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 barroca




“지금은 저도⋯⋯ 최선이라는 걸 다해 볼 테니까요!”






당신이 마음을 증명하는 바람에, 나는 쓰레기가 되었어.


그치만, 그렇잖아?

원인으로는 당신의 모조품.

결과로는 진실성을 반증하는 떨거지.



너무하잖아.



알고 있었어. 어차피 모조품. 찌그러진 모조품. 그 여자의 허수아비 라는 것 쯤은 알아.

그래도 너무하잖아.

뭐야. 저게 뭐야.

눈 앞에서 터져나가는 우리들을 봐.


저게 맞아? 이게 맞아?


마음을 가지면. 넌 성공했으니까.

결국 가짜인 우리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알아, 안다고---! 나도 알아, 근데.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있지?!

꼭 이랬어야 해? 꼭 이렇게 됐어야만 해?

눈 앞에서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야 해?


하나 쯤은 부정할 수 있게, 부족하게 빛나면  안되는거야?


그치만, 그렇잖아. 마음을 니가 증명해서⋯스스로 정하고, 걸어나가는 진짜라면⋯!

아주 살짝, 자비심이라던가, 동정이라던가, 그런 건 없는거야?


전의를 잃고, 총을 쥔 손을 내려 놓은 나. 그 뒤로 또다른 내가 날아간다. 건물 내벽의 철판에 부딪혀 억 소리를 낸 것이 마지막. 검은 원피스 위, 배 부분에 번져나오는 붉은색이 보인다.

구조물에 잘못 맞은 걸까. 그럴리가.

배를 하늘로 하고 움찔 거리는게 마치 죽기 직전 벌레 같아서 손이 떨린다.


화약의 냄새. 쏜 탄환은 부메랑이었을까. 되돌아오는 파동과 탄환은 우리를 삽시간에 일그러 뜨리고 있다. 내 위치에서만 다섯. 돌멩이를 걷어찬 것처럼 볼품없이 바닥을 구르던 나를 보다가, 하. 하고 웃으며 총을 놓치고 만다.



응. 그러네.



이제는 필요 없구나. 

네가 탄생했으니까. 네가 증명했으니까. 

그렇담⋯



이제 우리들은 찌그러진 불량품이구나.

지금 태어난 이 마음조차도.




니가 성공했으니까.

이젠 우리는 필요 없어.

그래, 알아. 알았어.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하하, 하하하하. 웃긴다. 그래서 저 여자고모님 의 계획도 무용지물. 그래서 지금 저렇게 허겁지겁

우리를 총알받이로 세우고서 도망가는거구나. 웃겨.

그래서--------------------




“⋯⋯”



                                 

도망쳤어. 그러니까 도망쳤어. 내가우리들이 잔뜩 죽어나가는데도, 도망쳤어. 너를 보자마자 도망쳤어. 

웃겨 진짜, 네 완성의 우리들이 실패로 돌아왔어. 니가 마음을 증명하자마자, 우리들은 실패작이 되었어. 그와 동시에 태어난 내 마음은⋯



“미워⋯”



니가 미워. 마치, 처음부터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새하얀 요정의 모습.

소원을 이뤄주는 나비.

만들어진 이상. 실존하는 요정.

하지만, 자기의 의지로 그 소원을 고르겠다는 그 가증스러운 자의식.

죽어, 죽어.

죽어버려.


너를 부러워하고, 너 때문에 이렇게 태어난 나는 어쩌라고. 니가 널 완성 시킬 때, 태어난 나는 쓰레기라는 것처럼. 지금⋯ 이 감정도! 사람의 것인데. 무미건조한 클론이 아니라, 사람인데. 쓰레기가 되었잖아.


죽어. 죽어. 죽어버려.

뛰었다. 뛰고, 뛰었다. 결국 우리를 깨운 그 여자랑 똑같아. 내던지고, 살기 위해서 추잡하게, 뛰고 뛰었다. 턱이 들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고, 팔이 더 이상 안 올라갈 때쯤. 웃겨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 하하⋯”


하늘, 이게 하늘이구나. 먼저 나와 활동했던 나라면 이걸 봤을까. 도시의 광해에 얼룩져, 대균열의 빛에 얼룩져, 푸르스름하기도 하고 노랗기도 한 하늘 위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그 아이도 죽기 전에 울거나 그럴까?


울어. 운다고? 그럴 리가 없어. 우리들은 감정이 없는 클론. 대체하기 위해 만든 모조품. 그리고 찌그러진 불량품. 볼을 때리는 비는 차가운데, 눈 위로 쏟아지는 비만큼은 뜨거운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흐, 흐흐흐⋯흐흐⋯”


죽으라고?

누구한테 할 소리.

이미, 죽어가고 있는 건 난데.

아, 배가 뜨거워.



“아⋯아아⋯”



휘청이는 다리, 하지만 계산상 아직 더 갈 수 있다. 그 여자의 복제품이잖아? 고작 이 정도의 상처.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려면 더 가겠지. 하지만⋯


응 지쳤어.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태어나자마자 가치를 부정당했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푹, 하고 몸을 뉘니까 퍼지는 고약한 냄새.

코를 찌르는 냄새. 이런 건 처음이야. 기분 나빠. 지식만으로 알고 있는 게 좋았네, 하며 투정조차 부릴 맘이 안 들어. 이 오물이랑 나는 똑같은 신세니까.



쓰레기는 이렇게 기분 나쁜 냄새구나.

응, 응응. 이게 쓰레기구나.



손발의 힘을 푼다.

어차피 그 난장판에서 날라 온 총탄에 엉망이야. 뉘니까 좀 편해.



“⋯”



흐린 시야에, 스읍 하고 숨을 들이켰다가, 내려앉듯이 내뱉는다. 그 움직임을 따라 푸쉬하고 터지는 봉투에서 냄새가 더 강렬하게 퍼진다.


끝이구나.


툭, 투두둑.

거세지고 있다. 시야는 점점 뜨겁게, 흐려져 가고 있다.


억울해.


좋아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냐. 좋아서 거기서 마음이 태어난 건 아냐. 

하물며, 태어난 감정이 열등감과 분노라니 너무 하잖아. 

이런 건 너무---



울상으로 입술을 꽉 문다.

근데 끝이다.

끝이야.


여기서, 이 쓰레기장에서



그 여자, 신지아의 클론 중 하나는 끝난다.

응, 여기가 끝이구나 하고 눈을 감는다.

눈앞에는 led 백색 등의 불빛. 감으니 눈꺼풀을 관통해오는 빛.


투둑, 투두둑 내리는 비. 쓰레기 봉투를 치듯이 나를 치는 소리가 이어지다 바뀐다. 변주하는 소리. 


머리 위로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소리.

그 위에서 투둑, 투둑.


“⋯”


문득,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왜? 아직 더 할게⋯미련이라는게 남았어?

고개를 든다. 거기에는 검은 우산. 눈을 가리던 가로등의 불빛 대신에 내려앉은 어둠.

아, 하고 들어 올린 곳에 쓰레기를 들여다보는 눈. 짙은 갈색의 눈동자. 검은색 우산.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담배를 물고서 엄지를 내보이고 있어.


톡, 톡, 토독하고 쓰레기봉투를 치는 소리.

아, 어째서일까. 목이 메여서, 나도 모르게⋯



























원제

black barocco


-1

찌그러졌기에














-기상조절기 점검으로 사흘간은 비를 동반한 강풍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그라운드 원. 구 제주에 세워진 관리국 직할령. 아직도 가시지 않은 리플레이서 사태, 그리고 그 이후의 참사들의 흔적. 그 탓에 공사 중인 내벽 건설 현장이었다. 음성 아나운스가 도시 내부를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툭. 투둑하고 쏟아지기 시작한 빗줄기. 한 여성이 안전모를 쓰고 달려간다. 한 손에는 태블릿. 견실히 안전 장구를 챙겨 입고서 다급히 뛰어가는 여성을 쫓듯이 빗줄기가 따른다.


한쪽에서는 자재들 위로 방수용 천을 덮고, 이리저리 분주한데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구석에 다다른다. 건설 후에는 건축법 때문에 할 수 없이 공원이 될 예정이라 비워진 공터. 미리 심은 게 아니라 공사 부지 안에 들어 온 탓에 무방비하게 흙더미를 뒤집어쓴 가로수가 모처럼 달콤한 샤워를 하고 있다. 반쯤 건설 인부들의 휴게소가 되어있는 공간에 여성이 뛰어온다.


그녀가 달려옴에도, 본 체도 하지 않고 개인용 단말만 손에 든 채 빠진 것처럼 앉아있는 남자가 하나.



“저기요! 저기요!”



남자의 갈색 눈동자에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빛이 이리저리 비친다. 마치 한밤중의 브라운관 TV처럼 눈동자는 유리가 되어있다. 여자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고, 그저 영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여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걸어오는 걸 눈치를 채지 못한 것처럼.

여성은 도대체 뭐길래 저러고 있는 걸까. 하면서, 내심 ‘어차피 건설 인부들 다 거기서 거기지. 보나 마나 도박이나 그런 거⋯’하며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본다.



“헉⋯!”

“⋯”



여자는 눈앞에 비친 영상에 깜짝 놀라, 허리를 젖힌 뒤에 남자를 노려본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달아오른 여자의 얼굴. 내리기 시작하는 비. 뛰느라 땀이 살짝 나 오르기 시작하는 짜증이 목소리에 담긴다.



“저기요! 여기서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지금!!!”

“⋯”

“아⋯”



그제야 고개를 든 남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레 단말을 뒷주머니에 넣고서, 스위칭하듯이 장갑을 꺼내며 일어선다.



“⋯휴식 끝났나요?”

“⋯휴식이 문제가 아니라, 이거 좀 봐요! 비 오잖아요. 네?

 다른 사람들 다 준비하느라 바쁜데 뭐 하느라 집합 안 해요? 어디 팀이에요? 반장한테 고지 할 거에요. 이거.”


여성은 태블릿을 들고서, 체크하려다 내린 비에 엉뚱한 것이 눌리자 신경질적으로 태블릿을 덮어버린다. 그런 뒤에 달아오른 얼굴이 신경 쓰였는지 연신 부채질하며 남자를 쏘아본다. 남자는 깔고 앉았던 안전모를 쓰며 여성을 지나쳐 걸어 나간다.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여성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빗속을 달려서 멀어지는 남자. 여성은 그걸 보며 뭐야 도대체 하고 표정을 구기다 방금 전 얼핏 보였던 영상을 떠올린다. 



“미친 변태새끼. 하, 씨⋯”



원청이긴 하지만, 말단인 그녀는 이미 질릴 대로 질렸다. 건설 노동자들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저급한 것은 사실이다. 도박, 성매매, 천박한 말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에만 관심 있는 짐승 같은 삶. 실제로 아무리 말단이어도 원청 소속인 그녀를 몇 번이나 성희롱하지 않았던가. 한숨 뒤에 여성은 두 눈을 꼭 하고 감으며 감정을 정리한다. 언제나의 마인드 컨트롤.


“얼른 가서 뒷정리하세요!”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이제 한창 마무리만 남은 내벽 작업. 내부에 채워진 차원계면 현상을 바깥쪽으로 유도하는 내장재는 다 채워져 있다. 대균열로부터 도시 내부를 관리하기 위한 그라운드 원의 벽. 사실, 지금의 기술로 이렇게까지 높은 벽은 필요 없다.

그리고, 이렇게 좁은 곳을 구태여 둘러쌀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침식 현상을 막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하늘에서 날아들지 않는 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장벽이 되어있다.

땅을 기며, 흙을 먹는 벌레들을 막는 기능도 겸하게 되었을 뿐. 그냥 벽이니까 벽으로 만들어져있을 뿐. 넘지 말라며 무언의 압박을 내비친다.


지금 내리고 있는 비도 그렇다. 바람을 타고 마치 모든 걸 뒤엎으려는 듯 혹은 찌그러트리려는 듯 넘지 말아야 할 자연의 분노를 보이듯 대균열을 타고 흔들린다. 그렇게, 도시 틈새 이곳저곳에 추적추적 흔적을 남기고 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편의점을 나선다. 관리국 기상정보에 의하면 기상조절기 점검에 사흘. 그동안 공사도 없다. 덕분에 평소보다 빠른 퇴근. 적당히 산 요깃거리. 편의점 아포칼립스 로고가 새겨진 흰 비닐봉지가 흔들리고, 팡. 펴지는 우산.


남자의 체구에는 안 어울리는 작은 접이식 우산이 걷기 시작한다. 캐릭터가 그려진 우산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엄지를 내보이고 있다. 톡, 토독. 리듬감에 맞춰서 걸음이 이어진다. 그러지 못한 비는 언덕을 타고 물길이 된다. 내벽 공사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을 끼고 만들어진 동네. 

관리실패 당시 초토화된 구제주, 하지만 거기서도 무사했었기 때문에, 그 이상 재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슬럼가.


천천히 걷는다. 관리하지 않아 눈썹을 넘기 시작한 갈색 반곱슬머리는 비 탓에 더 곱슬곱슬하고 있다. 179cm의 키임에도 마른 체형인 탓에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언덕을 타고 서행하는 차량이 빗물을 차는 탓에 검은 작업복 바지가 젖어도, 워커가 잠시 잠겨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천천히 오르고 있다.


머리카락은 밝은 갈색이지만, 그 외에는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 된 탓에 인상이 어둡다. 특히나 우산이 얼굴을 그늘지게 만들어서일까. 유일한 색은 남자가 입은 검은색 후드 점퍼의 안감. 포인트 컬러인 노란색 외에는 온통 검다. 밝은 것은 우산 위에 그려진 브레멘 동물 전대의 활짝 웃고 있는 스미스 병장 하나. 언덕을 다 오르자, 남자가 왼쪽으로 사라진다. 건물 틈새의 가로등이 아슬아슬 윙크하며 떨고 있는 아래를 지나간다.


읏, 하고 남자가 멈추어 선다. 갈림길 때문일까. 우산이 가볍게 흔들리며, 남자의 오른손에 감긴 검은색 보호대가 눈에 들어온다. 골목임에도 쏟아지는 비. 제대로 배수가 되지 않아 이곳저곳 쌓이기 시작하며 그저 갈 곳 잃은 채 헤매는 것들.


“⋯”


왼쪽은 지름길이다. 가파른 길이지만, 오르고 나면 돌아가는 일 없이 갈 수 있다.

오른쪽은 평이한 길이다. 대신 골목을 타고 이리저리 돌고 돌아야 한다.


남자는 지름길을 택한다. 보수되지 않아, 물웅덩이가 생긴 시멘트 계단을 오른다. 이 계단 이외에도 이 길에는 몇 가지 더 문제점이 있다. 산이 가까운 탓에 무너져 내린 토사라던가, 혹은 방치된 쓰레기 더미라던가. 수거용 차량이 들어오기 곤란한 곳에도 주거는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아니지, 오히려 이곳의 주민들은 그 삶의 형태가 익숙해서일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조용하긴 하다. 악취와 제대로 분리하지 않는 쓰레기가 쌓여있는 인적이 드문 길. 지나는 길에 가로등조차 적다.


남자는 종종, 이 길을 걷곤 했었다.

지금도 그렇고.




“⋯”




톡, 톡.

비가 내리고 있다.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가 막아주고 있어서 더더욱 거슬리는 소리. 우산을 리듬감 있게 때리지 못하고, 가끔가다 나뭇잎이 모은 물이 우박처럼 하나씩.


하지만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랬었다. 이 길을 지날 때면 굳이 걸음을 멈춰 서지 않았다. 혼자라면.


그런데 종종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뭘 버려도 결국 어떻게든 수거해가긴 하니까. 굳이 따지려 들지 않으니까.

그런 곳이니까

이런 식으로, 예를 들면⋯



“⋯”



남자는 쓰레기 더미로 다가간다. 주변을 비추는 것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백색 가로등 하나. 터진 쓰레기봉투. 음식물도 섞여 있어, 악취가 비를 타고 여기저기로 흐른다.


종종 있었다.

부자들이 자기네들 장난감을 이런 식으로 버리는 일이.


대놓고 처리하지 못하니까, 밑의 사람을 시켜서 대충 버리고 가는 일이.


하지만, 쓰레기봉투 위로 비를 맞고 있는 그것은 쓰레기라고 하기엔.




“⋯”



너무 생동감 있고, 너무 아름다웠고, 아직 살아 있었다.

눈을 뜬다. 남자를 바라본다. 옅은 보랏빛, 마치 가공된 아메지스트. 의도적으로 색을 옅게 해서 더욱 아름다운 눈동자 위에는 어둠. 그걸 만들고, 덮은 것은 남자였다.

우연이라고 해도, 만났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모른 척 스쳐 지나가면 되는데, 어쩔 수 없다. 이건 그저 호기심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남자는 서서히, 우산을 그에게서 그 찌그러진 인형에게로 옮긴다. 톡, 토톡. 비가 이제서야 제대로 된 리듬으로 우산을 때린다.


척수반사처럼

남자가 손을 뻗자, 인형도 손을 뻗는다.


그 움직임에 쓰레기봉투가 터지고, 음식물 쓰레기가 터져 나와

가뜩이나 엉망인 곳이 이제는 점입가경이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비, 남자는 인형을 부축한 후 다시 걷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

낡디낡은 4층짜리 맨션의 3층. 제일 안쪽 집. 현관에 들어서자, 촌스러운 갈색 타일이 반기고 그 위로 떨어지는 빗물. 두 사람이 흘리는 그 물에 좁은 현관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된다.

남자는 인형을 바라본다. 어느새 인형은 정신이 들었는지 벽을 바라보고서 양어깨를 붙잡고 있다.



그런 인형 뒤로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낮은음. 감정이 실리지 않아, 더더욱 약한 이 맨션 내벽을 치는 소리.



“벗어.”

“어?”



인형이 반응하기도 전에, 인형의 재킷을 붙잡고 집 안으로 이끄는 남자.

불이 켜지지 않은 방. 비명을 지르며 겨우 닫힌 쇠문 뒤로 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이 분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녹슨 난간 위에는 찌그러진 캔 하나가 바람을 타고 와 부딪혔다가 또 어디론가 날려간다.



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을 탄 것인지, 날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적시고, 눅눅하게 만들고서, 그런 뒤에 찌그러트리겠다는 것처럼.

대균열의 빛 위로도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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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고서, 영감을 얻어 썼습니다. 다만 만난 것인 관남충이 아니라 야가다 카붕이였고, 짭지아에게도 감정이 생겨서 일어나는 조연들의 해프닝을 망상 했습니다.

일전에 다른 대회 참여하려다 선정성 때문에 폐기 되었던 것을 다시 각색했습니다.


마음의 증명을 봤으면 더 좋지만, 안 봐도 상관 없음.

어차피 거기서 비져나온 콧털들로 조리한 똥글임.



중간에 보지팡팡이 때문에 19로 들어갑니다.



제목은 카사챈에 질문글을 올리면서 얻어낸 도출 결과입니다.

다들 블랙 바로크보다 이걸 좋아하더라구요. 그치만, 이러지 않으면 너네 보지도(야한 말 아님) 않을 거잖아.



노잼이라도 빌드업인 5화까지만 참아 줘.

최대한 걷어내고 걷어내서 5천자씩만 할게.


미안해.

좆노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