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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꿈이란 것은 결국 과거의 파편이다.






 "음악은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 부장님?"


 "평소에 듣던 걸로 부탁하지."


 "그럼......"






https://youtu.be/8bvQqCDcXeQ?si=OSvOGxvXKLFOIcHs






또 다시 음악 소리가 부실에 울려 퍼진다.

황금빛 머리카락의 선도부장은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인다.

역시... 나는 뭔지 모르겠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레이가 설명을 이어간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전ㅎ... 아니 선도부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야."


 "흐음... 그렇구나..."


듣다보니 왜 좋아하는 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 부장이 입을 열었다.


 "슬슬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 죄송해요. 저희 모두 음악에 집중한 모양이네요."


 "뭐, 그럴 수 있지. 허가한다."


뭘 허가한다는 거야. 이 사람도 보면 볼수록 골 때리는 사람이네.

...나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래서 선도부장님?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 오셨나요?"


"좋은 질문이다, 평민. 그래, 이 몸이 친히 이런 구석진 교실까지 행차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구석진 교실이라는 건 팩트라서 할 말은 없네.

그런데 뭔 사람이 저렇게 오만해?

그것보다 왜 레이를 평민이라고 불러, 저 사람은?

귀족 제도가 사라진 지가 언젠데?


 "저기... 왜 레이를 평민이라고 불러요?"


 "응? 평민이 평민인 데에 이유가 있나?"


 "......."


이 사람도 상당히 미친 사람인 것 같다.

과거에서 오셨나?

멀끔하게 생겨서는 정신에 문제가 있다니 조금 불쌍하다.


 "부장님은 처음부터 날 평민이라고 불렀어. 그게 익숙하다면서 말이야."


 "그래,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민이라는 말이 착착 감기더군.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불러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 네... 그러세요..."


입에 착착 감기나?

나는 잘 모르겠는데?

평민... 평민...

...역시 싫다. 사람을 평민이라고 부르는 거.

오히려 내 눈에 비친 레이의 모습은......

...됐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진짜 뭐 때문에 오셨는데요?"


 "말버릇이 좋지 않구나, 천민."


 "......지금 뭐라고 했어요?"


 "말버릇이 좋지 못하다고 했다."


 "...아니, 그 뒤에."


 "천민이라고 했다만?"


......

아, 이건 못참겠다.


 "...아까부터 사람을 평민, 천민... 당신은 뭐 그럼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어디서 황족인 내게 소리를 지르느냐! 천민 주제에!"


 "황족은 개뿔이! 무슨 과거에서 왔어? 설령 당신이 진짜 황족이라고 해도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면 안되는 거잖아!"


 "......이름이 무어냐."


 "루크레시아다, 이 망할 녀석아!"


눈 앞의 망할 자칭 황족님에게 소리쳤다.

내 티끌 만큼의 도덕심을 자극한 대가는 생각보다 클 거다, 선도부장.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선도부장은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학교에 너같이 굉장한 녀석이 있는 지는 몰랐군. 루크레시아라고 했던가? 좋다. 사과하지. 내 무례를 용서하도록. 앞으로 너희를 평민, 천민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어쩌다보니 사과를 받았다.

아직도 오만하게 짝이 없지만.

...아니 그것보다 이름으로 부르는 게 원래 당연한 거거든요?


 "루크레시아, 진정해. 선도부장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레이가 그렇다면야... 좋아요, 사과를 받아들이죠."


마침 흐르던 음악도 끝이 났다.

이야기가 시작될 참이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최근 신기한 꿈을 꾼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전쟁을 벌이는 꿈..."


 "...그런데요?"


 "문제는 그 꿈이 요근래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과거의 기억인 것처럼..."


 "과거의...기억이요?"


 "그래, 레이. 이건... 이 꿈은 너무 실감이 난다. 칼이 서로 부딪히는 것도, 전장에서 아군이 죽어나가는 것도..."


 "......"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죽어? 꿈에서?

진짜 실감나는 꿈이었나 보네.

그런 꿈이 요근래 계속 지속될 정도면

확실히 뭔가 있기는 한가보네.

하지만 나는 딱히 명답을 주지 못한다.

레이라면 모를까. 난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그게 이 부실에서 내 역할이니까.


...애초에 히키한테 문제 해결이라니 무리라고요, 그거.


 "그렇군요... 꿈이라..."


 "뭐, 딱히 해결을 바라고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


 "그렇다면 선도부원들에게라도 이야기하면 되지 않나요? 샬롯이라던가..."


 "하하, 마르티네즈 말인가? 그건 무리다. 마르티네즈라면 반드시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을테니까."


하긴... 그렇겠네.

샬롯이라면... 그러겠지.

더군다나 상대가 선도부장이라면...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지만 남의 앞길까지 억지로 개척해나갈 필요는 없어."


...처음 봤을 때는 왕자병걸린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평민... 아니 레이 너라면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찾아왔지."


 "...꿈이란 건 아득히 머나먼 세계로 떠나는 여정... 혹은, 그리운 무언가의 부름이기도 해요."


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창문을 열자 산들 바람이 내 머리칼을 스치운다.


 "이 스치우는 산들 바람처럼 우리를 지나쳐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 있지만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내 경우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지 않았어. 그렇다면..."


 "...때론 꿈은 우리 곁에 남아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하니까요."


무슨 소리래.

레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시인 같아서 이해하기가 힘들다.

하나 알아들은 것은...

꿈은 결국 깨면 사라진다라는 점인가?

허나 선도부장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 꿈은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부장님의 과거일 수도 있겠네요."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만?"


 "글쎄요? 그건 부장님만이 알 길이죠."


과거에 겪은 일...

설마 부장은... 부장의 그 꿈은...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하는 선도부장.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왜 이래?


 "그래, 모든 의문이 풀렸어. 전에 이 곳에 왔을 때 네가 했던 말이 있었지. 이곳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이라고 말이야."


그 말을 부장에게도 했었어?


 "솔직히 그 때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어.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꿈이란 그리운 무언가의 부름이라... 맞는 말이구나."


 "......"


 "너는 다 알고서 내게 그 말을 꺼냈던 거로군, 레이. 걱정 마라. 난 부정하거나 절망하지도 않아. 오히려 후련할 뿐이다."


 "...전하."


 "그렇게 부르지 말거라, 레이. 지금은 어디까지나 선도부장이다."


이야기를 못 따라가겠다.

둘만 이야기가 통하고 있으니까.

하나 알겠는 것은...

...부장의 그 꿈은 생전의 기억이라는 것.

선도부장 자신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이것으로 고민은 해결 되었다. 이곳에 더 볼일은 없어."


 "...전ㅎ... 아니 선도부장님. 그 문을 나서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고민이 해결된 선도부장.

그러니 이 세상에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문을 나서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몇 마디 더하고 가도록 하지."


선도부장,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는 돌아서서 레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말한다.


 "내 꿈의 중심에는 레이, 늘 네가 있었다. 모두가 너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너는 늘 괴로워 보였지.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군."


 "...전하. 저는......"


 "말하지 말 거라. 그저 듣기만 해라. 모든 일은 끝이 났다. 그 꿈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패배했고, 구원은 실패했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구원은 거기서 끝이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너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야."


 "......"


레이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죄책감 가득한 얼굴.

역시 레이는 선도부장의 꿈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가도록 하지. 레이, 부디 이 세계에서 만큼은 너는 구원자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다 가도록 해라."


 "전하... 하지만... 구원은 제 사명입니다."


 "아니, 더 이상 그런 사명은 없다. 언젠가... 너만의 구원자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하."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너의 구원이 황족으로서 나의 긍지다."


 "......"


 "이건 기억속의 황태자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의 명령이 아니라, 네 앞에 서 있는 선도부장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의......"






 "......부탁이다."






그렇게 문 밖으로 당당히 걸어나간다.

나에게도 몇마디 말을 남기고서.


 "루크레시아, 라고 했던가?"


 "네? 네..."


 "놀랍게도 내 꿈에는 너도 존재했다."


 "...네?"


 "언제 어디라도 너희는 잘만 붙어 다니는 구나, 하하."


 "...뭔 소리에요?"


 "무슨 소리냐면... 레이를 잘 부탁한다."


 "......네. 안녕히 가세요, 부장님."


황금빛의... 한 마리 용과 같던 사내는


그렇게 빛이 되어 사라졌다.


문 밖에 남은 것은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 라는 이름의


책 한 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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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한달 반만에 돌아온 작가.

이거 포기할까 하다가 기간이 28일 까지라고 해서 다시 써봅니다.

사실 포기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는 념글도 못가고 비추가 많이 달려서였음.

내용 짜 놓은 거 다 까먹어서 재미 없을 수도 있습니다마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