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텅 빈 사무실에 남녀두명이 남아 일에 열중하고 있다. 자판기만 타닥타닥 두들기고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뿐 다른 소리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카린은 지금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 왜냐면 그녀는 지금 일생일대의 도전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저...저기 주말에 시간비면 그...저랑 같이 놀러가지 않을래요?"


들릴듯 말듯 조용히 말해보는 카린 나름 용기내어 던진 제안이었다.


"어? 방금 뭐라 그랬어?"


카붕이가 들을리 만무하다. 일하느라 바쁜데 이런 조그만 소리가 들릴리가 없다.


"아무것도 아니에요.일이나 하죠."


카린은 얼굴이 붉어진 채 다시 자판을 두드린다.


그렇지만 머릿속은 온통 방금 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멍청이 멍청이 바보!'  데이트 신청을 할거면 당당하게 해야한다 라고 어떤 책에 쓰여있었는데 자기는 지렁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어렵사리 던진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 주시영이 있었다면 1주일 내내 놀림감으로 써먹으면서 카린의 화를 돋궜을 것이다.


"카붕쿤 오늘은 이만 퇴근하죠. 벌써 9시가 다되가네요."


"어? 벌써? 오늘은 일찍 끝내네. 평소라면 10시도 넘기는 카린이 왠일이야??"


깜짝 놀란 카붕이는 해가 동쪽에서 뜨겟네 라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퇴근준비를 하는 카붕이에 비해 카린의 손은 느릿느릿할 뿐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데이트 제안은 백프로 물건너 갈것이기에 어떻게든 제안을 해야하는데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저도 일찍 들어가고 싶은 날 정도는 있는 법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카린은 지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카붕이가 정리를 끝내고 회사 문밖을 나서면 그 때 이야기하자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는다.


"그나저나 열심히 일했더니 배가 좀 고프네...카린 간단하게 먹고 들어가지 않을래? 내가 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제안을 하는 카붕이의 말을 들은 카린은 화들짝 놀라며 방금 입을 떼려했는데 다시 닫혀버렸다.


"시...식사요? 예 뭐 그 괜찮습니다."


"그래? 왠일이야 밤에는 죽어도 뭐 안먹겠다고 시켜줘도 안먹던 카린이 이렇게 쉽게 먹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내일은 진짜 해가 동쪽에서 뜨려고 그러나?"


카붕이는 신이 나서 가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카린은 적당히 대답만 할 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카린은 일에 관해선 그야말로 유능함 그 자체였다. 남들은 힘들게 하는 일을 쉽게 해결하고 가끔은 현장에도 나가서 일을 발빠르게 직접 처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완벽초인 그 자체인 카린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그저 딱딱한 직장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직장동료들과의 교류는 없다시피 하고 남들에게 일을 맡길땐 자신을 기준으로 너무 빡빡하게 시키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변 사람중에선 주시영만이 카린과 같이 다니지만 주시영은 주시영대로 또 다른 문제가 있어서 사내에선 보기가 힘들다. 그렇다보니 카린은 늘 사내에선 밥을 먹을 때든 일을 할때든 늘 혼자였다.


또 의외로 카린은 순진한 구석이 있다보니 주변 동료들이 일을 부탁하면 거절을 하지 못해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다보니 자기에게 할당된 일이 산더미처럼 불어나서 지금처럼 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부지기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친구가 부사장님 가슴에 손을 대고 얻어터졌지 뭐 하하하"


카붕이는 나름 사내에선 알아주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아마 코핀 컴퍼니가 아니라 일반기업에 갔었다면 줄을 잘서서 나름 괜찮은 자리까지도 노려볼만한 인재였지만 하필 입사한 회사가 코핀컴퍼니였다.


개성넘치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이다보니 카붕이의 개성은 이 회사에선 그렇게 대단한 빛을 보지는 못했다.


지금도 이렇게 적당히 대답만 하는 카린을 위해 나름 즐겁게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만 봐도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카붕이가 말한 식당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카린은 이번에야말로 꼭 이야기해야지 마음을 다 잡으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모! 여기 수육국밥 두개요!"


추운 날엔 역시 뜨끈한 국밥만한게 없다고 생각한 카붕이는 카린을 데리고 자기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그 국밥집으로 오게되었다.


"카린 여기 국밥 장난아니야 고기도 많이 들어있고 특히 이 깍두기가 대박이야 한번 먹어봐"


신나서 맛있게 먹는 법을 전수하는 카붕이 그에 반해 카린은 초조하기만 하다.


주변은 소주한잔에 국밥을 먹으며 회사상사 뒷담하는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보며 욕을 하는 사람들과 친구들과 함께 한끼를 해결하는 사람등 시끌시끌하기만 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제안을 해...하며 국밥집 이모가 내다준 카린의 피부처럼 뽀얀 국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카린 얼른 먹어 국밥 식으면 맛없어"


밥 한공기를 국밥에 풍덩떨어뜨리고 깍두기국물까지 밀어넣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맛있다 라고만 외치는 속없는 카붕이


"하아..."


한숨을 푹쉬고는 카린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숟가락 떠거 국에 말아먹기 시작했다.







"후우...잘먹었다...역시 이 집 국밥은 일품이란 말이야."


배도 든든하고 몸도 따땃하니 행복한 오라가 카붕이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에 반해 카린은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카붕이가 계산은 자기가 하겠다는 걸 한사코 말려서 자기건 자기가 내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카린은 그래도 자기 생각해서 맛집 데려온건데 자기가 너무 맛없게 먹은게 미안해서 자기가 내겠다거 억지를 부린것이다.


"그럼 이만 갈까...난 저쪽인데 카린은 어느쪽이야?"


"저도 저쪽이요."


원래 카린은 반대방향이다. 척수반사로 자기도 모르게 카붕이의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밤10시가 지난 시간 거리에는 이제 인적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넓은 거리는 카린과 카붕이 둘만이 걷고 있었고 카붕이는 계속 속없이 혼자 떠들고 카린은 적당히 기회를 봐서 데이트 제안을 하려고 하지만 카붕이의 수다는 멈출 생각이 없는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카붕이의 집까지는 얼마남지 않았다. 카린은 점점 초조해지고 이만 포기하거 얌전히 집에나 가자 생각하며 걷다보니 카붕이의 집 앞까지 오게 되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던 카붕이는 문득 신경쓰이는게 있어서 카린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기 카린 신경쓰이는게 있는데"


뒤돌아서 가려던 카린은 카붕이의 물음에 걸음을 멈추고 카붕이를 바라보았다.


"뭐죠? 저에게 신경쓰이는 점이라니"


나름 기대에 부푼 카린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있는거 아니야? 아침부터 계속 애매하게 대답하니까 궁금해서 그래 무슨 부탁이라도 있어?"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카린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 포기하려던 찰나에 인생 첫 데이트 제안을 하려는 카린


"그...별 건 아닌데 호...혹시 주말에 시간비면 저랑 같이 놀러가지 않을래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쥐어짜내어 겨우 말한 카린 눈을 찔끔감고 얼굴은 벌개진 채 카붕이를 똑바로 보지 못한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야...난 또 무슨 큰 일인줄 알았는데...주말에...일이 없는건 아니지만...괜찮아 근데 몇시에 볼까?"


카린이 아침부터 계속 자기 주변만 맴돌며 말을 걸었다가 쏙 들어가고 밥먹을 때도 일부러 자기 옆에 앉아서 먹더니 주변 눈치보느라 말을 못하고 하루 종일 그러길래 뭔가 엄청나게 말하기 힘든 부탁인가 보다 했는데 카붕이는 약간 김이 빠져서 대답했다.


카린의 데이트 제안에 카붕이는 흔쾌히 알겠다 라는 대답을 들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장소랑 시간은 제가 문자로 보내 놓을게요. 오늘 밤은 늦었으니 주무시고 날도 추우니 따뜻하게 하시구요.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후다닥 도망치듯 달려갔다. 지금 카린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마치 고백에 성공한 소녀가 된 것 마냥 뛸뜻이 기쁘다.


옷은 어떤걸 하지 어떻게해야 그가 즐거워 할까 그는 어떤걸 좋아할까 그녀의 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노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