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라는 일에 발을 내딛으면서,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수 많은 인간 군상들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요즘 자주 느끼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깔이 돌아버리다 못해 뇌까지 같이 돌아버린 듯한
남자가 앞서 이마에 이상한 부적을 붙여서 쓰러뜨린 대시라고 하던 그림자의 언니인
리타라는 그림자를 제압한 김식 아저씨가 그러했으니까.
그냥 평범하게...아니, 제압하는 과정도 전혀 평범하지 않았으니 의미는 없겠지만,
일단 하다못해 평범하게 이마에 부적을 붙여 쓰러뜨렸다면 또 모를까,
지금 저 남자는 리타의 몸을 사슬로 무슨 미라마냥 꽁꽁 묶어 벽에 사슬 사이에
굵은 막대를 박아서 고정한 뒤에 대시의 이마에 붙였던 부적을 음흉하게 웃으며 쓰다듬고 있었다.
"으흐흐흐흐흐흐흐흐.....보이나? 보여? 여기 안에 대시가 있다.
대시의 영혼이 있다- 이 말이다, 리타 아르세니코.
응?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글쎄,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아냈을 것 같아?
대시가 알려줬을까? 아님 영혼을 받아들이면서 기억을 읽은 걸까?
어찌됐든 네 소중한 여동생, 스피라, 대시는 지금 내 손에 있다.
내 손에서 저항 한번 못하고 쓰다듬어지고 있단 말이다....크크크크크크...."
".....!!!!!!!....!!!!!"
....인격이 봉인됐다고 했던가, 리타라고 불린 그림자는 자신의 몸이 베이든,
찔리든, 꽁꽁 묶여 벽에 고정되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대시와 관련된 것에는 짧게 몸을 움찔 거리며 반응했었는데,
그걸 포착한 김식 아저씨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녀를 옴싹달싹 못하게 묶어
벽에 고정 시키더니 대시의 영혼이 있다는 부적을 가지고 그녀를 능욕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또 효과가 있는지 점점 리타의 몸부림이 심해지고 있으니 김식 아저씨는
도발의 수위를 더더욱 높이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아니, 사정을 아는 사람이 봐도
이건 그를 세간에서 극소수로 존재한다는 시체박이, 네크로필리아라고 확신할 모습이었다...
아니, 근데 저건 그림자라 이터니움 말곤 시체도 없잖아.
슥-
.....아니, 잠깐만. 대시가 죽은 자리에 있던 이터니움은 왜 줍는 건데.
"....이게 대시였던 것이란 말이지?"
".......!?"
....설마,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진짜 아니야, 김식 아저씨!!!!!
핥짝-
끄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미친 아저씨,
기어코 대시였던 이터니움 잔해를 햝았다아아아아!!!!!!!!!!!!!!!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이게 대시의 맛이구나!!!!!!!!"
-저 기행에 피식 웃으며 뭐라 말하려던 솔리키타티오도, 그녀의 어깨를 노리고 검을 휘두르려던 힐데 소대장도,
브리트라라는 저 4종 침식체와 상대하던 우리들조차, 모두 얼어붙은 채 아저씨를 바라봤다.
"!!!!!!!!!!!!!!!!!!!!!!!!!!!!!"
.....그리고 마침내라고 해야 할까, 아님 기어코라고 해야 할까, 눈과 몸의 떨림만 나타나고
공허한 인형과도 같았던 그녀의 얼굴에 마침내 금이 가듯 서서히 힘줄이 올라오고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그러자 솔라키타티오는 기함 하며 크게 숨이 넘어갈 듯 꺽꺽 대더니, 김식 아저씨를 가리키며 외쳤다.
"ㅁ....말도 안돼!!! 이건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단 말이다, 저 미친놈!!!!
내가 손수 재조립한 자매다!!!! 어째서 저딴 저급하다는 말조차 아까운 만행으로 망가진단 말이냐아아아!!!!!!"
.....하긴, 나라도 저런 것에 어이없게 당한다면 뒷골이 엄청 당길 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처음으로 듣는 리타의 포효가 설원에 울려 퍼졌다.
"-야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세상 처절하고 표독스러운 감정이 듬뿍 담긴 포효에 살짝 몸이 흠칫 떨렸다.
인격을 되찾은 리타는 몸을 격하게 비틀며 아저씨를 향해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었다.
"......"
그 살기를 정면으로 받은 김식 아저씨는.....의외로, 아까까지의 광기 어린 표정은 어디 가고
평소의 살짝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가 조용히 리타를 응시했다.
그리고 한참을, 한참을 그녀가 쏟아내는 욕설과 저주를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받아냈다.
쿠르르르릉.....콰릉!!!!!
".....이크!!"
-이런, 다른 곳에 너무 한눈을 팔았다.
정신을 차린 침식체들이 다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하늘에 낀 먹구름에선 다시금 하늘색 뇌전이 냉기를 품으며 간간히 내리쳤고,
이제 꽤 많이 줄어든 침식체 무리들은 다시금 파도를 일으키며 우리들에게 쇄도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하지만 뒤에서 그렌델이라고 불렸던 로봇들의 포격으로 브리트라 변종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저 수 많은 그렌델들 중 최소 절반 이상이 브리트라 변종에게 화력을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브리트라 변종은 자신이 괜히 4종이 아니라는 듯, 터프하게 버텨내며 간간히 팔을 휘두르고
하늘에서 냉기를 품은 번개를 뿌리고 있었다....?
파지지지지지직-!!!!!!!!
.....저거 왜 번개가 입에 모이냐?
"ㅇ, 이런...! 브레스도 내뿜을 줄 아나 봅니다!!!! 모두 엎드리세요!!!!"
주시윤 선배의 외침과 함께 난 바닥에 몸을 던지고 바짝 엎드렸다.
직후, 내 등으로 어마어마한 냉기와 온 몸의 털이란 털은 죄다 바짝 세워버릴 듯한 짜릿함이 덮쳤다.
눈이 붕대로 가려져서 그런지, 정확하게 겨누고 쏘진 못하는 듯 했다.
푸스스슥-
"....윽...다들 괜찮아?!"
-거기에 사방에서 냉기가 피어올라서 사방이 보이지 않았다.
김식 아저씨가 준 반지가 없었다면 우린 진즉 이것에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내 눈 앞에 나타난 침식체 하나가 달리던 자세 그대로 얼어버렸으니까.
....잠깐, 침식체가 산 채로 얼어붙었다고? 나 지금 어디에 있는-
-크르르르르르르르.......
......내가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왔구나. 차라리 움직이지 말 걸....!
무심코 손에 들린 라이플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쾅-!!!
-크륵?! ......그르르르르르르르르릉!!!!!!
물론, 녀석은 잠깐 움찔 하더니 내가 있던 곳으로 얼굴을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입가에.....다시 한번...번개가 모이기 시작했다.
"아....."
-그것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난 여기서 끝이라고.
절망이, 혼자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눈 앞에 있었다.
"......하...하하..."
압도적인 절망감에 빠지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참....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카운터가 된 뒤로 빌어먹게도 길게 이어진 목숨이다.
식칼 하나 제대로 쥐어본 적 없던 여고생이 뜬금없이 라이플 하나 쥐고
단신으로 침식체들 사이로 뛰어들어 참 오래도 살아남았구나.
".....언니...병원비 갔다 줘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곧 병원비 내줘야 하지 않았나.
살아서 재회하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저승에서 다시 만나게 생겼다.
다 포기하고 눈을 감으려던 그때, 김식 아저씨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니 총 안에, 큰 칼이 하나 들어있는 것 같은데?'
".....어차피 곧 죽을 몸이니...시도라도 해볼까?"
라이플 손잡이를 칼처럼 잡고 뽑아보려고 했지만 뽑히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안에서 뭔가 걸린 듯한 느낌이 확실히 느껴졌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안되나?"
.....포기할까, 어차피 이거 뽑는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긴 한데...
게다가 점점 눈 앞에 차가운 푸른 번개 무리가 넘실거리고 있는데, 곧 쏘아질 것 같았다.
"....미안해, 모두."
-난 눈을 감았다.
챙-
"-어이쿠, 벌써 포기하시면 곤란해요."
"....어?"
-문득, 뭔가 베이는 듯한 청명한 소리와 함께 주시윤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굉음과 함께 브리트라 변종을 향해 빌딩이 떨어져 뒷통수를 가격했다.
쿠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먼지 구름이 크게 일어 팔을 들어 앞을 가렸다, 잠시 후 먼지 구름이 걷히자
내 앞엔 주시윤 선배가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서야 본 주시윤 선배의 눈은 붉은 적안을 하고 있었다.
"-미나양, 도망가세요. 조금만 더 있으면 다시 그렌델의 포격이 이어질 테니 그때까지만 도망가셨다가 돌아오세요."
....도망...가라고?
"잠깐....그럼 선배는 어쩌고...?"
"하하, 제 몸 하나 건사할 순 있습니다. 그러니 도망가세요, 미나양."
"ㅎ, 하지만....!"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서 도망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가슴 속에 무언가가 끈적하게 응어리 지는 가 싶더니, 화악-하고 불타오르는 듯 했다.
나는....나는...도대체 여기서 뭘 해야 하지?
"빨리 가세요, 저도 두 번은 못 지켜드려요."
그리곤 주시윤 선배는 고개를 돌리고 붉은 장도를 든 채 브리트라 변종을 바라봤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방해이니 어서 빠지라는.
그런가,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도망가라고."
....인정한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기는 존재라는 걸.
"....방해라고."
-인정한다, 방금 전까지, 삶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했다는 걸.
으득-!!!!!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그래도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잘 싸우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전력 외 통보를 받으니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그래, 이건 분노였다, 나약한 자신에 대한 분노.
이성으로는 도망가라고 하는데, 본능은 당장 뛰쳐가서 자신을 증명하라고 울부짖는다.
난 약한데, 분명 가면 죽는데, 자꾸 내 마음은 뒈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라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단 하나, 저 브리트라 변종을 상대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 지금의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고,
나는 지금까지 쓰지 못한 수단 하나를 알고 있다.
텁-!!!
".....뽑혀."
-칼자루를 쥐어라, 유미나.
덜컥.
".....뽑히라고."
-Synchronization Rate: 19.80%-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점점 더 뜨거워진다.
정말,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기껏 선배가 만들어준 살 길을 제 발로 걷어 차버리는 게 아닐까?
툭-
".....!?"
-그때였다, 내 등을 툭 두드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살짝 돌아보니, 살짝 그을린 김식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어, 미나야."
".....아저씨? 몸은 괜찮아?"
"-환상적이다, 이 이상은 직접 못 싸워, 뭐...그래도 할 건 다 했으니 다행이지."
스윽-
아저씨는 손에 들린 두 장의 검은 부적을 한번 흔들곤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거 알아? 지금 네 무기 이야긴데."
"....뭔데?"
그의 은안이 살짝 빛나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에 잠금장치가 풀리려는 것 같은데? 조금 헐거워졌어."
"......그래?"
-그런가, 김식 아저씨의 말을 듣자 마음이 마치 무거운 바위에 짓눌렸다가 갑자기 치워진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자 마음 안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이 전신을 태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 몸의 근육이 바짝 긴장했다.
당장이라도 쏘아질 화살처럼.
"미나야, 가끔은 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때도 있어."
-Synchronization Rate: 20.12%-
"-표정을 보아하니, 나처럼 가서 죄다 깽판을 쳐 버리고 싶은 모양인데."
"....하, 내가 지금 아저씨가 지었던 표정을 짓고 있다고?"
"뭐....나 정도는 아닌 것 같다만...틀린 말은 아니지?"
-Synchronization Rate: 21.32%-
김식 아저씨는 내 등을 툭 두드리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다녀와라, 그래도 같은 동기인데, 뒤 정돈 봐주마."
".....응!"
그리고 다음 순간, 난 머릿속에 떠오르던 모든 잡 생각들을 지우고 몸을 완전히 본능에 맡겨버린 채 앞으로 튀어나갔다.
주시윤 선배와 뒤늦게 합류한 알트 소대가 있는 곳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고 느껴진 브리트라 변종이 있는 곳으로.
"......미나양?! 왜 다시 온 거에요!?"
문득 누군가를 스쳐 지나가며 무슨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지금 아주 맹렬하게 타오르는 기분에 취해 잘 들리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파지지지지지지직-!!!!!!
점점 가까워지는 브리트라 변종의 입에 다시 날 절망으로 몰아간 냉기를 품은 번개가
휘몰아쳤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은 아까와 같은 절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렌델, 저거 머리 위를 망치로 좀 세게 쳐드려라!!!!!"
[-망치 나가신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벙!!!!!!!!!!!!!!!!!!!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지금은, 내 뒤를 봐주겠다는 정신이 좀 이상하지만 아군이라면 나름 든든한 동기가 있었고.
챙-!!!!!
".....하하, 정말 재밌는 분이시네요, 미나 양은."
-옆에서 브리트라 변종이 날린 바위를 튕겨내 주는 선배가 있었으니까.
촤아아아아아악-!!!!
앞발을 내밀어 제동을 걸고, 왼손으로 총신을 붙잡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살짝 위로 꺾었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런 미동도 없던 것이 움직여 곧게 펴졌다.

찰칵-
-자그맣게 무언가가 풀리는 듯한 소리.
난 지금이 이 검을 뽑아야 할 때임을 직감하고 손잡이를 잡아 있는 힘껏 뽑았다.
브리트라 변종이 갑자기 내게 고개를 팍 돌리며 성난 포효를 내뱉지만,
난 오히려 이빨을 마주 드러내며 포효했다.
-Synchronization Rate: 21.45%-

"-시끄럽게 울지 말고 지옥에나 꺼져버려!!!!!!!!!! "
-Wolvesbane: Unlock-
온 사방이 불꽃으로 휩싸이며 그렇게도 안 뽑히던 검이 너무나도 부드럽게 뽑혀 나왔다.
길쭉하고 검은 칼날 중앙엔 알 수 없는 주홍빛으로 빛나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난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 검을 그렌델들의 일제 포격을 맞아 너덜너덜한 브리트라 변종을 향해 휘둘렀고-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내지른 일격은, 한 치의 저항 없이, 그토록 두려웠던 녀석의 턱 위를 번개와 함께 베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