 구하러 와 줘서 고마워."


"어? 어어어..."





다닐. 폭발물 관리병이라고 했지만, 난 본 적이 없다.

그렇겠지. 기억 속에 없다.

이런 병사는.


그리고 지금 눈 앞의 남자는 심지어 도플갱어다.

본 적 없어.

왜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알 것 같아.



지금 눈 앞의 이 자식은.

나를 도붕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애초에 내가 아는 한, 이 세계에 발레리도 없고. 발레리의 도플갱어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민 손.




"야, 형제. 이거 엄청 머쓱한데? 왜 그래?"


"어...어어어.... 미안"




그의 손을 잡는다.

어디선가 차가움과 동시에 따스함이 느껴진다.

아마, 이건 전부 환상이다.


왜냐면 슈트 너머로 느껴질리 없기에.

왜냐면 눈 앞의 남자는 도플갱어니까.





"그래서 그 함선 내부로 파고드는 계획은 어떻게 됐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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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붕이는 알렉스 카게 나오기 전 시점에 루프해서

그 이후로 나온 것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즉, 메인스토리는 2021. 9월 7. 메인 7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닐은 알렉스 카케에 나오는 폭발물 관리병입니다.

이야기 내에서는 쉽게 말해서 니콜라이 - 정비 / 다닐 - 기갑 보급 및 정비.

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