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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밤은 춥고 길었다. 마크 핀리가 페넥폭스 제 3 지대와 함께 시리아 락까 인근에 도착한 지도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사막에서의 야영이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는 것에 속했다. 

페넥폭스 부대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시리아 무슬림들은 그들이 매일 주문처럼 외우는 알라의 가호가 정말 있기라도 한 것 마냥 이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갔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합중국에서 건너 온 그에게 있어서 사막의 야영이란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뭘 원한다기보다는 이 사막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할 뿐이오.”

“그야... 우리가 지고 있으니까 그렇겠죠?”

“자기 구역에서 일어난 일은 자기들이 처리한다는 게 페넥폭스의 신조 아니었소?”

 

세상이 이 꼴이 되고 난 이후, 수많은 민간군사기업들이 생겨났지만 페넥폭스는 그 중 매우 각별한 경우에 속했다. 

태생적으로 PMC라기보다는 의용군에 가까운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페넥폭스는 다이브 활동과 그에 수반된 이터니움 채굴을 중시하는 다른 PMC들과는 달리 근거지 방위를 우선순위에 두는 경향이 있었다. 용병조직에게 선악을 따지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페넥폭스 정도면 이렇게 망가져버린 세상에서 매우 선량한 조직에 속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적인 용병조직의 활동인가 하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중동이나 아프리카, 카프카스 등의 오지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가치가 있겠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대답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도덕은 멀고 법인통장의 잔고는 가까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가난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이 조직은 삶의 터전을 지킨다는 뿌듯함을 원동력으로 삼아 오늘도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었다.

그런 독특한 성격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있어서 페넥폭스는 아주 이용하기 까다로운 조직이면서 동시에 아주 이용하기 쉬운 조직에 속했다. 마크 핀리가 버지니아주 랭글리에서 이역만리 시리아까지 날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솔직하게 인정하죠. 우리 힘으로는 무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격기 몇 소티만 지원해주시면...”

“요청은 했지만 쉽지는 않을 거요.”

 

마크 핀리는 눈앞에 서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턱이 살짝 튀어나온 점을 제외하면 제법 괜찮은 미인이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CIA의 오랜 덕목이긴 하였으나 하나로 묶은 갈색머리가 잘 어울리는 이 아가씨가 조악한 미제 구식 대전차무기 하나로 15년 넘게 침식체와 싸워온 전설적인 베테랑이자 시리아 지역을 총괄하는 지대장급 간부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는 어디서 잘도 무기를 공수해오던데 천하의 미국이 그 정도도 못해줍니까?”

“미안하게 되었지만 국방부에서는 중동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외다.”

 

일주일 전, 시리아 락까에서 한 극단주의자 이맘이 성대한 인신공양을 벌였다. 

침식의 고통을 종교적 열광으로 극복한 리플레이서 테러리스트 반군이 봉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시는 그들의 손에 떨어졌다.

테러리스트들은 수십 년 만에 돌아온 영광스러운 승리에 도취되어 알라를 찬양하였고 그들의 위대한 신을 기리기 위해 도시 한가운데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시작했다.

제물의 대부분은 강제로 납치당한 락까의 선량한 시민들이었으나 승천의 기회를 원하여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 또한 제법 있었다. 

IS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지만 참담한 현실에 절망한 무슬림들의 분노가 만들어낸 이슬람 극단주의는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리브의 페넥폭스 부대원들이 락까로 출동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현실적으로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도 이미 구식에 속했던 원시적인 장비로 무장한 페넥폭스의 부대에게 사태의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기대를 받지 않았기에 배신도 당하지 않은 페넥폭스의 부대는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가 제공한 다양한 무기들로 중무장한 테러리스트들에게 흠신 두들겨 맞았고 간신히 부대 건제만을 유지한 채 사막 한 귀퉁이로 도망칠 수 있었다. 

사정을 파악한 CIA가 마크 핀리 요원을 급하게 시리아로 파견했지만 마크 핀리가 아니라 제이슨 본을 보낸들 안 될 일이 될 리는 없었다.

 

“그래서 지원군은 보내준다고는 하오?”

“본부 말인가요? 아니면 아사드 말인가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않소.”

“카림이 다마스커스에서 전차대대를 하나 파견해주기로 했어요. 유감스럽게도 미국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지금으로썬 유일한 희망이겠네요.”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은 걸로 아는데?”

“이 바닥이 다 그런 거죠.”

 

물론 페넥폭스와 사이가 좋은 지역 군벌을 찾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를 찾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지만 시리아 정부와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의 관계는 유독 끔찍한 편에 속했다.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의 실질적인 전신이 FSA(자유시리아군)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길었던 시리아 내전이 시리아 민주주의 세력의 최종적인 패배와 항복으로 종결되었다고는 하나 최근 삼대 세습에 성공한 시리아의 독재자 카림 알 아사드에게 있어서 FSA에 기반을 둔 조직이 중장비로 무장한 채, 시리아 민주주의 반군의 성지인 이들리브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드는 페넥폭스의 위기를 좌시하지 않고 적극적인 지원을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FSA가 설치는 것보다 ISIL이 발호하는 상황이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사드가 별 일이군... 그나저나 젊은 아사드를 이름으로 부르는걸 보니 사적으로도 각별한 사이인가 보오?”

“CIA는 친한 독재자가 없나보죠?”

“북한에 킴이라고 멋들어진 친구가 한 명 있기는 하지.”

 

적당히 얼버무리는 그녀의 태도에 마크 핀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독재자와 민주화 투쟁가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질척질척한 히스토리들을 굳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없기는 했다.

 

“그래서 항공지원도 못주고 지원병력은 다마스커스나 로터스에서 알아서 구해오라 그딴 소리나 하고 있을 거면 고명하신 요원님은 뭐 하러 온 거죠?”

“응원?”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제발 나가서 죽어버리세요.”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나가서 죽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니까 여기 붙어있지 않겠소?”

 

마크 핀리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 지대장을 보고 실실 웃었다. 

참을성이 많은 베테랑 투사의 속을 벅벅 긁는 것이 즐겁기도 했지만 슬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 조국이 다른 건 몰라도 돈 하나만큼은 많아서 말이오.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대신 불러왔거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텅 빈 사막에서 바닥이 잠시 일렁거리더니 거대한 함선 하나가 튀어 올라왔다.

 

“당신 지금 엄청 멋있어 보이는 거 알아요?”

“빈 말이라도 고맙소. 예산이 제법 들어갔으니 활약을 기대해보는 수밖에.”

 

주둔지 인근에서 다이브 아웃한 중장갑함에 오늘도 메마른 밤을 보내던 페넥폭스 대원들이 환성을 질렀다. 지원군은 아무리 미약해도 환영할 입장인데 하물며 차원함선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설사 안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더라도 차원함선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당신들이 페넥폭스인가? 늦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한가보군. 내 이름은 에스타로사 드 슈발리에. 조디악 나이츠 블루시프트의 단장이다.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위험에 처한 시리아 시민들을 구하러 왔다.”

 

그 안에 광대들이 타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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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페넥폭스랑 조디악 나이츠에는 관심을 안가져줘서 써보게 되었음.

글을 잘 못써서 많이 미안해.. 비추는 달게 받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