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도착한 회사는 전에 봤을 때보단 조금 나아져 있었다.
머신 갑....그러니까 '관리자'가 건물 꼬라지를 보고 좀 보수 공사를 한 건가?
"....돈이...내 돈이 어디 갔지....?"
"....왜 그렇게 울상이십니까, 힐데 소대장님. 혹시 뭔가 잘 안되셨습니까?"
"....대체 죽을 20그릇이나 시켜 먹는 녀석이 세상에 어딨냔 말이다...."
전에 말했던 대로, 난 내 환영식이랍시고 죽 집으로 가버린 힐데에게 엿 좀 먹으라고
가장 비싼 죽으로 20그릇을 해치웠다. 처음 2그릇 정도 먹었을 땐 가소롭다며
씨익 웃던 그녀는 10그릇이 넘어가던 시점에서 표정이 굳기 시작하더니
20그릇에서 그만 하라고 부탁했다, 그 이상부턴 감당 못한다나?
"하하하, 그러게 얌전히 치킨 집으로 가셨으면 2마리 정도로 끝냈을 것을 왜 그러셨습니까."
"닥쳐...."
.....아아, 속이 뻥 뚫리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구나.
덜컥-
간만에 작전실로 들어가자 먼저 들어와 있던 이들이 우릴 반겼다.
펜릴 소대와......'알트 소대'가 말이다.
"-아, 오셨군요. 스승님, 그리고 김식 군."
"....병원비가 빠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건 회사에서 처리해 주네요?"
"아, 저희 회사를 인수하시고 새로 부임하신 사장님 덕분이죠."
"이거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네요, 어쨌든, 지금 막 복귀했습니다, 부사장님."
"네,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 작전 브리핑을 시작할 테니 앉아주세요."
힐데는 진즉 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난 남는 자리였던 유미나 옆에 앉았다.
털썩-
".....후, 잘 지냈냐, 미나야."
"....아마도."
표정이 조금 어둡다, 그러고 보면 이 전에 미나가 작전 도중 어버버 거렸다는 언급이 있었던가?
"그렇게 자꾸 어두운 표정 지으면 어디선가 입 찢어진 미친 광대가 와서 '와이 쏘 씨리어스'거린다?"
유미나는 세상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나름 웃겼던 건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재미 없거든?"
"어어? 목소리 톤 올라간 거 봐라, 너 웃겼지? 웃겼네."
탁탁-
슬슬 작전 설명을 시작하려는 이수연이 탁자를 몇 번 두드리자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럼 작전 브리핑을 시작하죠. 먼저, 지난 번 제 3종 침식체 '3마리'를 처리한 건을 기억하시죠?"
......저건 또 무슨 소리냐, 그때 난 3종을 2마리 밖에 못 봤는데.
"....3마리요? 2마리 아니었습니까?"
"아, 김식 군은 그때 없었으니 모르셨겠지만 요인...그러니까 사장님을 구출하러 갔을 때 3종 한 마리가 더 나타났습니다."
.......아니, 대체 난이도가 얼마나 뛰어버린 거야? 난 펜릴 소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캐 잡았누."
"하하, 저희 스승님께서 힘 좀 쓰셨죠...전 오히려 막 이 업계에 발을 딛은 B급 카운터이신 형님이
3종 두 마리를, 그것도 하나는 강화된 보라색 비스트들을 잡으셨는지 궁금해지네요."
와 씨, 게임 밸런스 봐라, 게임 마스터 년, 이거 밸런스 패치를 이따구로 해?
".....내가 강화 버전을 잡았었어....?"
"네."
"....어떻게?"
"그러게요, 아무리 폭탄을 대량으로 떨궜다지만 좀 신기하더라고요."
.....알트 소대의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내가 요주의 인물로 보이는 것 같다.
하긴, 통수를 때려야 하는데 힐데는 그렇다 치고, 갑자기 어디선가 첫 출격에 비스트와
강화 비스트를 터트려 잡은 미친 놈이 나타나버렸으니 신경 쓰이는 수 밖에.
".....맨정신으로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그 지랄했다가 어떻게 됐는진 다들 알잖아."
이수연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자, 주제로 돌아오죠, 어쨌든 그 건과 관련하여, 관리국에서 새로운 의뢰가 왔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펜릴 소대의 활약으로 현실 세계로 부상한 3종 침식체들을 격파하긴 했지만
해당 지역은 여전히 CSE 3레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이 이야기의 뒷편엔 불쌍한 한 깡통과 그 직원들의 이야기가 있었지.
어느 빌어먹을 씹새끼 때문에 말이지....하지만 지금으로썬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내게 그녀들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리국에선 해당 지역 좌표와 연결된 이면 세계에서 침식 오염을 발생 시키는
침식 코어가 존재할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수연은 알트 소대 쪽을 잠시 바라보곤 살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회사 재정도 조금 좋아지고 해서,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코핀 컴퍼니의 제 2 카운터 소대를 고용했습니다, 서윤 양? 소개를 부탁하지."
그러자 우리 카사의 콩윤, '배신은 두 번 몰아친다'의 주인공, 서윤이 일어나 자기 팀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코핀 컴퍼니에 합류한 알트 소대의 리더, 서윤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 참고로 펜릴 소대의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팬이에요!"
....근데 생각해보니 저 말이 구라핑이었는지 아니었는진 밝혀진 바가 없네.
아니, 역시 구라핑이 맞으려나? 진짜 팬이라면 펜릴 소대의 뒷통수를 그렇게 맛있게 치질 않았을 테니.
주시윤과 나를 팝콘 마렵게 한 알트 소대의 소개가 끝난 뒤, 이수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알트 소대는 아직 정식 프로 라이선스를 취득한 팀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원 B등급 이상의 카운터로 구성된, 언더그라운드에선 꽤 알아주는 카운터 소대입니다.
지금처럼 실적을 쌓아가면 내년 쯤엔 무난하게 라이선스를 따겠죠.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들입니다."
"....(우물우물) 오, B요? 저랑 같은 급이네요? 잘 부탁해, 얘들아~"
"(우물우물)호오?"
"(우물우물)흐음...."
각자 다양한 반응이었고, 같은 팝콘 뜯기였다.
다만 유미나는 조금 주눅이 든 듯 했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여기서 가장 카운터 등급이 낮은 건 미나였다....일단 관리국 기준으론 말이다.
"-아, 그리고 작전부에도 신규 인원을 충원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아주 익숙하도록 봤던 둘이 나왔다, 레나와 클로에.
"-앞으로 작전부에서 여러분을 도와드릴 레나입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클로에 입니다...운명의 이끌림을 따라....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네?"
"으음....."
클로에의 첫 인사는 언제 들어도 참 골 때리는 것이었다.
힐데와 주시윤이 잠시 뇌정지를 일으킬 정도니, 뭐.
"-다들 관상을 보니 파괴와 파멸과 파란의 대흉조가 느ㄲ.....?"
움찔-
".....?"
그런데 클로에가 말을 하다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몸을 크게 떨더니 뒤로 조금 물러났다.
"-히이이이이이이익?!?!?!?!"
"-음? 왜 그래?"
클로에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당신, 마가 아주 흉악하고 이상하게 껴 있는데요!?"
......아니 잠깐만 동작 그만, 너 이 새끼 설마 찐 스타시커냐?
"......."
급기야 클로에는 레나의 뒤에 숨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게 낀 이상한
'마'에 대해서 다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
"-클로에....씨라고 하셨죠?"
"ㄴ....네....?네....그, 그런데요오오.....?"
난 최대한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따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시죠."
"그쪽 점은 안 받....히이이이익!??!?! 못 받아요오오오오오!!!!!!!!!"
후다다다닥-!!!!
-급기야 클로에가 작전실을 박차고 도주했고, 레나가 급히 뒤를 쫓는다.
그리고....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김식 형님? 혹시 뭐 있으신가요? 막, 귀신에 씌였다던지..."
"-전에 호기심에 무당에게 가봤었는데 나보고 마가 이상하게 꼈다고 하더라."
"아하.....그래서 뭐 굿이라도 받으셨나요?"
"아니, 갑자기 부적 한 장 쥐어 주더니 날 내쫓았어."
"......."
주시윤의 입이 닫혔다, 새삼스래 그때 무당의 표정이 떠올랐다.
세상 초연한 듯한, 아니. 그건 결단을 내리고 살기를 체념한 자의 표정이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그 무당은 날 살리려고 부적을 쥐어준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나중에 집을 구하면 안에
그 무당을 기리는 사당을 작게 만들어 줘야 할 것 같다.
".....며칠 뒤에 다시 찾아가 봤는데, 갑자기 돌연사 했다고 하더라고."
".......네?"
"돌연사 했다고, 원인은 불명이래."
이렇게 말하니 다들 표정이 새파래졌다, 왜? 등골이 갑자기 오싹-하디?
"뭐, 그 마가 너희들에게 영향을 끼칠 일은 거의 없을 거야, 나만 개 고생 한다고 했으니."
....물론 그 개 고생의 불똥이 튀는 건 별개의 문제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