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으셨네요, 사장님? 벌써 촬영 시작했어요."


 거대한 살덩이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출렁


 매끄럽고 보드라워 보이는 살결의 덩어리는 마치 인공적인 예술품의 그것이다.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이상적인 살결을 만들어낸 듯,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움. 하지만 그 밑으로 희미하게 비쳐보이는 푸른 혈관 그리고 붉은 혈류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기적이라며 그 순수성을 뽐내고 있었다.


"아, 제이나 양. 어쩌다보니 늦어버렸군. 미안하네."

"벼, 별 말씀을요. 사실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에요."

"흠, 그런가?"

"네... 생기 넘치는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시길래....... 연습할 겸 조금 장난을 쳐 봤어요. 죄송해요......."


 건성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면목없다는 듯이 반대로 사과를 해 온다.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 제이나. 몸 앞으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니 자연스레 그녀의 정수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밑으로 거대한 살결의 심연, 가슴골이 보인다.


 베이지 계열 색상의 머리칼이 살며시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살결의 심연을 따라 흘러내렸지만, 그리 짧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도 그 거대한 심연을 가려주진 못 했다. 그만큼 거대한 가슴이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따라 위 아래로 출렁거렸다. 심연을 감싼 고급스러운 천도 그 움직임에 맞춰 이리저리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이 마치 여물을 먹는 젖소를 연상시킨다. 그야 젖소 무늬 비키니니까!


 젖소 무늬의 비키니라 하면 분명 선정적이다. 하지만 보통의 비키니보다 더 면적이 작다....... 아니, 아니다. 비키니 자체는 분명 제법 큰 사이즈의 것이다. 하지만 제이나의 폭력적인 몸매, 폭력적인 흉부가 그 사실의 의미를 지운다.


 비키니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디자인적으로 조금 과감한 면은 있지만, 기실 그 디자인의 모토는 저 드넓은 챔버의 초원에서 방목되는 젖소이다. 분명 다른 모델이 착용했더라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되 좀 더 고급진 코스프레. 즉, 홍보대사의 면모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공들인 디자인으로 보인다. 


 제이나의 목과 허벅지에 매단 검은색 벨트. 거기 달린 금색 장식품은 챔버 전역의 군부대에 우유를 공급하는 군납 업체, 델타 밀크 목장의 로고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젖소에게 매다는 카우벨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제이나의 건강미 넘치는 허벅지살을 파고들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크흠."


 삶은 곧 번뇌라며 잘난듯이 말했건만.... 정작 저 번뇌의 덩어리를 마주하니 시선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니, 반대로 생각하면 저 덩어리 자체가 삶이 아닐까? 순간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만큼, 폭력적이고, 압도적인 흉부였다. 그 뜨거운 시선 덕분일까. 심연의 입구에 땀 한방울이 맺혔다. 그리고 그 땀 한방울이 가슴 라인을 따라 슬그머니 흘러내린다.


"크흐흠!!"

"...? 사장님... 왜 그러세요?"

"아, 아무 것도 아닐세. 가지."

"???"


 이 이상 제이나의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다간 심연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기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 내 모습이 어색했는지 제이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내는 살덩어리. 나는 피곤하다는 듯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시선을 감추고는 제이나의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촬영장으로의 길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제이나 크로펠.

 한 때 국제적 테러리스트 조직의 2인자였던 그녀는 여러 사건 이후 테러리스트 시절의 기억과 감성을 잊고 새로운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격이 극단적으로 소심해진 그녀는, 과거의 속죄를 위해 델타 세븐의 각종 업무를 도맡아하며 사람들의 도움이 되고자 했다. 단편적으로만 남은 과거 기억을 활용해 델타 세븐 임무의 안내자가 되거나, 델타 세븐 구성원들의 온갖 시중을 들거나 하면서 말이다. 

 

 제이나가 이번 델타 밀크의 홍보 대사로서 위촉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사실 델타 밀크 본사에서는 델타 세븐 주요 멤버 중 한 명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어했지만, 귀찮은 추가 업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홍보 대사에 지원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중, 누군가가 제이나를 델타 밀크 홍보 대사에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추천했다나 뭐라나.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만...


"그런데..."


 나는 촬영 감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왜 건전하고 공익적이어야 할 홍보 촬영이 세미 포O노 촬영장이 된 건가?"

"세미 포O노라뇨....... 어디까지나 건전하고 공익적인 우유 홍보 영상을 찍는 것 뿐인데 그런 말씀은 조금 섭섭합니다, 사장님."

"바다를 배경으로 비키니를 입은 미녀가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하얀 우유병을 가슴 앞에서 흔드는 건 아무리봐도 O르노 도입부에 가까워 보이네만. 애초에 우유 홍보를 왜 해변에서 하는 건가? 내가 너무 편협한가?"

"하하, 저정도 노출의 섹스어필은 요새 패션 관념으로는 굉장히 대중적인 편입니다, 사장님. 그리고 우유를 해변에서 마시지 말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이 곳 해변 카페의 인기 메뉴 중 하나는 시원한 밀크쉐이크지요. 사장님은 멋진 외모와는 다르게 꽤나 올드한 취향이시군요."


 능글맞게 답하며 웃는 촬영감독의 수염이 멋들어지게 떨렸다. 가볍게 멕이는 말을 내뱉은 촬영 감독을 보며 나도 마주 웃었다.


"멋진 수염이군. 올드한 취향은 내가 아니라 자네가 아닌가?"

"제가 클래식을 좀 좋아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하하!"

"자네 언변이 제법 느물거리는 것이 우리 회사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군. 능글맞기 짝이 없어."

"그 분도 건전하고 공익적인 분일 것 같군요! 그나저나 제이나 양의 저 파격적인 모습은 꽤나 그림이 되는군요. 홍보 효과가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파격적이라, 파격적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인가, 저 모습이?


 어시메트릭(Asymmetric). 오른편에는 젖소 무늬, 왼편에는 고급스런 검정 단색으로 칠해진 비대칭 비키니가 거대한 살덩어리를 감싸쥐고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니, 저 정도면 비키니가 가슴을 감싼게 아니라 가슴이 비키니를 감쌌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았다. 가슴을 받치는 네 줄기의 끈이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뜯어질 것 같은 저 모습을 파격적이라는 한 마디로 형용해도 되는지, 꽤 오랜 시간 많은 사건을 겪어온 나조차도 의심해버리고 만다.


"홍보 효과를 내고 싶다면 이렇게 화보만 찍을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직접 우유를 시음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겠나?"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지금은 일단 촬영이 먼저랍니다."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한 촬영감독이 제이나에게 소리쳤다. 


"자아! 다시 촬영하겠습니다! 자신있는 포즈를 취해주세요! 

"아까부터 자신있는 포즈를 취하라 하셨는데... 자신있는 포즈라고 해도... 어떤 포즈를 취해야할지..."


 제이나가 자신없는 표정으로 비키니 끈을 몇 번 고친다. 아무래도 그녀의 사이즈에 비하면 작으니 계속 신경쓰이는가 보군. 들어올린 끈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가며 자연스레 중력에 이끌린 끈과 들어올려진 가슴이 찰싹이며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자연스레 흔들리는 폭력적인 흉부. 보이는 건 카메라맨의 뒤통수뿐이었지만, 살짝 격앙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쩌억


"지, 지금 그대로도 괜찮습니다! 자연스럽게 계세요! 준비! 액션!"

"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요? 엇...!"

 

 그런데 방금까지 안고 있던 수박이 가슴에 맞아서 살짝 깨졌네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카메라맨도 제이나도 그걸 눈치챈 기색은 아니었다. 아니, 제이나는 눈치챈 듯 표정이 순간 변했지만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저 경이로운 공격력은 나 혼자만이 기억하겠군.


 테크 레벨 5... 아니 6단계급의 가슴이야.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하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지은 제이나가 우유병을 가슴께까지 들어올려 흔든다. 흔들던 병이 물에 젖은 옆가슴과 부딪혀 이내 내용물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얼굴과 가슴께에 살짝 튀었다. 카메라맨이 힐끗 촬영 감독을 바라봤지만, 촬영 감독은 웃는 낯으로 오케이 사인을 손가락으로 그렸다. 아니, 두 팔을 써서 크게 원을 그려 흔든다. 아주 사심이 가득하구만 그래?


 내 미묘한 심정과는 별개로, 오케이 사인에 안심했는지 제이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폭력적이고 자기주장강한 흉부와는 다르게 소심하기 짝이 없다.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해변의 뜨거운 햇빛이 그녀를 비췄다. 젖소에게 다는 카우벨을 형상화한 금색 장식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골반의 흰 끈에 고급스럽게 장식된 검은 리본, 그리고 귀에 착용한 인식표. 마치 델타 밀크 목장의 홀스타인 젖소 한마리를 데려다 놓은 듯, 젖소 그 자체의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는 제이나.


 철썩이는 파도와 흘러내리는 바닷물, 그리고 젖혀진 우유병. 촬영을 위해 우유를 병째로 들이킨다. 그리고 미처 입에 다 담겨지지 못하고 흘러내린 우유 몇 방울이 턱을 그리고 목을, 가슴을 따라 흘러내린다. 하지만 이미 뿌려뒀던 바닷물의 감촉 때문인지 제이나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꿀꺽, 꿀꺽

-...꿀꺽


우유를 넘기는 소리, 그리고 침 삼키는 소리만이 촬영장을 채웠다. 밀폐되지 않은 넓은 해변임에도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니 이 곳이 어쩌면 현실의 법칙이 부서진 이면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침만 삼키고 있었다.


"......이런 감상은 그녀에게 조금 실례가 될 것 같지만...... 정말 젖소 그 자체로군요."

"입이 재앙이라는 점도 우리 회사 직원과 같군. 자네, 그렇게 하고싶은 말만 하다가는 단명할 걸세."

"......잠시 입을 치워두도록 하죠."


-...퐁!


"푸하아... 영양 만점, 델타밀크!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이나가 우유를 마시고 병을 입에서 떼어내자,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청량한 소리와 대조적으로, 어색한 어조의 대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어색하게 웃는 그녀의 입에서 우유 한 줄기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살그머니 흐른 우유 한 방울은, 왼쪽 가슴을 감싼 검은 색 비키니의 정중앙에 떨어져 방점을 찍었다.


-톡


 소심한 그녀의 본성처럼, 조심스럽게 자기주장을 하는 왼쪽 검은 비키니의 튀어나온 부분. 그리고 그 돌기에 정확히 떨어져 내린 우유 한 방울은, 살며시 천에 흡수되어 간다. 떨어진 적이 없는 것처럼, 살짝만 하얗게 물들이다가 검은 천 속으로 사라져버린 우유 한 방울을 마지막으로 촬영 감독의 목소리가 울렸다.


"컷! 좋아요! 아주 좋았습니다! 첫 날 촬영은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이나 씨, 고생하셨습니다. 아주 훌륭했어요."

"정말인가요? 제가 도움이 된다니...... 기쁘네요!"


 제이나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는 이내 안도하며 슬며시 웃었다. 그 모습에 촬영 스태프들이 다들 헤벌쭉해지고 만다. 퀸 시절에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테러리스트들을 휘어잡더니... 기억을 잃었어도 퀸은 퀸(Queen)이군. 조금 의미는 달라졌지만 말이야.


"무얼, 도움은 저희가 제이나 님께 받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무려 홍보 대사신데."

"그렇네. 제이나 양. 오늘 아주 멋졌다네. 자신감을 가지게."

"참, 사장님이 옆에서 제이나 양의 촬영을 보며 내일 촬영에 대해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주셨습니다."


 내가 언제 그랬단 말인가?

 눈으로 촬영 감독을 흘겼지만, 촬영 감독의 눈은 제이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아까 핀잔주려고 말했던 내용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사장님 말씀으로 홍보 효과를 더 내려면 직접 시음 서비스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그래서 내일은 해변가의 사람들에게 직접 우유를 나눠주는 장면을 라이브로 촬영하고 끝내려고요. 그러니 오늘은 해변에서 쉬시면서 체력을 보존해두세요!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힘이 꽤 들테니까요."

"......"

"정말인가요? 사장님의 열의가... 느껴지네요! 저도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그러게나......"


 해맑게 웃는 제이나 앞에서 난 그런 소리 한 적 없다고 소리치기는 어려웠다. 제이나의 뒤에서 윙크하는 촬영 감독을 흘겨봤지만 그는 만족한 웃음으로 촬영 기재들을 챙기며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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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화만 찍싸는 관남 일화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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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