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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에서 더 몰려오네!"

기체의 움직임이 멎은 상태에서 오직 음성만이 흘러나오며 전황을 살피는 타이탄.

 "이미 봤습니다. 시끄러우니까 음소거 하십시오."

물론 뒤늦게 반응하며 근처의 아라크네를 집어던져 견제했다. 이미 서너번 놓쳤었다.

 "이대로는 언젠가 뚫려버리고 말걸세. 아직 지원은 없는가?"

 "이미 요청이 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사주 경계 말고 쓸모 없는 대화를 거시지 마시죠."

총알과 폭탄이 근처에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날 곳도 없다.

하필이면 난전이다. 해적들은 빠르게 주위를 감싸며 아군들과 섞여버렸다. 굳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들의 목적이 단순한 시간끌기라는 걸 알았다. 나쁘지 않은 책략이다. 덕분에 강제로 수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호라이즌의 주위로 정전기가 일었다. 역장에 걸려서 그대로 구워진 초소형 드론들이다.

 "미안하군. 나도 이런 방식으로 견제 당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 했네."

 "걱정 마십시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해킹으로 기갑병에 문제가 일어난 것 인줄 알았다. 그렇기에 타이탄과 호라이즌이 앞서서 전선에 들어갔다. 기계이지만 그 둘이라면 분명 자유로웠을 것이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낸 답안지에는 세모표가 쳐졌다.

호라이즌은 자유로웠지만 타이탄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탈취하지 못하자 관절 장치를 정지시켰다. 전장 한 가운데서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곧바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물론 봐준 것은 맞으나 그 후에 곧바로 호라이즌이 사지를 아작내며 대응해줬다. 

그러자 적들은 더욱 더 빠르게 전진하여 난전을 이루었다. 판단이 빨랐다. 지휘자가 저심도에서 활보할만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미 주도권은 적에게 넘어간 상황이다. 최악을 면하기 위해 어떻게든 타이탄을 지키면서 버티기 시작했다. 타이탄을 나포해서 무장까지 가로채버리거나 인공지능이 교체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십분을 버텼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 호라이즌. 나를 포기하고 저들을 구해주게."

 "그 판단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그 후가 더 큰 문제임을 모릅니까? 이래서 퓨처 앳 워 제품들은..."

 "잘 아네. 그러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손해를 복구하는 방법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군."

 "5억 크레딧을 2주 동안 낭비했다고 한다면 저는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할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목숨은 10억 보다 크지 않겠는가?"

 "저들은 저희 직원들이 아닙니다."

 "그것 또한 내 강인한 데이터 속에도 있는 사실이지. 그러나 구해야 하는 대상임에는 틀림없네."

 "이런 논쟁을 할 시간에 차라리 제어권부터 찾아오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됩니다."

대답에 이어 타이탄의 장갑을 떼어서 허공으로 던졌다.

2초가 지나자 폭발음이 들려왔다. 꽤나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 거리를 곡사로 던진 것인가? 확실히 발리스타라 할지라도 그 각도라면 대응하기 힘들겠군."

 "시끄럽습니다. 아무래도 이 전투는 손해만 보고 있습니다. 부사장의 한소리가 또 하나 더 쌓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젠 저쪽에서 강행을 하는 것 같군."

타이탄과 호라이즌의 센서에 감지되었다. 발리스타를 중점으로 포위하고 그 위로 스패로우와 우드피커, 야누스가 보였다.

그 후 전열을 개조한 투 앤 하프와


 "이젠 죽일 생각으로 덤벼오는군. 더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뜻이네. 어서 저들을 데리고 보관소까지 물러나게."

빠르게 회로를 지나 사고모듈로 전류가 흘렀다. 더 끄는 순간 정말로 위험하다. 그것은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서두르는 게 좋겠군. 내 합판이 뜯겨져 나갔다고 해도 버틸 순 있겠지만, 저들까지 그럴 것 같지는 않네."

 "저도 버틸 수도 지킬 수도 있지만-"

 "그래. 그래. 분명 무리를 한다면 지킬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나는 잡혀가겠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이네."

 "그렇게 걱정하기만 하지 말고 판단을 내려야 하네. 호라이즌. 내 무장을 전부 부수고서 저들을 지킬지. 아니면 애매한 다정함을 버리던지. 결정해야 할 순간 와버리고 있네."

짜증나게도 틀린 말이 없다. 이제는 사생결단이 필요하다. 일일이 밀집해있어서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애매하게 껴있는 사람들.

 "방법이-"

데이터베이스를 최근부터 역순으로 불러온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분명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

타이탄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호라이즌.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정보로서 남아있는 이름. 

엠버소장이 남겨둔 마지막 유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인공지능.

자신이 보기에 가장 사람에 가까워진 존재다.

그러나 과연 제작자가 그것을 원했는지 잘 모르겠다.

엄연하게 우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하나다. 침식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병기.

그 조건 중 우연찮게 스스로 인류를 수호하려는 인공지능이 필요했던 것이다.

타이탄은 어쩌면 가장 부합하는 존재를 눈앞에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록했다.

새하얀 소체는 손가락을 튕기면서 몇 번이고 전장을 돌아보고 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타이탄은 저런 모습들을 본 적이 있다. 일이 풀리지 않기에 고민하던 세르게이 박사.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겨웠던 정비사. 잘 표현할 수 없었기에 고민하던 엠버 소장.


 "호라이즌. 도망치게."

어쩌면 정말로 성공해낸 것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을 염두한다면 그 후를 맞길 존재는 당연지사다.

 "이길 수 없다면 도망치게. 그 후를 도모해야 하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태연함인 것인가, 아니면 무력감인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아직도 깨달아야 하는 것이 많고도 많았다.

 "걱정하지 말게."

움직일 수 없으면서도 기계는 출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음성장치였기에 끝없이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까 전에 일제히 사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호라이즌의 역장에 막혀 도탄되고, 타이탄의 몸체에 맞아 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불능이 되어버리지는 않네. 이 정도론 3종을 죽일 수 없지 않겠는가!"

3종 이상의 전투를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그러니 이 정도는 끄덕 없을 것이다. 단순한 가감법이다.

2차 폭격이 시작되었다. 하늘로 높게 쏘아올린 곡사포. 아무래도 밀어내거나 쓰러뜨릴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인지 그대로 땅 밑으로 묻어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이미 다른 인간들은 위험조차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모든 것이 타이탄과 호라이즌을 향해 쏘아졌다.

 "아예 생매장을 시킬 생각인 것 같군. 다행이야. 차라리 잘 되었네. 이대로면 나도 안전할테니 어서 저들을 구해주게!"

자신이 시간을 더 끌 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것이 최선이리라.

그러나 호라이즌은 행동을 멈춘 채 가만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 후 맹렬한 폭격이 덮쳤다.







https://youtu.be/NFNf4Qu__yU



 "인 게이지"

하늘에는 거대한 대검이 떠다녔다.

 "시무르그 실루엣 - 파티션."

하늘에는 폭발이 남긴 검은 연기들만 가득 찼다.

엘부르즈가 전부 격추해낸 것이다. 

 "기동 한계 30분."

그리고 그 칼 끝을 앞으로 하늘로 겨눈다.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진짜 보따리로 보이나! 각막에 문제 있냐? 이 버러지 개자식아! 있으면 말해라. 지금 당장 열어서 고쳐줄테니까! 

허공에서 음성이 울려퍼지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다들 어리둥절하지만 타이탄은 저 음성이 익숙했다. 정확하게는 성문의 주인이 누군지 안다.


 "녹음된 것 중 하나지만 확실하게 기분이 풀리는군요. 나중에 바리에이션을 몇 개 늘려달라고 부탁 해야겠습니다."

호라이즌의 짓이다. 이미 충분히 주의가 끌렸음에도 외치는 것을 선택했다.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네."

이후 곧바로 대응사격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게 있으면 바로바로 쓰면 좋지 않았나?"

 "30분 후면 저도 기동 정지 됩니다. 온전하게 시간만 버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왜 쓴 건가?"

 "저들과 타협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돌한 대답이었다. 실제로 저 대검이 공격을 가하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공격 범위가 큰 것 같았다. 미세하게 적만 노려서 공격하기에는 정밀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완전히 세기말 결전병기군."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맞습니다."

역장의 크기까지 키운 호라이즌은 타이탄의 돌출부를 붙잡고 버티고 있다. 그 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네만, 차라리 그것을 후퇴한 후 사용하는 것이 어땠는가?"

 "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도 않습니다. 저들과 타협할 이유가 없습니다."

 "타협이 아닌-"

 "저에겐 타협입니다. 그러니 토 달지 마십시오. 늙은이 행세를 배운 타이탄."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정말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인 것이라.

 "그리고 그 타협으로 나은 결과를 압니다. 겨우 누군가의 도움으로 되찾은 결과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의 타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검이 무수히 많은 폭약들을 가르며 역장이 탄알들을 휘게한다.

 "그리고 계산 힘드니 조용히 계십시오. 이미 일은 터졌습니다."

 "30분은 너무 짧지 않나?"

 "30분이면 해볼만 한 시간입니다. 심장이 멈춰도 30분간 계속해서 압박해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군."

 "4년간 심장이 멈췄어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 하고, 30분만 산다 하더라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조언입니다."

 "아하. 자네의 말이 아니었군."

 "그러니 이젠 조용히 하고 기다리십시오."

실제로도 몇 번 놓쳐버린 폭약이 날라왔다. 다행히 근처의 땅을 때리곤 말았지만 언제든지 직격할 수 있는 상황을 뜻 했다.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희망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호라이즌은 되뇌이듯 중얼거렸다.

타이탄은 실감하였다. 소장은 결국 사람을 만들어 내었다. 

어느 인공지능이 저런 말을 내뱉겠는가. 무엇을 학습하여 불가의한 것을 정의했다 오만하겠는가.

계산되어 만들어진 것이 계산의 범위 바깥을 추구하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기동정지를 걸어야 한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을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한 시간 센서가 조도의 변화를 관측했다. 자욱한 검은 하늘 사이로 빛이 떨어진다.

검은 연기의 끝으로 빛이 굴곡되어 시각장치에 입력되었다.

실버 라이닝. 검은 구름 끝으로 은색 빛의 띠를 두른 현상.

별 볼일 없는 현상이지만 그것은 구름이 존재할 적부터 존재하던 현상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계산 밖에서 바라보았다. 

잃어버린 낙원을 서술한 자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빛이 떨어져 내렸다. 지면을 울리는 충격과 먼지 구름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모두 불안한 마음을 지니며 자욱한 먼지 구름에 사격을 하였다. 

이상하리라. 보통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그 물건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무사하다면 총알이나 폭약 정도의 물리력에 영향을 받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격하였다. 그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존재가 움직였다.

 "할아버지! 언니! 시그마가 왔어!"

 "시그마? 여기는 전장입니다. 놀이터가 아니니까 돌아가십시오. 아니 무슨 사고 모듈을 달았기에 여기에 온 겁니까?"

 "꼬마 아가씨? 얼굴을 보니 반갑긴 하지만 여기는 위험하네! 어서 돌아가게나!"

그러나 애 취급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과 표정-주로 볼을 부풀리는 것이었다-으로 항변하면서 양 눈을 감고 타이탄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도와주러 온거란 말이야!"

 "진공관 맙소사. 드디어 미쳐버린 겁니까? 어쩌자고 저것을 여기에 지원군으로 보낸 것인지..."

 "부정할 수는 없겠네."

타이탄은 한숨을 내쉬 듯 포신을 끄덕였다.

... 끄덕였다.

 "할아버지. 좀 씻어! 왜 벌레들을 달고 다니는 거야!"

아까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불가해한 것으로 정의 내렸다.

단순한 구름에 의해 굴절되는 것을 그들을 이렇게 생각하였다.


역경 속에 가리운 희망


 "... 도움이 될 만한 지원군이군요."

호라이즌은 전언 철회했다. 지금으로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하하하! 자네가 옳았군!"

희망이 이곳에 왔다. 아무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희망이 도래했다.

 "빠르게 정리해야 합니다. 방심하고 있을 때 인질극을 벌이지 못 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여기는 우리에게 맞겨!"

허리에 손을 올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말 안해도 그럴 겁니다."

엘부르즈는 그대로 하늘에 자동 격추용으로 남겨둔 채 곧바로 사람들을 향해 호라이즌이 뛰어들었다.


 "하나 물어볼 것이 있네만... 어떻게 하면 되겠나?"

 "음... 일단 친구들부터 풀어주자!"

 "풀어준다고?"

 "응! 요정님이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어!"

 "요정?"

 "실제로 있어! 의심하지 마!"

영 엉뚱한 소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수많은 기동음이 그 뜻을 알려주었다.


시스템 리부팅. 새로운 명령권자 확인. 


 "... 그렇군. 세르게이의 말이 맞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있는데, 있지... 그러니까 주저하지 말고 들이박아 보라고. 결전병기씨.'

 "나는 자네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날 줄 알았네..."

그러나 그러지 못 했다. 폐에 암덩이 대신 구멍과 총탄이 채워져서 죽었다.

 "할아버지?"

 "원래 저명한 늙은이가 안 된다고 한다면 노망난 때라고 하더니 틀림 없는 말이군."

웃기는 일이다. 자신이 버려지게 된 이유인 사람의 말이 여기서 하나 증명되었다. 물론 자신은 사람은 아니다.

 "할아버지 노망났어?"

 "아마 그런 것 같군. 그렇지만 시그마 덕분에 제정신을 차렸네!"

그가 자랑하던 거대한 아틀라스 포신을 조정했다.

튼튼히 여기던 이터니움 합금 장갑판은 호라이즌이 격추용으로 던져버렸다.

그가 부르던 세기말 결전병기라는 비문적 관용구는 나를 만들어냈다.

 내 번쩍이는 이터니움 합금 장갑판에 걸고, 가동 종료가 되는 그날까지,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

지금은 그 걸어버린 장갑판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말이 단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지금 안다.

세르게이 또한 그것을 걸어서 지키기 원하지 않았음을 안다.

 

 "보아라 이 악당들아!" 

 "나의 거대한 아틀라스 포신에 걸고-"

 "나의 쓰러져간 의지를 걸고-"

 "가져올 미래를 위해 끝까지 항전하리라!!"


그러니 지금은 맞설 때다. 연약하고 노쇠한 자신이 밀어준 과거를 위하여


 "예이-! 결전병기들이 간다고!"

강철의 심장을 가진 거인이 주저함 없이 발을 들었다.




 "여기 지,지원! 으악! 그만! 그만둬!!"

무전에는 차례 차례 비명이 울려퍼졌다. 일부러 일 것이다. 사기를 꺽기 위해 고통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벌써 20명이 당했다. 해적들은 안위를 위하여 곁에 있던 호송대원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얌전히 팔이 270도로 꺽이던지, 1.5파이만큼 꺽이던지, 그것이 싫으면 투항하십시오. 자비롭게 선택지를 3개 드리겠습니다."

 "앞에 두 개는 똑같은 선택지잖아!" 

 "두 개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5초 드리겠습니다."

 "해 봐! 그러면 이 새끼들도 내 관절이랑 같이 가는거야!!"

 "후회할 짓 하지 마십시오. 저라면 그만두고 투항할 것입니다. 자칫하단 목도 관절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저 위의 대검으로 다 죽였어야지. 헤헤... 죽일 맘도, 죽게 놔둘 생각도 없는 거잖아?"

 "... 그거 아십니까? 저는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도 살릴 것 같은 사람을 압니다."

 "구라치지마! 얼른 떨어져!"

 "죄송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2할로 생존시킬 수 있는 사람을 압니다. 물론 기댓값입니다만."

 "5명 중 한 명만 산다는거 아냐?!"

 "20%면 목숨을 건 도박치고는 할 만한 겁니다."

그리고 충분하게 시간을 끌었다. 이 정도면 자신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총구가 하늘로 올라갔다.

놀라서 방아쇠를 당기는 자도 있었지만, 그들의 총알이 다 위로 향하고 있기에 위험할 것이 없었다. 누가 미쳤다고 안약 넣듯이 눈동자를 위로 보이게 하고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늦었습니다."

 "아뇨. 빠르게 온 건데요? 출발 시간차가 20분 이상이었는데 5분 차이로 왔잖아요?"

 "현장에서 그런 걸 생각해주진 않습니다. 그것도 계산해서 출근해야 하는 겁니다."

 "그럼 총구 다시 내릴까요?"

 "물론 그 후의 일을 책임질 수 있다면 언제든지 하십시오. 알트 소대장. 저라면 그 선택의 책임을 지지 않을겁니다."

 "후후 농담이에요~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물론 노려보지 않았다. 호라이즌의 시각 센서는 해적들의 몸에 향해 있었다. 죽기 전까지만 패기 위해서다.

 "살려.. 살려.."

 "안 죽습니다. 그 경계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느라 조금 힘들었습니다만... 걱정 없어도 될겁니다."

그렇게 철푸덕 바닥에 던져진 해적들은 쓸모 없다고 판단했다. 우연찮게도 다른 해적들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쪽으로 미사일 런쳐를 쏠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더 우연찮은 것은 호라이즌이 반응하기도 전에 격추되었다는 사실이다.

 "... 어머나. 역시 그렇게 버릴 줄 알았어요. 참 잘 되었죠? 여기 있으면 살아는 있을테니까... 투항하실거죠?"

 "당신이 더 악당 같습니다."

 "어머. 저는 어떤 선택이 이로울 지 도움을 드렸을 뿐인걸요."

 [대장. 미안한데 갑자기 후퇴하기 시작했어.]

 "어디로?"

 [협곡 너머로. 거기에 퇴각용 함선이 있는 것 같은데?]

 "유진아 들었지? 린이 태우고 거기서 만나자."

 "대장. 그럼 우리는?"

중화기를 들처매면서 뒤에서 나타났다. 아마 격추해낸 자는 김소빈일 것이다.

 "뛰어 가야지. 아니면..."

 "쯧. 나중에 가격표라도 만들어 둬야겠습니다."

호라이즌의 옆에서 균열이 벌어졌다. 남아있던 한 자루의 칼과 기계의 양 팔이 나타났다.

 "제대로 붙잡으십시오. 떨어지면 무시하고 날아갈 겁니다."

온전히 모습을 들어낸 것으로 기동 한계가 곧 온다. 2분 후 기동이 정지할 것이다. 1분 후에는 인공지능에 타격이 온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잡소리 그만하고 서두르십시오. 오래 유지 못 합니다."

군말 없이 두 사람은 팔을 붙잡았다. 말이 붙잡았다지 사실 스키장 리프트에 탄 것 같았다.

 "출발이요~"

얼굴을 잔뜩 구긴 호라이즌은 곧이어 가속했다.



https://youtu.be/kGSfNX5Zkvg




 "할아버지! 앞에!"

포신이 불을 뿜었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격추되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미사일들은 날아온다. 명령권이 돌아온 발리스타와 아라크네가 열심히 격추시키지만 역부족이다.

 "방출!"

열추적 미사일들이 발사되어 그대로 요격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기계들이 우군이 되어주었다.

 "친구들! 도와줘!"

시그마는 열심히 수 많은 기계들의 명령권을 탈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는 적들이 더 많았다.

 "흐엥- 할아버지! 끝이 없어!"

 "걱정 말게! 버틸 수 있네!"

 "그럼 나도 힘낼래!"

상당히 기분파인 시그마이지만 실력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절호조였다.

 "이 악당들아! 서둘러 투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포신이 연속하여 불을 뿜는다. 그러나 어느 하나 죽는 일은 없었다.

 "이예이! 서둘러서 항복하라고!"

시그마는 양손을 하늘 위로 흔들면서 주위를 산만하게 한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탈취되는 것도



 "능력이 통하지 않는 군. 하찮은 기계 주제에..."

어느새 전투복을 풀어해친 여성은 뒤를 돌아 격납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쁘지 않지... 이것들을 시험해볼 수 있는 건가? 손 쉽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둠 속에서 하나 둘 불길한 빛들이 점등하기 시작했다.



 "와 정말 빠르네요. 다음 직장으로는 택배 회사는 어떠세요?"

평상복으로 돌아온 호라이즌에게 서윤이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단가에 맞지도 않는 회사를 꾸리진 않습니다."

리타가 '단가를 미친듯이 올리는 네가 할 말도 아니다. 깡통.' 이라며 비아냥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청각센서에 입력된 신호는 없었습니다.

 "언니이이!!!"

 "시그마. 어서오십시오. 아직도 안 끝난 겁니까?"

 "저기에 있는 함선만 어떻게 하면-"

 "그렇습니까. 그럼 숙이십시오."

그 말에 타이탄이 반응하며 곧바로 몸체를 낮췄다.

시그마의 머릿결이 흩날렸다. 반응하지 않았으면 붉은 눈이 노려졌을 것이다.

 "와앗! 날라왔어!"

 "어둠 속에서 방해 장치를 덕지덕지 달고 있군요. 덕분에 들어갈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곧바로 타이탄의 거대한 아틀라스 155mm 포신이 불을 연달아 뿜었다.

그에 맞게 응사하듯 저쪽에서도 터져나왔다.

 "역시 단순한 해적이 아닙니다."

 "그렇군. 저기에도 내가 있는 것인가?"

타이탄까지 저기 안에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무장과 같은 병기가 있을 것이다.

 "목적이 뭔지 모르겠군요. 도망가지도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도망가는 것은 아닌가? 함선에 외부로 이어진 통로 정도는 있을 것이네."

 "굳이 저런 걸 활성화 시키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차원도약해서 도착한 이들입니다. 근처에 뭔가 있을리 없습니다."

 "모순되었다는 이야기군. 확실히 어째서 기다리고만 있는지 모르겠네. 우리가 포위하면 더 우위를 점하지 않나?"

 "흐흠- 두분 다 이야기 하는 것은 좋은데. 굳이 발성기관만이 표현의 방법은 아닙니다?"  

린이 좀 조용히 닥치고 작전회의를 하라고 애둘러서 말했다.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들으라고 하는 거네." 

둘이 동시에 대답하였다. 


 "저기가 기만전술을 펼친다면 우리도 맞서서 해야 합니다. 아쉽게도 지금 저들의 전력을 쉽게 판가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 또한 저들이 원하는대로 해줄수는 없지. 때문에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것이네."

 " '어짜피 놀아나야 한다면 너희들이 정녕 감당할 수 있겠냐.' 라는 것이지"

 "그냥 닥치고 돌진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연약한 단백질 해마에서 나온 명답이군요."

 "맞는 말이네 아가씨. 기만 전술이라면 그대로 맞서는 것이 더 유용하겠지."

 "아쉽지만 저희는 목숨이 백업되지 않아서 말이죠~"

 "걱정 마십시오. 전열은 저나 이 고철이 뚫을 겁니다."

 "그것 참 위로가 되네요. 들었지 유진아? 함부로 앞으로 나가지 마."

 "... 대장 뭔가 날카롭지 않아?"

 "다 아는 사실이니까 조용히 해 돼지야."

 "그럼 저희는 후방이나 지원하겠습니다. 철.분.덩.어.리 분들?"

유일하게 시그마만이 고개를 휘적휘적 거리며 상황을 살핀다.

 "어... 언니! 싸우면 안 돼!"

 "적이 앞에 있는데 싸우지 않으면 뭐합니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우리끼리 싸우면 안 된다고!"

 "어머. 저희는 싸우지 않았는걸요?"

 "이건 싸움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테라브레인. 이걸 싸운다고 한다면 사장은 오래전에 부사장에게 부관참시 당했을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이 싸우는 거라고!"

 "괜찮네 시그마. 원래 아이는 싸우면서 크는 것이네."

포신이 느슨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지금 시비거는 겁니까? 먼저 제가 직접 부숴주기를 원하는 바라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하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네만?"


 재밌게도 놀고 있군. 덕분에 이쪽도 만반의 준비를 끝냈지.

 

함선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열렸다.

 

 그럼 다시 시작하자고. 시시하게 부숴져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수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원본이 유추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라고 부르기에는 다들 괴상했다.

 "거의 새로 만든 수준이군요. 물론 손재주는 안쓰럽기 그지 없습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있으면 저런 자신감이 있겠군."

 "흐음. 그럼 저희는 기계보단 사람을 사랑하는 인본주의자라서요? 먼저 함선으로 가도 되겠죠?"

 "... 불쌍해."

유일하게 정상적이고 감상적인 답변을 내놓는 존재가 있었다. 물론 기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그래. 안식조차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 되었군. 이를 두고만 볼 수는 없겠지."

새로이 나타난 것들은 전부 다 원격으로 조작되고 있다. 인공지능들을 전부 제거해낸 것이다.

기계에 눈에는 어찌보면 가장 간악한 운명일 것이다. 

 "그래! 가자!"

 "함부로 위에서 떨어지지 말게나!"

 "지랄이 풍년입니다. 합금판도 없으면서 앞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세 기계들은 앞서서 기계들에 뛰어들었다.


 "오늘 뭔가 애매한 기분이네."

 "... 대장 갈 꺼지?"

유진이 눈치를 보면서 말을 걸었다.

 "그래야지. 후우... 분명 뒷구멍으로 도망칠 생각일테니까."

 "시동 걸었어. 넌 다신 운전대 잡지 말고."

 "야! 여기까지 오면서 안 박았으면 된 거잖아!"

 "지랄도 풍년이다. 박지만 않았지 거의 교통사고랑 다를 바 없게 급정지를 하면 어쩌자는 건데."

 "하! 쫄려서 악셀도 제대로 못 밟는게!"

 "누가 못 밟는다고? 지금 너부터 밟아줄까?"

 "그래! 오랫동안 봐주니까 해볼만 한 것 같지!"

 "자 그럼 오늘은 린이가 운전하는 걸로."

서윤은 더 이상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사양했다. 편하게 뒷자석에 타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현답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김소빈이 먼저와서 앉아있었다.

 "아하하..."

 "어휴. 가장 대단한 사람은 따로 있었구나..."

 "유진이는 조수석 타고."

그렇게 문을 닫았다. 타협의 의지는 없다.

 "어... 대장?"

 "후우... 할 수 있다."

 "뭘 해! 그냥 나와! 차라리 내가-"

 "빨리 안 가면 늦겠다 얘들아~"




 "할아버지 오른쪽!"

시그마의 손 끝에서 무언가 튕겨져 나갔다. 앞에 있던 무언가가 부숴져나갔다.

 "언니 앞에!"

호라이즌과 타이탄은 능숙하게 우선순위를 잡으며 전진할 수 있었다.

 "따닥이 방출! 방출!"

다급하게 두드리는 시그마의 말에 타이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시각센서에 감지되는 것을 알아채고 미사일을 쏘아냈다.

 "이건 따닥이네 아니네. 시그마! 훌륭한 위력과 정밀성을 자랑하는-"

 "할아버지. 앞에 앞에 봐!!"

 "지금 자랑할 시간 아닙니다."

호라이즌이 곁에 있던 불을 뿜으며 고속으로 진동하는 뭔지 모를 기계를 던져서 격추했다.

 "제 미학 기능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의도도 결과도 모를 실패작들입니다."

 

 하! 너따위 고철이 이 깊은 의미를 알리가 없지!

아라크네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혹시 눈치를 조지게 말아먹어서 직장 동료도 없습니까? 적들에게 회포를 풀 정도라니 안쓰럽습니다."

 

 너가 뭘 안다고 지껄여! 아무도 우리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해!


 "진짜입니까? 조금 안쓰럽군요. 리타도 적어도 술 친구 정도는 있다고 했습니다."

 "와아..."

 "내가 보기엔 어떠한 타격보다도 가장 큰 피해를 입혔을 것 같군."

 

 지랄맞은 고철 새끼들이!

그래. 아직 미조정인 이걸-


 "그런 걸 실패작이라고 부른 겁니다. 완결도 못 냈으면서 뭘 당당하게 제출합니다. 혹시 학고만 수백번 쌓았습니까?"

 

 시발! 닥쳐! 그냥 다 뒤져버려!


계속해서 정신 공격을 하던 호라이즌은 빠르게 회피기동을 했다.

아까 있던 위치에 불기둥이 떨어졌다.

 "정정하죠. 불쇼로 신날 나이는 지난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그런 것에 로망이 있습니까?"

 "언니? 그만 때려도 될 것 같은데..."

그 후 지면을 울리며 충격이 그들을 하늘로 띄웠다.

아라크네였다. 기본 모델은 그런 것 같았다. 문제는 크기와 무장이다.

거의 타이탄의 거체와 맞먹는 높이와 그걸 옆으로 늘린 뚱뚱한 4족 보행.

그 몸에 옆에 달린 두 개의 포신. 그리고 견제용 기관총. 마지막으로 그 모든 크기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화염방사기.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겁니까? 대단하군요. 하도 열이 받아서 불도 뿜을 수 있다는 메타포를 가산하여 0점 드리겠습니다."

물론 진짜로 불도 뿜어져 나왔다.

타이탄은 급하게 화염방사기의 주둥아리를 조준하여 발포했다.

포신이 2개라는 것은 연사속도도 2배라는 것이다. 물론 반동주기도 2배겠지만 저기는 2족이 아니라 4족이다.

 "로망과 타협한 악당에게 질 수 없지!"

 "할아버지! 그게 논점이야?!"

마치 2족 보행을 포기한 것이 중죄인 것 마냥 적의를 흘렸다.


 2족 보행은 사치다! 제대로 된 무장도 만들지 못하면서 그것을 논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거 아냐?

 

 "꿈을 품지 않고서는 사람은 나아가지 못한다네!"

 "아니 멋진 대사긴 한데..."

지금 그런 대사는 조금 그렇다.

 "빨리 저 불뿜는 것 밖에 못하는 것좀 어떻게 해보십시오. 거리를 좁힐 수 없습니다."

 "으응..."

시그마도 합세해서 집중적으로 요격하기 시작했다.


겨우 그런 걸로 무너질 것 같으냐!

화력도 딸리는 네놈들이 무엇을 할 수 있지! 얌전히 주물이나 되버려라!


 "아줌마도 꽤나 분위기 타는구나..."

 "시그마 그건 금기-"

 

 어디서 사람 흉내만 내는 끔찍한 것이 그딴 망언을 내뱉어!

 

마치 폭주하듯이 그대로 거리를 좁히며 무작정 타이탄쪽으로 돌진해왔다.

호라이즌이 지면을 부수며 파편을 던져 저지하려 했지만 

녀석은 다리 하나를 방해 받아도 다리를 접으며 능숙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하중이 좋은 편인가 보다.

 "이런! 시그마 뒤로 숨게!"

 "미안! 할아버지!"

그대로 불을 뿜으며 녹을 때 까지 들러 붙을 심산으로 앞다리로 타이탄을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거인이라는 이름이 어디로 가지 않는 듯 밀려나지 않으며 버텨냈다.

 "좀만 버티십시오. 곧장-"

뒤가 비었다. 속전속결이다. 저쪽에서 강행수를 두었다. 서둘러서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뒤에 구멍이 열렸다. 곧바로 화염이 뚫고 나왔다.

 "배연구는 불을 뿜는 공간이 아닙니다. 휴먼."

물러설 수 없었다. 배연구에서 불길이 올라온 다는 것은 이미 기체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터질 것이다.

 

 데이터는 모였다. 이미 그것으로 충분한 역할을 다한 것이지.

 좋은 재료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가서 다시 구하면 그만이니까

불타서 사라져버려라.

 

 "언제 죽어준다고 했습니까?"

2초 정도는 역장이 버텨줄 것이다. 이 거리라면 0.5초 정도면 된다.

 "인-게이지"

보조 연산 없이 1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엘부르즈까지 전부 꺼내올 시간도 필요도 없었다.

이 빌어먹을 불싸개를 던져버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언니? 잠만 어디로-"

 [시킨적 없는 택배는 반송이 원칙입니다.]

그 통신이 그녀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는 흔적이었다.


 어디에?! 찾았- 시발! 튀어!! 함선을 버린다!!


그 후 맹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함선의 위에서 터진 미지의 폭발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으나 그 뒤로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가 폭발의 정체를 짐작하게 했다.

 "할아버지! 언니가!"

 "이런 너무 멀어!"

함선과 거리도 거리지만 앞에서 맞은 방화는 관절 부위를 뜨겁게 달구며 손상을 입혔다.

 

"걱정 마라!"


변조가 가득한 목소리가 통신과 공중을 매웠다.


 "내가 왔다!"


하늘에서 은색의 네모난 무언가가 불을 뿜으며 빠르게 낙하했다.

얼마나 빠른지 먼저 떨어진 호라이즌을 앞질렀다.

펄럭이는 얇은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낚아챘다.


 "하하! 사장도 거대 소체를 좋아하는군!"

 "아빠!!"


땅에 착륙한 무언가는 팔을 흔들며 마주 인사했다.

 "중추신경 끊어질 것 같으니 적당히 흔드십시오."

 "하하하! 겨우 그정도로 끊어질 것 이었으면 함부로 폭발에 휘말렸으면 안됐지."

 "일처리를 어떻게 하든 그것은 제 맘입니다. 갑질하지 마십시오."

 "무모한 짓 하지 말라고 꼽주는 걸세."

 "자기 딸이나 잘 챙기고 말하십시오. 가장 무모한 짓을 했습니다."

 "나도 여기에 보내고 싶어서 보낸 게 아닐세. 분명 말리라고 알트소대도 보냈건만... 어딜 간건지."

 "알면서 되묻는 겁니까? 뒤처리 하러 갔을겁니다."

호라이즌은 다시 일어났다.

 "도와줄 것 아니면 보급품이나 내놓으십시오."

 "아예 지갑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겠나?"

 "지갑이라면 돈이라도 꺼냈으면 좋겠군요. 제가 보기엔 애매한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거대 머신갑의 머리 위로 구멍이 생겼다. 이너티움 보급제다. 

 "격렬한 전투까지는 무리일 걸세."

 "알아서 뒷수습이나 하십시오. 일반적인 해적들이 아닙니다."

 "걱정 말게. 알아본 바로는 수배자들이니까."

 



 "젠장... 뭐 저딴 것들이..."

단순히 복수이자 유물을 노렸던 약탈이 전면전이 되었다가 패배했다.


 "어머? 어딜 가시는 걸까요?"

 "... 언더컨트롤이 보였을 때 긴가민가 했지만 정말로 너희들이 있었군."

 "아하. 전 의뢰주 분들이었나요? 그런데 저는 그런 민망한 복장을 하고 거래를 한 상대는 없어서요."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은 들어봤었지. 직접적인 대면은 처음이군."

 "흐음..."

서로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보내주겠다면 보상은 치뤄주지."

 "싫다면요?"

 "물어볼 필요가 있나? 덤빌거라면 전부 와라. 떨거지들은 어따 놓은거지?"

 "굳이 알려줄 이유는 없겠네요."

염동력으로 소총을 들어올렸다. 곧바로 조준했다.

 "그럼 나도 굳이 더 대화할 필요는 없겠군."

벽이 불그스름하게 점멸한다. 그것들이 복도에 쫙 깔려있다. 작고 작은 기계들이 외부자를 인식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서 불이 뿜었다. 화약냄새와 총탄, 열기가 천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벌레를 기르는 취미는 없어서요. 어짜피 제 집도 아닌데 초가삼간 다 태워도 되겠죠?"

 "미친년."

아직 휘말리지 않은 드론들이 서윤을 노려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드론 하나하나에 열기가 스며들었다.

 "와아- 불나방은 처음보네요."

염동력으로 소총을 잡는 것은 포기했다. 대충 더 쓸만한 물건들이 있었다.

한 곳으로 응집시킨다. 퍼져서 오면 어렵겠지만 뭉쳤다면 미세하더라도 어느정도 붙잡아둘 수 있다.

드론을 뭉친 더미를 그대로 강하게 누르며 주인에게 다시 던져줬다.

아쉽게도 가는 길에 터져버렸다. 서로 카운터이기에 피해도 없었다.

 "아쉽게 됐어. 미안하지만 기폭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이쪽이거든."

 "네 안타깝네요. 가능하면 사지 멀쩡하게 데려가서 자랑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갔다. 입자가 재조립되며 안면을 가리웠다. 불길한 검은 창이 나타났다.

 "차라리 지금 항복하시면 멀쩡하게 감방에 넣어드릴 수 있는데~"

 "지랄도 풍년이군. 요즘 유행인가? 뭔지 몰라도 이런 곳에서 쏘면 휘말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텐데?"

 "어머. 걱정마세요.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리스크거든요."

창을 쥐었다. 그리고 뒤로 당기며 쏘아냈다.

보라빛 섬광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물론 피할 수 없었다. 겨우 간신히 몸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낸 것이 전부였다.


 "... 아무리 그래도 어디 하나 망가질 줄 알았는데."

 "물론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안되겠네."

기계수집가의 뒷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들어냈다.

지팡이를 짚으며 검은색 코트를 걸친 보라색 머리의 여인이 여유를 들어내며 걸어온다.

정작 기계수집가도 이건 예상치 못한 것인지 뒤를 돌아보고선 얼굴을 구겼다.

 "... 네가 왜 여깄는거지?"

 "어쩔 수 있나? 의장이 직접 갔다와달라고 사정까지 했으니 모습이라도 비춰야겠지."

 "의장이?"

 "그러니 꼬마야. 좋은 말로 할 때 물러나렴."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아직 2배만큼 더 많아서 말이죠."
 "그래? 꽤나 밤눈이 어두운가 보구나."

그 말과 동시에 멈춰섰다. 그 후 천천히 어둠 속에서 무언가들이 나타났다. 가면을 쓰고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들의 주인으로 여기는 자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나타났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도 더 많다고 여겨지니?"

대략 보이는 것만으로 8명이다. 아마 뒤에 더 있을 것이다.

 "... 글쎄요. 수로만 따지기에는 거기에는 다 늙은 사람들이라서 말이죠."

 "제대로 망울을 맺지도 못한 너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글쎄 대본 후에는 다시 재단할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서윤은 다시 창을 강하게 쥐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서 놓아줄 이유는 없지만, 잡고 있을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비켜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맞는 말입니다. 아마 다음에 다시 볼 이유도 없을 겁니다."

천장을 뚫으며 호라이즌이 나타났다. 

 "충고 하나 하자면 저라면 이 함선에서 탈출하겠습니다. 한 3분 후면 알아서 터질겁니다."

 "걱정마렴. 이미 동력부에는-"

 "그 마리오네트 같은 유기체 말입니까? 이미 해결해놨습니다."

 "가끔 까먹는 인간들이 있던 것 같더군요. 고통을 못 느낀다고 못 죽일만한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

맨션 마스터는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트 소대. 함선의 폭발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터미네이터가 아니라서 말이죠."

 "그럼 소대원부터 퇴각시키십시오."

 "죽어도 저보고 가라고 하지는 않네요."

 "갈 생각이었으면 아까 내뺐을테니까요. 틀렸습니까?"

 "사람 생각을 읽는 건 무례하다고 기본 지식에 없나요?"

 "아쉽게도."

 "물론 대원들을 믿는다면 가만히 계셔도 됩니다."

 "... 들었지! 도망가자!"

 "붙잡아줘서 고맙습니다."

알트 소대는 빠르게 후퇴했다. 함선이 터지는 것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 과연 이래서 의장이 보낸 거였나?"

 "당신네 사정은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선택지는 두개 입니다. 항복하던지. 안타깝게 사고사 당할 것인지 선택하십시오."

 "미안하지만 어느 것도 선택하기 싫어서 말이지. 우리는 여기서 내뺀다는 선택을 하겠어."

 "과연. 늙으면 귀가 간다는 뜻을 이해했습니다. 하여 조금 거친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옆에 있던 철판을 쥐어 뜯었다. 철판을 든 팔을 들어올린 채로 멈추었다.

 "... 네가 멈춘거야?"

 "아니. 벌레들이 가까이 가지도 못 했어."

 "흐음..."

그러나 어느 하나 함부로 움직이지 못 했다. 불리한 것은 자신들인 것은 틀림 없었다.

 "... 가십시오."

갑자기 철판을 내던지더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는 안면을 들이밀지 마십시오. 다음에는 그 안면을 뜯어 고쳐버릴 겁니다."

 "무슨 바람일까?"

 "단순합니다. 사법 거래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죽이진 않았으니 동력부에 있는 잔해는 가져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외벽을 부수고 탈출했다.


 "... 흐음. 역시 의장도 놀아난 건가? 얼른 정리하고 떠나야겠네."

 "무슨 상황인지 1도 모르겠군."

그러나 이들이 지금 말고는 도망칠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을 놓아주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철판을 들어 올렸을 때 통신이 들어왔다. 어떻게 라인을 판 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연결되었다.

 '제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여야 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이 놓아줄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래할 이유는 될 수 있겠지요.'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신호를 뒤따라 잡아가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상당히 꼬고 꼬아서 라인을 연결했다.

 '윌버 웨이틀리의 위치.'

급격하게 소체가 저에가 되지 않았다.

 '그 이름을 알고 있다면 당신에게 호의적인 의사를 표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겠군요.'

 '우연찮게 입수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거래를 하지 않을 겁니까?'

흔히 인간들이 말하는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다. 못 찾아낼 것도 아니며 이들을 놓아주기에는 부족한 패다. 하지만 놓고 싶은 패는 아니다.

 "... 가십시오."

 '거래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위치를 보내드릴까요?'

 '단순히 현 위치만 공개하는 것은 부당한 거래입니다. 이후 지속적인 협조까지 거래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제가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가능한 한 협조할 것을 약조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거래 이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별로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부르실 이름이 필요하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벽을 부쉈다. 뭔가 뒷맛이 찝찝하다는 말이 이런 걸지도 모른다.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4년 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끝을 맺으러 가야한다.

 

 "... 요정."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메모리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다시 탐색하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다. 오늘은 빠르게 귀가를 해야했다.




 "부사장. 허리는 괜찮나?"

 "일하러 가라는 거라면 거부하겠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휴가를 사용하고 싶군요."

 "참 안된 일이지만 그건 힘들겠군. 나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거든."

 "네?"

 "잘 일어날 수 있겠군.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을 것 같네. 환영회를 부탁하지."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거죠?"

 "관리국에 다녀와야겠군. 검증이 필요해서 말이네."

 "..."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몸이니까."

 "그거와 별개로 말할만 한 것도 이야기 하지 않고 계시죠."

 "아직 때가 아닐 뿐이네. 조금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미 판이 뒤집어진 거 아닙니까."

 "맞지. 그래서 더더욱 때를 판가름하기 어렵군."

 "적어도 이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란 것은 압니다. 나유빈도, 당신도, 스승님까지도."

 "지금으로서는 그렇겠지. 뭘 원하나?"

 "이제는 제가 귀찮나보군요."

 "아니 어려운 것이지. 다친 사람을 붙잡고 열을 올릴 수 없지 않나?"

 "말은 잘하시는군요."

 "원래 말이라도 못하면 이 일도 못 하네."


 "무슨 뒷작업을 하고 있는거죠?"

 "음... 어느 것을 묻는지 모르겠군. 어느 것부터 대답해주면 되겠나?"

 "김철수라는 작자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기에 안 보이는가에 대해서 부터군요."

 "그로니아에 있네. 자기 입으로 전쟁에 익숙하다 했으니 거기라도 가 있는게 정서적으로 안정되겠지."

 "죄송하지만 어떤 치료 방식인지 퍽이나 잘 알겠습니다. 아예 스스로 죽기를 바란다고 하시죠?"

 "가장 강하게 뇌리에 남은 기억이네. 잊을 수 없는 기억이자 그를 구성하는 중추이기도 하겠지."

 "그런 기억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 그로니아였을 뿐이고. 가능하면 그가 이세계에 애착을 가졌으면 하는 것 뿐이지 별 다른 중요한 꿍꿍이는 없네. 운이 좋아 엘리시움을 찾아도 대처하기도 애매하고. 정보를 가져와도 좋지만 우선적인 목적은 그가 애착을 띄는 것이네."

 "... 마지막으로 끊긴 곳이 거기였던가요."

 "벌써 20년도 지난 일이니까."

 "왜 애착을 주려는 것이죠?"

 "그는 나와 다르게 도망칠 수 있으니까. 스스로 발을 묶게 해야겠지."

 "방주를 만드는 법을 안다는 건가요?"

 "나유빈군에게도 들었네. 방주 다섯 척이 차원이동하는 것을 보았다고. 아마 지식은 있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그들에게 방주는 필요없네. 도망칠 곳에 낙원이 없을 존재니까. 침식체가 현실에 부상한다고 해서 그들의 고향이 복구되는 것이 아니듯이."

 

 "후우... 나유빈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죠?"

 "언제든 댐을 무너뜨릴 준비. 필요하다면 클리포트 게임을 시작할 준비까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패를 가지고 위협할 준비를 하는 것이네. 게임을 시작하기 위한 패는 제한적이니까."

 "과연 그들 앞에서 그 카드들을 찢어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침식률을 올려서 쳐들어올..."

 "그렇지. 그런데 우리는 침식률을 올리지 않고 대응할 카드가 있지."

 "..."

 "선수필승이 아니네. 선공을 취할 수 밖에 없는 패가 들어왔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두르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이정도면 대답이 되었을지 모르겠군.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다녀와도 되겠나?"

 "꼭 안 돌아올 것 같은 말을 하시는 군요."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나도 어쩔 수 없어서 말이지."




 "후우... 공교롭게도 환영식을 회사에서 할 수 밖에 없는 점들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이수연은 허리를 짓누르며 곧게 폈다. 

 "올해부터 같이 일하게 된 인원들입니다. 다들 문제일으키지 말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 "

인사과를 제외한 직원들 모두가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바라보면 부담스럽군."

 "젠장... 여기는 무슨 괴물같은 회사야?"

얼굴에 흉터가 있는 유명한 여노인. 아무도 모르는 싼티나는 금발머리 양아치. 

양아치도 노인을 알고 있는지 조용하게 눈치만 살핀다.

 "올해부터 청소부로 일하게 되었네. 다들 잘 부탁하지."

 "올해부터 회사 용역으로 고용되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상하다. 분명 양아치와 노인의 대사가 바뀌어야 했다.

 "부사장님. 오늘 만우절입니까?"

 "아니요. 주시윤군. 공교롭게도 2월 1일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2월 1일이 만우절이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나요?"

 "공교롭게도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즉 장난이 아닌 현실인 것이군요...?"

본래라면 득달같이 음식에 달려들었을 사람들... 정정한다 이미 두 사람은 달려들었다.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두 사람이다. 누가보면 들짐승인줄 알 것이다.

 "... 소대장. 그 좀만 있다가..."

 "유진아... 좀만 있다가..."

어째서 뒷수습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더 신경쓰면 요통이 심해질 것 같아서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사고치지 마십시오. 그럼."

회의실 한켠에 있는 소파에 몸을 눕혔다. 조금 통증이 가시는 것 같다.


 "잘 부탁하지. 마리아 안토노프라고 하네."

 "로이 버넷.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할 일은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박수를 쳤다. 물론 두 들짐승에게는 그것이 시작신호였던 것 같다.

 "다들 환영합니다!"

시그마는 홀로그램으로 축포를 터트렸다. 실제는 연기랑 쓰레기가 날린다고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환영하는 기색이지만, 어딘가 쓸쓸한 얼굴도 있었다.

 '아빠는... 안 오는 건가.'

 "다들 어서오게! 나의 광열한 아틀라스 포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군!"

작은 머신갑에서 타이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현재 정비중이다. 물론 아나스타샤 언니는 여기서 환영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사장님의 강제 참석이라는 명령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다들 비협조적인 것은 아니였다. 웃으면서 맞이해주었다.

 "시그마."

 "응 할아버지?"

 "괜찮네. 그러니까 지금을 즐기게."

 "지금을 즐기지 않으면 흘러가게 되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지금을 즐기는 것이 사장이 원하는 것이네."

 "아빠가?"

 "당연한 일 아닌가? 자네를 믿지 않았으면 이런 파티를 맞기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흐음..."

 "과학의 3원칙 중 마지막을 알고 있나?"

 "... 음. 고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네. 우리는 발전한 과학기술이지. 그러니 마법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네."

 "으음?"

 "때문에 자네를 미워할 일도 사랑하지 않을 일도 없을 걸세. 그야-"

 "아! 마법같은 일이니까?"

 "하하! 하나를 가르쳐주면 셋을 깨닫는 군!"

 "엣헴."

 "그러니 지금을 즐길 이유는 하나네. 지금이 가장 우리에게 마법 같으니까."

 "헤어진 것 같은 만남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만남도. 다시 이루어진 현실이니까."

 "무엇보다 사랑스럽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아빠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돌아올 것이다. 모두가 그렇듯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을 즐겨서

 "아빠한테 자랑해야지!"

 "나도 사장에게 자랑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놔야겠군!"

만월을 밤하늘이었다.


 "... 아! 요정님도 잘 지내!"

달에 있을 요정님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그 행위를 이해하는 사람은 지구상에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도 아름답군요. 안 그렇나요. 요정님?"

 "... 네. 별들도 아름답네요."

회색빛의 돌더미들을 넘으며 소녀는 걸어가고 있다. 중간 중간 몸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다시 착지한다.

검은 하늘 위로 붉은 별과 푸른 행성, 거대하고도 작은 항성들이 보인다. 푸른 행성은 많은 부분이 망가졌다 할지라도 장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였다.

 "감상을 망쳐서 미안한데... 왜 부른거야? 여기가 안전하니까 데려다 준거잖아?"

 "확실히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요정님도 그러십니다."

 "그럼 뭔데?"

 "전언입니다. 늙은이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여자와 남자 그 외에는 이 회색 지대에 아무도 없었다.

 "뱀 사냥을 시작한다고 준비를 권합니다."

 "..."

말 없이 남자가 미간을 찌뿌렸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기 싫다면 순순히 협조하라고, 비웃는 톤과 표정으로 전달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아, 이 또라이 쌔끼. 그냥 돈이나 처 벌고 있지 왜..."

 "그리고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애매한 위협 요소는 최대치를 측정하고 고민하는 것이 낫습니다."

 "무조건 사고 터질 것 같은데..."

 "걱정 말라고 전하라 했습니다. 자기는 다 차려진 밥상에 어레인지를 할 뿐이라고 말하라 했습니다."

 "걔가 만든 밥을 먹고 싶니?"

 "확실히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작전을 안전성을 부정하겠습니다."


 "에휴... 너랑 이야기 해봤자 뭐하냐. 택배도 너희 짓이냐?"

 "위로는 되었습니까?"

 "아니 경찰을 부를 뻔 했다. 그냥 평범하게 돌려주면 안되는 거냐?"

 "네트워크에서 빅 데이터로 조정한 결과 가장 이상적인 선물을 드렸습니다."

 "인간이 좆간이었다는 결론이 너무 슬픈데."

 

 "할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나중에 간식거리를 가져오라고 요정님이 명령하시라 합니다."

 "진짜 돌아버릴 것 같네. 내가 지갑이냐?"

 "아뇨. 시키면 어떻게든 해오는 만능도구라고 하십니다."

 "아주 쌍으로 지랄이에요."

 "애한테 그런 말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핫라인 내놔. 그냥 그녀석에게 직접 말할래."

 "절대로 주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짜증나! 알아서 해! 알아서 잔해물도 조심하라고!"

 "걱정마십시오. 그걸 맞아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크레이터의 일부분이 될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남자는 몸을 숨겼다. 아마 다시 일터로 돌아간 것이라.

 "... 요정님. 후회하십니까?"

 "아니라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선을 넘은 게 말을 안 들은 동생이어서 그렇다고요? 참으로 다른 동생분도 뵙고 싶습니다. 어떤 요정분이실까요?"



 

 "어서 와. 다행히 무사히 도착한 것 같네."

 "생각대로 놀아난 것 같네. 의장."

 "놀아난 척이라도 해야지 더는 토를 안달 것 같았거든."

 "...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것이 호의는 아닌 것 같군."

 "아니 호의지. 때 마침 일이 맞물렸을 뿐이야."

의장이라 불린 소년은 탁자를 두드리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만월인 날이다.

 "제대로 맺지 못하니 화만 쌓이는 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1년 전에 고심도에서 부상하는 것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하나는 떨궈낸 것 같았지만 문제는 나머지 셋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이다.

 "온건한 협박편지란 것도 받아보고 재밌는 날이군."


 뒤지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어라. 동생아. 네가 떨구려 한 것이 나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분해하고 싶어지니까.

꽤나 재밌는 누나가 생긴 것 같았다. 인과를 되짚어보려 했지만 계산되지 않았다. 이미 그 너머로 떨어져 나갔다는 뜻이라.

 "한 동안 잠잠히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어떤가?"

 "차라리 죽으라고 말하지 그래?"

 "저 녀석처럼 말할 이유는 없지만 부정할 이유도 없네. 의장."

 "그건 아쉽군. 평안한 하루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네만..."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전을 확인했으니 다시 일과에 집중해야할 것이다.

 "아... 조심히 다니게. 아무래도 칼날 하나가 눈 앞에 겨눠진 것이니까. 아무래도 2개 정도는 더 겨눠질 것 같군. 애꿎은 사람만 피해를 보게 생겼군."

빼먹을 뻔한 조언이었다. 뭐 알고 있다고 피할 순 없는 칼날일 것이다.

  



 "... 역시 한번 뜯어진 것이 맞겠군."

시그마의 데이터를 검토 중이다. 아무리 봐도 한번 고친 흔적이 있다. 자가 수복이 아니다.

건든 것은 메모리 쪽인 것 같았다. 완전히 똑같은 것을 다시 가져다 놓았다.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수정 기록과 기동 정지 시각과 일치한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건 상당한 기술자 혹은 제작자 그리고...

 "... 기계와 인간이라고 말하면 평범한 사이보그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였나보군."

초기형의 테라브레인.

 "알뜰살뜰하게 다 챙겨놓고 있군. 나중에 매미장터라도 열어보라고 권해야겠군."

이쪽의 우위일지 모르는 정보도 거의 비슷해질 것이다. 이제 남은 우위는 관리국이라는 단체 말고는 없다.

 "상당하게 패를 갉아먹는군."

정말로 같이 패를 버리며 게임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상당하게 페이스를 올리고 있다.

미친 짓이다. 갑자기 마왕이 나타나서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것임에도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큰 자만심인지, 혹은 능력이 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 이쪽은 신입맞이에 끼지 못하겠군."

움직임을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힌트를 주었다. 도발인 것이다. 

예측해볼테면 해보라는 도전이다. 그럼 받아줘야 한다. 벌칙이 너무 크다.

 "겨울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군. 최종적인 목표는 라그나로크의 재현인가?"

그렇다면 움직일 것이다. 늑대의 자식이 해를 삼키기 위해서...

어디로 갈지 예상이 되었다. 이번에 얼굴을 마주하진 않더라도 아바타는 보내야할 것이다.




 "자 그럼. 겨울의 도화선은 불이 붙었고, 뱀만 잡으면 되는 데..."

둘이 있다. 어디로 하지? 

 "으음... 반으로 갈라져버린 건 애매하겠지. 관상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그렇고... 인간에 기생중이니까. 잘못하면 나만 얻어맞고 게임 끝나겠군."

박수를 쳤다. 정했다. 역시 원래대로 가는 것이 낫다. 그것이 더 많은 이득이다.

다만 이후에 기생해버린 뱀도 처리해야 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함을 가슴 깊히 새겼다.

 "자, 그럼 이동해볼까..."

남자는 뚫어지게 한 소녀를 바라보다가 일어났다.

그리고 또한 사라졌다.

  

 "오르카? 왜 그래? 갑자기 일어서고?"

고기를 굽던 찰리는 오르카를 돌아봤다.

 "저기에... 뭔가가..."

뭔가가 있었다. 막판에 지독한 살기를 느꼈었다.

 "아직 CSE레벨은 1인데...?"

제시카는 혹시 몰라서 재확인했다.

 "아냐... 그냥 침식체가 아니였어..."

싸웠으면 이겼을까? 그리고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내면의 오르카도 부정했다. 이길 수 없다. 싸웠다면 필패였다.

 "... 자리를 옮길까?"

조심스래 제시카가 묻자 찰리는 천천히 화로를 들고 옮길 준비를 했다.

 "아니... 도망갔어...? 지금은 없어..."

어째서 사라지기 전에 살기를 내비친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마주할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렇게 행복하리라 예상했던 캠프는 약간의 불길함을 지니고 시작되었다.




다음은 아마 해궤적입니다.

일상맨이 나타난다.


시그마 외전인데 쓰다보니 퓨처앳워 외전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든다.

본편은 시그마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니까 나는 주위묘사로 시그마를 묘사하고 싶었는데 시그마의 위치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주도적으로 딸에게 다가가는 관남충이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세르게이는 왠지 모르게 교양으로 서사시 같은거 읽지 않았을까.

추가적으로 로봇 3원칙과 과학 3원칙을 아서 클라크가 쓴 건 처음 알았다.


마지막으로 나도 시그마 같은 딸 줘. 그런 딸 없으니까 묘사가 힘들어.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마운데 하나만 더 부탁하자면 추천이나 콘을 달아주면 더 고맙습니다. 누가 글을 읽고 감상을 남다는 게 큰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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