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인터루드#4


1년 뒤. 노르드나빅 남부. 셔우드 외성.

왕립 국경수비대 텃밭.


큐리안 : 상태는 어떻지?

피터 : 평소보다 크네요. 이번에 만든 습도 조절기가 잘 듣나 봐요.

큐리안 : 수확 주기도 점점 빨라지겠군. 창고를 한 번 더 증축해야겠어. 

피터 : 헤헤, 하지만 실컷 따 둬도 싹이 자라면 못 먹는 게 감자 아니겠어요?

수비대원A : 이런 좋은 날씨에 온종일 감자나 캐고 있어야 하다니...

수비대원B : 그러게. 오늘 같은 날은 낚시하기 딱 좋은데 말이지.

와트 : 이봐, 불만쟁이들. 소쿠리가 제일 가벼운 녀석은 오늘 나랑 같이 야간 정비다.

수비대원A : 잘못 걸렸다간 흙이 아니라 기름칠을 실컷 하겠군.


수비대원B : 어이, 잠깐! 그 큰 감자는 내가 캔 거라고!

촌장 오닐 : 수확 때마다 병사들과 함께 와 줘서 고맙습니다, 대장님.

촌장 오닐 : 그런 의미로, 이번 수확의 절반은 가져가시죠.

엘라 : 그렇게 많이 줘도 괜찮겠습니까?

촌장 오닐 : 지휘관이 만들어 준 장치 덕분에 수확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촌장 오닐 : 이제 식량을 아끼려다 누가 굶을 걱정도 많이 덜었죠. 

촌장 오닐 : 지휘관님에게는 고맙다고 이 늙은이 대신 전해 주세요. 

엘라 : 알겠습니다. 간만에 시장에서 베이컨이라도 사 와야겠네요.

수비대원A : 살다 살다 여기서 카레를 먹어 보네.

수비대원B : 찐감자도 괜찮지만 역시 엘라 대장님 요리가 제일이라니까.

엘라 : 천천히 먹어. 많이 만들어 뒀으니까.

엘라 : 그런데 큐리안과 피터가 보이지 않는군.

와트 : 지금쯤 헛간에 있을 겁니다. 이번 수확철에 감자 에일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엘라 : 에일이라고?

피터 : 헤헤, 벌써부터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게 느낌이 좋은데요.


큐리안 : 단조로운 식사에 술을 더해 변화를 준다. 확실히 좋은 아이디어야.

큐리안 : 이걸로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

피터 :그야 당연하죠. 그 깐깐한 와트 씨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요.

엘라 : 감자를 쪄서 발효시키는 건가?

피터 : 우왓! 어, 언제 오셨어요? 엘라 대장?

엘라 : 창고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엘라 : 자,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


피터 : 아하하...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엄연히 식량의 효율적인 소비로서...

엘라 : 난 지휘관에게 묻는 거야, 피터.

피터 : 으윽..


큐리안 : 남은 감자로 에일을 만드는 중이다. 이제 일주일만 발효시키면 완성이라는군.

큐리안 : 병사들에게 삶은 감자를 대신해 특식으로 줄 계획이었어.

엘라 : 다음에도 이번처럼 작황이 좋을지는 장담 못 해.

엘라 : 기근이 들 수도 있고, 침식파에 노출돼서 텃밭 전체가 오염될 수도 있어.

큐리안 : 식량을 비축하려는 대장의 신중한 태도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큐리안 : 하지만 혹시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평생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는 말, 들어 봤나?

엘라 : 피터가 입에 달고 사는 말버릇이네.

피터 : 하하...

큐리안 : 대장 말대로 당장 내일 침식파에 시달리며 죽어가게 될지도 모르지.

큐리안 : 하지만 그저 살아 있기만 할 뿐인 삶은 아무 의미도 없어.

큐리안 : 그리고 그건 이 창고에 쌓여 있는 감자들도 마찬가지다.

큐리안 : 그들에게도 달콤한 술이 되어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기회가..

큐리안 : 커헉!


피터 : 지, 지휘관님!

엘라 : 네가 하는 설명이 세 마디를 넘기면 그건 계획이 아니라 구차한 변명이란 뜻이야.

엘라 : 두 사람은 올해 동안 정기 순찰 고정 멤버다. 함부로 식량을 남용한 죄야.

피터 : 휴우...

엘라 : 그리고.

피터 : 힉!

엘라 : 감자는 통째로 넣지 말고 썰어서 삶아. 삶은 뒤엔 으깨서 넣어야 발효가 돼.

엘라 : 홉은 넣었어?

피터 : 아뇨! 필요한 게 많다 보니 현실과 타협해서 홉은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엘라 : 그랬겠지. 시내로 가서 구해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큐리안 : 끄응... 주먹이 더 매워졌군..

피터 : 앗! 지휘관님, 괜찮아요?

큐리안 : 아니, 대장이 다녀올 동안 좀 쉬어야겠어...

피터 : 헥....... 헤엑.......... 대장님! 팔이, 팔이 빠질 것 같습니다!

엘라 : 쉬지 말고 계속 저어.

엘라 : 엉터리로 만들어서 귀한 감자를 전부 버리게 되면, 그 때는 단순 징계로 안 끝날 거야.

큐리안 : 다 함께 땀 흘려 일군 노동의 대가를 그냥 버릴 순 없지. 조금만 더 노력해라, 피터.

엘라 : 당신은 건더기나 제대로 걸러내도록 해, 지휘관.

큐리안 : 그래야지. 하지만 곧 식사 시간이...

엘라 : 당신들이 저지른 일을 마무리 짓기 전까지 저녁밥은 없어.


놀고들 있네.

큐리안 : 음?

??? : 군인이란 것들이 몰래 술이나 빚어? 당신들 대장이 대체 누구야?

엘라 : 대장은 접니다만.

??? : 하, 수비대장이란 자가 병사들을 이런 사적인 일에 부려먹는단 말이지?

??? : 역시 근본이라곤 없는 시골뜨기들다워. 왕립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정도로군.

큐리안 :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지?

피터 : 어라? 저 군복은...?


??? : 흥, 이 견장도 몰라 보는 병사가 있다니, 위부터 아래까지 참 덜떨어진 부대네.

비비안 : 나는 국가 재건단의 수석 기술장교, 비비안 래시포드.

비비안 : 사라진 열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도에서 파견된 몸이다.

엘라 : 초면에 실례했군요. 수도에서 소식을 받지 못해 대응이 소홀했습니다.

비비안 : 차라리 잘 됐어. 그 첫인상이 당신들 민낯이라는 뜻이니까.

비비안 : 서로 가식 떨 필요 없어서 다행이지 않아?

엘라 : 면목 없습니다.


비비안 : 그런데 저 병사는 왜 아직도 남아 있는 거야? 중요한 얘기라고 했을 텐데?

엘라 : 저 사람은 저희 남부 국경수비대의 지휘참모입니다.

비비안 : 하, 들을수록 어이가 없네. 부대를 도대체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 거람.

큐리안 : 부대 운영 현황을 알고 싶으시다면 제가 대신...

비비안 : 됐어. 어차피 국경수비대란 곳들이야 하나 같이 주먹구구식이지.

비비안 : 왕립군이라고 거들먹거려도, 실상은 사지 멀쩡한 아무나 모아다 만든 오합지졸이니까.

비비안 : 네놈들이 군인이라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군의 품위가 떨어져.

비비안 : 그나마 여긴 카운터가 대장이라고 해서 조금 기대했는데..

비비안 : 외성 출신 아니랄까 봐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

엘라 : 실종된 성유물을 조사하러 왔다고 하셨죠.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비비안 : 필요 없어. 조사는 당신들 도움 없이도 충분하니까.

비비안 : 나에겐 이미 훌륭한 조수 분이 계시거든. 


한나 : 네? 저, 저요?

한나 : 아...! 반갑습니다, 수비대 여러분!

한나 : 제프티 바이오테크의 연구원 한나 앤더스 입니다. 편하게 한나라고 불러 주세요.

큐리안 : 커다란 갑옷을 입고 계셔서 남성이신 줄 알았는데, 가녀린 목소리의 여성분이셨군요. 

한나 : 아, 네. 저희 같은 학자는 침식지대를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라서요.

한나 : 안전을 위해 강화복을 입고 다녀요. 블랙타이드 것이랑 다르게 일상에서도 쾌적하거든요.

비비안 : 국가 재건단은 해외 기업의 연구 환경을 제공해 주는 대신 기술 지원을 받고 있어.

비비안 : 다시 말해, 너희들의 도움 따위가 필요해서 온 게 아니야.

비비안 : 괜히 실적 챙기려다 발목 잡지 말고, 근처에 얼씬거리는 침식체나 잘 처리해.

비비안 : 늘 하던 일이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엘라 : 물론입니다. 걱정마시길.


비비안 : 그리고 우리가 언제라도 외성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 일러 둬.

엘라 : 조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실 예정이죠?

비비안 : 지금 당장.

비비안 : 가시죠, 한나 씨.

한나 : 네? 네에...!


큐리안 : 미안하군. 내 실수로 대장이 오해 받게 됐어.

엘라 : 부하를 시켜서 술을 만들고 있던 정황은 사실이야. 오해라고 할 것도 없어.

큐리안 : 으음. 재건단에서 오는 사람들은 전부 태도가 저런 식인가?

엘라 : 국경수비대에 대한 평균 인식을 묻는 거라면, 맞아.

엘라 : 출신 무관하게 아무나 모아 만드 것도. 

정규균에 비해 질서도 제대로 안 잡힌 오합지졸인 것도.

엘라 : 그래서 재건단 윗분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전부 사실이야.


엘라 : 하지만 저 장교는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어.

엘라 : 남부 외성 밖은 길잡이가 없으면 길 잃기 십상이란 걸 말이지..


2-2 열쇠 찾기


한나 : 후우.... 후...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네요.

한나 : 침식파 밀도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어요. 이게 노르드나빅의 겨울이군요.

비비안 :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기상 변화로 눈이 내리는 일이 사라졌으니까요. 

비비안 : 옛 아발론의 낙원문이 침식의 겨울을 삼킨 뒤로부터 말이죠.

한나 : 와아, 침식 현상의 전조를 눈이 내리는 걸로 확인할 수 있다니. 정말 흥미롭네요. 

한나 : 아... 아앗! 흥미롭다고 해서 죄송해요! 여러분에겐 정말 비극적인 일이었을 텐데... 

비비안 : 아뇨. 한나 씨의 기업이 저희와 협력하는 것도 이런 특이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니까요. 

한나 : 후후, 사실 이런 현상도 현상이지만, 전 성유물이 어떤 물건일지가 제일 궁금해요.

한나 : 제가 여기 자원한 것도 20년 전에 침식을 막아 주는 아티팩트가 있었단 얘기 때문이었어요.

한나 : 게다가 보안 때문에 직계 왕족들도 대부분 그 정체를 몰랐다잖아요?

한나 : 저희 같은 과학도 입장에서는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거든요.


비비안 : 조만간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탐지기의 신호도 이제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한나 : 좋아요. 드디어 지난 3개월 동안의 노력을 보상 받을 수 있겠네요.

한나 : 아, 잠시만요. 제가 먼저 올라갈게요.

한나 : .. 웃차아!

한나 : 여기요. 제 손을 잡고 올라오세요.

비비안 :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한나 : 후아, 지각변동이 계속 일어났던 지역답네요. 가는 데마다 멀쩡한 길이 없어요.

한나 : 강화복이 아니었으면 벌써 지쳐서 쓰러졌을 거예요.

한나 : 아! 래시포드 씨가 발명한 성유물 탐지기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만요! 

비비안 : 과분한 칭찬입니다. 침식파 분석기의 원리를 응용해서 약간의 개조만 했을 뿐이에요. 

한나 : 그렇지만 그 침식파 분석기를 만든 것도 래시포드 씨 부친의 업적이라면서요?

한나 : 같은 집안 사람과 협업한 셈이니 공동 발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비비안 : 흠흠. 그렇게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로군요.

한나 : 흐뭇한 표정으로 헛기침하는 래시포드 씨는 언제 봐도 귀엽네요.

비비안 : 그런 식으로 놀리는 건 그만둬 주시겠습니까?

한나 : 후후, 미안해요.

한나 : 하지만 지금까지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은 한 마디 안 보탠 진심이에요!

비비안 : ...


한나 : 왜 그러세요? 갑자기 멈추시고?

비비안 : 신호가 점점 불안정해지는군요.

비비안 : 침식파가 너무 강해서 성유물의 시그니처 패턴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나 : 어라?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비비안 : 탐지기에 침식체 신호가 잡혔습니다. 일직선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군요.

한나 : 물러서세요! 래시포드 씨! 

비비안 : 네?


..!

한나 : 괜찮으세요?

비비안 : ...네, 위험했군요.

비비안 : 작은 침식체였다곤 하지만, 그걸 단 일격에... 놀랍습니다.

한나 : 저희 회사에서 만든 대 침식전 특수탄이에요. 엄청 비싸지만 효과는 확실하니까요! 

한나 : 그래서 출장이 끝나고 돌아갈 때 몇 발이나 썼는지 잘 기록해 둬야......

한나 : 어라?

한나 : 이 신호들, 설마 전부 침식체인 걸까요?

비비안 : 기계가 오류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그럴 겁니다.

한나 : 으으, 이를 어쩌죠? 침식체를 이렇게 많이 상대할 일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비비안 : ...

비비안 : 한나 씨, 저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한나 : 그야 물론이죠! 꽉 붙잡으세요!

한나 : 더 올라갈까요?

비비안 : 아뇨. 얇은 가지는 부러질 수 있어요. 이 정도 높이면 충분합니다.


침식체 : 크릉...?

한나 : 전부 이쪽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지나가네요.

한나 : 래시포드 씨는 정말 대단해요. 대체 어떻게 한 거죠?

비비안 : 이 펜던트 덕분입니다.

비비안 : 이걸로 간섭파장을 발생시켜 침식파를 교란한 거죠.

비비안 : 이면세계의 해적들도 추격을 피할 때 종종 쓰는 방법이에요.

비비안 : 함선에 비하면 한참 약한 출력이지만, 저희 두 사람을 숨기는 덴 문제없을 겁니다.

한나 : 과연 그렇네요! 침식체들 중엔 눈과 귀를 제대로 활용하는 개체가 드무니까요!

한나 : ...

한나 : 분하네요. 힘만 있었다면, 이렇게 꼴사납게 숨을 필요도 없을 텐데.


한나: 어라? 방금 나무가 조금 기운 것 같은..?

비비안 : 이런.....! 쓰러집니다! 조심하세요!

한나 : 아야야, 래시포드 씨? 괜찮으세요?

비비안 : 한나 씨께서 받아 주셔서 무사합니다만.. 떨어지면서 탐지기가 망가진 것 같군요.

한나 : 죄, 죄송해요. 나무가 제 슈트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나 봐요.

비비안 :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죠. 우선 여기를 벗어나야....

침식체 : 크르르..!

한나 : 으아... 이미 둘러 싸여버렸네요.

비비안 : 칫...!

한나 : 옵니다! 제 뒤로 숨으세요!

비비안 : 이건...? 빛?


엘라 : 괜찮으십니까?

한나 : 어라? 당신은 아까 외성에서......?

비비안 : 수비대장?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엘라 : 설명은 나중에. 우선 침식체들부터 처리하겠습니다.


한나 : 굉장하네요. 저 작은 무기에 침식체들이 맥도 못 추고 있어요.

비비안 : 한나 씨, 뒤에!

한나 : 꺄앗!

엘라 : 이걸로 급한 불은 껐군요. 괜찮으십니까?

한나 : 하아, 감사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뒤에서 오는 줄도 몰랐어요.

한나 : 뭐죠? 지진인가?

엘라 : 침식체입니다! 거기서 피하세요!

한나 : 꺄아아아! 뭐가 저렇게 커요? 이러다가 깔리겠어요!

비비안 : 큭...! 도망치긴 늦었나?


한나 : 으으으...

한나 : 어라? 살아 있네요?

한나 : 그런데 저희 지금 뭘 타고 있는 거죠?

비비안 : 이건.. 병기마?

한나 : 꺄아아! 큰 녀석이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피터 : 허밋이 장교 분을 무사히 구출했습니다! 협곡 지대로 유인 중!

큐리안 : 쐐기 대포의 준비 상황은 어떻지?

와트 : 설치를 마치고 발사각을 조정 중입니다.

와트 : 문제는 놈의 속도입니다. 보통 빠른 게 아니라 제대로 조준할 수가 없어요.

큐리안 : 직접 겨냥할 필요 없다. 길목의 바위를 노려.

한나 : 으아아, 저 큰 녀석 아까보다 더 빨라진 거 아니에요? 이러다 곧 따라잡히겠어요!

비비안 : 아닙니다. 침식체가 빨라진 게 아니라 말이 느려지고 있는 거예요.

한나 : 제가 무거워서 속도를 못 내는 건가요?! 역시 요즘 너무 먹어서 살찐 건가?! 

비비안 : 제가 아는 병기마의 성능은 탑승자의 체중 정도로 느려지지 않습니다. 

비비안 : 이건...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 같군요.


비비안 : 한나 씨! 고삐를 잡으세요! 

한나 : 네? 네에!

비비안 : 콜록, 콜록.... !

한나 : 방금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바위 기둥이 쓰러져서 침식체를 깔아뭉개 버렸어요!

한나 : 혹시 노르드나빅의 전승 속에 나오는 요정 분들이 도와 주셨다거나?

비비안 : 글쎄요. 요즘 같은 세상에 요정이 남아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비비안 : 저렇게 생겨 먹었을 것 같진 않군요.


큐리안 : 전원, 놈이 다시 움직이기 전에 마무리 짓는다!

큐리안 : 일제 사격!

한나 : 감사합니다, 수비대 여러분. 덕분에 살았어요.

큐리안 :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이걸로 저희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면 좋겠군요.

한나 : 네, 물론이죠! 여러분은 저희에게 생명의 은인이세요!

큐리안 : 래시포드 장교님, 혹시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비비안 : 그래. 신세를 졌다.

비비안 : 우리가 침식체가 들끓는 곳에 제 발로 들어가길 기다렸다가, 

보란 듯이 구해 줌으로써 뭘 얻으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나 : 래시포드 씨...


비비안 : 말해 봐라. 왜 외성 밖에 2종급의 대형 침식체가 있다는 걸 보고하지 않았지?

큐리안 : 방금 전 해치운 대형 침식체는 저희에게도 생소한 부류였습니다.

큐리안 : 그리고 이 근방에 있었던 건, 직접 경호하면 장교님의 심기를 거스를 것 같아서였습니다.

큐리안 :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비비안 : 흥, 잘도 그럴싸하게 포장하네.

비비안 : 네 해명을 믿어 보겠다. 그래서, 답례로 뭘 원하지?

큐리안 : 특별히 없습니다만, 조사 중 안전을 위해 저희 부대를 동행시켜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큐리안 : 많은 대원들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열쇠를 찾는 데 일조하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비비안 : .....

비비안 : 좋다. 너희들의 실력은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비비안 : 하지만 오늘은 늦었으니 더 조사하긴 어렵겠어. 이만 외성으로 돌아가겠다.

한나 : 래시포드 씨? 가, 같이 가요!


엘라 : 어려 보이는데 눈치가 빠르네.

큐리안 : 무슨 소리지?

엘라 : 당신도 선의만으로 저 고집불통을 돕자고 한 건 아니잖아? 

엘라 : 이 기회에 잘 보여서 함께 열쇠를 찾으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고. 

큐리안 : ... 그렇게 노골적이었나?

엘라 : 저쪽은 그저 추측이었겠지만, 나는 당신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

엘라 : 그야 열쇠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두고만 보긴 힘들겠지.

큐리안: 내키지 않는 일이라면 더 이상 부대를 끌어들이진 않겠어. 나 혼자서라도 돕지.

엘라 : 뭐래.

엘라 : 국경수비대가 재건단 일에 협조하지 않고 호위도 손 놓으면 뭘 하는데?

큐리안 : 저 장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아니었나?

엘라 : 재수없다고 생각한 건 부정하지 않을게. 이번 기회에 조금 정신 차리길 바랐던 것도. 

엘라 : 하지만 사라진 성유물을 되찾는 일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냐. 우리 모두의 숙원이지.

엘라 : 언젠가 낙원문이 다시 세워졌을 때, 거기에 걸맞은 열쇠가 필요할 테니까.

큐리안 : ... 그래.

큐리안 : 나도 그러길 바라고 있어.



2-3 인터루드#5


비비안 : .....

비비안 : 역시... 나무에서 떨어질 때 탐지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

비비안 : 곤란하네. 이런 외진 곳에서 수리에 쓸 부품을 구할 수도 없고.

비비안 : 후우.

큐리안 : 고민이 있는 한숨소리군요.

비비안 : 누가 마음대로 들어와도 된다고 했지?

큐리안 : 셔우드 외성에 제대로 된 정비소는 여기 한 곳밖에 없어서 말이죠.

큐리안 : 이 친구를 잠시 점검하려고 들렀습니다.

비비안 : ... 그 때 우리를 태워 준 병기마로군.


허밋 : .........!

비비안 : 으앗?!

비비안 : 바, 방금 그건 뭐야! 공격하려는 건가?!

큐리안 :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큐리안 : 동력부가 만드는 출력으로 과부하에 걸려서,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게 해 뒀습니다.

비비안 : 흥.....

비비안 : 병기마는 왕실 최고 기술자만이 그 주인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

비비안 : 한낱 수비대의 지휘참모가 어떻게 병기마를 부리는 거지?

큐리안 : 오래 전부터 저와 함께한 친구입니다.

큐리안 : 비록 저는 기억을 잃었습니다만, 이 친구는 다행히 저를 잊지 않고 따라 주더군요.

비비안 : 웃기는군. 그러면 네 놈이 전멸한 총사대의 생존자라도 된다는 거냐?

큐리안 : 제라드 큐리안.

큐리안 : 그게 제가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비비안 : ... 총사대장 큐리안?

비비안 : 어이가 없군. 감히 왕실 장교 앞에서 국가지명수배자의 이름을 들먹여?

비비안 : 방금 그 대답으로 내가 널 즉결 처단해도 아무 문제 없게 됐어. 알고는 있나?

큐리안 : 언젠가 밝혀질 사실이었고, 처벌은 두렵지 않습니다.

큐리안 : 다만 처벌을 받기 전에 열쇠를 찾는 일을 돕게 해 주십시오.

비비안 : 열쇠의 마지막 행방을 아는 건 큐리안과 그 부대원들뿐이야! 

지금 날 우롱하는 건가!


큐리안 : ... 모릅니다.

큐리안 : 저에게 남은 건 수도를 떠나 남부로 향하던 기억의 단편뿐.

큐리안 : 열쇠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잊어 버렸으니까요.

비비안 : .. 침식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주 다양하지.

비비안 : 환각을 경험하고 악몽에 시달리는가 하면, 자신이 누군지 잊어 버리기도 한다.

비비안 : 아무래도 넌 그런 부류의 망상증에 시달리는 것 같군. 

진지하게 반응한 내가 어리석었지.

큐리안: ...

비비안 : 오늘 나와 한나 씨를 구해 준 대가로, 방금 한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

비비안 : 그런 헛소리는 두 번 다시 어디 가서 내뱉지 말도록. 이게 내 마지막 관용이다.

큐리안 : 새겨듣겠습니다.


큐리안 : 그런데 물건을 수리 중이시던 겁니까?

비비안 : 그건 네가 알 바 아니...

비비안 : 뭣! 뭘 멋대로 건드는 거냐! 민감한 물건이란 말이다!

큐리안 : 파형 측정기를 소형화시킨 장치 같군요. 센서와 회로 일부가 파손됐어요.

비비안 : 당장 내려놓지 못해! 그건 내....!

큐리안 : 따라오시죠. 대체할 부품을 구할 만한 장소가 있습니다.

비비안 : ... 뭐?

비비안 : 차원함선이잖아.......?

비비안 : 대체 이런 게 왜 침식지대 한복판에 버려져 있는 거지?

큐리안 : 1년 전쯤 마을 아이들이 찾아냈습니다. 여기 있는 이유는 저희도 아직 모릅니다.

비비안 : ...

비비안 : 이런 귀중한 정보를 재건단에 알리지 않은 건 괘씸하다만...

비비안 : 너희 같은 무지렁이들은 차원함선의 가치를 몰랐을 테니,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겠어.


비비안 : 그나저나 꼬마들이 제법 기특한 일을 해냈군. 지금 어디에 있지?

큐리안 : 그 아이들은 이제 없습니다.

비비안 : 음? 도시로 이주한 건가?

큐리안 : 외성의 주민들은 대부분 침식 증후군 환자들입니다. 

치료를 받아도 연명 정도에 그치죠.

큐리안 : 수비대장도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나이가 어리다고 예외는 아니더군요.

비비안 : ...

큐리안 : 그래도 도시에서 모르핀을 구할 수 있던 때라 마지막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겁니다.

비비안 : ... 그런가.

비비안 : 난 여기서 쓸 만한 부품을 찾아 봐야겠어.

큐리안 : 저도 돕겠습니다.

비비안 : 좋을 대로 해.

비비안 : 쳇, 레이더는 전부 망가진 건가? 멀쩡한 부품이 하나도 없군.

비비안 : 이건 ... 경보?

큐리안 : 보안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군요.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비비안 : 아니. 이건 함내에 침식파가 검출됐을 때 울리는 경보다.

비비안 : 이쪽으로 따라와.

비비안 : 방금 지나간 녀석이 마지막인 것 같군.


큐리안 : 저희가 있는 선실은 확인도 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큐리안 : 혹시 그 펜던트 덕분입니까?

비비안 : 맞아. 바로 눈치 채다니 제법이네.

큐리안 : 코앞에 있는 인간을 침식체가 그냥 지나칠 리 없으니까요. 유용한 물건이군요.

비비안 : 놈들의 감각 기관에 혼선을 줄 뿐이야. 뻔히 보이는데도 따돌릴 수는 없어.

비비안 : 그나마도 급이 높은 녀석들에게는 무용지물이지.

큐리안 : 재건단의 장교 분들은 모두 그런 장비를 지니고 있는 겁니까?

비비안 : 왜? 병사들이 차별받는 것 같아서 억울한가?

큐리안 : 아뇨.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쉽게 양산할 수 없는 물건이라서겠죠.

비비안 : ...

비비안 : 그 말이 맞아. 값비싼 고순도 이터니움을 쓰는 데다 

사용 가능한 횟수도 정해져 있거든.

비비안 : 아마 이것도... 앞으로 한 번쯤 더 쓰면 수명이 다하겠지.

큐리안 : 그런 귀한 물건을 낭비하게 만들었군요. 죄송합니다.

비비안 : 착각 마라. 방금은 나를 위해 사용한 거야. 너는 내 옆에 우연히 있었을 뿐이지.

큐리안 : 크흠, 수리에 필요한 부품은 찾으셨습니까?

비비안 : 늦었어. 대체품으로 쓸 수 있을 만한 레이더 장비는 모두 부서졌더군.

큐리안 : 그렇다면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비비안 : 그건..? 통신 모듈 아닌가?

큐리안 : 이면세계를 횡단하는 함선이라면 통신기기에도 침식파에 대비해 뒀겠죠.

큐리안 : 분해해 보면 쓸 만한 부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비안 : .....

비비안 : 좋아. 밑져야 본전이니까.

비비안 : .. 반응이 없군.

비비안 : 역시 통신용과는 호환되지 않는 건가?

비비안 : 음? 정말로 신호가 다시 잡혔잖아?

비비안 : 전보다 신호의 강도도 훨씬 선명해! 이거 완전..!

큐리안 : .......

비비안 : ...흠흠. 수고했다, 지휘관.

비비안 :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네 의견은 상당히 유용했어.

비비안 : 이만 돌아가지. 언제 다시 침식체가 나타날지 모르니


큐리안 : ...........

비비안 : 지휘관...?

비비안 : 뭐, 뭐야! 왜 갑자기 쓰러지는 건데?!

비비안 : 정신 차려!

비비안 : 이봐............!


2-4 인터루드#6

크어어어.........

큐리안 : 이 소리는... 침식체인가?

큐리안 : 곤란하군. 하필이면 무기가 없을 때에....

비비안 : 커어어어.....

비비안 : 크어어어어............

큐리안 : 장교님...?

비비안 : 음...? 흐으음.......

엘라 : 깨우지 마. 방금 잠들었으니까.

큐리안 : ... 대장? 내가 또 의식을 잃었던 건가?

엘라 : 그래. 쓰러진 널 저 장교님이 혼자서 업고 마을까지 데려왔어.

큐리안 : 저 작은 체격으로? 농담이 과하군.

엘라 : 농담이 아니야.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기진맥진해서 거의 질질 끌다시피 했지만.

엘라 : 그런데 당신은 허밋이 없으면 제대로 뛰어다니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디까지 갔던 거야?

큐리안 : 미안하다. 장교님과 함께 다녀올 곳이 있었어.

엘라 : 몸 상태는? 팔다리는 움직일 수 있겠어?

큐리안 : 좀 뻣뻣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엘라 : 환각 증세는? 갑자기 살인 충동을 느끼거나 자기도 모르게 그르렁거린 적 있어?

큐리안 : 그런 걸 물어볼 만큼 심각한 상태인 건가?

엘라 : 물론 침식 증후군의 진행 속도는 환자마다 달라.

엘라 : 하지만 당신은 1년 전부터 말기였어. 언제 침식체로 돌변해도 이상하지 않은 기간이지.

엘라 : 실제로 최근 들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빈도도 꾸준히 늘고 있으니까.

큐리안 : 단순한 빈혈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엘라 : ....

엘라 : 현실 부정은 적당히 해 둬.

엘라 : 눈으로만 봐도 그 몸에는 침식의 흔적이 또렷해. 

안락사 권유할 단계는 예전에 지났어.


엘라 : 앞으로는 병실에서 얌전히 지내도록 해. 

대원들 앞에서 침식체가 되고 싶은 건 아니잖아?

큐리안 : 열쇠를 되찾을 기회가 눈앞에 있어. 나에겐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해.

큐리안 : 고집 부리는 꼴이 보기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미안하다.

엘라 : 하아.. 어련하시겠어.

큐리안 : ..이건?

엘라 : 억제 주사야. 위기라고 생각되면 정맥에 대고 버튼을 눌러.

엘라 : 원리는 이터니움 정제액과 비슷하지만 ... 말기 환자에게도 먹힐 만큼 효과는 확실해.

큐리안 : 고맙군, 대장.

엘라 : 고마워하지 마. 넌 지금 의사한테 절대 해선 안 될 부탁을 한 거니까.

엘라 : 투약 즉시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억제제야. 

섣불리 사용했다간 뒷일은 장담 못 해.

큐리안 : 알겠다. 되도록이면 임무를 마칠 때 그대로 돌려 주도록 하지.


비비안 : 으음...?

비비안 : ......내가 얼마나 잠들었지?

엘라 : 삼십 분 정도 지났습니다.

비비안 : 망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버렸군.

비비안 : 당장 탐지기를 수리해야겠어.

큐리안 : 감사합니다, 장교님. 절 여기까지 옮겨 주셨다고 하더군요.

비비안 : 흥. 그런 상태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따라오게 허락하지도 않았을 거다.

비비안 :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중환자에게 지휘권을 주다니, 수비대장의 안목도 정말이지..

비비안 : .......

엘라 :그러고 보니 곧 저녁 식사 시간이군요.

엘라 :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방으로 음식을 가져가겠습니다, 장교님.

비비안 : ......아니.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 오늘 석식은 식당에서 하겠다. 

한나 씨에게도 전해 주도록

2-5 인터루드#7

수비대원A : 정말이야? 장교님이 우리랑 같은 식당을 쓰신다고?

수비대원B : 이런 건 생전 먹어 볼 일이 없을 텐데, 입맛에 맞으려나?

수비대원C : 맞을 리 있겠어? 수도에선 매일 고기요리를 먹을 텐데.

한나 : ... 시선이 엄청나게 느껴지네요.

비비안 :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식사를 마치는 대로 자릴 뜰 테니까요.

엘라 : 저희 수비대의 주식, 감자 스튜입니다. 조촐하지만 부디 맛있게 드시길.

비비안 : 그래, 고맙군.

피터 : 감자는 저희가 열심히 깎았습니다, 장교님!

와트 : 피터, 얼씬거리지 말고 빠져 있어라.

수비대원 : .......

피터 : .......

와트 : 이것들아. 빠져 있으라고.


비비안 :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한나 씨.

한나 : 앗.. 벌써요?

비비안 : 그리고 수비대장은 잠깐 날 보도록 하지.

엘라 : 알겠습니다.

피터 : 뭐야? 반응이 왜 저래? 맛이 마음에 안 들었나?

와트 : 저게 정상이지. 고기 한 점 안 들어간 싸구려 감자 스튜에 무슨 반응을 기대한 거냐?

피터 : 방금 하신 말 대장한테 그대로 전해도 되죠?

와트 : 이 자식이...............

수비대원 : 어라? 그래도 그릇은 깨끗이 비우셨는데요?

피터 : 정말?!


비비안 : 수비대장은 평소에도 직접 대원들의 식사를 준비하나?

엘라 : 대원들과는 순번을 번갈아 가며 요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엘라 : 오늘이 우연히 제 차례였을 뿐입니다.

비비안 : 지휘관에게 듣기론 요리만이 아니라 외성 환자들의 치료 또한 혼자서 도맡고 있다더군.

엘라: .....

비비안 : 여기 오기 전에 네 이력을 살펴봤다. 

중앙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스스로 중퇴했다지?

엘라 : 그렇습니다.


비비안 : 중퇴 당시 성적은 전례 없는 수준의 엘리트더군.

비비안 : 여기서 환자들을 돌보는 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인가?

엘라 : 아닙니다. 다른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비비안 : 흠. 학교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내가 도와 줄 수 있다.

비비안 : 너 같은 인재라면 왕실 의료진에 합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엘라 : 말씀의 요지를 모르겠습니다만.

비비안 : 나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중앙을 떠난 인재들을 많이 지켜봐 왔어.

비비안 : 그리고 노르드나빅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선 

그런 뛰어난 인재들이 나서야 해.

비비안 : 돈 문제라면 후원자를 소개해 주겠다. 

학교에 자퇴를 강요당했다면 내가 설득해 주지.

비비안 : 이건 래시포드 가문의 명예를 걸고 하는 약속이야.


엘라 : .....

엘라 :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수도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비비안 : 어째서지?

엘라 : 저는 남부 국경수비대의 책임자니까요.

비비안 : 흥, 책임자?

비비안 : 자네 참모가 스스로 누굴 자처하고 다니는지는 알고 있나?

엘라 : 알고 있습니다.

엘라 : 제라드 큐리안이라고 하더군요.

비비안 : 그런 수상한 자를 요직에 앉혀 놓고서 책임자를 자처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엘라 : 그는 저희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고, 

저희는 그 모습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비비안 : 만약 그 자가 정말 큐리안이라면?

비비안 : 국가 수배자를 감싸 준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엘라 : 생전에 공식석상에서 맨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데다 기록까지 말살된 인물입니다.

엘라 : 그 전제를 증명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비비안 : .....

엘라 :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식당으로 복귀해 보겠습니다.

엘라 : 종종 제때 식사를 하지 않는 장병들도 감독해야 해서 말입니다.

비비안 : ... 수비대장.

비비안 : 날이 밝는 대로 재조사에 나서겠다. 호위 병력을 준비해 두도록.

엘라 : 알겠습니다.


( ... )

비비안 : .......

장관 : 들어오게.

비비안 : 비비안 래시포드. 케슬러 장관님의 호출을 받고 왔습니다.

장관 : 그래, 자네가 사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됐지?

비비안 : 올해로 3년째입니다. 장관님.

장관 : 자넬 생도라고 불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빠르군.

장관 : 추천서를 받았네. 중앙 대학은 귀관을 차기 최고 기술자로 점찍어 둔 모양이야. 

장관 : 자네 스스로도 적임자라 생각하나?

비비안 :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자리에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장관 : 그래. 최고 기술자는 오랫동안 공석이었으니, 이제 슬슬 빈 자릴 메꿀 때도 됐지.

장관 : 래시포드 가문의 일원이 다시 한 번 우뚝 서서 과거의 영광을 빛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장관 : 하지만 귀관을 선정하기엔, 아직 명분이 부족하네.

비비안 : 명분.. 말입니까?

장관 : 최고 기술자의 차기 후보가 전임자와 같은 집안 사람이면 

틀림없이 구설수에 오르겠지.

장관 : 게다가 자네 부친은 그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는 바람에 

불명예까지 떠안았으니 말이야.

비비안 : 그런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비비안 : 설령 아버지가 그 자와 한통속이었다고 해도 저와는 무관한 일이지 않습니까!

장관 : 미안하군. 형평성을 논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이 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네.

비비안 : .....

장관 : 하지만, 형평성을 핑계로 자네 앞길을 가로막는 것 역시 공정치 못한 처사지.

장관 : 그래서 논의 끝에 귀관에게 명분을 만들 기회를 주기로 했어.

비비안 : 기회라고 하심은...

장관 : 우리와 협력하는 기업의 도움으로 낙원문의 시그니처 패턴을 분석하는데 성공했네.

비비안 : 시그니처 파형을? 그게 정말입니까?

장관 : 그래. 

이것만 있으면 자네가 만든 탐지기로 낙원문의 일부였던 열쇠를 찾을 수 있겠지.

자네 손으로 직접, 가문의 오명을 씻어내는 걸세. 


...

큐리안 : .....

엘라 : 내가 웬만하면 병실에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

엘라 : 왜 혼자 바위에 앉아서 분위기 잡고 있는 거야?

큐리안 : ..음?

엘라 : 식사시간 한참 지났어.

큐리안 : 이거 미안하군. 별 구경이 재밌어서 깜빡했어.

엘라 : 다 큰 어른이 그러면 철이 덜 들었다는 소리만 들어.

큐리안 : 볼 수 있을 때 봐 둬야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지 모르는데.

큐리안 : 손에 들고 있는 건 감자 스튜인가?

엘라 : 그래, 당신 몫. 다음부턴 따로 안 챙겨줄 거야.

큐리안 : 매번 고맙군.


엘라 : 그리고 이거.

큐리안 : 이건.. 얼마 전에 담갔던 감자 에일인가?

엘라 : 아직 발효는 덜 됐지만, 마냥 기다리다가 입에도 못 대 보고 죽으면 아쉽잖아?

큐리안 : 구구절절 맞는 말이군.

엘라 : 다 먹고 나면 화살 깎는 거나 도와 줘.

큐리안 : 길게 나눌 얘기라도 있나?

엘라 : 래시포드 장교의 지시가 떨어졌어. 성유물을 찾으러 우리 부대가 동행할 거야.

큐리안 : 그래. 얘기가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군.

엘라 : 꼭 그렇게 고집을 피워서라도 가야겠어?

큐리안 : 마지막 소원치고는 너무 수수한가?

엘라 : 이 나라가 침식에 뒤덮인 게 겨우 한 사람만의 탓은 아니야.

엘라 : 설마 그런 식으로 목숨을 내팽개치는 게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해?

큐리안 : 내가 열쇠를 지키지 못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큐리안 : 이미 벌어진 일들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하다못해 내가 저질렀던 실수만큼은 만회하고 싶다.


엘라 : .......

엘라 : 내가 군인이 된 건 왕립군이 부르짖는 노르드나빅의 영광 때문이 아니야.

엘라 :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떼어 놓는 데는 

수술칼보다 화살이 더 나았거든.

엘라 : 죽음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

엘라 : 그런데 당신은 왜 이제 다 끝난 일에 그렇게까지 연연하는 거야?

큐리안 : .....

큐리안 : 대장은 왕립군의 표어를 기억하나?

엘라 : 글쎄. 그런 형식적인 건 별로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데.

엘라 : "앞서 쓰러져간 이들의 이름이, 당신의 의지와 함께하길.." 이었던가?

큐리안 : 그래. 그걸 되새기다 보면, 대장도 언젠간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엘라 : 고작 그런 문장으로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다면, 참 편리하긴 하겠네.

큐리안 : 편리한 문장에, 건배.

엘라 : ....

큐리안 : 싱겁군.

엘라 : 발효가 덜 됐으니까.


2-6 다시 찾은 고향

3일 뒤, 국경 밖.

폐쇄된 구 남부횡단열차 종착역.

노르드나빅 포기거점. 디어루트 외성 부근.


수비대원 : 어엇, 물자들 쓰러지지 않게 조심해!

피터 : 바람도 엄청 불고, 피부가 얼어붙겠네.

와트 : 여긴 완전히 겨울이군. 우린 침식지대 한복판에 들어온 거야.

피터 : 디어루트에는 처음 와봐요. 이전에 사람이 살던 곳이라곤 믿기지 않네요.

와트 : 한때는 노르드나빅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산도시였어. 

나도 어렸을 땐 잠깐 이곳에서 갱도를 뚫는 기술자로 일했었지.


피터 : 그러고보니 와트 씨는 왜 군인이 되신 거예요? 

재건단에선 기술자가 많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와트 : 처음엔 나도 수도로 가려고 했었어.

와트 : 그런데 피난 도중에 약혼자가 죽었거든. 침식체들한테.

피터 : ...몰랐어요.

피터 : 그것 때문에 복수하려고 마음 먹으신 건가요?

와트 : 물론 침식체가 증오스럽긴 하지만, 침식체 몇 마리 잡는다고 

그녀가 편히 잠들 거라 생각하진 않아.

더 이상 나같은 외톨이가 나와선 안 된다는 각오였어. 

그래서 나름 내 기술이 군에 보탬이 될 거라 생각하고 지원했지.

와트 : 뭐, 지휘관님이 나타난 뒤론 내 특기도 별볼일 없어졌지만 말이야.


피터 : 그래도 대포는 누구보다 잘 다루시잖아요. 이번에 지휘관님 지시로 

폭탄도 엄청나게 만들었고.

와트 : 큭큭, 꼴에 걱정해주는 거냐? 내가 자격지심에 시달리기라도 할까봐?

피터 : 나 참.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거예요. 전 평생 여자친구도 못 사귀어봤다고요.

엘라 : 다들 경계해라. 언제 어디서 침식체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수비대원 : 예!

한나 : 신호가 가깝네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한나 : 어... 어라? 탐지기가 갑자기 먹통이 됐어요.

엘라 : 고장 난 겁니까?

비비안 : 아니. 침식파 때문에 성유물의 시그니처 패턴을 제대로 못 읽고 있을 뿐이다.

비비안 : 여기서부터는 신호가 닿았던 장소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 침식파 관측망을 설치할 거야. 

큐리안 : 침식파를 이용해서 성유물의 위치를 찾으려는 겁니까?

비비안 : 그래, 낙원문과 열쇠는 침식을 막아 주던 물건이니 이걸로 장소를 특정할 수 있을 거다.

큐리안 : 과연. 침식파 계수가 다르게 관측되는 장소에 성유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한나 : 이터니움 실드가 얼마나 버텨줄지 몰라요.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한나 : 저랑 래시포드 씨가 각자 나눠서 관측기를 설치할게요.

엘라 : 다들 들었지?

엘라 : 실어온 장비들을 꺼내. 분대를 나눠 설치 장소로 이동한다.

한나 : 래시포드 씨. 저희는 무사히 설치 끝냈어요.

비비안 : 이쪽도 문제없습니다. 그럼 바로 작동시켜 보죠.

비비안 : 뭐지..?

비비안 : 이상해. 침식파가 약해지는 구간이 전혀 보이지 않아.

비비안 : 심지어 한 곳은... 침식파가 비정상적으로 집중되어 있어.

한나 : 저... 래시포드 씨?

한나 : 어쩌면 고준위 침식파가 흐르는 좌표에 성유물이 있는 게 아닐까요?

비비안 :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한나 : 성유물은 침식을 막아 주던 도구라고 들었어요.

한나 : 이건 가정일 뿐이지만... 그 원리가 침식파를 흡수하기 때문이라면, 

오히려 침식파가 강한 곳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비비안 : 그렇게 생각하면 침식파가 높은 이유도 납득이 가는군요.

비비안 : 지금으로선 달리 특정할 만한 장소가 없으니, 한나 씨의 의견을 따라서...


피터 : 장교님! 조심하십시오! 

비비안 : ..음?

비비안 : 큭...?!

수비대원 : 침식체의 기습이다! 장교님을 엄호해!

피터 : 괜찮으십니까?

비비안 : 그래. 네가 막아 준 덕분에 살았어.

비비안 : 넌 다치지 않았나?

피터: 아, 전 괜찮습니다. 그런데...

피터 : 관측장비까지 지키는 건 무리였습니다. 다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비비안 : .......

비비안 : 상관없다. 좌표는 이미 확보했어.

비비안 : 서둘러 이동하지.


한나 : 흐아앙, 래시포드 씨! 갑자기 통신이 끊겨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고요!

비비안 : 괜한 걱정을 끼쳤군요. 저는 무사합니다.

큐리안 : 저 우람한 슈트와 가냘픈 목소리의 조화는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군.

엘라 : ....

큐리안 : 뭔가 찾는 눈치인데. 침식체의 존재라도 느낀 건가?

엘라 : 침식체의 존재는 외성을 떠날 때부터 사방에서 느껴졌어.

엘라 : 진입하기 전에 잠시 둘러보고 있었을 뿐이야. 내 고향이니까.

큐리안 : 음? 고향이라고?

엘라 : 정확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가 살던 고향이야.

엘라: 원래 여긴 작은 마을이었어. 

침식의 날이 오지 않았으면 나도 여기서 살았을지도 모르지.

큐리안 : 우연치고는 얄궂군. 20년도 더 지나서 이런 식으로 고향에 돌아오다니.

엘라 : ...... 맞아. 얄궂은 일이지.

엘라 : 엄마는 돈도 안 되는 의료 봉사에 매달려 살았어.


엘라 : 내가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왜 그런 일을 하냐고 투정 부리면, 

언제나 자랑하듯 말씀하셨지. 

침식체에게 모든 걸 잃은 줄 알았던 그 날, 왕립군이 나타나 우리 목숨을 구해 줬다고.

엘라 : 그러니 우리도 그들처럼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하다고.

큐리안 : 대장의 어머니도 훌륭한 의사분이셨나 보군. 지금은 수도에 계신 건가?

엘라 : 돌아가셨어. 침식증후군으로.

큐리안 : ...

엘라 : 그렇게 혼자가 되서야 깨달았지.

엘라 : 침식 증후군을 치료한다는 건 허상이고, 환자의 고통만 연장할 뿐이라는 걸.

엘라 : 하지만 난 어머니처럼 감염되는 대신, 워치를 얻었어. 그래서 국경수비대로 온 거야.

큐리안 : 그 결정을.. 후회하진 않나?

엘라 : 침식으로부터 환자를 구하진 못해도, 침식체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는 있으니까.

엘라 :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

큐리안 : 그렇다면 다행이군.

와트 : 지휘관님 지시하신 대로 쐐기 대포의 설치를 마쳤습니다.

피터 : 입구의 잔해도 모두 치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진입할 수 있어요.

큐리안 : 다들 수고 많았다.

큐리안 : 우리가 진입할 곳은 고준위 침식파가 흐르는 장소다.

큐리안 : 위험한 침식체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다들 방심하지 말도록.

큐리안 : 그럼 엘라 대장. 명령을.


엘라 : ... 목표로 하는 성유물 회수까지 앞으로 단 한 걸음이면 된다.

엘라 : 남부 국경수비대! 전원 장교님을 호위하며 진입한다!


2-7 자신을 억누르는 존재

한나 : 래시포드 씨, 이건 어때요? 그럴싸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비비안 : 글쎄요. 그냥 불에 녹은 냄비로 보입니다만.

한나 : 그러면 이건요?

비비안 : 아무리 그래도 밑창 떨어진 구두가 성유물일 것 같진 않군요.

한나 : 휴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까 찾기가 쉽지 않네요.

한나 : 여기 쌓여 있는 돌무더기나 나뭇가지 중 하나가 성유물이면 어쩌죠?

비비안 : ....

비비안 : 지휘관, 혹시 성유물의 생김새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없나? 

큐리안 :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선 아무런 단서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비비안 : 그런가. 하긴 괜한 질문이었군.

한나 : 어라? 래시포드 씨, 그걸 왜 지휘관님에게 물어보세요?

비비안 : 아, 별거 아닙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면 

참신한 발상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요.


한나 : 앗, 그렇네요!

한나 : 병사 여러분도 그럴싸한 물건을 발견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수비대원A : 이건 어떻습니까?

한나 : 어머, 신기하게 생긴 문고리네요.

수비대원B : 저도 특이하게 생긴 걸 주웠습니다만,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한나 : 으음~ 녹은 못이 뭉쳐서 굳은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그것도 가져가 볼까요? 

와트 : 김 빠지는군...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와서 하는 게 대책없는 보물찾기라니.

피터 : 뭐 어때요. 거대한 침식체한테 쫓기는 것보단 낫죠.

피터 : 이거 보세요. 반짝거리는 게 혹시 성유물 아닐까요?

와트 : 누가 봐도 그냥 구슬이잖아. 어릴 때 구슬치기도 안 해봤냐?

피터 : 아, 왜요. 보기엔 그래도 특별한 구슬일 수도 있지.

와트 : ..음?

피터 : 쳇, 뭘 찾았는지 몰라도 무조건 성유물 아니라고 할 거예요.

와트 : 성유물이고 자시고가 아니야.

와트 : 군번줄이다. 저쪽에도 떨어져 있어.

피터 : 잠깐, 저기 반쯤 파묻혀 있는 거 혹시 총이에요?

피터 : 대장님!

엘라 : 무슨 일이지?

피터 : 시신을 찾았습니다! 왕립군 병사들이예요!

엘라 : 이건, 왕립군 총사대 직속 1번대의 약장.. 

복식도 20년 전 왕실에서 사용했던 그대로야.


큐리안 : 총사대 1번대...

큐리안 : 내가 소속되어 있던 부대가 맞다.

엘라 : 이 시신들은 마을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엘라 : 아마 이 근방에서 부대가 전멸할 정도로 큰 전투가 벌어진 것 같아.

큐리안 : ...

와트 : 그러면 지휘관님이.. 정말로 그 총사대장 큐리안이라고요?

와트 : 맙소사, 촌장님은 정신착란 환자라고 호언장담을 하셨는데.....

피터 : 헤헤, 와트 씨는 그럼 지휘관님이 환자라는 걸 알고도 따르던 거네요?

와트 : 임마! 그러는 넌 뭐가 아쉬워서 지휘관님이 있는 부대에 자원 입대한 건데?!

피터 : 저요? 저는 저희 지휘관님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한 거죠.

피터 : 지휘관님 얘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딱히 신경 쓴 적 없어요. 와트 씨는 안 그래요?

와트 : 쳇. 위대한 정착자 납셨구만.


비비안 : 그렇다면 정말로... 제1 총사대는 성유물을 옮기던 중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단 건가?

비비안 : 대답해 봐라, 지휘관.

비비안 : 대체 그게 뭐였지? 침식체였나? 아니면 사람?

큐리안 : 제가 그 날 본 것은..... 침식체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큐리안 : 마치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 같았죠.

비비안 : 어중간한 대답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비비안 : 이건 국가 적대 세력의 존재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사안이야!

큐리안 : 저도 그 정체는 모릅니다.

큐리안 : 하지만 홀로 정예 왕실부대를 궤멸시킬 만큼 위험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비비안 : .......

비비안 : 알겠다. 이 사안은 돌아가는 대로 보고를 올려야겠군.

비비안 : 지금으로서는 네가 유일한 증인이다. 진상을 밝히기 전까지 절대 죽지 마라, 지휘관.

큐리안: ... 알겠습니다.

비비안 : .. 방금 그 소리는?

한나 : 어라?

한나 : 래시포드 씨! 탐지기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어요!

피터 : 이게... 다들 그렇게 찾던 성유물이라고?

와트 : 네의견에 동의하긴 싫지만, 이건 확실히 열쇠처럼 생기진 않았군.

한나 : 탐지기는 이 물건을 가리키고 있어요.

한나 : 낙원문의 시그니처 패턴에 반응하는 물건이니 성유물이 틀림없을 거예요.

비비안 : ..그런데 왜 여기 남아 있는 걸까요?

비비안 : 이 참상을 일으킨 자가 성유물을 노리고 있었다면 이렇게 방치했을 리가 없습니다.

한나 : 성유물은 허락된 사람 외에는 정체도 알려 주지 않았다잖아요.

한나 : 범인도 막상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던 거 아닐까요?

한나 : 저희는 래시포트 씨의 탐지기 덕분에 찾은 거잖아요.

비비안 : ... 그래요.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피터 : 우왓! 그럼 지금이 사라졌던 성유물을 되찾은 완전 역사 깊은 순간이란 거네요?

피터 : 장교님! 혹시 우리도 위인전 같은 데 실릴 수 있는 건가요?

와트 : 아서라. 한 것도 없으면서 위인들의 평균치를 깎아내리려고 하지 마.


비비안 : 그 말대로 역사서에 이름이 실릴 정도는 아니다.

비비안 : 하지만 너희들의 공로를 보고해 왕실 훈장과 

그에 상응하는 포상을 내려 줄 수는 있겠지.

물론 그건 이 성유물을 무사히 회수해 간 뒤에 고려하면 될...


큐리안 : 위험해!

큐리안 : 장교님, 괜찮으십니까?

비비안 : 콜록...

비비안 : 낚아채 준 덕에 살았군.

비비안 : 그런데 저건.. 대체 뭐지?

큐리안 : 침식체입니다. 덩치만 큰 대형종은 아닌 것 같군요.

와트 : 제길. 방금까지만 해도 잠잠했는데 어디서 저런 게 나타난 거야?

엘라 : 피터! 피해 상황은?

피터 : 바위 파편에 맞아 다친 사람들이 있지만 중상자는 없습니다!

엘라 : 전원 대열 정비!

엘라 : 타깃은 전방에 출몰한 분류 미상의 대형 침식체!

엘라 : 머리로 보이는 부분을 노려! 놈의 공격은 내가 막겠다!

수비대원 : 예!


수비대원 : 이쪽으로 휘두른다! 피해!

수비대원 : 안돼・・・ 이미 늦었어!

수비대원 : 대장님?

엘라 : 내가 막고 있을 테니..! 어서 도망쳐!

수비대원 : 네... 네!

엘라 : 큭...! 더 이상은...!

큐리안 : 저격조! 지금이다!

수비대원 : 명중 확인! 머리를 정확하게 관통했습니다!

큐리안 : 대장, 괜찮나?

엘라 : 하... 아슬아슬했어.

엘라 : 괜찮아?

큐리안 : 목숨을 구해주자마자 또 목숨빚을 지는군.

엘라 : 그런거 피곤하게 일일이 계산하지 마, 빨리 늙으니까.

엘라 : 저건 아직도 멀쩡하네.

큐리안 : 분명 쐐기 대포 두 발이 적중하는 걸 봤다.

큐리안 : 하지만 놈은 전혀 타격을 입었다는 반응이 아니군. 

엘라 : 다행히 강한 힘에 비해 그리 민첩하진 않아.

엘라 : 자기 힘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큐리안 : 그렇다면 시도해 볼 방법이 남아 있다는 뜻이군.

엘라 : ... 방법?


큐리안 : 와트.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와트 : 폭탄 설치는 거의 끝났습니다!

와트 : 망할, 이 지긋지긋한 갱도 열차를 다시 타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큐리안 : 고생했다. 내가 신호할 때까지 대기하도록.

와트 : 알겠습니다! 걱정마십쇼!

엘라 : 무슨 계획을 세워 둔 거야?

큐리안 : 이곳에 오는 길에 오래전 폐쇄된 지하 광산을 봐뒀다.

큐리안 : 처치는 힘들더라도, 한동안 생매장시켜 버리는 건 가능하겠지.

엘라 : 지금으로서는 최선이겠네. 우리까지 생매장 당할 수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야.

큐리안 : 유인은 할 수 있겠나?

엘라 : 대장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한눈 팔고 있었던 거야?

큐리안 : 좋아. 뒤에 타라. 허밋의 속도라면 저 놈을 따돌리고 빠져나올 수 있어.

엘라 : 위험한 유인 작전은 나 혼자 맡는 거 아니었어?

큐리안 : 목숨빚 계산하기 싫다는데 각출해야지.


엘라 : 이쪽으로 온다!

큐리안 : 가자, 허밋!

수비대원 : 뭐지? 저 괴물, 어디로 가는 거야?

피터 : 당황하지 마! 지휘관님 계획대로야!

피터 : 이 틈에 성유물을 회수해서 기차역으로 철수한다!

비비안 : 한나 씨! 서둘러 움직이죠!

한나 : 아, 네!

한나 : 저어... 래시포드 씨, 사실 아까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어요.

비비안 : 네? 하필 이런 상황에?

한나 :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총사대의 시신들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거든요.

한나 : 그 사람들, 대부분 침식체에 당한 게 아니라..

한나 : 총에 맞아 죽은 게 분명해요.

비비안 : 그럼.. 성유물을 노리는 자들이 인간이었단 겁니까? 왜 진작 말하지 않았죠?

한나 : 함부로 말을 꺼내면 저랑 장교님까지 위험해질 것 같았어요.

한나 : 어쩌면 부대 내에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한나 : 성유물은 여길 떠날 때까지 수비대 손에 맡기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피터 : 장교님! 이쪽입니다!

비비안 : ..... 알겠다. 바로 따라가지.

비비안 : 이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지금은 여길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한나 : 아, 알겠습니다!



엘라 : 아직 멀었어?

큐리안 : 참아. 조금 더 깊숙이 유인해야 돼.

엘라 : 방금 그게 마지막 화살이야. 놈이 부대원들에게 향할지도 몰라.

큐리안 : 고삐를 잡아. 보직 변경이다.

엘라 : 왜 갑자기 거꾸로 앉아? 승마 묘기로 시선 끌 생각이야?

큐리안 : 불편하다면 자리를 바꿀 수도 있다.

큐리안 :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미끄러져 낙마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해 두지.

엘라 : 됐으니까 사격에나 집중해.

엘라 : 놈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대로는 따라잡힐 거야.

큐리안 : ... 와트! 지금이다!

큐리안 : 무너뜨려!


지켜야 ' ' ' ' ' 해...

그걸 ' ' ' ' 가져 가선 ' ' ' ' 안돼.


......리안!

엘라 : 큐리안! 내 손 잡아!

큐리안 : 헉...! 허억...!

엘라 : 지난번엔 암반을 부수더니 이제는 광산이네. 다음엔 산이라도 날려버릴 셈이지?

큐리안 : 허밋은... 어디에 있지?

허밋 : ......!

엘라 : 멀쩡히 잘 빠져나왔어. 걱정은 본인의 팔에나 해.

큐리안 : 큭..! 뼈가 부러진 건가?

엘라 : 떨어지는 바위에 부딪쳤어.

엘라 : 뭐가 됐든 저 낭떠러지 아래 파묻히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큐리안 : ... 성공한 건가?

엘라 : 죽지는 않았으니 언제 다시 기어나올지 몰라.

엘라 : 합류지점으로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피터 : 대장님! 지휘관님! 여깁니다! 여기!

와트 : 이런 세상에! 정말 무사하셨군요! 흙먼지가 솟구칠 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큐리안 : 성유물은? 어떻게 됐지?

비비안 : 내가 자기 소임을 방기할 만큼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였나?

비비안 : 걱정 마. 무사히 회수했다.

큐리안: 그래.....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비비안 : .....


엘라 : 전대원, 주목.

엘라 : 모두 잘 살아남아 줬다.

엘라 : ...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2-8 인터루드#8

와트 : .... 돌아왔군. 집이야.

피터 : 하아..... 무사귀환이라니 꿈만 같네요.

피터 : 그 괴물이 튀어나왔을 땐 정말 다 죽는 줄 알았다고요.

와트 : 크큭. 이게 다 내가 준비해 간 폭탄 덕분인 줄 알아. 

평생 감사하고 살아라, 이 자식아.

피터 : 그 많은 폭약을 거기까지 실어 나른 건 저라고요.

피터 : 그래도 뭐, 장교님께는 전부 와트 씨의 공이었다고 말씀드릴게요.

와트 : 난 됐어. 그런 공로는 너나 받아라.

피터 : 네? 왜요?

와트 : 왜긴 왜야? 나 같은 중늙은이가 출세해서 뭐하게?

와트 : 아직 젊은 녀석이 평생 시골 수비대에서 썩을 생각이냐? 

수도로 가서 큰일도 해 봐야지.

피터 : 와트 씨...

촌장 오닐 :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네.

촌장 오닐 : 짐을 푸는 대로 식사나 하지.

수비대원 : 하하, 감자 냄새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큐리안 : 촌장, 내가 말한 건 준비해 뒀나?

촌장 오닐 : 물론이지. 술이 아주 잘 익었더군. 대원들이 실컷 마시고도 남을 걸세.

와트 : 응? 술이라고요? 설마 그 감자 에일?

엘라 : 그래. 정신머리 없는 것들이 귀한 식량을 빼돌려서 빚은 술이지.

엘라 : 특별한 날에 주려고 버리진 않았어. 오늘 같은 날 말이야.

큐리안 : 다들 대장 말 들었지? 오늘밤은 다들 원없이 마시도록.

피터 : 헤헤, 좋았어! 오늘 밤은 술잔치다!

피터 : 장교님도 함께하시죠! 오늘은 실컷 마시자고요!

비비안 : ......

와트 : 피터! 장교님께 버릇없이 굴지 마라!

비비안 : 괜찮다. 귀관들이 불편하지 않다면 나도 참석하지.

와트 : 엇,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피터 : 야호! 어서 술을 나릅시다!

수비대원들 : 성유물을 되찾아 온 장교님을 위하여! 건배!!

한나 : 줄곧 느꼈지만, 여기 국경수비대는 군대가 아니라 좋은 친구 사이들 같네요.

비비안 : ... 네. 격식이 없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네요.

비비안 : 그간 저와 함께 다니느라 한나 씨도 고생하셨습니다. 같이 드시죠.

한나 : 아, 아뇨. 전 술은 못 마셔서요. 먼저 숙소로 들어가 볼게요.

한나 : 그리고 누군가는 남아서 성유물을 지켜야 하니까요.

비비안 : 그런 이유라면 저도 가겠습니다.

한나 : 후후, 저는 정말 괜찮아요.

한나 : 오늘 열리는 잔치는 래시포드 씨가 주인공이잖아요. 어서 가 보세요.

비비안 : .....

비비안 : 알겠습니다. 그럼 인사치레만 하고 빨리 돌아가기로 하죠.


한나 : 속여서 죄송해요, 래시포드 씨.

한나 : 하지만 형제들의 사명을 이루려면 ...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큐리안 : .....

비비안 : 여기에 있었군, 지휘관.

큐리안 : 장교님?

비비안 : 다른 병사들은 먹고 마시기 바쁜데,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는 거지?

큐리안 : 이번 전투 중에 총이 망가져서 손을 좀 보고 있었습니다.

비비안 : 재미없는 녀석이군. 오늘은 나라의 숙원을 이룬 날로 기록될 텐데.

비비안 : 받아라. 내가 주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하진 않겠지?

큐리안 :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비안 : 흐음... 20년 전 총사대에서 쓰던 총기 모델인가?

비비안 : 이왕이면 신품으로 바꾸도록. 내가 지원해 주겠다.

큐리안 : 말씀은 감사합니다.

큐리안 : 적어도 기억을 완전히 되찾기 전까지는 함부로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큐리안 : 하지만 이건 허밋과 함께 제 과거를 대신 기억해 주는 몇 안 되는 물건입니다.

비비안 : 참 남다른 고집불통이군.

비비안 : 좋았어. 잠깐 비켜 봐라. 내가 직접 봐 주지.

큐리안 : 취하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비비안 : 흥, 차기 수석 기술자를 우습게 보지 마라!

비비안 : 팔도 다친 주제에 끙끙대지 말고 비켜!

비비안 : 으음... 뭐지? 내가 배운 구형 모델의 설계와 다르잖아?

비비안 : 아니, 총기로서의 기본동작원리는 거의 같지만... 프레임에 미세한 차이가 있어.

비비안 : 마치 있어야 할 부분이 사라진 것 같은...


큐리안 : 괜찮으십니까? 점점 얼굴이 붉어지고 있습니다만.

비비안 : 지, 집중에 방해된다. 말 걸지 마.

비비안 : 혹시 전투 중에 총기가 파손되거나 부품을 잃어 버린 적 없나?

큐리안 : 제가 기억하는 원형 그대로입니다. 그랬으면 눈치를 챘겠죠.

비비안 : 흐응...... 그렇단 말이지.

비비안 : 일단 구부러진 노리쇠와 망가진 실린더는 고쳐 뒀다. 당장 쓰기엔 지장 없을 거야.

큐리안 : 감사합니다.

큐리안 :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돌려드리는 걸 깜빡했군요.

비비안 : 이건 ... 내 펜던트? 언제부터 가지고 있던 거지?

큐리안 : 그 분류 미상의 침식체에게 공격 받았을 때 떨어트리셨더군요.

큐리안 : 가지고 있는 동안 증폭기를 삽입해서 부족한 출력 문제를 개선해 봤습니다.

큐리안 : 한 번밖에 쓸 수 없으니 시험해 보진 못했지만, 아마 반경 100미터까지는 

간섭이 가능할 겁니다. 


비비안 : 100미터.. 라고?

비비안 : 잠깐! 누가 멋대로 내 물건을 개조해도 좋다고 했나?!

큐리안 : 제 판단이 장교님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죄송합니다.

비비안 : .....

비비안 : 아니야. 언성을 높여 미안하군.

비비안 : 나는 귀관에게 사과 받을 입장이 못 돼. 거짓말을 했으니까.

큐리안 : 거짓말이라고 하셨습니까?

비비안 : 이건 장교들에게 지급되는 물건 같은 게 아니야. 

어머니가 남겨 주신 소중한 유품이지.

큐리안 : 이런. 원형 그대로를 간직해야 할 물건에 제가 몹쓸 짓을 하고 말았군요.

비비안 : 꼬투리 잡는 거 아니야!

비비안 : 그만큼 중요한 거라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니까.

큐리안 : 분실물을 찾아다 드렸을 뿐입니다. 별말씀을.

비비안 : 능청스러운 놈......

비비안 : 그래서, 한 가지 묻고 싶다.

비비안 : 혹시 그 시신들을 보고 ... 총사대원들의 최후가 어땠는지 떠올랐나?

큐리안 : 아니요. 무엇 하나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큐리안 : 성유물을 노린 자의 짓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어쩌면 다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비비안 : 다른 이유?

큐리안 : 제 기억 중에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비비안 : 왜 감추고 있었지? 내가 알아선 안 될 내용이라도 되는 건가?

큐리안 : 장교님의 신뢰를 잃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비안 : 그래?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 네놈도 내가 지긋지긋해진 건가?

큐리안 : 장교님이라면 제1 총사대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비안 : .....

비비안 : 그럴싸한 이유군. 말해 봐라.

큐리안 : 제가 기억하는 과거의 단편에서, 저는 제 손으로 부관을 찔렀습니다.

비비안 : 자신의 부하를....? 그가 성유물을 탐내서 배반이라도 했나?

큐리안 :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반대로 성유물의 정체를 알던 제가 부하를 배반한 것일지도 모르죠.


비비안 : 배반... 배반이라고 했겠다.

비비안 :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해 두지. 귀관은 전우에게 악의를 품을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큐리안 : 처음 들어 보는 호평이군요.

비비안 : 추후 사건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그 진상도 규명될 수 있을 거다.

비비안 : 그 자리에 있었던 부대원들의 희생은 단 하나도 헛되게 하지 않겠어.

큐리안 :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비비안 : 그래서 말인데...


비비안 : 귀관도 내일 우리와 함께 수도로 가지 않겠나?

큐리안 : 수도로 말입니까?

비비안 : 그곳에서 귀관의 침식 증후군 치료를 도와 주지. 신변은 내가 보장해 주겠다.

큐리안 : 제가 침식증후군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비비안 : 귀관을 병실로 데려갔던 날 잠결에 들었다.

비비안 : 아무튼 왕실에는 귀관 같은 말기 환자들을 여러 명 담당해 본 명의도 있어.

비비안 : 여기서 지내는 것보단 훨씬 덜 힘들 거야.

큐리안 :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습니다.

큐리안 : 몇 번 신세를 지고 나니 병상보다는 벌판의 그루터기가 더 편하더군요.

비비안 : ..그렇군. 귀관의 뜻이 정 그렇다면 더는 강요하지 않겠다.

큐리안 : 저희 부대가 도움이 되었기를.

비비안 : 물론이다. 인재를 둘이나 놓치게 만들다니 괘씸한 부대이긴 하지만.

비비안 : 그럼, 이 마지막 한 잔으로 작별이군.


비비안 : 앞서 쓰러져간 이들의 이름이, 당신의 의지와 함께하길.

큐리안 : 당신의 이름이, 앞서 쓰러져간 이들의 의지와 함께하길.


2-9 인터루드#9


비비안 : 푸하아......

비비안 : ...술이라는 건 기분이 참 좋군.

큐리안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미성년자셨군요.

비비안 : 웃기지 마라! 이래봬도 장교다! 성인이라고!

비비안 :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던 건 그저

비비안 :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큐리안 : ...장교님은 지금도 충분히 강해보이십니다.

비비안 : 흥, 뻔한 거짓말을.

큐리안 : 역시 티가 났습니까?

비비안 : 아부를 할 거면 제대로 해! 중간에 관두지 마!

비비안 : 흥.


비비안 : .....

비비안 : 내 아버지는 왕실 최고 기술자로서 폐하의 신임을 한몸에 받던 분이셨다.

비비안 : 평민 출신임에도 방계 왕족이셨던 어머니와 혼사를 치를 정도였어.

비비안 : 하지만 아버지의 상관이 뒤집어쓴 오명 때문에, 

우리 가문의 명예마저 바닥으로 실추하고 말았지.

비비안 : 가문의 명예를 다시 드높이고자 나 또한 최고가 되려 노력했지만...

비비안 :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오명의 멍에를 떨쳐내기엔 역부족이더군.

큐리안 : 그래서 이곳에 오신 거군요.

큐리안 : 성유물과 함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비비안 : 그래.

비비안 : 이건, 지금까지 귀관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하는 얘기다.

비비안 : 나 같은 귀족은 공정함을 중요시하는 법이니까.

큐리안 : 저를 믿어주셨다니 기쁘군요.

비비안 : 아니, 난 지금도 귀관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아.

비비안 : 다만 오명을 뒤집어쓰고 좌절을 겪는 이가 있다면, 그것을 좌시하지 않을 뿐.

비비안 : 그게 하물며 내 가문을 궁지로 몰았던 내 아버지 데이빗 래시포드의 상관

비비안 : 제라드 큐리안이라 하더라도......!

큐리안 : .....

큐리안 : 장교님, 저는...

비비안 : 크어어어......

큐리안 : .....

엘라 :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들어와 봤는데. 무슨 일이야?

큐리안 : ...별 일 아니다. 장교님께서 아무래도 술에 강한 편은 아니신 것 같군.

엘라 : 맡겨 둬. 내가 방까지 모셔드릴게.

큐리안 : 부탁하지, 대장.


비비안 : 이게 숙취라는 건가?

엘라 : 가벼운 외상입니다. 목공탁자에 머리를 찧으셨어요.

비비안 : 으음... 수비대장..?

비비안 : 부축하지 않아도 돼. 혼자 걸을 수 있다.

엘라 : 이마에 혹이 났는데, 약이라도 발라드려요?

비비안 : 괜찮다. 통증 덕에 술도 깼어.

비비안 : 그리고. 자네에겐 이 말을 전하고 싶군.

비비안 : 이번 임무를 도와준 것에 뒤늦게나마 감사를 표한다.

엘라 : ...왕립군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비비안 : 귀관이 만든 감자 스튜... 제법 맛있더군.

엘라 : ..마음에 드셨다면, 내일 아침까진 드시고 가시죠.

엘라 : 베이컨을 넣을 예정이거든요.

비비안 : 그렇게 하지.


비비안 : 음? 이 연락처는?

비비안 : 전화 받았습니다. 비비안 래시포드 장교입니다.


아, 래시포드 장교님?

딘 코너 : 전 제프티 바이오테크의 대표 딘 코너라고 합니다.

딘 코너 : 저희 회사와의 협업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신 노르드나빅의 재건단 분들에게 

불미스러운 사고 소식으로 먼저 연락을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비비안 : 불미스러운 사고라니?

비비안 :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딘 코너 :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3개월 전 성유물 조사를 위해 파견을 약속드렸던 

직원 한나 엔더슨 양에 대한 얘깁니다. 엔더슨 양으로 확인되는 시신이 

오늘 아침 해안가에서 발견되어 지금 막 수습된 참입니다.

딘코너 : 파견 당일 크루즈를 타고 이동하던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더군요.

비비안 : 잠깐. 한나 씨가 살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딘 코너 : 저희 같은 청렴한 회사가 이런 사건에 휘말려 저도 무척 당황스럽습니다만..

딘 코너 : 부검 측에선 그녀의 사인이 익사가 아닌 총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라고 합니다.

비비안 : ........

딘 코너 : 어쩌면 저희가 맺은 협업관계를 질투하는 악의적인 사보타주일지도 모르니, 

앞으로도 다른 회사의 협업 제안은 조심하시는 편이...

딘 코너 : ... 장교님? 듣고 계시나요?

비비안 :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죠.


...

비비안 : 한나 씨?

비비안 : 슈트를 입고 계시지 않은 모습은 오랜만이군요.

한나 : 네, 이제 침식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비비안 : 계속 방에 계셨던 겁니까?

한나 : 그럼요.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나 : 아무도 없는 사이에 누가 제 물건을 빼앗아가면 곤란하잖아요?

비비안 : 그 손에 들고 있는 게 네 물건이라고? 어이가 없군.

비비안 : 넌 도대체 누구냐? 왜 한나 씨를 살해한 거지?

한나: 그런 말씀은 섭섭하네요. 당신과 3개월 동안 함께 정을 쌓아온 한나는 바로 저라고요.


한나 : 래시포드 씨.

비비안 : .......

비비안 : 날 속이고 여기까지 온 건, 그 성유물을 노린 거였나?

한나 : 음?

한나 : 아,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구해주신 이거 말이죠?

한나 : 이건 성유물이 아니라 악기랍니다. 

가증스러운 엘리시움 녀석들에겐 심장과도 같은 힘의 원천이랄까요?


비비안 : 그게 성유물이 아니라고? 무슨 헛소리지? 

우린 분명 성유물의 시그니처 패턴을 추적했을 텐데?


한나 : 후후, 아직도 그걸 믿고 있다니 귀여우셔라.

한나 : 시그니처 패턴이라는 건 완전 뻥이었어요.

한나 : 정착자의 후손들이 성유물의 정체를 숨긴 덕분에 

여러분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할 수 있었죠.

그림자도 아니고 성유물의 시그니처 패턴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할 리가 없잖아요?

한나 : 성유물에 깃든 "정령"을 고작 기계 따위로 감지할 수 있을 거라 믿다니. 머저리들.

한나 : 어머...?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못된 말이 나와버렸네요.

한나 : 힘을 얻으면서, 사악한 그림자 년의 기억과 성격도 조금 가져와버리고 말았거든요.


비비안 : 뭐가 됐든. 그걸 가지고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마라.

비비안 : 취조실에서 네 목적부터 숨기는 비밀까지 낱낱이 파헤쳐주마.

한나 : 래시포드 씨, 저는 지금부터 성유물을 찾으러 갈 거예요.

한나 : 저희가 원했던 건 이 악기의 힘뿐이었지만, 마침 떠올라버렸거든요.


한나 : 성유물을 운반하던 진짜 큐리안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말이예요.

비비안 : 뭐?

한나 : 하지만 떠나기 전에 이 힘을 살짝 시험해봐야겠어요.


...

수비대원A : ... 음?

수비대원A :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수비대원B : 치, 침식체? 대체 언제 외성 안쪽까지 들어온 거지?

수비대원A : 위험해! 이대로는 주민들이 공격받고 말아!

수비대원A : 어서 저것들을 쏴 버려!

수비대원B : 잡았다!

수비대원A : 쓰러트린 건가?

외성 주민 : 쿨럭... 아파.

외성 주민 : 이... 이봐. 왜 날 쏘는 거야?

수비대원A : 인간 흉내를 내는 건가? 혐오스럽군. 내가 마무리 지을게. 

외성 주민 : 안 돼, 잠깐...! 사... 살려줘!

수비대원A : 잘 가라, 이 괴물아.

수비대원A : 후... 이걸로 안전해진 건가?

수비대원B : 으, 으아악!

수비대원A : 갑자기 왜 그래?

수비대원B : 치.. 침식체가 또 나타났다!

수비대원A : 뭐? 여긴 이제 아무것도 없어. 대체 뭐가 있다는......

수비대원B : 죽어! 죽어버려!

촌장 오닐 : 이봐! 이게 무슨 짓인가!

수비대원B : .....

수비대원B : 촌장님..?

수비대원B : 피하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침식체들이 외성 안으로 들어왔어요!

촌장 오닐 : 침식체가 어디 있다는 건가! 정신 차리게!


수비대원B : 아닙니다! 여길 보시면 저희가 벌써 두 마리나...

수비대원B : 어?

수비대원B :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수비대원B : 죄송합니다, 촌장님... 저 같은 살인자는 죽어야 해요.

촌장 오닐 : 안 돼! 그만둬!

피터 : 대장님!

엘라 : 총성은 들었다. 무슨 소란이지?

피터 :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엘라 : ...뭐라고?

한나 : 아하하하하하!

한나 : 들리세요? 제 연주에 호응하는 저 환호성이?

비비안 : 비명소리...?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비비안 :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한나 : 음악으로 기적을 전파하는 거예요, 래시포드 씨.

한나 : 실존하지 않는 행복도, 슬픔도, 두려움도

한나 : 귀를 울리는 선율만으로 얼마든지 느낄 수 있거든요.

한나 :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이 능력을 쓰니 제 자신이 점점 잊혀지는 느낌이에요.

한나 : 래, 래시포드 씨? 저요. 저 눈이 너무 아픈데, 거울이 없어서요. 제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죠?

비비안 : ... 완전히 미쳤군.


한나 : 아아... 아파..... 난 힘을 얻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아픈걸까요?

한나 : 시커먼 속삭임이 들려요. 무, 무서워요. 저 좀 도와주세요.

래시포드 씨의 살점을 도려내면 조금 진정이 될 것 같은데 도와주실 거죠?

한나 : ...어라? 

엘라 : .....

엘라 : 방금 그 불길한 소리를 낸 게 너였나?


비비안 : 수비대장?

엘라 : 물러서시죠.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한나 : 아아... 안녕하세요, 대장님?

한나 : 제 연주를 듣고 여기까지 난입하신 건가요? 관중매너가 영 꽝이네요.

엘라 : 넌... 그림자군.

한나 : 아하하하! 그림자라는 것도 아세요? 못 배운 외성 출신치곤 똑똑하시네요.

엘라 : 요리를 하는 사람은, 후각이 예민하거든.

엘라 : 특히 너처럼 더러운 피를 가진 침식체라면 말이지.

한나 : 틀렸어요. 전 그저 그림자의 힘을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거든요.

한나 : 그리고 마침 당신 같은 카운터가 나타나줬으니, 이 힘을 시험해 봐야겠어요.


엘라 : 커헉!

한나 : 와아, 정말로 내 공격이 통했어.

한나 : 이 힘이라면 정말로... 펠릭스 님 말씀처럼 관리국에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몰라.

비비안 : 으아아아아!!!

한나 : .....

한나 : 푸훕.

한나 : 아하하하핫!

한나 : 그깟 권총으로 절 죽이려고요? 래시포드 씨는 정말 귀여우시네요.

비비안 : ... 칫. 통하지 않는 건가?

엘라 : 하아... 하...

한나 : 일어나려는 건가요? 소용없을 텐데?

엘라 : 큭.. 크윽...

한나 : 뭐하는 거야? 소용없대도?

엘라 : .......

비비안 : 엘라... 대장?

한나 : 앗, 미안해요. 힘조절을 잘못했나?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한나 : 근데 이거...

한나 : ... 엄청 기분 좋네요. 그 배에서 연구원을 죽였을 땐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는데 말이예요.

한나 : 래시포드 씨. 이제 당신 차례예요. 래시포드 씨도 필사적으로 저항하실 거죠?

한나 : 발톱부터 하나 하나 천천히, 제가 연주해드려도 될까요?

비비안 : 미친 자식. 네놈의 장난감이 될 바엔...

비비안 : 으앗?!

한나 : .....

한나 : 어라? 


( ... )

큐리안: 괜찮으십니까?

비비안 : ... 지휘관? 어떻게 여기로 온 거지?

큐리안 :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오는 길입니다.

큐리안 : 엘라 대장이 장교님의 호위를 맡기로 했습니다만.. 계획이 꼬여버린 모양이군요.

비비안 : 문제가 생겼어! 저건 이제 한나가 아니라 그림자다!

큐리안 : ... 알고 있습니다. 기억 속에서도 비슷한 연주소리를 들었으니까요.

큐리안 : 경황상 저희가 찾은 건, 성유물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비비안 : .....

비비안 : 곁에 있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은 내 실책이다. 설마 그녀가 그런 짓을 벌일 줄은...

비비안 :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비비안 : ...수비대장이 이곳의 유일한 카운터야.

비비안 : 그녀가 그렇게 쉽게 당했다는 건, 평범한 인간들만으론 상대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비비안 :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지금은 도망쳐야 해. 내가 왕실에 지원을 요청하겠다.


큐리안 : 국경수비대가 외성을 포기하고 물러나면, 이곳을 믿고 있던 도시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큐리안 : 지원을 기다리더라도, 저희는 이곳에서 버텨야만 합니다.

비비안 : 하지만...!

비비안 : 침식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큐리안 : 아무래도 포위당한 것 같습니다.

큐리안 : 침식체가 스스로 보일만한 행동체계는 아니군요.

한나 : 그렇게 쉽게 놓칠 줄 알았나요?

비비안 : 이 침식체들은 전부 네놈이 끌어들인 건가?

한나 : 맞아요. 침식체들도 제 연주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비비안 : 그림자의 힘으로... 침식체를 조종한다고?

한나 : 후후, 멋지지 않나요? 이 악기의 힘이라면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거예요.

한나: 지금 감정은 어때요? 절망스럽나요?

한나 : 이걸로 당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큐리안 : .....


한나 : ..후후, 당신들은 참 고집스럽네요. 

총알 따위는 소용없다는 걸 꼭 해봐야 아는 건가요?


큐리안 : 그냥 총알이 아니다.

큐리안 : 비상탈출 수단이라는 거지.

한나 : 이건... 빛?

피터 : 3시 15분 방향! 지휘관님의 유도신호 확인!

와트 : 방위 조정! 전 포대 발사 준비!

와트 : 발사!

비비안 : 맞힌 건가?

큐리안 : 포위망을 뚫었을 뿐입니다. 곧 다시 쫓아오겠죠.

비비안 : 이제.. 어쩔 셈이지?

큐리안 : ...

큐리안 : 엘라 대장이 당한 이상, 지금 저희 수비대의 힘만으론 그 자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우선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