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허억...!"



도붕이 자식이 어디로 도망칠지는 대강 안다.

나와 다닐이 걸어왔던 갱도.

이렇게 대규모로 또 분탕을 쳤어.


그리고 도망치고 있다는 건 딱 하나뿐이지.

저 자식 지금 함선을 열러 가는거야.


코핀을 열면, 일단 좆되는 건 무조건 나야.

솔파미레시도가 나타나면 망하는 건 나야.



나는 도붕이가 내던진 이터니움 합금을 쥐고서 따라 붙는다.




"허억...허억...!"


젠장, 아까 무너진 건물 잔해의 먼지랑 가스 같은 게 얼굴에 달라 붙어서 눈을 잘 못 뜨겠어.

오른 손으로 닦아낼수록 눈이 따가워. 갱도 입구는 중간에 탁 트인 공동까지 좁아서 제대로 뛸 수도 없고.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함선을 열게 둘 수는 없어. 여기서 저 녀석을...!







아~ 알렉스 젖통 쥐고 아득바득 질싸하고 싶다~ 

-44







"허억...허억..."



곧 공동이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었던 좁은 곳이 끝나고, 중간에 살짝 넓은 공간이 나온다.

도붕이 같은 인기척은 없다. 따가운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거세게 숨을 몰아쉬는 내 숨소리만 크게 울릴 뿐.

함정... 일수도 있어.



여기까지 달려오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오른손으로 턱 밑을 흐르는 땀을 훔친다.



함정이면 어쩌지.

덮쳐오면...




그 때는 싸울 수 밖에 없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결국 도플갱어 메이즈 전대도 여기까지 쫓아 올 거야.


운이 좋다면, 거기서...





"허억...후우...후..."




"후우...후우..."



조금씩 숨을 고르면서, 공동 안으로 들어간다.

주변은 어둠. 하지만 반대편 출구에서 스며드는 빛 탓에 조금씩 공간이 밝아졌다가 말았다가 하고 있다.

그리고 불어드는 한기. 


꿀꺽, 하고 침을 삼키고서 주변을 경계하며 걸어간다.



오른 손에는 아까 도붕이가 버리고 간 이터니움 합금.


다닐이 말하기로는 금속끼리 부딪히면 불이 일어난다고 했다.

마땅한 무기가 없어서, 주워 왔지만 여차하면 그 자식의 슈트를 내리치면 어떻게든 될 지 몰라.




"..."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핀다. 발걸음을 옮기며, 도붕이를...!








https://youtu.be/WBbVUDVJb3M







"게이게이게이야, 이기지도 못하는데 왜 쫓아 오노?

 나한테 대줄라고?"




공동 안을 울리는 목소리.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어 올려서 반응한다.

젠장, 동굴 안이라 그런가 울려서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너야말로, 뭐하자는 거야?"


"뭐가?"


"이렇게 크게 분탕치면... 도플갱어 메이즈 전대가 올 게 당연한데..."


"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뭐야, 왜 갑자기 웃는거지.




"그 새끼들이 뭔데? 기껏해야 엑스트라 새끼들이잖아."


"그것보다 이 새끼 아직 정신 덜 차렸네."


"..."



어디지. 아직 발소리는 없다.

도붕이는 무기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았어. 그러면 지난번처럼 그 늑대처럼 변하는 걸 쓸 거야.

다행히 여기는 그렇게 넓지는 않아. 설원처럼 넓어서 원을 그리며 달려 오는 건 불가능 해.

무조건 정면. 휘유우우, 하는 눈보라 소리. 그 탓에 공동 안이 다시 한 번 어둡게 변해가고 후투두둣하는 눈발이

파고든다.


"덜 차린 건 너지. 그렇게 쳐 맞고도 나한테 덤벼?"


지난 번 루프 때. 도렉스쟝에게 힘을 받아서 카운터가 되었을 때. 반죽음으로 만들어줬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 마무리를 했어야 했어. 그러면 지금까지 상대할 이유도 없는데.

아냐, 진정해. 그건 지난 일이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다시 숨이 차오른다. 목덜미부터, 엉덩이 골까지 흐르는 땀.



"...개새끼가..."


"엑스트라는 따지고 보면 너지. 도붕이 이 씹새야. 결국 내 도플갱어 주제에...!"


"하, 하하하하하. 이 새끼야. 뭐라고?!"



목소리가 조금씩 떨린다.

어디지? 어디야?



"틀린 말 했냐?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나보다 늦게 루프하는 거잖아"



"루프? 하, 이 새끼 보게?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네."



"뭐가."



어디야, 어디에 있는거야.

벽면을 이 합금으로 긁어서 불을 일으킬까? 아니야. 그러면 오히려 내 위치가 들킬거야.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면서 시간을 벌자.


어차피 곧 이 상황을 보고 도플갱어 메이즈 전대가 온다.

그럼 상황이 좀 곤란해지겠지만, 적어도...



"설마 너 내가 널 먹을 때마다 내 루프가 빨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냐?"


"무슨 소리야?"





-게다가 말 좀 들어 봐. 루프라고 했지만 이거 그냥 니가 루프할 때, 내 기억이 돌아오는 거거든?

-근데 그 시점이 너무 늦더라고. 깨어나도 이미 니가 죽었거나, 뭐 전장 한복판이면 답이 없지.


라고 말한 건 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거든. 이제 한 이틀쯤 되려나.

-여기 암호도, 니가 이 침식체년을 따먹으려고 지랄하고 있다는 것도.

-이틀 정도면 여기 내 머리에 들어온다니까?


라고 말한 것도 너다.




"반대야 병신아. 내가 널 흡수할 때마다. 니가 돌아오는 게 늦는거라고!"





아,


그러고보니 이번 루프는...

발레리가 죽은 곳이 아니었어.

내가 그림자 류드밀라를 저격하기 위해서 전차가 있는 포대를 향해 걷던 도중.

이미, 슈트를 입은 상태였다.


아, 아냐.

아니. 잠시, 이상해.


왜냐면 난 그 루프에서는 도붕이한테 먹힌 적이 없어.



"구라치고 있네. 난 그 때 너한테 먹힌 적 없거든?!"


"하, 자기 몸인데도 몰라?"


"뭐가!"


아니다. 듣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여기서 흥분하면 저 새끼가 바라는 대로야. 최대한 시간을 끄는거야.



"크크크크크,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노?"



"그러니까 뭐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무언가들.

무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라진 것들.

굳이 인지하지 않으려, 굳이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




"게이는, 게이가 이렇게 올바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노?"


"...무슨 소리를..."


"푸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학... 하하학...!"



"넌 유사 멘탈 프린팅으로 카운터가 되었잖아 이 병신아!

 마왕과의 계약으로 니 영혼에 묶인 시계를 촉매로!

 그 되감는 시계를 너 스스로 잡아서 돌렸잖아!"



뭐라는거야.

내가 스스로 잡아서 돌렸다고?

유사 멘탈 프린팅?



"흐흐흐흐, 그럼 질문."


"나도 루프하고 있다. 이미 탐미엘의 시계는 너랑 나 둘 다 '너'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이건 내가 널 몇 번이고 흡수해서 얻은 거다. 나도 너라고, 마왕의 계약은 그렇게 보고 있어."


"그게 뭐 어쨌다는건데!"


"크흐흐흐, 흐흐흣... 너는 나한테 흡수 당할 때마다, 네 자신을 잃어버리지. 뭐 원래라면 한방 컷인데

 탐미엘의 계약 덕분에, 몇 번이고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빡통 새끼야 생각을 해봐라"



"마왕의 계약은 너를 흡수한 나를! 너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그러면 너한테는 결손이 없겠어?"



"..."




그림자 류드밀라가 사라질 때,

도플갱어 알렉스가 사라질 때,

전장에서 메이즈 전대원들이 죽어갈 때,


느꼈던 묘한 따스함.



그리고 무엇보다..





"넌 나한테 흡수 당할 때마다 혼의 결손이 일어났지.

 총량은 변함이 없을테니 나머지는 내가 갖고 있다고. 그래서 넌? 

 뭘로 그 결손을 채웠을 거 같아?"



"서, 설마..."




"죽어 간... 도플...갱어나... 메이즈..."



"흐흐흐흐흐흐, 흐흐흐..."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하잖아.

멘탈 프린팅은 자아가 없는 육체에 카운터 의식을 집어 넣어서

유사 카운터를 만드는거잖아.


그 말대로라면



"개소리 하고 있네 이 새끼. 그럼 왜 처음에 류드밀라나 다른...!"



"어디까지나 결손을 채우려고 빨아들인 거랑, 존재 자체가 통째로 넘어간 게 같겠냐?

 아니, 어쩌면 한계점까지 차있다가 그 씨발년 때문에 한 방에 변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딴 이야기 할 필요도 없잖아? 니 와꾸를 보세요. 그게 너냐?"



"..."




마치 알렉스를 억지로 남자로 바꾼 듯한 얼굴.

머리칼과 눈만이 내 본래의 검은색.



출렁이는 배도, 늘어진 젖도, 수염도 없다.




"메이즈 전대를 위해서? 올바른 결말? 웃기시네.

 니 행동이, 니 사고방식이, 니가 내뱉는 말들이, 조금...

 아니 존나게 달라졌다는 걸 몰라? 크흐흐흐흐..."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생각해보면, 왜.


왜 나는 메이즈 전대에게 올바른 결말을 가져다 주려고 했지?

그게 왜 옳다고 믿었을까? 젖통을 쥐러 왔는데, 알렉스한테 질싸하러 왔는데.

왜 점점...




"그, 그건..."



아냐, 아니다.

나도 사람이야. 발레리를 보고, 그림자 류드밀라를 만나고, 메이즈 전대와 함께 싸우고

함께해서 조금씩...



"내가 말해줄까? 넌 이 새끼야 넌 이미 너 자신조차 아냐!

 그 얼굴이 증거라고!

 넌 바뀐 게 하나도 없어."


"그냥 니 안에 녹아든 그 씨발년놈들의 정신상태에 따르고 있을 뿐이고

 그냥 개씨발 병신 오타쿠새끼인 건 그대로라고 씨발놈아!"



"병신새끼가 고작해야 게임 캐릭터 새끼들, 꼴리라고 나온 새끼들,

 죽으라고 나온 새끼들한테 빠져 가지고!!! 그딴 엑스트라 새끼들한테...!"



"..."



사실이겠지.

아니라고 단언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용납할 수 없는 게 있다.

사실이니까, 더더욱.




"엑스트라고 말하지 마 이 새끼야!"



오른손에 쥔 합금을 벽을 향해 내려친다.

그래, 그들은 살아있었다. 누구보다 살고 싶었고, 누구보다 죽기 싫어했다.

엑스트라라고? 게임 캐릭터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내뱉어?


지금 살아있고, 숨 쉬고 있는데, 너도 그 마찬가지인 현상인 주제에.

그딴 식으로 말을 해? 그건, 마치...


'아니 씨발 이런 혐짤 좀 올리지 말라고 개새끼들아'

'완장 차단 안 함?'



'히히히, 병신들 게임 하나 망한 거 가지고 존나 과몰입하네.'




그건 예전의 나...







"병신."




불꽃이 일자, 순식간에 번쩍이는 무언가.

그대로 뒤쪽으로 날아간다.




"크으읏...!"



"이 새끼야...! 어? 과몰입이나 하는 찐따 새끼 주제에..."




"으으읏...아아악...!"




도붕이의 양 무릎이 내 팔을 찍어 누른다. 동시에 체중으로 상체를 짓눌러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든다.

아직 놓치지 않은 합금으로 몸을 긁으려고 하지만, 오른팔이 올라가질 않아.

젠장 무릎에 알통이 완전히 눌려져서...



"이러니까 쳐발리지. 어? 누가 씨발"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도붕이의 얼굴.

그 뒤로 도붕이의 팔이 올라가는 게 보인다.

씨발...!



"게임에"


"크앗...!"


"과몰입"


"아악...!"


"하라고"


"억...!"


"칼이라도"


"웃"


"들이!"


"크어...!"


"밀던?!"




뇌가 흔들려.

머리 아파. 코가...코가...


피하려고 고개를 틀어봐도 소용 없다. 도붕이가 주먹을 내리칠 때마다 신음을 하는 봇처럼

얻어 맞는 수밖에.




"끝이다. 이 새끼야. 니 뒤쳐진 루프 시점을 보니까, 끽해야 앞으로 두 번 내지..."


"아니다, 넌 씨발 니 손으로 그 시계를 돌려버렸으니 더 빠를지도 모르겠네? 흐하하하흐흐흐..."


"으읏....으...!"



제, 젠장.



"좆밥 새끼가 뭐라도 된 줄 알아요. 스비갤에서 분탕치던 거 그대로 맞아보니까 맛이 어때?

 얼얼하지?"


"바...박상연... 같은 새끼..."


"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흐흐하하하하하!

 병신아. 그럼 때리기만 한 거니까 존나 이득이네?"



끝이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도붕이의 얼굴이 갈라진다. 4개로 갈라져서, 흡수하기 위한 형태를 갖춘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다. 씨발년아!"



"씨바아아알...!"











그 사이를 가로지는 건 총알 하나.

무언가를 노렸다고 하기엔 조잡했다.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쏴제낀 것이 분명했다.

그야, 이걸 쏜 건...




"뭐야 씨발...!"



"다...다닐...!"





"허억...허억... 여어... 발레리... 약속대로 왔다고...?"



공동의 입구에서 숨을 헐떡이며 핸드건을 든 다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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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떡밥이 너무 오래 되어서 굳이

대사까지 가져 와서 붙였음.


이제 남은 떡밥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