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침식 지대에서 벗어나고, 레이첼은 반 송장 상태였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골든 타임을 놓치진 않았다, 그리고 호라이즌이 미처 챙기지 못했던 병원비는 

관리자가 미리 대기 시킨 에디 소대가 대신 지불했는데.....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너가 고용주 양반이 말한 김식인가?"


"......에디 씨...?"


....오르카 외전에서 죽었던 에디가 살아 있었다.

저쪽은 전혀 간섭한 적도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멀쩡히 살아....아니, 잠깐만.


"흠?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


".....소문은 좀 들어봐서 압니다."


"아하, 어디서 내 소문을 들었던 녀석인 건가."


....자세히 보니 오르카가 없었다, 즉 아직 '원작'의 오르카 외전이 시작되기 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아마 이 이후 오르카를 만나고, 죽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래 뵈도 제 카운터 능력이 대장장이라서 말이죠, 이대로 받기만 하는 건 뭣하니 

제가 특별히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좀 만들어 드리죠."


"호오? 주는 건 사양하지 않는 편이야, 고맙게 받도록 하지."


무엇을 만들어주는 게 좋을까, 그렌델? 갑옷? 방탄복? 총? 


".....적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신가요, 생존하는 것이 우선이신가요?"


"생존이지, 적은 일단 살아남은 뒤에 처리해도 되니까."


....그렇다면 방어구가 될 것 같다.


"-갑옷? 아니면 방탄복?"


"방탄복 쪽이 좋겠군, 기동에 너무 방해되지 않는 쪽으로."


....대충 윤곽이 잡혔다, 이제 마무리 단계다.


"-평범하게? 아니면 원하시는 스타일이 있을까요?"


에디는 전자를 골랐다, 그게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쉽다나.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방탄복은 아이언 플레이트로 했다, 다만 워낙 내가 쓰는 주괴 자체가 굉장히 고급인지라

비슷한 아이언 플레이트 방탄복과 비교하면 무게가 상당히 줄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속성 부여를 새겼다.


[מיגון]

(보호)


-'미군'이라고 읽는 히브리어를 새기고, 그 밑에 또다른 속성을 새겼다.


[ריפוי]

(치유)


-'리푸이'라고 읽는 히브리어도 새겼다, 다만, 이것들은 카운터들의 CRF를 공급해서 

작동하는 것들과 달리 '이터니움'으로 작동한다. 호라이즌에게 준 '루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자, 제작 끝났어요."


-완성품을 건네고 속성 부여에 관한 것을 말하고 그 사용법을 전하자, 

에디는 두 눈 동그랗게 뜨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과한 걸 받았군."


"-괜찮아요, 이걸 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해주셨으니까요."


....여기서 레이첼이 죽으면 호라이즌이 어떻게 될 지 상상도 안 가니까.


"-그래도 내겐 과해."


"그럼 이렇게 하죠,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무상으로 한번만 도와주기로."


".....흥, 이걸 노린 건가."


"글쎄요? 뭐....그런 거라고 치죠."


물론 에디도 보통내기는 아니어서, 5번 정도 갑옷이 망가졌을 때, 무상으로 수리해 주는 걸로 협상을 봤다.


".....호라이즌에게도 전했지만, 현 시간 부로 호라이즌은 관리국에서 국제 수배 됐어, 발을 빼려면 지금이 기회일 텐데."


"....하하, 전 저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해야 할 책임이 있어서요."


"그러냐, 그럼 수고해라. 살아서 만나길 빌지."


"그쪽도요."


".....그나저나, 윌버라는 놈이 지금 있는 위치가 저장된 데이터를 호라이즌이라는 

아가씨가 있는 곳에서 잃어버려서 말이야, 참 큰일이로군."


"....흐흐, 그것 참...큰일이긴 하네요, 수고하세요."


"그래, 우린 좀 더 찾아보고 가보지."


뚜벅- 뚜벅-


...그리곤 에디는 조금 떨어진 곳 구석진 곳에서 호라이즌 일행과 이야기하는 

제시카와 에디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에디는 내 손을 떠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으니, 나머진 운명에 맡겨야지.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살아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라이즌들에게 돌아가자, 호라이즌은 잠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레이첼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저는 지금부터, 악성 채무자 윌버 웨이틀리를 잡으러 갈 예정입니다."


"-그렇겠지, 언제 출발할 거야?"


"...되도록 빠르게 출발할 생각입니다, 강민우 휴먼에게 레이첼을 맡겼으니 

국제 수배 된 저는 이 이상 여기에 오래 머물러 있어선 안됩니다."


스윽....


호라이즌의 시선이 우리들에게로 천천히 향한다.

그녀 특유의 무표정 속에서, 나는 그녀가 우리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리타 씨, 대시 씨, 당연히 저와 같이 가겠지만, 구태여 묻겠습니다.

아마 많이 힘들 겁니다, 이 도시의 모든 테스크포스가 저흴 잡으려 들 테니까요.

그럼에도, 저와 함께 갈 겁니까?"


"-당연하죠, 사장님! 이제 더는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에요!"


대시가 힘차게 말하자 리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도 그 자식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지, 끝까지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럼."


슥-


호라이즌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당신은 어쩌시겠습니까, 김식 휴먼?"


.....게임 속 주연이 현실이 되어 스토리에서 벗어나 내게 직접 말을 걸어온다.

어떻게 할 거냐고, 따라오겠냐고 묻는다.

정해진 시나리오, 정해진 대사에서 벗어난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나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게 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거기에,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엔 너무 깊이 들여버렸으니,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책임을 질 생각이다.


"....대시의 인생을 겪는 악몽을 꿨을 때 말이야."


".....?"


난 잠시 오른손을 바라봤다, 검지에 끼어 있는 반지 [하미무트]의 각인에 은은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걸 겪은 이후로부터, 몸이 참 더럽게 춥단 말이지.

춥지 않게 해주는 아티팩트를 꼈는데도 말이야."


"........"


"아마 진짜 추운 건 아닐 거야, 대시가 겪었던 고통을 내가 PTSD의 형식으로 

받아들여서 일어난 환각이겠지."


틱....


....난 하미무트를 껐다, 당연하게도, 온도 차이는 없었다.


"-오늘,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정신적인 부상을 입은 환자들은 자신들의 악몽을 극복하게 될 거야.

설령 안 된다고 해도, 내가 되게 만들 거야."


스윽-


나는 검은 가면을 하나 만들어 얼굴에 썼다.



"-나도 일단 코핀 소속이라, 대놓고 돕진 못하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장땡이잖아, 안 그래? 

후방과 지원은 맡기라고, 무기가 부족하다면 만들어 주고, 화력이 부족하다면 소규모 폭격까진 때려 박아줄 순 있어."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휴먼을 호라이즌 파이낸스 알바생으로 임시 고용하죠.

하지만 저흰 테스크포스에서 온 분들이나, 이 일과 관계없는 그 어떤 이들도 

죽이진 않을 것이니 폭격은 필요 없습니다."


"불살이라, 사실 그게 제일 좋긴 해."


자리에서 일어난 호라이즌은 벽에 기대둔 루실을 집어 어깨에 매고 앞장섰다.


"-호라이즌 파이낸스, 현 시간부로 악성 채무자 윌버에 대한 

수금 활동을 재개하겠습니다."


....병원 안은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하지만 바깥에 내리는 빗줄기 너머, 

수많은 도시 경비대 소속 차량들이 줄지어 병원 앞에 배치된 것이 보인다.

이쪽은 극소수, 저쪽은 절대 다수임이 분명한데도, 그녀들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병원 정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쏴아아아아아아-


[-안내 드립니다, 지금 이 구역은 민간인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군사 작전 종료까지 안전한 실내에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병원 주위에서 날아다니는 헬기에서 들리는 경고 방송이 울려 퍼진다.

앞을 바라보면 잔뜩 긴장한 무장한 도시 경비대들이 수많은 총구를 겨누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 아니었나? 인원이 늘어나 있는데?!"


"젠장, 조력자인가? 어서 보고해!"


"고등급 카운터일 수 있다는 첩보가 들어온 상태다! 전차를 앞세워 제압하라!"


....전차라, 거 참 귀엽네. 지금 우리들은 웬만해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상대인데 말이다.

한번 심호흡을 한 호라이즌이 입을 열어 도시 경비대에게 경고한다.


"-비켜 주시죠, 휴먼들. 저흰 바쁜 몸들입니다, 방해를 단념하지 않겠다면......"


부웅- 쾅!!!!!! 화르르르르르르륵-


한번 크게 루실을 휘두르고 바닥에 꽂자, 루실에게서 호라이즌의 눈 색을 닮은 푸른 불꽃이 넘실거렸다.

흠칫, 하고 도시 경비대들의 몸이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라이즌은 뒷말을 이었다.


























"-저희들이 직접, [설득]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