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고 있다.

*

"...아저씨."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비정규 테스크포스 '그릴 파티', 건틀렛 3팀의 리더 펠리세트.

"안 가면 안 돼?"

인사부장에게도 막 덤비는 그녀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녀에 반대편에서 짐을 챙기던 남자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남자의 이름은 헤더 영.

그릴 파티의 현장 직원으로써, 펠리세트를 뒷골목에서 꺼내 준 장본인이었다.

"그럼 안 가면 되잖아!"

"하하, 그게... 대신 돌아와서 놀러 갈까? 그, 저번에 가고 싶다던 놀이공원은 어때?"

"아, 몰라!"

헤더가 말을 돌렸지만, 펠리세트는 듣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렸다.

"진짜, 가기만 해 봐!"

쾅—

"...어휴, 사춘기가 벌써 왔나."

펠리세트가 화났다는 듯이 문을 쾅 닫고 나가자, 헤더는 낡은 스마트폰을 조작해 사진 한 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깨진 액정에 비친 헤더의 얼굴은, 분명 미소가 맺혀 있었다.

"후우, 역시 육아는 어렵구만."

*

현장 직원. 말은 거창하지만, 그 실체는 탄광의 카나리아와 같다.

주요 전력인 고등급의 카운터를 대신해 비명을 질러 줄 저등급의 카운터.

테스크포스에서 정한 침식파 밀집 구역에 직접 내려가,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해 오는 것. 그게 헤더가 맡은 임무였다.

"작전 기록 녹음. 기록된 좌표를 동봉한다. 1종 침식체 다수와 2종 침식체를 발견했다. 되도록 접근하지 말 것. 이상."

"작전 기록 녹음. 이 좌표에는 3종 침식체 여럿이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

"...이상."

어느새 지도에 찍힌 붉은 빛이 한 곳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이 정도면 대충 다 돌아본 것 같은데. 마지막 포인트가... 여기군."

단말에 표시된 붉은 점에 도달하자, 높게 솟아오른 이터니움 덩어리가 보였다. 보이는 것이 이 정도 크기라면, 매장된 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발견자에게도 꽤나 많은 양이 돌아올 것이었다. 위험수당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수당?"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헤더는 빠르게 단말을 꺼냈다.

삐—

"빌어먹을."

전원을 키자, 역시나 단말이 온통 붉은 빛을 뿜어대며 시끄럽게 진동했다. 침식파 경보였다.

이터니움 근처에는 침식체가 배회한다. 관리국에서 진행하는 정규 교육에서도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돈에 눈이 먼 탓인지 지금에서야 기억난 것이었다.

"그래도 1종인 게 천운이군."

헤더는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고, 저지용 방패 위에 올렸다. 비록 평범한 실탄이라 해도, 상대가 1종이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터였다. 어쨌거나 그도 카운터였으니까.

투두두두—

헤더의 소총이 불을 뿜고, 맨 앞의 침식체가 피를 뿜으며 쓰러지자 기다렸다는 듯 침식체들이 달려들었다.

*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놈들에게 꼼짝없이 당했을 거야. 그러니까 이름이..."

"호라이즌이라고 부르십시오. 휴먼."

호라이즌이었구나.

헤더는 눈 앞에 태연하게 서있는 소문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 말같지도 않은 말들을 믿고 싶은 것은, 아까 그녀가 싸우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리라.

1종은 물론이고, 전투 말미에 땅을 가르고 튀어나온 3종 침식체마저도 주먹으로 때려잡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호라이즌. 왜 이런 데 혼자 있던 거야? 여긴 고심도 좌표라 테스크포스들도 잘 안 오는 곳인데."

"직원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혼자 교전 중이던 당신을 발견했죠."

"직원들...?"

"네, 저는 호라이즌 파이낸스의 대표로서, 실종된 직원들을 수색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말에, 헤더가 근래 들었던 소문 중 하나를 떠올렸다. 리타와 대시라는 이름이었던가.

"호라이즌 파이낸스,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야. 하지만 그 사채업자는 빚쟁이한테 속은 것 때문에 미쳐서 정신병원에 갇혔다고 했는데..."

"월버란 자였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의 필요성을 다시금 실감한 사건이었습니다."

호라이즌은 헤더의 손목을 잠깐 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사고회로는 외부 자극에 그렇게 취약하지 않습니다."

끅끅—

헤더가 숨 넘어갈 듯 웃었다.

"소문의 주인공을 다 만나 보네. 네 얘기는 테스크포스들에게도 유명해."

"그렇습니까?"

처음으로, 호라이즌이 관심을 보였다.

"응. 돈 빌려 놓고 안 갚으면서 배짱 부리던 용병들이 혼쭐났다는 이야기로."

"군벌이랑 싸웠다거나, 혼자 함선을 때려부쉈다거나, 엄청 부풀려진 소문들이겠지만."

호라이즌에게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헤더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신경 쓸 정신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후우. 저기, 사채업자 하면 돈 많이 벌어?"

"금융업과 고소득을 연관 짓는 것은 안일한 발상입니다, 휴먼. 하지만 휴먼들에 대해서는 보다 더 심층적으로 관찰할 수 있겠죠."

아까 소문에 관심을 보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라는 뒷말이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뭘 하고 싶은 건데?"

"찾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건 왜 궁금하시죠?"

"그냥, 쿨럭— 직원들을 찾으러 이면 세계까지 왔다는데, 컥— 부럽잖아.."

"난 여기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 말에 처음으로, 호라이즌이 헤더를 응시했다. 푸른 빛을 뿜어내는 렌즈와 헤더의 빛을 잃은 동공이 마주치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헤더는 호라이즌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붙였다.

"호라이즌."

"네."

"직원들을 찾으면 뭘 하고 싶어?"

호라이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었다.

"대표에게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으니 3개월 감봉할 예정입니다.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면 2개월로 단축시켜 줄 계획도 있습니다."

호라이즌은 잠시 침묵했다. 헤더가 느끼기에 이만하면 됐냐는 것 같기도,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왠지 묵념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를 위한 묵념일까.

"그 다음은,

채무자를 찾아가야죠."

호라이즌의 눈에 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시린 빛이 감돌았다.

"쉬십시오, 헤더. 이제 누구도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겁니다."

호라이즌은 헤더의 목을 졸랐다. 헤더의 손목에 차인 시계의 바늘이, 종착점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고 있었다.

*

그 날 그릴 파티는 관리국으로부터 '현장 직원 헤더 영' 의 유품을 전달받았다.

그의 책상 두 번째 서랍에 있던 유서에 따라, 유품은 펠리세트에게로 인계되었다.

펠리세트는 신기하게도 울지 않았다. 다만, 그릴 파티의 인사부장은 그 날을 기점으로 펠리세트가 더 막 나가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펠리세트는 헤더가 쓰던 자기만한 방패를 등에 매고는, 헤더의 방을 잠시 지켜보더니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낡고 깨진 스마트폰에서는, 헤더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마치 오르골처럼.

"널 위해 살아라. 그래도 괜찮다. 아저씨도 널 위해 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