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그늘 밑 그림자, 빙류회랑, 오래된 공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샤레이드 상공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있기를 바랍니-"
[저는 도움을 줄 뿐이지, 복수를 대신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 논리회로에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통신을 무시한 채 광학 센서에 감지된 것을 다시 검토했다. 필히 오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런]
"... 설명을 요구합니다. 저희 직원이 어째서 윌버 웨이틀리의 앞에 존재하는 것인지 해명이 필요할겁니다."
[제 도출한 답으로는 제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거기서- 나-... #신 오*. *** **]
통신이 끊어진 것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왜 옥상 위에 서있고 윌버가 머리를 박고 눈치를 살피고 있는가이다.
리타는 대시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을 뿐더러 대시는 ... 소리를 지르고 있다. 리타에게?
"설명을... 아니 그냥 직접 듣는 게 빠르겠습니다."
옥상으로 급강하하기 위해 몸을 숙인 순간, 자신을 향해 급속으로 접근하는 무언가를 격추했다.
탄환을 몇 발 박으니까 속력을 잃고 추락했다.
"지금 뭐가..."
콜드케이스의 펄스건으로 겨우 속력을 잃게 만든 게 끝이었다. 형체가 우그러지긴했지만 원형이라는 것이 남아있었다.
"죄송하지만 제 제자가 소임을 다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죠"
공간의 소용돌이처럼 왜곡되어있는 부분으로부터 기이한 촉수들과 함께 노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
"저도 굳이 해를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저 원하는 변수를 추가하며 관측할 뿐입니다."
그 말은 진실인지 대화는 자신에게 건냈지만 시선은 오직 아래에만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지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온순한 노인네 같았지만 그 근처에 있는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침식파를 뿜어내고 있는 저것들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큰 위해였다.
"이것 참... 혹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저 평온함이야 말로 가장 이질적인 것이다.
"그리도 눈에 채이던 것이 필요할 때는 없다라는 의미의 속담입니다. 흔하디 흔한 것도 필요할 때에는 꼭 없다라고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너머로부터 느껴져 오는 불안함이 대검을 휘두르게 했다. 저 불가의한 것들과 함께 베어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 나의 움직임에 맞춰 촉수들이 엉겨 들러붙어 방어하려는 듯이 웅크렸다.
"이제... 돌아가자"
언니는 그렇게 말했어요.
"굳이 이 녀석을 안 죽여도 된다고"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자"
그럼 왜 그런 표정으로 말을 하시는 건데요
"..."
왜 더 이상 말도 없는 거에요?
왜 제 눈을 피하는 건데요?
"...."
대답해줘요. 제발
왜 이제와서 멈추는 거에요
이제... 이제 끝내고 도망치면 전부 끝이잖아요.
이 사람이 죽으면... 분명 그 악몽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텐데
왜 멈추는 거에요.
"싫어요... 싫다고요.."
알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으려고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다는 거?
"그냥 이대로...!"
이대로.. 끝내면 되는 거잖아요!
"꼬맹이. 됐어. 그 녀석은 이제 필요 없어. 그러니까-"
"뭐가 필요 없는 건데요!!"
갑작스럽게 큰 소리를 지른 것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아버렸다
"뜻하지 않게 꾸는 악몽이요?
아니면 언제나 잊지 못할 그날의 기억들이요?!
대체 뭐가 필요 없는 건데요!!!"
버틸 수 없으면 도망치면 되는 거잖아요...
"왜 계속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데요..
아무한테도 이야기 할 수 없으면 그냥 도망치는 게 맞잖아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말고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거 말고 답이 없는데...
"차라리 뭐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이런 때 만큼은 또 짐짝이 되지 않고 싶었는데...
"괜찮아... 정말로 괜찮으니까-"
"언제나... 이런 때면 언제나 그렇게 숨기시잖아요..."
"아니야...! 정말로... 정말로 괜찮으니까 이제 돌아가자."
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저 뭐라도 하고 싶었으니까. 그때와 다른 결과를 내서...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언니"
그러니까 그때와 다르게 실패하진 않을거다.
"미안해요"
이제 모두가 돌아가면 되는 거야
"안돼! 살려ㅈ-"
분명 죽일 생각이었다. 그래. 그랬다.
그런데 이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호수의 파편.
내 눈앞에서 윌버 웨이틀리가 호수의 파편이 되어 으깨졌다.
"...어?"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게 뭔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처음봤는데 왜 이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
'이해할 수 없다. 탐식자가 왜 이런 행위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뭐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아니야...."
'그 미친년은 - ----'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내 머리 안에 뭔가가 자라고 있다. 뭔가가 나를 잡아 쥐어뜯고 있다.
나를 고치 삼아 깨어나기 위해 나를 찢어버릴 듯이 거칠게 부풀어오르고 있다.
툭. 투둑.
시야가 붉게 물들면서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이는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여 내출혈로 비롯한 몇몇이 이유가...'
"내가... 아니. 나도... 아니야..."
이런 상황 속에도 피흘리는 통증은 없었다. 대신 머리 안에서 뭔가 터지거나 짓눌- '뇌 자체에는 통각수용체가 없-'
[아아, 잘 들리나요?]
'그때 그 노인네다.'
[상태가 그다지 좋아보진 않는군요]
호수의 파편이 되어버린 머저리에게서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대시 양-]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지속된다면 자아에 대한 경계가 무너져 300초 이내에 정체성을 상실할 것이다'
'그때 그냥 확실하게 처리를 했었어야 했었는데'
'신체에 부하가 걸린 것처럼 움직이고 있어. 이건 오히려 몸이 정신 상태를 따라가는 게-'
끝도 없이 다른 무언가들이 증식하고 있었다. 이것조차 내가 느끼는 감상인지 잘 모르게 되어간다.
[그림자가 일시적으로 집착하던 대상을 빼앗기면 어떤 느낌인가요?]
'탐식자랑 어울리는 것 답게 미친 소리를 하는 군'
'허나 확실히 의문이군. 그림자가 망집에서 멀어진 걸 직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누가 기억하고 있었지?'
'분명-'
"꼬맹이!"
언니... 도와줘요...
'이건 또 뭐지? 아 재구성된 또 다른 그림자인가?'
'엘리시움이 건든건가. 솔리키타티오의 손길이 미세하게 남아있군.'
'또 다른 자매인가? 차라리 여기서 끝을 내는 게 수월-'
"시끄러워... 아니야. 언니는 그런 게...!"
"꼬맹이, 너 지금 누구랑 말하는거야!"
[흐음... 집착을 잃어버린 것을 기점으로 자아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인가요. 대시 양, 지금 당신 안에서 뭐가 존재하는 거죠?]
"시끄러워! 넌 뭐하는 새끼야!"
[그 질문은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히 제 이름을 듣고 싶은 것이라면-]
호수의 파편 속에 있는 스피커에서 일순 굉음이 울려퍼지며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구별할 수 없는 차이로 굉음은 머리 위에서 한번 더 울렸다.
[이런... 실수로 잡음에 말이 묻혔군요. 죄송합니다. 다시 이런 실수는 없도록 하죠. 대시 양,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어떤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런 것 또한 답변입니다.]
[혹시 제 말이 안 들리는 상황인가요? 아니면 구어화 불가능한 현상일까요?]
노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다급함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간절함이 느껴져 왔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서 이 공간에 있는 것이라는 듯한 감정 또한 전해져 왔다.
"그만... 제발 그만..."
계속해서 기억과 정보가 쌓여갔다. 어떻게 접한 것인지 모르는 것과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분명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을텐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을 것들을 깨닫고 있었다.
"더 이상.. 이제 더 알고 싶지 않아.. 제발 그만해!!!"
[어디까지 알게 되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지 실로 궁금하군요.]
"꼬맹이! 정신차려!!"
얼굴부터 해서 온 몸이 점차 알 수 없는 것들에 둘러쌓이기 시작했다.
반사광이 확연히 보이는 것이 결정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으나 흘러 내리는 것을 보아 멈춰버린 고체는 아닌 것 같았다.
[이건... 처음 보는 반응이군요. 완전히 새로운 결과입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는 몰랐지만 최저한의 범주 이상의 결과라니... 실로 흥미롭---]
스피커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노이즈만 흘러나왔다. 물론 그 노이즈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노이즈와 거의 동시에 소리가 들린쪽을 걸레짝내었으니까 말이다.
화를 내고 무슨 상황인지 해명을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어떠한 것도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꼬맹이!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뿜어져 나오는 것을 뚫고 대시를 잡으려고 했었지만 알 수 없는 것들은 매우 단단했다. 오히려 그 안으로 손을 넣으려고 하다가 손이 그대로 분쇄 골절이 되어버릴 것 같았기에 뺄 수 밖에 없었다.
"정신 차려! 내 말 들리냐고!"
그래서 이번에는 힘껏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라도 내리쳤다. 그런 녀석의 마지막 반응은 겨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어ㄴ.. . ㄴ ㅣ.."
소리조차 뭉개져 내리며 모든 행동이 점차 느려져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빨리 이 더럽게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길 바라며 계속해서 때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미...ㅇㅏ....ㄴ... ㅎ-"
"아니야... 아니야!"
이미 수십번을 내리치면서 알게 되었다. 흠집이나 금 하나 가지 않은 이것을 부술 순 없다는 것을 내 머리는 이해하였다.
어쩌면 이게 정말로 꼬맹이에게 해악을 입히는지 알 수 없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기저의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경종을 알리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다음의 기회는 없을거라고
"부서져, 부서지라고!!"
그런 나의 간절하고도 얄팍한 바램은 견고한 절망을 뚫어내지 못 했다.
"이건 실로 놀랍군요. 의문이 쌓여만 갑니다."
노년의 남성은 실로 경이로운 표정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망, 환희, 고양. 그리고 광기.
그에게 있어 의문이란 영원히 해소할 수 없는 허기이자, 영원히 탐닉할 만찬이었다.
쾅!
그런 광기의 신사를 감싸는 불가의한 것들을 계속해서 내려찍는 하얀 소체의 기계는 어느 때보다 급박하고 강렬하게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그리 급하실 것도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저도 어떤 자극을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까요"
쾅!
"그 주둥아리 닥치십시오"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관심은 온통 저 아래에 있었으니까요"
순간적으로 촉수들이 웅크러들었다. 제임스는 급작스럽게 자신이 뒤로 이동하였다는 것 또한 인지했다.
"확실히... 퇴직금만으로는 버티긴 힘드군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들어보시겠습니까?"
또 다시 웅크러든 것이 보임과 함께 이번에는 자기의 몸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느꼈었다. 그 쯤되면 달리 관심을 줄만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오늘은 저 앞의 진귀한 보물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들이 넘쳐흘렀다.
"사실 대균열은 엄밀히 말해서 완충장치입니다. 본래라면 구멍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통로가 생겨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런 그는 때 없는 강연을 시작하듯이 자신의 지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광경은 그에게 있어서도 혼자 알기엔 벅차오르는 감동일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시선에는 감탄과 공허함이 있었다.
저 커다란 대균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너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가. 무엇이 살아있었고, 또 어떻게 멸망해갔는가. 그들은 무엇이 되었고, 또 현재에 어디에 있으며 목적은 무엇인가.
그들은 과거이자 미래이며, 오롯한 현재를 빼앗긴 자들이니
"정말로 고고학이란 여러모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법인데... 오늘 하나가 사라지는군요."
호라이즌은 그 알 수 없는 광언을 분석하지 않았다. 앞에 있는 기괴한 무언가. 그것 하나를 어떻게 찢어버릴 지에 대한 연산만으로도 충분히 과열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직원을 살펴보기 위해서 시선을 돌렸더라면, 혹은 한번이라도 뒤를 조심했더라면-
캉!
"완전히 이성을 놓아버리고 싶은건가. 그렇다면 적어도 다른 곳에서 미치기를 바라지."
일단 저 검은 깡통 침식체에게 도움은 안 받았을테니까.
할버드의 날은 다 나갔고, 갑옷은 멀쩡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이 간 것은 물론, 끝자락에는 깨져 날아간 부분도 있었으니까.
헬멧은 겨우 형상을 유지한 채로 너덜너덜한 갑주의 주인.
"모르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그저 완전하게 놀아났다고 밖에"
"알아먹지 못할 말이나 하려고 제 앞에 나타난겁니까?"
"아니,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그 이유가 저 너머에 있으니까"
모르스가 가리키는 곳은 대균열이었다. 환히 빛나는 그곳에는 별 다를 게 없어보였다.
뿜어져 나오는 빛 속 사이에 자리잡은 한 여성 외에는 다를 게 없었다.
그녀의 시각센서를 재조정하니 그 윤곽과 색감이 뚜렷해졌다.
"..."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탐욕의 노예여,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말아라. 그게 내가 타협한 내용이다."
"ㄱ-"
노인의 대답, 혹은 단말마와 함께 충격파를 남기며 사라졌다. 다만 그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건 당사자의 의도가 아니였을 것이다.
"...리타?"
"아니, 타기리온의 사도다. 정말로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흰 장발을 늘어뜨리고, 빛 속에서 검은 점이 앞으로 나아온다.
하나, 점 가운데서 붉은 빛을 내뿜는 것이 관측되었다.
"미천한 것들아. 고개를 조아려라"
다섯, 제 각기 빛 속에서 다섯의 검은 점이 튀어나왔다.
도시 관리국에서 알려드립니다. 현 시간부로 도시 폐쇄 절차를 시행합니다.
앞으로 20분 뒤, 모든 구역의 이동의 통제되오니, 가능한 빨리 도시에서 퇴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하나의 선, 빛 너머에 하나의 선이 보였다. 알록달록한 빛으로 만들어진 선
"왕의 행차를 예비하라. 우리는 먼저 온 자이니"
천천히 앞으로 나아온 자매가 손을 내밀었다.
"길을 예비하라"
환희와 찬가가 울려퍼졌다. 그들의 외침은 표독한 가시가 되었으니 땅이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가시는 점차 범위를 넓혀 샤레이드의 지역을 휘감으려 했다. 제프티 바이오테크 건물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리낌 없이 그녀의 앞으로 도약해 검으로 내려찍었다.
솔리키타티오는 손을 들어 머리 대신에 팔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피해를 줄였다.
펄스건이 연달아 달아올랐다.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이 근거리에서 사격불능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연사했다.
"고철더미여, 너와 대면할 이유도, 가치도 없노라. 네 주인에게로 꺼져라"
감흥 없이 마주한 그녀는 파동에 분해되고 찢겨나간 곳이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그저 우리는 길을 예비할 뿐이니 어서 비키어라"
금이 간 할버드가 그녀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아까와 같이 한 손으로 막아낸 그녀는 이어서 오는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공격을 하고 뒤로 넘어갈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하물며 지금 휘두른 이가 누구인지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조언이라면, 죽을 때 까지 죽여라."
"줘도 안받을 정보로군요. 어짜피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방랑자...! 네가 어떻게!"
호라이즌의 대검이 이번에는 깨끗하고 더럽게 그녀의 몸을 베어갈랐다.
"한 눈 팔 정도로 만만해보였습니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녀의 목을 잡고 그대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발버둥치는 그녀를 역장으로 찍어누르며 지면에 처박았다.
"일단 대충 감이왔습니다. 당신이 그 흰둥이군요."
더 이상의 무구는 휘둘러지지 않았다. 다만 언제나의 방식대로 그녀는 행동할 뿐이다.
"저희 직원을 무단으로 감금 및 유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합니다"
"이... 무지렁이가!"
"어떤 미친놈이 사장 앞에서 직원을 빼가는 생각을 할 줄 몰랐는데 직접 보니 더 어처구니가 없군요"
"기꺼이 앞에 나타나 준 덕분에 수월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아가리 꽉 무십시오. 그게 더 아프니까"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밀렸던 빚을 변제할 뿐이었다.
"좀!"
퉁- 퉁-
계속해서 결정을 깨보려고 하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오메르타로 베어보려고, 적어도 흠집이라도 나길 바랬지만 불가능했다.
"깨져! 깨지라고!"
근처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이 핏더미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것만이 보였을 뿐.
"제발, 제발!!"
"그렇게 해선 몇년이 지나도 못깰거야"
자기 자신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나긴 방황하던 그 때에 들은 음성과 똑같다.
뒤에 선 남자는 근처의 광경을 눈에 담는 듯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게 해선 안 돼"
"알? 무슨 말이야?"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 중요한 건 시간이 없다는 거니까."
"그건 보면 알아! 안다고.."
"적어도 네 힘으로 부수긴 힘들거야. 그러니까 우회적인 방법을 써야겠지."
"가능해? 가능하다고? 그럼 빨리-"
"재조립 해."
단순한 듯이 말을 내뱉었다.
"뭐...?"
"그게 최선이야. 재조립 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몰랐다. 아니 말을 알아 듣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그게 지금 무슨 뜻인지 알고서나 하는 말이야!!"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꼬맹이의 비명이, 얇팍해지는 호흡이, 점차 쉬어가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그거 말고 방법이 없어. 이번엔... 아니 이번에도 구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니까"
"그딴 무책임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좀! 좀 도와달라고!"
"말했잖아. 빌어먹게도 내가 구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이제 너 말고 남은 건 없어."
아니야. 아니다. 분명 달리 뭔가 있을거다.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 나는 분명히 말했어."
남자는 천천히 사라졌다. 하나의 신기루같이 그 자리에서 흩어져버렸다.
또 다시 그 떄와 같이 둘만 남게 되었다.
"내가 뭘..."
그때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또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데..."
언제나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단 한 사람에게 만큼은, 그러나 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린 나를.
영원히 도망갈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제발... 제발 "
야속한 세상이 싫었다. 어떠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구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함께 돌아가고 싶어. 그치만 이게 옳은 건지, 정말 네가 원할지 모르겠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딱딱한 결정을 붙잡고 울었다. 이게 내 욕심인지, 혹은 해야할 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나만의 독선이 되는 게 무서웠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게 되어버려서, 어느 쪽에도 후회가 남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싫으면서도 안도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언제나 결단을 강요해왔다.
내가 붙잡은 것은 어느새 사라졌었고, 평소와 같은 차림으로 주저 앉아있었다.
무너져내린 고심도의 유적 속에서
이끌리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뿌연 시야를 닦으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당연하다는 듯이 꼬맹이가 있었고 누군가를 붙잡고 날아가고 있었다.
"..."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말도 필요 없었다. 환상이란 것도, 가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와 '어째서'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유일한 질문은 왜 내 얼굴이 흐릿한가였다.
기억하기도 싫어진 걸까. 아니면 이제 잊고 싶어진 걸까.
"...여기 있는거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근처에 꼬맹이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 있는 거겠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렇구나.
여기가 환상이고 거짓이라면.. 이번 한 번은 그래.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테니까.
"그러니까... 그렇지?"
어딘가에 네가 있다면 지금은 너를 찾아도 될테니까. 기다려줘.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