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레오 녀석이 이터니움을 팔러 와서 밥까지 얻어먹는, 이제는 일상이라고 이름 붙일 만할 정도로 평범한 날이었다.
"음?"
"침식체라는 건, 사실은 사람이 변해서 된 거라는 소문이 있어. 마치 고전 공포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블랙 네트워크에서나 나돌아다니는 뜬소문이지만,
처음 널 봤을 때, 그런 경우인 줄 알았어. 침식체가 되다 만 인간."
"......"
"근데 아니었더라. 그냥 '그런 종류의' 카운터 능력이었을 뿐이었고...
그런 일 때문에..."
창문 너머의 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이상한 얘기를 다 하고."
"...참, 내가 뭔 소리를 한 거람.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두서없는 소리를."
"뭐야, 무슨 일 있어?"
"이번 XX 방송국 공모전, 꽤 규모가 크거든. 어떻게든 입선하면 프로그램 제작 확정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평소보다 더 의욕적으로 집필했지. 알바도 반으로 줄이고 밤도 반으로 줄여가면서. 겨우겨우 마감일에 맞출 수 있었어."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 발표하는 날은 언제까지야?"
"다음 주 목요일. 보자, 이제 일주일 남았네"
"뭐, 잘 해봐.
...난 간다, 물건 모이면 또 올게.
요즘 침식 사태가 잦은 것 같으니까 조심해. ...최근엔 바로 이 근처에서도 터졌잖아."
"뭐야, 걱정해주는 거야? 좀 감동인데?"
"...무슨 말을 못해."
"레오."
"어?"
"...당분간은 여행을 좀 다녀보려고.
네 말대로 요즘 특히 위험하기도 하고, 마감도 끝났으니 바람 좀 쐴 겸.
그러니까 한, 일주일 동안은 여기 오지 않아도 돼. 어차피 아무도 없을 거다.
그리고......"
"...아니다. 그냥 조심해서 가 봐."
"싱겁긴... 그럼 나중에 봐."
......
사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처음 레오의 모습을 본 그날부터.
녀석의 모습은 그날, 좀먹히듯 변해가는 그이의 모습과 닮아 있었으니까.
그이와 연관이 있으리란 건 분명했지만, 어째서 그런 모습인지... 정확히는 어째서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눈치채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고,
서로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녀석이 자신의 과거를 알려 주고 간 날.
그때가 되어서야, 머릿속에서 모든 게 이어졌다.
내가 살던 곳 주변에서 침식 사태가 자주 일어났던 이유.
그 아이, 레오의 삶을 망가뜨린 장본인.
블랙 네트워크에서 떠돌던 침식체 괴담.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장소에 가지 않은 나.
녀석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숴버린 건,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여자가 한 일이다.
그녀는 침식체가 되어버렸고, 그 후에도 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무고한 사람들이 휩쓸렸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모두에게서 피해 다녔구나,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뇌를 사방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최근에야 가까스로 방향을 정했다.
우선 그날 골목에서 훔쳐봤던 정보상을 찾았다.
그동안 레오가 이어놓았던 그이의 정보, 나의 잔지식, ...그리고 그이의 버릇을 종합해 출몰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현실 세계를 장소로 정하는 게 최선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이쯤이라면 내 위치와 겹치면서 출몰, 그리고 날짜는...... 목요일."
얄궂은 일이었다. ......이번엔 정말 자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정보상에게 웃돈을 잔뜩 쥐여주며 부탁했다. 레오에게 출몰 시각을 단 하루만 늦춰 전해달라고.
어차피 이제 돈 같은 건 필요 없게 됐으니까.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그런 일을 겪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다.
......
목요일. 이날, 내 위치를 중심으로 침식 사태가 일어나고 그이가 올 것이다.
최대한 피해를 적게 하기 위해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아무도 안 쓰는 공간이지만 가끔 어슬렁거리는 노숙자도 막기 위해 가짜 펜스까지 쳐놨다.
새삼 밋밋한 노을을 바라보며 미리 준비해 둔 건강해지는 드링크를 마셨다.
"그러고보니...... 여기서 레오를 처음 만났었지."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무색무취의 공기가 어느 순간 매캐하게 느껴졌다. 이터니움 실드의 바늘은 움직임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잔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만한 침식체가 현실 세계로 부상하면서 뿜어내는 침식파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 고통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오랜만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찾아오게 만들었구나."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레오...의 갑피와 닮은, ...하지만 기이하게 비틀린 모습.
안주머니의 권총을 더듬어 확인했다.
"...찾아다녔어.
찾고 싶지 않았지만, 찾고 싶었어."
기묘한 경험이었다. 입술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도 말이 들려오다니.
"......"
정말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 그리고 의아한 말뜻을 생각하느라 잠시 경계심이 풀리던 순간,
어느새 성큼 다가온 그이의 손가락이 권총과 함께 몸을 꿰뚫었다.
"크헉!..."
어렴풋이 무언가가 반짝이는 걸 본 듯했다.
"참, 예나 지금이나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쿨럭!..."
희미하게 미소 짓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은 채 시야가 흐려졌다.
뚫린 구멍으로 흐르는 뜨끈한 것이 손에 닿았다.
......결국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죽어가는 건 그렇게 괴롭지 않다. 어차피 그이가 구해줬던 목숨이니까.
정말 괴로운 건 따로 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까지의 나로선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나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어쩌면 애초에, 그러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날씨... 우중충하네.'
해가 지고 시꺼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저녁. 오늘이 무슨 발표날이라고 했던가. 혹시나 해서 모리 아저씨네 집에 가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축하... 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만나보고 싶었는데.
죽으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알려드립니다.
현재 □□ 부지를 중심으로 침식파 밀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대 CSE Lv.3으로 확인된 위험 상황입니다.
...민간인은 지시에 따라 즉각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3단계 경보...
직감적으로 느꼈다.
놈이다.
분명 대머리는 내일이라고 했을 텐데. 정보가 잘못된 건가?
그리고 어째서 발원지가......
전력으로 달려가면서도 더러운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다시 놈을 만날 분노나 두려움과는 조금 다른... 슬픔에 가까운 그런 느낌.
그 공터에 도착하고 나서야 어째서 그런 위화감을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
"......아저씨."
악취처럼 주변에 깔린 침식파.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모리 아저씨.
"아저씨!"
바로 달려가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피가 흥건한데도 아저씨는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점점 느려졌지만.
"무슨 일이야, 아저씨. 어째서 이런 꼴이......"
......
이 녀석, 어떻게 알고...
...침식 경보 덕분인가. 정말이지 발은 말도 안 되게 빠른 녀석이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지만 짓누르는 듯한 침식파가 자극을 주고 있다.
마치 그이가 남기고 간 침식파가 마지막으로 내 정신을 붙들어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애인....."
"...그 녀석... 네가, 찾던....."
"...뭐?"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저씨!"
내가 도와줬던 아이, 나를 도와줬던 아이, 마지막까지 기만하고 만 아이, 레오.
이미 눈앞은 뿌옇게 흐려졌지만 왜인지 레오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마치 첫날처럼......
그러니까,
그럼에도,
염치없지만,
......마지막 부탁을.
......
숨이 꺼져가는 아저씨의 말은 어느새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 빗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말 만큼은... 꽤 뚜렷하게 들렸다.
"......구해줘."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모리 아저씨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 머릿속이 도저히 정리되질 않았다.
그나마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다음 날 정보상을 찾아가고 나서였다.
모리 아저씨가 내가 찾던 그놈의 정보를 알아갔다는 걸, 그리고 나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게 한 걸 그제야 알았다.
"왜 그런 중요한 걸 진작 알려주지 않은 거야?"
"어제까지 물어본 적도 없었잖냐? 거기다 정보 파는 사람한테 정보를 공짜로 내놓으라고 하다니. 이만큼이나 알려준 것도 단골이니까 해주는 서비스라고."
대머리 자식......
상황을 정리해도 복잡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마음을 열었던 아저씨의 여친이 사실은 나의 원수.
그리고 어렵게 거의 추적했던 놈은 다시 행방불명 상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
생각없이 배회하다 도착한 곳은, 우습게도 다시 모리 아저씨의 집이었다.
벽을 타고 올라가려다 말았다. 어제부터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타고 오르기에는 너무 미끄러웠다.
좁은 공간에 지은 맨션이라 그런지 계단 경사는 제법 가팔랐다.
끼이익,
문에는 열쇠가 걸려있지 않았다. 그만큼 급하게 나왔던 건가,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부는 여느 때나 보던 풍경 그대로였다. 빈집 털이가 왔다 가진 않은 모양이다.
"운이 좋은... 건가."
평소 그랬듯이 매트리스에 풀썩 앉았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나 좁게 느껴졌던, 사실 지금도 좁은 단칸방이 오늘은 조금은 넓게 느껴진다.
맨날 둘이 있다가 이젠 한 사람밖에 없어서인건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큰 그릇에 담긴 국물 요리가 덩그러니 있었다.
슬쩍 손을 대보니 그릇은 차가웠다. 당연한 일이지만.
"...먹을 생각이 안 들어."
홱, 다시 문을 닫았다.
원고를 쓰던 책상에 눈이 갔다.
책상 위의 원고지에는 온갖 메모가 중구난방으로 적혀 있었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 사이사이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도 보인다.
놈을 쫓으려고 구한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필요할 것 같아 종이 뭉치를 주섬주섬 챙겼다.
'이러면 오히려 내가 빈집 털이가 되는 건가...'
종이를 챙기다가 실수로 책상 서랍을 툭 치니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자판기처럼 아래로 무언가가 굴러떨어졌다.
이터니움 조각이었다.
'이건... 내가 팔았던?'
거칠게 책상 서랍을 열어서 뺐다. 거기에 들어있던 다 쓴 펜, 이면지, 온갖 잡동사니 따위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
서랍과 책상 사이의 공간에 내가 팔았던 이터니움 원석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서랍을 빼자, 그것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뭐야......"
"쓰지도 않고 짱박아 두면 무슨 소용이냐. 누군가가 써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거지."
"말이랑 행동이 다르잖아, 아저씨......"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면서 책상 의자에 걸터앉았다.
"......"
그대로, 얼마나 오래인지도 모를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깜빡 잠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들게 만든 건 온몸을 자극하는...
'......침식파......'
바닥에 굴러다니는 이터니움이 주변을 보호해 준 건가. 그런데도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의 침식파라니.
어제의 그것과 비슷한 인상을 받고 바로 방에서 뛰쳐나왔다.
......창문이 아니라 문으로.
밖은 여전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건물 조각과 흙먼지가 빗물에 섞인 바닥을 찰박이며 침식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놈은 이미 자리를 뜬 건가.
그 사이에는 조그맣고 어린 애가..... 어린애...?
꼬맹이는 주저앉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떨고 있었다. 제 것인지 다른 사람 것인지 모를 검붉은 것을 덮어쓰고 있었다.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희미하게 깔린 물안개를 사이에 두고
그 아이는 어쩐지 이쪽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
"......구해줘."
머릿속이 미어터지게 복잡해져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
뛰어올라서 가장 큰 녀석에게 다리를 내리꽂았다.
뒤집어진 놈의 몸통을 무기 삼아 들어 올려 주변의 졸개들을 휘둘러 쳤다.
주변의 침식체들이 모두 쓰러지거나 도망칠 때까지 그저 온몸을 휘둘렀다.
안전해진 걸 확인하고 꼬맹이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정신 차려. 꼬맹이."
"으.. 아아... 으아아아아아앙...!"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껍데기를 뒤집어쓴 나를 봐서인지,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차."
급하게 껍데기를 거뒀지만, 녀석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울음소리 때문에 침식체들이 다시 올까 봐 주변을 경계했지만, 다행히도 큰일은 없었다.
......
한참을 그 상태로 있다가 충분히 울었는지 히끅이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아이.
조그마한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고......"
"고마...워요...."
"아......"
전혀 예상 못 한 말을 듣자 잠시 머리가 멈췄다.
이럴 땐, 이럴 땐 어떡하면 좋지.
"......"
잠깐이었지만 답지 않게 생각에 너무 오래 잠겼다.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
나는......
그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저 꼬옥, 너무 힘을 주지 않고 온몸을 감싸듯이.
그러니까, 언젠가 내가 안겼던 것처럼.
등을 때려대는 굵은 빗줄기가 차가웠지만 아이의 작은 몸은 은은하게 따듯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런 그리움이 스쳤다.
"......"
투둑, 툭.
아이의 머리 위에 작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릴 적에는 영웅이 되는 게 꿈이었어.
약한 사람들을 지키는 그런 영웅이.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나약함이 가득했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 나약함만이 강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