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 지랄들 하고 계시구만.
20년이다. 20년이나 지났어.
댁들이 멸시하면서 부르는 '바퀴벌레' 하나조차 어찌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고.
뒤쳐져간다. 약한 새끼들부터 뒤쳐져간다.
살아남기 위해서 버텼던 시간.
살아남기 위해서 버텨왔던 순간들
전부 다, 약한 새끼들부터 스러져 간다.
포탄에 맞아서, 자기 자신의 한계에 닿아서, 또는 뭐...
여러가지겠지.
"다닐...나는...! 살...고..."
뭐라는거야 병신이.
언제부터 친했다고 친한 척이야.
도플갱어 주제에.
뭐라는거야. 산다니.
거기에 뭔 의미가 있다고.
결국 우리는
한 때의 침식 현상에 지나지 않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의 이야기
-1
우리들은 결과다.
과정 없는 결과다. 이유없는 이유다.
태어났던 순간부터, 이해했고.
시간이 흘러서 난 더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그야, 남에게 빌려온 존재임과 동시에 시간이 정해진 생명이니까.
생명이라는 표현 자체가 웃기네.
침식체잖아 우리는.
도플갱어는 원본을 흡수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반쪽짜리.
아니, 처음부터 반쪽짜리다.
이유같은 건 없다.
그런 존재니까, 그런거다.
그게 얼마나 허망하고, 동시에 부질 없는지 울고 싶을 정도다.
원본이 느꼈던 모든 것들의 결과값만이 있다.
그게 얼마나 허망한가.
감정에 매몰 된 새끼들은 모르겠지.
하지만 난 안다.
내 원본이 얼마나 쓰잘데없는 일을 했는지, 쓰잘데 없는 감상을 품었는지.
나는 안다.
원본은 그걸 티내지 않으려고 수없이 노력했던 모양이지만
내 알바인가?
그리고 그건 관계성에서도 드러난다.
"왜!!! 왜!!! 그딴 바퀴벌레 하나를...!"
"진정해 전대장"
"너희들 때문이다! 너희들 같은 버러지들이...!"
전대를 다스릴 수 없는 년이, 전대장이랍시고 힘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결국 우리를 묶는 건 '메이즈 전대'가 아닌데.
원본을 흡수 할 기회.
단지 그 가능성과 그녀 자신의 힘에 이끌린 것인데.
그걸 모르고 갈갈이 날 뛰고 있다.
"일단, 손실부터 복구하자. 우선은..."
"2소대! 그 자식들 전부 버러지야. 애초에 지원병과가 왜 필요해?
어차피, 정보 오염이 진행 된 기갑이라면 지원병과 같은 버러지들이 없어도..."
"류드밀라!"
"...흥, 너도 그 잘난 연극은 집어 치워"
"결국 그 자식들을 제일 먼저 흡수 할 생각이잖아?"
"후우, 그렇지만 일단은. 이끄는 입장이라는 것도 생각해야지?"
멀어진다.
후, 웃기네.
이런 이야기 할 거면 차라리 주둔지에 좀 떨어진 곳에서 하던가.
병신년들.
보다시피 도플갱어는 씨발이다.
아니, 어쩌면 재빠르게 원본을 흡수할 수 있다면 좀 달랐을지도.
근데 어쩌라고. 이미 다 늦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바퀴벌레를 도저히 잡을 수 없고, 함선 내부로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
결국 함선의 봉인을 찬찬히 뜯어보려면 바퀴벌레를 죽여야 하는데
몇 번이고 실패했다.
정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정말 씨발
개같이
다
실패했고, 다 죽었다.
그렇게 다치고, 병들면 우리는 부상병들을 주워 든다.
그도 그럴게, 지원병과는 필요 없으니까.
도플갱어 병단에서 필요 없으니까.
우리는 말 그대로 짐꾼이다.
그렇잖아?
우리는 도플갱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일종의 침식현상.
그러니 존재정보만 있다면 얼마든지 총기도, 방패도, 만들어낼 수 있다.
지원이 왜 필요해?
존재정보만 있다면 날아간 팔? 팔이 대수냐. 사지조차 재생할 수 있다.
애초에 우리의 본질은 침식파다.
그 결과값인 우리는 침식체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원본을 흡수하지 못하면, 점점 닳아서 없어져버린다.
이상해진다.
과정이 채워지지 않는 결과값은 점점 뒤틀린다.
결국 전제 없는 명제라는 건 없으니까.
누군가는 원본을 뛰어 넘는 걸 바라고
누군가는 원본이 이루지 못한 것을 바라고
누군가는 원본이 가졌던 것을 바라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 좋게 표현하자고.
나 다닐은 일종의 돌연변이다.
아니?
아니야! 나는 그저...
지쳤을 뿐이야.
끝이 없어.
끝이란게 없잖아.
언제 끝나는데.
도대체가.
뭘 얼마나 희생해야 끝나는데?
죽는다.
먹히고.
죽는다.
끝나지가 않아.
도무지가...
사라지는 새끼들은 삶을 부르짖고, 어설프게 살아남은 새끼들은
우리의 연료통이 된다.
그 틈새에서 나는 살았다.
틈새에서 살고 있다.
나는 다닐.
다닐의 도플갱어.
보직은 폭발물 관리병.
이라고 해봤자, 알렉세이와 같은 전차 지원병이다.
그래.
"어머, 팔이 그게 뭐람?"
"..."
나는 숨을 내쉬며, 다 알면서 부산떨고 있는 년을 노려본다.
은발을 부산스레 떨며, 금방이라도 구급상자를 꺼낼 것 같이 움직이더니
내 눈빛을 눈치 챘는지 움직임이 멎는다.
"...다닐"
"뭐"
이미 볼장 다 봤다.
우리는 적어도 그렇다.
그녀가 내 존재를 눈치 챘다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굽힐 이유는 없다.
"너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거니?"
"네 이름을 전대원한테 들었을 때, 그리고 설원 위에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니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그녀는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웃기시네.
이 씨발년.
넌 기껏해야 그 전대장한테 뭐라고 둘러댈까하는 것만 생각한 주제에.
"놀라서 있지? 10년 전 자료를 찾아 봤거든. 다행히 오염 된 네트워크라도 남아있더라구."
"이미 10년 전에 내가 리스트에 넣었을텐데."
"전대장 먹이로."
"흐, 흐흐흐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
"말 해. 다닐. 그 때 분명히 난 너를 전대장 먹이 리스트에 넣었어. 넌 그 때 죽었어야 해."
"왜 아직도 있지? 왜 병사들은 널 기억하지?"
병신 년.
그 리스트를 누가 만든 줄이나 아나?
그 리스트를 누가 만들고, 누가 누구를 먹이로 세우는지 알기나 하나?
나는 테이블 위에 몸을 살짝 넘긴다.
테이블 안쪽의 재떨이.
거기에 손을 뻗어 당긴 뒤, 재떨이 위에 놓여진 담배를 집어든다.
"부전대장. 당신 진짜 전대장 욕하면 안 된다니까..."
"..."
"같이 멍청해빠져가지곤"
"죽고 싶어?"
이런, 불편하네.
한 팔이 없으니까 불편해.
담배를 입에 문다.
참 기묘해 도플갱어란.
이 헬멧이라는 것도, 입에 뭔가 물 때는 스르륵 흘러내리는 물처럼 관통해.
결국 빌려다 쓴 환상,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재떨이 안에 딸려있던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인다.
습, 후우우우.
이건 흉내다.
습관이자, 흉내.
본래의 다닐이라면 담배를 폈었을까.
모를 일이지.
애초에 이 담배가 실제, 그러니까.
노멀사이드의 담배인지 조차도 모호한 판국에 뭐가 중요한가.
"대답 해. 다닐."
부전대장은 턱을 움직여, 플라즈마 대검을 가르킨다.
그럴 필요가 있나? 당신 능력이면 굳이 그딴 거 없어도, 일격에 날 박살 낼 수 있을건데.
후, 후후...
웃긴다.
효율과 경험에 의한 행동
지극히 인간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이라서 웃기다고.
우리는 몰려있다.
자원이 없는 만큼, 굳이 카운터 능력을 쓰는 건 소모.
동시에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같이 했다.
그러니까 힘의 지배에 익숙해져 있다.
"아, 그... 댁한테 매 번 연료 리스트를 짜서 갖다 받치는 새끼가 누군지 참..."
"이름이나 기억할라나?"
"셜리..."
"그건 이미 진작에 당신네들이 처먹은 관측병 이름이고."
보통이라면 여기서 흠칫하지 않을까.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 보통이라는 걸 모르니까.
우리는 그런 걸 모르니까.
부전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를 노려본다.
"그 말대로, 다닐은 죽었어. 아니지. 죽은 건 그 때. 그 셜리라는 관측병이지."
"...어떻게 된 거야?"
"이유야 뭐 여러가지지."
나는 담배를 물고, 막사 안을 걷기 시작한다.
걷는다고 해봤자 세 걸으면 뒤로 돌아.
그 뒤에서 다시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뭐,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 권력이었던 이 전대장 막사를 걷는 건 나쁘지 않다.
"내가 교활해서 나 대신 셜리를 집어 넣고, 죽였다던가."
"셜리가 착해빠진 년이라서 나 대신 희생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네들이 멍청해서 다닐인지 셜리인지 알 바 아니고, 그냥 흡수했던가."
"..."
가늘게 노려보며 나를 봐도 소용 없어 부전대장.
이미 모든 건 지난 일이야.
전부 다 거짓말일 수도
전부 다 사실일 수도 있는 이야기 아니겠어?
우리는 결과.
과정 따위 없는 결과의 부산물이잖아.
"흐응..."
"그래, 그렇단 말이지?"
부전대장은 씨익, 하고 웃으며 노려보던 눈매의 압력을 푼다.
멍청한 주제에 눈치 하나는 빨라.
그래서 전대장보다는 이 년이 그나마 마음에 든다.
"그래서? 너,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그렇게 꽁꽁, 살아남으려고 아득바득 숨어있던 쥐새끼가...
왜 이제서야 거하게 사고를 치는걸까?"
"..."
그래서 싫어.
눈치가 빨라서
곧장 핵심을 찌르니까.
그 이유는, 나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년과 나는 닮았다.
형태가 아니라 형식이 닮았다.
본질에 대해서 사고하는 건 이미 끝났고, 그 다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이 년은 의미 없는 것에 구지 연연하지 않고
나도 마찬가지.
"당신이 원본이 하지 못한 걸 하고 있는 거랑 똑같지."
"..."
"건방지네."
"그럼. 건방져야지. 어쩌면 원본은 너한테 평생 머리 조아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후...후후후...후후후..."
이 년은 원본에 미련이 너무 많다.
따지고 보자면 전대장보다 많을 거다.
굳이 티내지 않을 뿐. 전대장 따위는 비교도 안 되지.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생명은 사는 게 일이야. 추하든, 더럽든, 살아남는게 우선이지."
"생명이라고 하는구나?"
"그럼?"
"지금 살아 있는데, 죽었다고 하기에는 20년 동안이나 버틴 게 병신 같잖아?"
"하긴, 나도 그래."
부전대장은 내게 다가오더니, 내 담배를 빼앗는다.
"다닐 너. 미쳤구나."
"그렇게 따지자면 여기서 안 미친놈이라곤 전대장 하나 일걸?"
"그래. 그 얘는"
"그 년은“
"처음부터 미쳐있으니까."
그리고 폭발음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