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스럽다 모든 게 원망스러워.
그 망할 녀석이...
항상 웃어 주던 네가...
그리고...
아무 것도 못하는 나 자신이...
"......잘 가라, 허크."
대장의 마지막 작별 인사.
이것으로 허크는 완전히 사망했다.
남아 있는 허크의 흔적은 허크가 죽기 직전 대장에게 넘겨 준 반지 하나 뿐이다.
"...돌아가지."
"허크는?"
"...서둘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죽은 자까지 챙길 여유는 없어."
냉정하게 말하는 대장.
허나 그 말이 맞다.
언제 침식체가 몰려오는 마당에 죽은 시체까지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뭐 하는 거지, 사이?"
"...허크 형을 데려갈 겁니다. 적어도 장례는 치를 수 있게."
"말했을 텐데? 죽은 자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고."
"그럼 동료를 버리고 가자는 거에요?"
"...그래."
"당신...!"
사이가 처음으로 대장을 당신이라 부른 순간이었다.
그 때부터 사이의 용병에 대한 존경심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대장에 대한 신뢰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저라도 챙겨 가겠어요. 말리지 마세요."
"명령이다, 사이. 내려 놔."
"...싫습니다."
"...이레나?"
"......내려 놔, 사이."
"부대장님까지!"
"지금은 대장 판단이 옳아. 침식 지대에서 죽은 자까지 챙겨 돌아갈 수는..."
말하는 도중, 이레나에게 총구가 겨눠 진다.
...시논이었다.
"그만, 허크를 죽인 것도 모자라 버리고 간다고? 적당히 해. 이번 만큼은 당신들 명령을 따를 수 없어."
"...시논."
깊이 고민하는 대장.
결국 결단을 내린다.
"총 내려라, 시논."
"닥쳐, 이제 당신 명령 같은 건...!"
시논도 사이와 마찬가지로 대장에 대한 존경심은 박살이 나버렸다.
그녀 역시 대장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니까.
"이레나, 엄호해라. 시논, 사이. 허크를 마을까지 이송하도록."
원하던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서둘러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마을에 가서 듣도록 하지."
마을 광장에 둘러 앉는다.
이레나는 사이와 함께 허크의 장례를 치르러 갔다.
남아 있는 건 대장과 시논 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지? 왜 허크가 희생된 거냐?"
"......"
"...모닥불이 따뜻하다. 이 황량한 곳을 그나마 밝게 해주는 군."
모닥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보고 있으니 저절로 멍을 때리게 된다.
"...받아라."
무언가를 시논에게 건네는 대장.
눈에 초점 없이 불만 바라보던 시논은 그걸 받고 조금 놀란다.
"...반지?"
"허크의 마지막 선물이다. 녀석에게 듣자 하니 곧 네 생일이라더군. 안타깝게도 난 네 생일을 모른다. 그러니 잊어 먹기 전에 받아라."
"......"
피식하고 웃는 시논.
죽기 직전에 생각한 것이 자기 생일이라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나 보다.
받은 반지를 손가락에 끼운다.
"아저씨!"
베아트리체가 와서 모닥불 앞에 앉는다.
"돌아왔네요? 약속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세요!"
성숙하기는 해도 아직 철 없는 어린 아이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 자식이...!"
시논이 분노하여 총을 꺼내려 하자...
"...시논, 아무리 격노에 휩싸여도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대장."
꺼내려던 총을 도로 집어넣는다.
"잘 됐군. 지금 이야기하면 되겠어. 말해라, 시논. 무슨 일이 있었지...?"
"......사람."
"사람?"
"...사람의 형태를 한 침식체에게 당했습니다."
"여기다, 이 놈들아!"
탕! 타다탕!
"허크, 유인 지점은 잘 확인하고 있는 거지?"
"그럼,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큰 광장이 있어. 거기까지만 몰면 돼."
"헉, 헉. 얼마나 남았어요, 형?"
"거의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 사이!"
허크의 말 대로 직진하니 큰 광장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이제 빠져나가면 되는 간단한 임무였죠.
탈출로도 확보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됐어. 이제 돌아가자."
"...이봐, 허크."
"왜 그래, 시논?"
"우리가 유인한 침식체... 원래 저렇게 많았나?"
"......그러게, 이상할 정도로 많은데. 원래는 저거의 절반 쯤 됐던 것 같은데..."
"뭐, 저희는 유인 했으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오, 의외로 제대로 된 말도 하네, 사이. 그래, 맞아. 적이 많다는 건 우리가 유인을 잘 했단 소리지. 이제 탈출을..."
크아아아---!
"뭐, 뭐야!"
"탈출로에 침식체가? 여기에도 있었다고? 그럴 리가..."
"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죠!"
크아아아---!
"반대쪽에도?"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이, 이상해요, 허크 형. 분명 여기는 침식체가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맞아. 없어야 할 텐데...?"
띠리링~!
탈출구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리라 소리가 들렸습니다.
백화점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소리.
"연주는... 계속 되어야 해..."
"저기 위에 누군가 있어요!"
"그래, 나도 보인다, 신입."
리라 소리가 울릴 때마다 침식체가 늘어났고
그 때 저흰 깨달았죠.
아, 우린 포위된 거구나.
"젠장, 우리가 유인한 줄 알았더니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 그건가?"
"무기 들어, 허크, 신입. 탈출구를 찾아야 해."
"ㄴ, 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놈들 전부 1종이야. 대장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건 할 수 있겠어."
"...저격은 포기해야겠어. 위치가 너무 안 좋아."
"저번에는... 아쉽게도... 나의 연주를 듣지 못했지...? 이번에야 말로... 침식의 운율을 들으라..."
띠리링~!
"아까부터 이해 못할 말만 하고 있어!"
"저 녀석이 리라를 연주할 때마다 침식체가 늘고 있어."
"저격으로 저 사람을 해치울 수는 없나요?"
"저번에 해봤는데 통하지 않았어. 일반 실탄으로는 무리야. 이터니움 실탄이라도 있었다면...!"
작전은 간단했습니다.
대장과 부대장이 올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티는 거였죠.
하지만...
타타탕!
"허억... 허억...! 서, 성공이야. 혼자서 침식체를 잡아냈어...!"
"...음?"
"허크 형! 시논 선배! 제가 드디어 혼자 침식체를...!"
"거기서 피해, 사이!!!"
"...허크는 사이를 지키다가 대신 중상을 입은 건가?"
"신입은 대체 왜 그걸 자랑하려 했을까요...?"
"모르지. 어쩌면 너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지도."
"전장에서 그런 행동을...!"
"그 뒤에는 어떻게 됐지?"
"사라졌어요, 침식체들이 전부. 이상하죠? 마치 저희를 가지고 놀듯이 말이에요."
"가지고 논다라... 그림자가 할 법한 짓이군."
시논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보인다.
그것은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대장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저, 시논 언니..."
"...뭐지?"
"죄송해요, 그... 제가 괜한 걸 들은 것 같아서......"
"...알면 꺼져."
"......네."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다.
아이한테 심했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논에게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시논 선배."
사이가 돌아왔다.
허크의 장례를 끝마치고 온 모양이다.
용병이 되어 기분이 업 되어 있던 청년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허크 형은 잘 묻어주고 왔어요."
"...그래."
"...선배."
"......"
"...죄송... 죄송합니다......"
"...됐어."
"...그치만......"
"...됐다고."
"저 때문에 허크 형이......!"
"됐다니까!!!!!!"
"......됐으니까, 제발 내 눈앞에서 꺼져. 너를 정말로 원망하게 되어 버리기 전에..."
"......네."
...원망스럽다.
모든 게 원망스러워.
우리를 가지고 논 그 그림자라는 망할 자식이...!
늘 내 곁에서 웃어 주던 네가...
항상 모토를 들먹였던 주제에.
내 목숨이 먼저라고 했던 주제에.
왜 남을 위해서 희생한 건데...?
친구를 버리고 갈 만큼 무책임한 놈이었어?
망할 자식... 네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너무나 원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허크... 답을 알려 줘... 제발......
"...시논."
"...대장?"
"줄 게 있다."
대장은 시논에게 손을 내밀게 한 뒤
무언가 작은 것을 건넨다.
"...이건?"
"생일 선물이다, 유용하게 써라."
"......대장님."
"뭐지?"
"...그림자를 처치하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태스크포스들도 처치하기 힘들어하는 것 그것이 그림자다.
하물며 그 그림자는 엘리시움 필하모닉 단원으로 추정되는 그림자.
섣불리 싸웠다가는 허크같은 희생자가 더 나올 뿐이다.
"그 그림자라는 침식체를 이대로 놔두면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는 것 아닙니까? 숙식도 제공 받았는데 보답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복수인가?"
"예, 저는 그 녀석의 머리통을 반드시 작살내 버리고 말겠습니다. 대장님께 받은 이걸로."
늘 침착하던 저격병은 이제 없다.
대장의 눈 앞에는 지금.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여성만 존재할 뿐이다.
"...복수만큼 하찮지만 강력한 동기도 없지."
"...허락해 주십시오."
"...혼자라도 해낼 기세로군. 복수심이 너무 과하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야."
"그것을 죽일 수 있다면... 복수심을 억누르겠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일단 알았다. 대기하라."
"...알겠습니다, 대장."
"...어떻게 할 거야?"
"...상대가 엘리시움인 이상 더는 방관만 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때론 대원의 고집을 들어주는 것도 대장이 할 일이지."
"그래, 결국 도망치지 않기로 결정했구나?"
"하지만... 모르겠군. 이게 옳은 판단인지. 지금이라도 뜨면 우린 살 수 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겠지. 용병은 신뢰가 중요하잖아, 안 그래?"
"...어려운 싸움이 될 거다. 각오 단단히 해라, 이레나."
"알았다, 대장. 근데 어디 가는 거지?"
"...허크의 빈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해. 마침 적임자가 있지."
"...우릴 도와줄까?"
"모른다. 안 될 확률이 더 높지.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