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수업]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이면 세계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고.

침식체라는 단어는 말 안 듣는 애들에게 부모들이 겁을 주는 방법으로 사용될 정도로 말이다.

정말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으으…….”

 

이불 속에서 끙끙대며 찬 공기에 살을 내주기 싫어하는 누구처럼 말이다.

샤오린은 스마트 스크린에서 울리는 익숙한 알람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가이내 손을 휘휘 저어버리고는 하얀 얼굴마저 긴 흑발로 덮어버렸다.

 

조금만조금만 더.”

 

알람이 꺼지자마자 샤오린의 휘젓던 손이 멈췄다.

점점 화면이 작아지는 스마트 스크린처럼 그대로 잠들었다면분명 좋았으련만.

 

[이 멍청이가!]

 

꺼져가던 스크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동시에 고함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뭐야?!”

 

샤오린의 고개가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번쩍 들렸다.

 

[멸치안 일어나?]

 

너였구나돼지.”

 

놀란 눈으로 반투명한 스크린을 빤히 쳐다보던 샤오린은그 속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미친년이.]


…….”

 

[네가 깨워달라고 한 거 기억 안 나냐?]

 

그랬던가?

 

샤오린은 잠깐 기억을 더듬다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왜 깨워달라고 그랬더라?

 

점점 생각이 꼬리를 물자 수마는 옅어졌고이내 그 이유가 떠올랐다.

 

!”

 

!

 

동시였다.

샤오린이 두 발과 두 손으로 이불을 차올려 천장에 부딪힌 것과탄성을 터트리는 순간이 말이다.

 

오늘 그 날이었지?”

 

상체를 일으킨 샤오린을 보고는 스크린 속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냥 깨우지 말 걸 그랬네.]

 

고마워.”

 

[내가 어쩌다 너같은.]

 

-.

 

샤오린은 잔소리가 쏟아질 걸 직감하고는 스크린을 강제로 꺼버렸다.

나름 전우라 부를만한 녀석의 투정 정도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 날이었다.

 

준비해야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이불을 정리하고는 샤오린이 하루의 시작을 준비했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일어난 샤오린을 보고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샤오린으로 위장한 침식체네얼마든지 쏴도 괜찮아.]

 

어제의 샤오린이 지금의 샤오린을 보고 그 얘기를 들었다면기꺼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샤오린은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은 분명 두 번 다시 없을 날이며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며무엇보다 소중한 날이 될 테니까.

 

뭐부터 준비하지?’

 

오늘 해야 할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집안 대청소.

맛있는 식사 준비.

약속 상대와의 대화거리.

그리고 선물.

 

전부 해본 적 없는 것들이다.

그랬기에 긴장됐다.

괜히 마음만 급해지자 발부터 동동 구르게 된다.

 

침착하자침착해.’

 

말로 되새기는 것만으로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샤오린은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안다.

벽 한구석에 위장한 스위치를 누르자바닥에 숨겨진 무기 진열대가 드러났다.

고민할 것도 없이 애용하는 저격 총을 꺼내든 샤오린은바닥에 천천히 그것을 내려놨다

 

대물 저격총 Mn98 Type.B

 

그녀의 가장 오랜 전우이자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이제는 2순위로 밀려나 버렸지만 말이다.

 

후우.”

 

무릎을 꿇어 정좌로 앉은 샤오린은 총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1초도 지나지 않아.

-직하는 전기가 튀는 소리와 함께 총이 부품 단위로 분해됐다.

그리고 한 번 더 전기가 튀었고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마워.”

 

그제야 진정이 된 샤오린은약간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총신을 짧게 쓰다듬고는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배운대로만그래 배운대로만.”

 

샤오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해야할 일을 차근차근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갈비찜과 미역국은 간이 알맞게 조리됐다.

그가 좋아하는 향으로 채워진 디퓨저를 열어놓고.

구석에 먼지 하나 놓치지 않고 방을 깔끔하게 치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치나츠가 분명.”

 

샤오린이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놓여진 빈 꽃병과형형색색의 꽃들을 바라보며 떠올렸다.

조언자의 낯선 조언에 따르면.

 

[꽃꽂이를 할 때상대방을 떠올리며 마음을 담으세요그러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랍니다.] 

 

조언을 들을 당시만 해도 반쯤은 미신이라고 생각했었지만미래를 아는 그녀라면 꽤나 그럴듯한 얘기라고도 반쯤은 생각했다.

 

좋아.”

 

샤오린은 떠올렸다.

그와의 만남을 말이다.

 

[모월 모일날씨 맑음요즘은 여기 생활도 꽤 마음에 든다비밀이지만사장님도 사실... 뭘 훔쳐보는 거예요!]

 

그때부터였을까.

 

[저기사장님일하는 중입니다자꾸 놀자고 하시면... 아니싫다는 건 아닌데요?]

 

아니면 그 이후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과거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마음엔 살이 차올랐다.

자신의 옆에 차가운 총 대신 따뜻한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그래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이 마음만은 쏘아낸 탄환처럼 흔들림 없이 올곧다는 것.

샤오린은 그것 하나만큼은 확신했다.

 

-.

 

전류가 튀었고샤오린의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

 

?”

 

집중이 흐트러진 샤오린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이었다.

약속한 시간 말이다.


정말처음이란 건 힘든 거네.’

 

당황한 샤오린이 허둥대며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를 닮아 어딘가 엉성하면서도아름답게 피어오른 꽃들이 흔들림 없이 꽂힌 꽃병을 놔두고서 말이다.

문을 열자 그가 보였다.

그가 손에 든 선물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처음 짓는 환한 미소였다.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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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인데, 누가 심심하면 팬픽 써보라고 해서 써봄.

문득 떠오른 걸로 써봤는데, 샤오린 하나만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만들자니 어려웠음.

아무래도 신부수업이라는 것자체가 평화로운 분위기가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엔딩 이후의 이야기로 썼음.

참고는 나무위키, 인물 정보.

좀 더 게임을 해봤으면 잘 썼을텐데, 리세계 눈팅 맞은 1일차 뉴비라 잘 몰라서 약간 뇌피셜이 담김.

또 써먹을만한 주제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