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 barroca

1화 보러가기




“벗어.”

“어?”



미, 미친놈 아냐?!

하고, 저항할 수도 없었다. 배의 상처가 아파서? 머리카락에 남은 쓰레기 냄새 때문에? 아니.

그냥 놀라서야. 욕실에 떠밀어지고 나서야, 아⋯하고 의도를 파악하긴 했지만.

뭐, 뭐야 저 남자. 왜 나를⋯아니, 애초에 나는 왜 저런 남자를 따라서⋯


“⋯으⋯아, 알 게 뭐야!”

“으, 으, 읏⋯!”


동시에, 으슬으슬 몸을 찌르는 추위. 비를 맞아 젖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걸까?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런 꼴로 있으면 감기에 걸린다던데. 가, 감기? 아, 아니지. 난 카운터인걸. 그 여자의⋯


⋯모조품에, 불량품이지만.


그래도 추운 건 사실이다. 무거워진 재킷을 벗고, 욕실 안의 거울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그 여자가 있다. 곱게 간 먹처럼, 진주처럼 빛이 나는 머리칼. 본적은 없지만.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깔끔한 코, 그 아래의 정갈한 입술. 연예인이나 배우도 따라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본 적은 없지만.

몸매를 강조하지 않으려고 해도, 억지로 강조하고 있는⋯지금은 물에 젖은 탓에 속옷마저 비쳐보이는 원피스.

고개를 떨군 검은색 리본.

아, 나 머리에도 리본을 묶고 있었구나.

하고 거울을 보고서, 겨우 내가 보였다.

여전히 그 여자다.


하지만, 아니야.


그게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이를 악물게 만드는데, 뭔지 모르겠다. 알지만, 모르고 싶고, 모르지만, 짜증 난다. 벗어던진다. 전부 벗어던진다. 똑같이 생겼는데, 너무나 다르다. 아직도 선명해. 눈앞에서 반짝이며 빛을 내는 그 요정의 날갯짓. 뭐든 할 수 있다고,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믿으니까, 그런 거라고 그⋯


끼익⋯ 쏴아아아⋯


이렇게 물을 트는 거구나. 해본 적은 없었지만, 지식으로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차가워.

이건 그거였지 빨간 쪽으로 레버를 돌리면⋯



“뜨거어엇⋯!”



뭐야, 도대체가 중간이 없어. 이거. 하고, 소리를 지르자 동 하고 문을 울리는 소리에 놀라 몸을 가리며 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뭐, 뭐야 이 변태 새끼!”

“⋯”


무, 문 잠갔지? 그랬지? 



“갈아입을 옷 앞에 뒀어. 입고 나와.”



그리고 동동동. 얼마나 낡은 집이면 발걸음 소리가 욕실에서도 들려온다. 뭐야 도대체.




도대체 뭐야 이거.





“도대체에에가~~~ 뭐야아아~~~”




헤어드라이어가 돌아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꺼풀을 닫고서 소리를 낸다. 뭐야 따뜻해. 상쾌해. 엄청 기분 좋잖아. 이거. 헤헤헤헤헤⋯



“핫, 뭐야 이거!”

“가만히 있어.”


하고 내 목을 잡고서 내리는 남자. 뿌리칠까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다.

욕실을 나온 나를 보더니 붙잡아서 데려온 방. 방 안쪽에 침대 하나. 그리고 덩그러니 놓인 화장대에 앉히더니 드라이기를 들고서 머리를 말리기 시작하는 남자였다. 먼저, 머리를 헤집으며 두피를 말려주는 게 엄청 상쾌했지⋯? 가 아니라, 이거 이상해.


그런 뒤에 화장대에서 뭔갈 짜내더니 머리카락을 비비며 바른 뒤에 따뜻한 바람으로 말렸어. 이, 이 남자 뭐야?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하고 돌아보려고 하면 남자가 목덜미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준다. 뭐야, 이거. 왜 이러는 거야. 하지만 엄청 기분 좋아.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빠질 것 같아. 어디로? 모르게써~~~




마지막으로 빗질. 어디서 났는지 서랍에서 꺼낸 커다란 빗으로 슥슥 빗더니, 자 끝. 하고 내 등을 떠미는 남자의 손에 자연스레 화장대 앞에 일어선다. 




“핫, 뭐야! 너 뭐 하는 사람이야!”

“⋯배고프면 밥 먹어.”



그제야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자마자 욕실로 날 집어넣었으니 남자도 젖었을 텐데,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평범한 검은색 룸 웨어 세트를 입고 있다. 갈색 눈동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왼손이 오른다. 방문 뒤에 보이는 거실. 식탁 위에는⋯



“도대체가 머야아아!!!”

“⋯”



아니, 나도 의심을 안 한 건 아니거든? 이 남자가 무슨 꿍꿍인지는 몰라. 그건 나도 당연히 알아. 그래. 그런데, 뭐야 이거. 새빨간데⋯라이스 맞지? 시큼하고, 달콤하고, 고기가 딱 알맞게 짜서 엄청 좋아. 알 하나하나에 스며든 향료도 좋아. 이게 요리구나. 맛있어.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적당한 온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해. 남자는 아무래도 좋은 듯 방 안에서 나오더니, 많이도 빠졌네. 하고 내 머리카락을 쥐고서 쓰레기통에 넣고 있⋯


“⋯”

“흘리지 말고 먹어.”



뭐, 뭐라는 거야. 하고, 고개를 떨구니 가슴께에 쌓인 음식 부스러기들. 


이, 이건⋯



“아, 아 흐혔허흔?!”

“먹고 말을 해.”

“하히허흐?!”



이, 이건. 그거야. 그래. 알고 있어. 나도 알아. 스푼을 쓰는 법 알아. 아는데⋯알고 있는데⋯

그치만⋯ 이거, 우리가 먹던 영양제랑 다르게⋯ 짜서 입에 넣는 것도 아니고⋯ 포트 안에서 채워지는 것도 아냐.


애초에, 먹는다는 걸 해본 게 처음인걸.


“⋯”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뭐야, 해⋯해보자는 거야? 고민하다가 스푼 위의 라이스를 입에 집어넣고 스푼을 겨눈다. 더, 덤벼 봐. 나, 나⋯ 이렇게 보여도 카운터야. 알아.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 여자한테는 안 되지만, 그 여자의 프로토타입이니까 이딴 남자쯤⋯




“⋯흘린 건 식탁 아래에 털어. 청소하면 되니까.”




⋯뭐야 이거.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 아래에 씌워진 냅킨. 


껌뻑껌뻑하며 남자를 바라보지만, 남자는 이걸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현관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있다. 뭐야 도대체, 뭐냐고⋯





“뭐, 뭐냐고! 도대체에에~~~”






그런 뒤에 쥐어진 칫솔을 응? 하고 바라보고 있으니 억지로 욕실로 데려가서 치카치카. 아, 이거구나. 이런 식이구나. 하고 입을 헹구는 법까지 대충 눈대중으로 따라 하고 나오니 머리를 말렸던 방 침대에 누워졌다. 포근한 이불. 이상한 냄새가 좀 나지만, 그래도 엄청 폭신폭신하잖아. 뭐야 이거. 도대체 뭐야. 늘어진 표정으로 누워 있으니, 남자가 내 발밑에 가 앉는다.




“핫! 뭐, 뭐야 너!”

“⋯자.”

“그, 그게 아니라⋯”




잠이야 오는데, 아니 안 오거든?! 그야 침대 발밑에 그렇게 앉아있으면 잠 오겠냐구!





“나, 나가! 니, 니가 뭔 짓을 할 줄 알고!”

“⋯”



남자가 일어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나도 모르게 이불을 코 밑까지 올린 뒤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만다.


“뭐, 뭔데!”

“아니⋯자라.”



쾅, 하고 닫히는 문. 뭐야 저거.


도대체⋯뭐야.



“⋯”



이상한 남자야. 경계해야 해. 나한테도 지식은 있어. 나, 남자들은 다 늑대잖아? 여자만 보면 발정해서 덮치려 한다고 했었어. 그래. 그러니까 조심해야 해. 무, 물론⋯난 카운터니까 저딴 녀석 한주먹 거리겠지만? 그, 그러니까 경계하자. 긴장하고⋯ 자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카⋯⋯”















꿈을 꿨다.

머리를 말리고, 그런 뒤에 밥을 같이 먹었다. 그러고 있으면 넌 두 발로 의자를 차며 리듬을 만들었다. 다 말리고 나면 양치를 같이하고, 그런 뒤에는 그 뺨을 보듬었다. 옅어진 살 내음 아래에 올라오는 치약 냄새. 그 민트향에 너의 머리를 쥐고서 에잇 하고 장난치자 너는 웃었다. 거기서 눈물이 나서, 아⋯아아아아아~


이건 꿈이구나 하고.


싫어도 알아버려서, 내가 미워서, 얼버무리듯이 내일은 금요일인데. 모처럼 금요일인데 어디 갈까? 하고 물으면 너는 헤헤하고 손가락을 얽으면서 어딜가긴? 하고 안겨든다. 






“넌 우리를 버렸잖아. 어딜 가긴? 도망치려고?”




















원제

black barocco


-2

우연찮게












“허억⋯!”

“헉! 경계!!! 긴장!!!”



어디 갔어!!! 눈을 뜨자마자, 낯선 천장에 놀라 몸을 일으킨다. 뒤늦게 쫓아오는 머리로 눈앞의 광경을 해석하려 해본다. 어⋯그러니까, 어제 그 남자가 날 데려왔고, 밥 먹고 잤어. 그리고, 지금은⋯


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한기가 몰려든다. 아, 살짝 쌀쌀하네. 짹짹하고, 창을 뚫을 기세로 울어대는 작은 새의 지저귐. 동시에 창을 때리는 비. 커튼이 쳐진 창가로 다가가 젖힌다. 아, 아아⋯ 아침이구나. 이게 아침이구나. 창을 열어보려고, 당겨도 안 열려. 뭐야, 이거. 힘으로 당길까? 아⋯이거구나. 하고 잠금 레버를 당기니까 탁, 하고 울리는 소리. 드르륵하고 낡은 새시 레일을 타고 열리는 문. 차, 차가워. 하지만 뭔가 상쾌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엄청 선명해. 코를 찌르는 이⋯



“헤, 헤헤헤헤⋯ 헷취!”



도, 엄청 신기하다. 히히히, 아침이다. 아침이야. 새까맣지 않아. 푸르스름해. 어라⋯콧물이, 스읍하고 당기니까 사라졌어. 아, 이런 거구나. 아침은 이런 거구나.


뭔가, 뭔가가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왼손이 오른다. 싫어, 그 여자의 손이야. 내리고서,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댄 오른손. 부드럽다. 움켜쥐고 싶은 정도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번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근, 두근, 선명한 울음. 새의 울음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귀 뒤까지 번지는 뜨거움. 아⋯



“헤헤⋯”



“헷취!”





추워, 하고 콧물을 손으로 훔친 뒤에 문을 닫는다. 아침 생각한 것보다 별로같애. 양팔을 어루만지면서 그러고 보니 이제 배가 안 아프다는 걸 깨닫는다. 나았구나. 하긴, 카운터니까⋯ 아,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걸까. 뭘까. 왜 나를 구한 걸까. 잘 모르겠어.

문을 열자, 꿉꿉한 내음이 코를 반긴다. 뭔가 지릿하고, 땀 냄새 같은 게 나. 맡아 본 적은 없지만.


“⋯”


거기에는 남자가 식탁 위에 엎어져서 자고 있다.

손에 든 단말만이 빛을 내뿜고 있고, 온통 어둠. 뭐야아, 거실에 문이라도 열어두지. 냄새나 잖⋯


“뭐, 뭐야 저게⋯!”


남자가 놓친 것 같은 단말에서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살색, 온통 살색. 아주 약간의 털, 검은색 외에는 온통 살색. 괴로워 보이는 여자 하나를 둘러싸고, 살색. 살밖에 없다. 그 알고 있지만 본 적은 없는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귀 뒤가 당겨온다. 역겨워. 이, 이게 뭐야.



“⋯!”

“힉!”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단말을 확인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주머니로 넣는다. 뭐, 뭐야. 역시 저 자식 변태야! 저, 저런 걸 보면서 있었던 거야?



“⋯밥 먹어야지.”

“벼, 변태 새끼야! 그, 그런 걸 보면서⋯!”

“세수하고 와.”

“뭐, 뭐라는 거야 이 변태가!”



저, 저 자식 또라이야. 어떻게 저런 걸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하, 하지만⋯ 이거, 욕실에서 물을 트니까 나오는 물의 느낌이 좋아.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느낌이 뭔가 새로워. 세수라, 좋아. 어디. 에이⋯ 고개를 숙이니까 머리카락이 자꾸 방해되는데. 어라? 선반 위에 저거⋯ 그거지? 하고 집어 든다. 헤어밴드. 뭐야아, 다 있잖아. 이건 나도 알거든.


볼을 때리는 차가운 물. 헤헤헤, 신기해. 정신이 확하고 드네.


“가, 아니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결국 저 변태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잖아. 이, 이거 안 좋은 거 아냐? 그치? 저, 저거 변태고⋯

그러니까 도망⋯



“⋯”



얼굴을 든다.


물에 젖은 얼굴. 새하얀 피부. 옅은 보랏빛 눈동자. 오뚝한 코. 작은 입술. 고개를 돌려서,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 여자다. 어디로 도망가야 해? 도망칠 곳은 없다. 우리는 졌고, 날 만든 그 여자도 졌다.

머리는 재빠르게 결론을 도출한다. 완성된 그 여자가 도망친 불량품을 내버려 둘까? 그럴 리 없지.



도망갈 곳이 없다.




나도, 나도⋯태어났는데, 니가 마음을 증명했을 때, 나도 내 마음도⋯ 태어났는데⋯!


가, 갈 곳이⋯없어.




도망칠 수도 없어.

불공평해.

이건 불공평하잖아.



얼굴을 붙잡고, 쥐어뜯는다. 이이이, 이이이, 하지만 아파서 그만둔다. 이런다고 바뀔 얼굴이면 성형외과는 괜히 있는게 아닐테니까.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먹어서 엉망이 된 표정. 이건 그 여자랑 안 닮았네. 그래서 왠지 웃겨. 




거울을 바라보다 그 아래의 세면제가 눈에 들어온다. 이걸 얼굴에 뿌려서 문지르는 거지? 좋아. 하고, 헤어밴드를 집어 던지려다 든 생각.


이러면 그래도 안 닮았지. 머리를 뒤로 전부 넘겨서 묶으⋯뭐야, 왜 잘 안돼. 아 된다. 이렇게 밴드를 돌려서 묶는 거지? 좋아. 응! 됐다! 좋아, 나가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 잘 모를 거야. 변태지만 어차피 내 상대는 안 될 거고. 보니까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한 모양이야. 응.



-엘릭서에 이은 통칭 GT 파동에 관해서 경찰은 관리국과 연계하여 발본색원하겠다 뜻을 밝혔습니다.


식탁 뒤에 올려진 싸구려 TV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저게 뉴스구나. 근데, 신기하네. TV가 있어. 다용도 AR 디스플레이가 아니야. 남자는 식탁 위에 접시를 놓으며 나를 보더니 입을 연다.


“⋯꼴이 왜 그래?”

“뭐긴? 세수하라며?”


뭐 어쩌라구? 이러면 아무도 못 알아볼 걸?

그 여자는 앞머리가 이렇게 있고, 막 옆머리도 있고 그러잖아? 이렇게 다 넘겨버리면⋯ 잘 모르겠지.



-다음 소식입니다. 새로이 알파트릭스 회장의 자리에 오른 신지아 회장은 그간의 루머들에 대해 해명하며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회견에서는 대주주를 비롯한 주주들이 가졌던 우려에 대한 부분을 중점으로⋯



“우오아아아아아악!!!”



달려가 거실에 있는 티비를 몸으로 가린다. 그 여자가 왜 나와?!

아, 아 그치. 나올 법도 하긴 한데⋯암만 그래도⋯!



-저를 닮은 사람들이 있다는 루머에 대해서⋯




“뭐 하냐?”

“이거 꺼!!!”

“⋯”

“이, 이거 끄라구!!! 밥 먹자며!!!”



남자를 나를 내려다보면서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다. 뭐야, 누군 이럴 줄 알았나?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말씀드리며⋯

-삑



휴우, 꺼졌다. 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킨다. 그나저나 들키진 않았겠지? 그래 저 남자, 변태이긴 해도 눈치는 별로 같으니까. 괜찮을 거야.



“밥 먹어”

“말 안해도 먹어!”




밥이다. 아침 밥이다. 헤헤, 분명 잘 먹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먹는 사람도 있다고 했지?

뭘까, 어제처럼 그걸까? 라이스일까? 새빨간 라이스⋯는 아니네? 풀이네? 야채다. 새빨갛게 조각 난 저건 토마토고, 저건⋯음⋯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달걀 프라이지? 아 알았다.

이거 샐러드구나.


“⋯자”


남자는 슥, 하고 내 앞으로 통 같은 걸 민다. 반사적으로 집어 들어 통을 본다.

알파트릭스 푸드 엔지니어스. 오리엔탈 드레싱. 아, 뿌려 먹으라는 거구나.


나도 알거든? 본 건 처음이지만.


이렇게 하는 거 맞지?




“⋯뭐 하냐.”

“뭐냐니? 누굴 바보로 알아.”





“소스는 이렇게 흔들어서 잘 섞이게 한 뒤에 뿌리는⋯”



퐁, 하고 터지는 향. 손 아래위를 덮는 끈적한 기름과 짠 내.

허벅지를 적시는 기분 나쁜 촉감.



“뭐야 이게~~~”

“뭐긴, 그렇게 흔들면서 누르면 터지지.”

“나, 나도 알 거든?!”



누굴 바보로 알아. 이 변태가! 하고 쳐다보니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더니, 내게로 다가와 손을 붙잡는다. 뭐, 뭐야 뭐 하려고 이 변태가⋯ 아, 손을 닦고 있다. 그러면서 능숙하게 티슈를 몇장 뽑더니 식탁 위에 던져서 더는 아래로 흐르지 않게끔 한다. 그런 뒤에, 물티슈를 꺼내서 내 허벅지 위로 던져 넣는다. 뭐야, 여긴 왜 안 닦아.



“⋯?”

“거긴 니가 닦아.”

“말 안해도 할 거거든?!”




뭐야, 사람을 마치 애처럼 보고. 이런 것도 못할 것 같아? 티슈로 쓱 하고 닦아내면 되지. 그런데 드레싱 덩어리가 날아가 식탁다리에 달라붙는다. 아⋯ 이, 이건 그거야⋯ 그 뭐야, 그거야!

아무튼 내 탓 아니야. 물티슈로 닦아내 없던 일로 만든 후에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샐러드를 입에 넣고 있다. 뭐야 저게 짜증나게. 나도 먹을 거야.




“읏⋯!!!”




짜⋯! 엄청 짜! 기름져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으에에엑⋯



“⋯”



스윽하고, 접시가 움직인다.

내 앞으로 온 남자의 샐러드 접시.



응? 하고 쳐다보자, 남자는 일어선다.




“먹어. 난 일 있어서 먼저 간다.”

“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닫히는 문. 철문이 비명이 지르며 천천히 닫히지만 쫓아갈 틈도 없었다.

뭐야 저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우물우물”



입 안에 퍼지는 아삭한 토마토의 식감. 터지는 씨앗과 상큼한 즙. 오리엔탈 소스의 적당한 기름과 짠맛, 간장 향이 어우러져서 왠지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물론 오늘 처음 먹어 봤지만. 헤헤, 달걀 프라이도 먹어봐야지. 아마, 이렇게 일 거야. 이렇게 삼각형으로 포크를 눕혀서 힘을 주면⋯됐다!

이렇게 해서 한입에 먹을 수 있게 만든 뒤에, 한 번에 토마토랑 샐러드 야채랑 꽂아서⋯




“으으으으음~~~”



야들야들한 계란. 그 끝의 바삭함. 토마토의 상큼함이 뒤섞여서 엄청 맛있어. 뭔가 건강해지는 맛이야. 씹을 때마다 토마토 씨앗이 터지면서 만드는 이 쥬시함의 하모니가 좋아. 코 위로 살짝 파고드는 야채의 씁쓸함도 엄청⋯!


이런 걸 그 여자는 맨날 먹고 있었겠지? 아이씨, 화 나. 짜증 나. 다 먹어버려야지.






-찌이이이이이이익.





뭐야,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나네.

다음은 이거다. 조합을 바꿔보자. 토마토랑 샐러드만 꽂아서 먹어보구 그다음에는 노른자를 터트려서 토마토만⋯





-찌이이이이이이익.




아까 문 안 닫았나. 아닌데, 새 소리는 아닌데. 우씨 몰라, 일단 먹자. 그 변태도 없고, 뭔 일 일어나도 내 탓 아니다 뭐?






-찌이이이이이익.





탁, 하고 포크를 내려 놓는다.




“뭐야 도대체가.”



무슨 소리야 이게. 하고 식탁에서 일어서자 쿵쿵.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

뭐지? 아까 그 변탠가? 뭐라도 놓고 갔을까? 일하러 간댔잖아. 아, 그럴 수도 있지. 그 남자 약간 정신이 이상해 보였으니까. 흠, 바보구나. 푸후후후.

왠지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 게 느껴져서 심호흡을 하며 다잡는다.


뭐가 되었던 날 위협할 요소가 안 된다면야⋯ 



하고, 현관을 걸어간다.




쿵, 쿵, 쿵.





탈칵.

문을 연다.




거기에는, 할아버지가 하나. 기억 속, 아니지. 내 기억이 아닌 우리의 기억 속. 그 남자랑 똑 닮은 노인이 하나. 


놀라서, 주저앉다.

뭐야,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뭐냐, 너는⋯여자가 왜 여기에 있어⋯?”

“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홀린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우리들의 창조자였던 노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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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팡팡이까지 앞으로 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