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 하고 날아가요-"

맹한 목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하고 난민 지구의 시끌벅적한 소음에 묻혔다. 하지만 이어지는 폭발음은 그 소음을 덮어버릴 만큼 요란했다.

콰앙!

"아악! 또 시작이냐! 마야 헌트!"

붉은 머리 남자가 천막에서 헐레벌떡 달려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찌나 급하게 뛰는지 그가 항상 쓰고 있던 후드가 스르륵 벗겨졌다.

리 더포는 자신의 일상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일상적인 폭발만큼은 아직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싸움터도 아닌 곳에서 툭하면 폭발물을 쏘아재끼는 소녀라니, 그가 두 팔이 멀쩡할 적에도 상대하기 어려웠으리라.

다행히 폭발음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리고 있었고, 리는 힘껏 달려 2분 정도만에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제 6 난민지구에서 마음껏 화약을 터뜨릴 만한 공터가 얼마 없기도 했지만. 마야는 버려진 축구장 한가운데 서서 로켓 발사기에 새 탄환을 쑤셔박고 있었다.

"마야! 내일 그라운드원 돌아갈 때까지만 참으라는데! 그걸 못 참고 또 이러냐!"

리의 말에 마야가 맥 빠지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봤다.

"어- 리 오빠? 그치만 나, 어제 하루 잘 참았는걸? 하루 걸러 하루면 발전했다고 칭찬해줘야지-"

"하루 더 참으면 될 거 아냐! 하여간 돌겠네. 또 갱단이 깽판 놓는줄 알고 사람들 난리 날 거라고."

"응- 그치만, 리 오빠도 알잖아? 1일 1폭, 못 하면 난 깨꼬닥, 죽어버릴 지도 몰라-"

태연하게 대꾸하는 마야를 보며 리는 한숨을 쉬었다. 단순한 녀석일수록 더 다루기 어려운 법이다. 리는 그래서 단순한 화제로 대화 흐름을 잡기로 했다. 심플 이즈 베스트, 단순한 게 최고니까.

"거 됐으니까 얼른 들어가자. 오늘은 니나가 오랜만에 라자냐를 만든다고 그랬어."

"와, 라자냐- 난민지구에서 라자냐라니 언감생심-"

"언감생심은 그런 뜻이 아냐. 뭐, 난민지구에서 라자냐 만들 재료를 어떻게 구했나 싶은 건 동감이긴 한데."

"누구 손님 오기로 했어-? 재료가 자안뜩 널린 그라운드원에서도 오믈렛 한 번 안 만드는 니나 언니가, 웬일로 라자냐 같은 번거로운 요리를 한대-?"

마야의 질문에 리가 눈이 둥글어졌다.

"어떻게 알았냐? 오늘 레이첼이 놀러온다고 했거든. 자기 친구랑 같이 온다고 그러더라."

"와, 호라이즌- 샤레이드 뒤집개-"

"그래, 그 샤레이드 뒤집개하고 온다나봐. 그러니까 얼른 가서 밑준비는 돕자고."

대꾸하며 리는 마야의 로켓포를 짊어들었다. 마야는 라자냐를 먹는다는 말에 들떴는지, 홀가분한 몸으로 먼저 거주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폭발로 옛 축구장에 여기저기 퍼진 먼지가 그녀의 걸음에 신기루처럼 일었다. 그 광경에 리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고 한숨을 재차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정리는 어쩐다. 돌겠네..."



"잘 먹었습니다!"

빨간 머리 소녀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앞에 놓인 접시는 바닥까지 긁어먹은 듯 토마토 소스의 흔적만 옅게 남아있었다.

"어, 다 먹었으면 그릇 저기 갖다놔. 설거지는 이따 자기 전에 몰아서 하게."

니나 앤더슨이 자기 물잔을 채우며 대꾸했다. 그러자 식탁에 모여앉은 모든 사람이 일어나 자기 접시를 싱크대로 가져갔다. 한 명의 꼬맹이는 빼고. 니나는 그 흰머리 꼬맹이를 돌아보았다.

"넌 진짜 뭐 안 먹어도 되겠어, 호라이즌? 기껏 초대했는데 아무것도 안 먹으면 거시기한데."

그 말에 꼬맹이가 니나를 돌아보았다. 투명한 홍채가 그녀를 빤히 응시하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휴먼. 말씀드렸다시피 제게는 유기생명체의 영양분 섭취가 불필요하니까요. 윤활유나 좀 주시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윤활유를 달래도 말이지, 마야가 로켓포 총기수입할 때나 쓰는 싸구려밖에 없다고."

"유감이군요, 최근에 알파트릭스 계열사에서 새로 출시한 윤활유가 그렇게 기가 막히다는데 말입니다."

알파트릭스라니, 난민지구에서 별 걸 다 찾는군. 니나는 이 철없는 소리나 하는 꼬마가 그 악명 높은 사채업자 호라이즌이라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사채업자니까 돈이 많아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니나가 별 답이 없자 호라이즌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붙어있는 두 개의 접시판도 그 고갯짓에 따라 흔들리며 소음을 냈다. 접시판을 왜 머리에 붙이고 다니는지 니나는 의아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그거 머리에 붙인 건 뭐야? 솔직히 접시로밖에 안 보이는데."

"진공관 맙소사. 휴먼들의 안목은 다 거기서 거기란 말입니까. 냉각기를 보고 접시라고 하는 사람이 이번 달만 벌써 25명 째입니다."

"사람 무안해지게 그렇게 오버하지 마. 근데 진짜 로봇 컨셉 놀이 좋아하는구나, 하느님을 찾을 타이밍에 진공관을 찾다니."

"과거 레이첼이랑 똑같은 반응이군요. 난민지구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기계의 말을 못 믿는지."

"나 불렀어, 호라이즌?"

시니컬하게 말하는 호라이즌의 뒤에서 레이첼이 백허그를 하며 달려들었다. 진공관 맙소사, 하는 탄식이 절로 들려 니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튼 식사 마쳤으면 용건은 끝난 것 맞습니까? 돌아가죠, 레이첼."

"에이, 정 없이 굴지 말고. 이왕 사람들 모인 거, 같이 놀려고 준비한 거도 있단 말이야."

"어? 레이첼이 준비한 거면 뭔데? 여기 천막에 신작이라도 그리려고?"

레이첼이 가볍게 앙탈을 부리자 리의 반응이 있었다. 레이첼의 특기는 벽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이니만큼 준비했다는 말이 의아한 듯 했다. 레이첼은 고개를 저었다.

"마야, 거기 내 가방에 책 들어있는 거 좀 갖다줄래?"

"응, 언니-. ...우와, 두꺼운 책이 있어-"

늘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마야가 책을 들고 왔다. 그 주위로 니나와 리도 붙어 책을 살펴봤다.

"어디 보자, 던전 앤 드래곤? 판타지 만화책이야?"

"아냐, 이건 TRPG 게임에 쓰는 책이야. 대정화 전쟁 이전에는 가장 유명한 TRPG였다고."

"니나 언니- TRPG가 뭐야?"

"어, 보드게임이야 보드게임."

"게임! 나 게임 좋아-"

한데 모여 북적대는 프론티어의 멤버들을 보며 기세등등한 미소를 띠던 레이첼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같이 온 호라이즌은 별다른 말 없이 저쪽의 세 사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첼은 재차 호라이즌을 뒤에서 덮치듯 끌어안았다.

"호-라이즌-! 넌 왜 반응이 미적지근해? 이 언니가 준비한 게 너무 굉장해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확실히 저런 고대 유물을 발굴한 건 굉장하군요, 레이첼. 경매에 붙이면 제법 돈이 나오겠습니다. 당신의 직무 수행능력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정하겠습니다."

"야호- 하고 환호할 줄 알았냐! 안 팔아! 지금부터 저거 가지고 놀 거라고!"

"즐겁게 놀고 오십시오, 휴먼. 전 내일 계약 건으로 준비할 게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뭐! 이 언니가 기껏 준비한 파티를 그냥 떠나겠다고!"


"그래, 이왕 왔으니 좀 어울려주지 그러시나?"

"같이 놀아요, 샤레이드 뒤집개 언니-"

레이첼이 호라이즌에게 매달려 있으려니, 프론티어 삼인방이 두꺼운 책을 들고 다가왔다. 헤실헤실 웃는 리와 마야 사이에서 니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한 발짝 앞으로 디뎠다.

"그래, 초대한 입장에서 손님을 밥만 먹이고 보내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않겠어. 이쪽 체면도 생각해줘."

"들었지, 들었지? 너 어디 갈 생각 말고 꼼짝 말아라?"

어느새 네 사람에게 둘러싸인 호라이즌은 침묵하는 채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잠시 숙고하던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속전속결로 끝을 내죠. 휴먼들의 단백질 대뇌로는 제 CPU를 따라올 수 없다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천막 안은 모두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