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시벌...."


-제프티 바이오테크 연구소에 도착한 것은 좋았다, 

다만, '원작'에서 이곳은 호라이즌이 워낙 개사기여서 그렇지, 

사실 상당히 정신 나간 보안을 지닌 곳이라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대체 뭐야, 이 격벽은? 오메르타로도 안 들어지는데?"


"재질이 금속은 아닌 것 같아, 이거....좀 골치 아파졌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원작'에선 이런 격벽이 1000개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걸 그냥 맨 몸으로 죄다 한번에 부숴버린 호라이즌이 미친 거지.


"방법이 없겠나?"


".....사장님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잖아요."


.....문득, 나는 핸드폰을 꺼내 뒤적였다.

그러다 한 뉴스 기사를 보곤 쓰게 웃었다.

한마디로 그 기사를 요약하자면, 우리들은 현재 샤레이드에서만 수배가 된 상태였고, 

그것마저도 관리자가 힘을 썼는지 누명이 풀리기 직전이었다.

리플레이서는 이에 대해 딱히 별 다른 추가 공작을 벌이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내 힘을 마음껏 드러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것.


"....오래 참았다, 내 부족한 점도 알았고, 개선점도 찾았겠다, 

이제부턴 마음껏 깽판 칠 시간이다."


우우우우웅-


내 앞으로 수 많은 검은 웜홀이 전개되더니, 

그랜델들의 포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히 하얀 전기를 타닥거리며 언제든 발사 준비가 

됐다고 알리는 것이 참 기특했다.

그럼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너 외부에 들키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 안 그래도 돼서."


"...하, 그래. 꼬맹아, 귀 막아."


"히이이이익....!"


포격 명령을 내리기 직전, 나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감시 카메라를 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 윌버, 윌버, 개 같은 우리 윌버....지금....만나러...갑니다...."


그리고 내 눈 앞이 새하얀 빛과 굉음으로 가득 찼다.

굳게 닫힌 격벽은 그렌델의 포격에 허무하게 뚫렸고, 

나는 천천히 앞장서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터니움 함량을 높여서 잘 안 통했던 거였구만?"


오메르타의 능력은 금속엔 절대적인 위력을 자랑하지만, 

아무래도 합금엔 좀 애매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 격벽 조각은 나름 쓸만해 보여서 적당히 몇 개 주워서

공방 안으로 던져 넣었다, 나중에 정확히 분석해서 써먹어야지.


서걱-


"....엉?"


"-조심하세요! 격벽 사이 사이에 나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 고마워, 대시. 그럼 어디...템포 좀 올려볼까!"


우우우우우우웅-


수 십을 넘어 수 백. 현재까지 완성된 948기의 그렌델들의 

포신이 일제히 격벽을 향해 포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다시 오메르타에 탄 채 속도를 높였고, 수십 개의 격벽들이 

그렌델들의 일제 포격에 버티지 못하고 한번에 돌파 당했다.


쿠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3인칭 시점-



-김식 일행이 제프티 바이오테크 연구소의 격벽을 돌파하는 동안, 

호라이즌은 피바다 속에서 박살 난 나무 장난감이 돼버린 

리플레이서 나이트를 바닥에 던지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테러 조직이 이 정도의 수준이라니,

대체 관리국 휴먼들은 일을 제대로 한 적은 있을까요."


원래라면 '울지 않는 너를 위해'에서 최대한 불살을 지향했던 

호라이즌이었겠지만, 하필 상대가 죽어 마땅한 테러리스트들이었다.

그것도, 빼도 박도 못하는 아주 악질적인 테러리스트.


"김식 휴먼은....저쪽인가요."


호라이즌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통신 채널을 열어 리타에게 말을 걸었다.


"-리타, 지금 막 출발했습니다, 지금 어디쯤입니까?"


[-어, 깡통...아니, 호라이즌이냐? 지금 우린 연구소다.

한-참 격벽을 뚫은 중이-'쿠와아아아아아아앙!!!!!!!!!!']


".....이 포격음은...설마 그렌델? 김식 휴먼이 지금 날뛰고 있는 겁니까?"


[....어, 이 미친 놈들. 대체 뭘 그렇게 꽁꽁 숨겼길래 

격벽을 1000개나 달아둔 건지.]


"그만큼 찔리는 것이 많은 거겠죠. 뭐, 윌버 같은 휴먼과 어울리는 자들이 

건실한 직업을 가졌을 리는 없으니까요."


호라이즌이 서서히 속도를 올리자 주변의 풍경이 점점 뒤로 늘어진다.

아직 전력은 남아 있었지만, 아까 리플레이서 나이트와 졸개들과의 

전투로, 얼마 안 가 비상 전력을 켜야 할 판이었다.


"....금방 합류하겠습니다."


[어, 빨리 와. 아, 맞다, 너 몸은 괜찮지?]


"...괜찮습니다, 아직 윌버 잡을 정도의 전력은 남아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지만, 이만 끊는다.]


통신이 끊어지자, 호라이즌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문득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전날 서윤이 겪었던 '그 위화감', 원래 이렇게 흘러갈 

운명이 아니었던 것 같은 위화감에 호라이즌은 미소를 잠깐 거뒀지만-



".....뭘까요, 운명 같은 건, 믿지 않습니다만...이 위화감은 참 희한하군요."


-원래였다면, 좀 더 처절하고, 외롭고, 슬펐어야 했을 호라이즌의 운명.

김식에 의해 바뀐 그 운명은, 늘 무표정을 고수하던 호라이즌에게 변화를 줬으니-


"....뭐, 그래도 나쁜 느낌은 아니군요, 오히려, 제 코어가 따뜻해지는 느낌입니다."


-그것은, 호라이즌이 '원작'보다 더 잘 웃게 되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수 분 후, 호라이즌은 마침내 김식 일행과 합류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김식 휴먼."


"....호라이즌? 그 테러리스트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뚫겠습니다."


조금 지친 표정을 짓던 김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렌델들의 

포신을 꺼냈던 웜홀을 거두고 자신의 오메르타에 올라타 숨을 골랐다.


"허억.....허억....허억..."


-눈에 생기가 상당히 없어진 채 힘들어하는 김식의 모습에, 

호라이즌은 문득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이 마음을 눈치채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이었다.


"....빠르게 뚫겠습니다, 이젠 슬슬 지겨워지려 하는군요."


부웅-!!!! 부웅-!!!!!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루실]을 들고 격벽을 향해 뛰어가는 호라이즌, 

이후 굉음과 함께 빠따질 한방에 격벽 3개가 한번에 날아갔다.


화르르륵-


루실에게서 맹렬히 피어오르는 푸른 화염에 닿은 격벽이 녹아 흘러내린다.

그리고 격벽이 부숴지자 그 너머에 있던 리플레이서 병사들이 

격벽 파편에 맞고 몸이 변형될 틈도 없이 터져나간다.


"-윌버, 감시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겠죠."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앙!!!!!!!!!!!


"지금 가고 있습니다, 도착하지 전까지 납부할 금액을 준비해 두십시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추가로, 문짝들이 허름하더군요. 교체를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격벽이 무너지는 속도가 김식이 뚫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빨라졌다.

그 모습에 김식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불공평하네. 그렌델을 몇 기나 쏟아부었는데."


"저를 그런 양산품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김식 휴먼."


"아, 이거 호라이즌 하나 더 없나요? 저도 하나 장만하고 싶은데."


"...훗, 아쉽게도 저는 비매품입니다, 포기하시는 걸 추천 드리죠."


"....아오, 내가 서러워서 너 몸 분석해서 내가 직접 만들어내고 만다."


"당당히 관음증 변태 선언입니까? 당신이 제 몸을 

분석할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게 진짜 대장장이지, 

언젠가 나만의 기계 군단을 만드는 게 내 꿈이야."


호라이즌이 그때 김식의 말을 듣고 상상한 것은, 

수많은 자신들로 이뤄진 군단이었다.

자신이 상상해도 상당히 괴랄한 상상에 그녀는 

당장 그 말도 안되는 망상을 데이터에서 지웠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side 김식-



-호라이즌이 격벽을 부수던 중, 격벽 너머에서 뒷목이 따끔할 정도의 침식파가 느껴졌다.


"....침식파 감지, 파형 분석 결과, 대형 개체로 추정됩니다."


"....대형 침식체? 이것들 대체 뭐하는 조직이야?"


"뭐, 보통 테러리스트들은 아닌갑지."


호라이즌은 고개를 돌려 우리들을 바라보는 감시 카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침식체들과 교류가 잦아졌군요, 윌버. 사냥감 취급도 안 해줘서입니까."


[....흥, 멋대로 지껄여 보시지, 고철 사채꾼.

하지만 이 녀석'들' 앞에선 그렇게 버릇 없이 못 굴 거다.]


....역시 뭔가 변했다, 지금 시점에서 리플레이서가 건재해서 그런 건가.


쿵-!!! 쿵-!!! 쿵-!!! 쿵-!!!!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벽에 뭔가 긁히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런 끔찍한 소리가, 여러 개로 나뉘어져 들려온다.


".....너희 저런 거 막 꺼내 써도 되나 보다?"


건물을 집어 삼킨듯한 살덩이 같은 거대한 몸체에,

위에서 꿈틀거리는 붉은 촉수들의 덩어리의 끝에 달려 있는 4개의 거대한 중계기.


-으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원작'에선 리플레이서의 전함, 뉴 오하이오 전함의 통신 체계의 

중계기를 담당하는 [어보미네이션] 두 마리가 격벽을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저거 리플레이서에게 있어서 중요한 거 아니었나?

잘도 저걸 두 개나 꺼내줬네?


"....보아하니, 본래 용도는 중계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래, 하지만 이것들은 중계기로써는 실패작이었지.

하지만 침식체로써의 전투력은 완성본 이상이다.]


.....아, 무려 본래 목적을 잃고 전투 특화 루트 탄 녀석들이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체 리플레이서 사태 때 무슨 

개지랄을 벌일 지 이젠 감도 안 잡힌다.


"-그렌델, 한 방 쏴."


[승인.]


콰아아아아아앙!!!!!


하얀 섬광이 선두에 있던 어보미네이션에 적중하고 터진다.

살점과 피가 조금 튀었지만, 큰 데미지는 아닌 듯 했다.


[크하하하하하핫! 그깟 장난감으로 저걸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짜증나는 윌버의 웃음소리에 이를 갈던 그때였다.


[......추가 포격 허가를 요청합니다.]


"....그렌델?"


-그렌델이 추가 포격을 내게 요청했다.

어째서인지, 포신에 전기가 유달리 거칠게 지직거리는 게, 

상당히 빡친 듯 해 보였다....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래, 아예 다시 싹-다 꺼내서 저거 가루도 남기지 마."


[확인, 전 그렌델, 심판의 망치 장전.]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레일건 코일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심판의 망치, 장전 완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포격 개시."


[망치 나가신다!!!!!!!!]


-이윽고 눈 앞이 하얀 번개로 가득 찬다.

섬광이 사그라들고 연기가 걷히자 어보미네이션 하나는 

완전히 가루가 되었고, 뒤에 있던 나머지 하나는 몸 윗쪽이 

모조리 날아간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ㅇ....이게...이게 무슨....?!]


"....쯧, 저거 재생할지도 모르니까 한방 더 쏴.


[한번으로 부족하며 두번 두드리리.]


지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음? 그런데 그렌델은 원래 반말체를 쓰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