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린은 짱깨야?”


서윤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러니까, 차기 사장에게 욕을 퍼붓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최대한 상냥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서윤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애초에 샤오린은 중국인이 아닌 걸요.”

“응? 그런 거야?”

“그럼요. 그런데 그 말은 어디에서 들으신 거예요?”


시그마는 방긋 미소지었다.


“아빠한테 배웠어! 아빠가 ‘짱깨 씨발 놈들, 무슨 생각으로 가챠 확률을 이 따위로 만든 거야!’ 라고 말했거든.”


서윤은 고개를 짚었다. 시그마의 발랄한 목소리로 듣기에는 곤란한 말이었다.


“그 망할 고철 새끼가...”

“응? 뭐라고?”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어쨌든, ‘짱깨’든, ‘씨발놈’이든 나쁜 말이니까 쓰면 안 돼요, 차기 사장님. 아셨죠?”

“응, 알겠어!”


시그마는 해맑게 웃으며 널빤지를 타고 돌아갔다.


“망할 고철 새끼! 아빠는 망할 고철 새끼야!”

“시그마양!!”


서윤은 시그마를 도로 불러내려 했지만, 이미 시그마가 탄 널빤지는 멀리 날아간 뒤였다.


서윤은 이마를 짚었다.


“하아... 피곤해...”


결혼은 해도 아이는 결코 낳지 않으리라고 맹세하며, 서윤은 방금 했던 말을 곱씹었다.


‘샤오린은 중국인이 아닌 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국적을 알지 못했다.


첫 기억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교’에 있었다는 것뿐.


서윤은 자신들의 국적을 ‘정했던’ 날을 떠올렸다.



===



“허억, 허억...”


미래에 ‘서윤’이라고 불리는 소녀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자신의 발밑에 엎드린 10살 남짓한 소년의 이마에 총구를 겨눈 채였다.


소년은 두 손을 들어 항복을 표했다.


“졌..., 어.”

“훌륭하군, ICR025!


“감사합니다, 선생님!”


소녀, ICR025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으며 소년에게서 총구를 치웠다.


전쟁터의 단상 위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잘해냈다. 과연 퀸께서 눈여겨볼 만한 재목이군.”

“아닙니다, 선생님. 모두 팀원들이 도와준 덕분이에요.”


ICR025는 자신의 팀원들을 돌아봤다.


모의전이었지만, 소녀들이 뒤집어쓴 먼지는 실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치열했음을 보여줬다.


“해냈다고, 대장!”

“그래, 드디어 해냈어.”


ICR025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언니’의 조언을 들은 덕분일까. 이 자리에 그녀도 있었다면 얼마나,


“아, 오셨습니까. 퀸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단상 위를 쳐다보면 익숙한 인물이 있었다. 하늘거리는 예장을 차려입은 여성, 리플레이서 퀸이었다.


“그래, 모의전이 끝났다지?”

“네, 말씀하신 ICR025의 활약이 상당했습니다.”

“...”


퀸은 단상 위에서 ICR025를 내려다봤다.


아니, 그것은 ICR025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퀸은 단상을 올라, 허공에 발을 디뎠다.


4m가 넘는 허공을 천천히 추락하는 퀸은 고고했다.


-또각, 또각


퀸은 한 발, 한 발, ICR025에게로 다가왔다.


“퀸...,”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자신이 쓸모 있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와, ICR025 앞에 섰다. 그러고는-


손을 그녀의 머리에 얹었다.


“이름이 있어야겠구나, 계속 ICR025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ICR025였던 소녀는 눈물을 쏟았다.



===



“대장, 대장은 이름 정했어?”“글쎄..., 기왕이면 예쁜 이름이 좋겠는걸.”


아직 이름이 없는 소녀는 나라별 인명부를 뒤적이고 있었다.


평생 실험체명으로밖에 불린 기억이 없는 소녀들은 이름 정하기가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아.”


인명부를 뒤적이던 소녀의 손길이 멈췄다.


“...서윤.”


익숙한 울림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의 이름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팀의 중심인 그녀이기에, 순식간에 그녀에게로 관심이 쏠렸다.


“응? 정했어 대장?”

“시끄러 고릴라.”


저격수 포지션의 소녀가 중얼거렸지만, ICR025의 이름에 관심있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열을 맡고 있는 소녀가 한발 더 빨랐다.


“한국이네? 좋아, 그럼 나도 한국으로 할까.”

“아, 잠깐,”

“유진! 난 유진으로 할래.”

“아...,”

“저는 김소빈으로 할래요, 이름이 익숙해요,”


차차 자신들의 이름을 골라가는 소녀들. 저격수 소녀는 뭐 씹은 듯한 표정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


“왜, 뭐.”

“...됐어. 너 따위 고릴라랑 같은 나라를 고르니 혀를 씹고 말지.”

“뭐야?!”


저격수 소녀는 구석에 박혀 있던 ‘중국 인명부’를 펴 자신의 이름을 골랐다.


“난 샤오린으로 할래.”

“풉,”

“뭐, 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고는 유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짱꼴라년,”

“뭐야?!”



====



서윤은 퀸의 집무실에서 뒷짐을 선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름을 정했으니,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이름을 다 정했다고? 너는 뭘로 정했는데?”

“서윤입니다.”

“...그래?”


퀸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퀸?”

“아니, 아무 것도 아냐. 그나저나, 축하해.”“감사합니다, 퀸. 전부 퀸의...”

“아냐, 아냐. 사령관께서 너희들의 승격을 축하한다고 소대장인 널 한 번 보자고 하시더라고.”


서윤은 ‘사령관’이라는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사령관, 누구인지는 안다. 리플레이서 킹, 풍체만으로 사람을 위압하는 거구의 사내.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대면한 적은 없다.


“그건... 독대입니까?”

“맞아, 독대야. 뭐야... 기뻐할줄 알았는데, 별로 안 기쁜가 보지?”


퀸의 말투가 싸늘해졌다. 실수였다. 퀸의 비정상적인 충성심은 서윤도 잘 알고 있었다. 


서윤은 부러 자세를 똑바로 했다.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하핫!”


퀸은 웃음을 짓더니 서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농담이야, 농담. 신입사원이 사장을 만나러 가는데 안 떨리겠어? 이해해.”

“......하아,”


서윤은 긴장이 풀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하으윽...!”


-꾸우욱...


서윤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던 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뱀이 쉬익거리듯, 퀸이 서윤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말야..., 사령관님 앞에서도 이런 얼빠진 모습이면 안 돼.”

“아으윽......., 알겠, 습니다...”

“뭐라고?”

“끄으윽..., 알겠습니다...”


서윤은 고통을 참으며 최대한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제야 퀸은 서윤을 놓아주었다.


“좋아, 나가봐. 바로 부사령관실로 가면 돼.”



===



서윤은 어깨의 욱신거림을 참으며 부사령관실로 갔다.


분명 이 ‘뉴 오하이오’ 함에는 리플레이서 킹보다 높은 사람은 없건만, 그는 늘 부사령관실에 있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고서야 서윤은 자신을 소개할 말이 마땅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인가?”

“...ICR025입니다.”


때문에 다신 쓸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옛 이름을 내뱉으며, 서윤은 약간의 굴욕을 느꼈다.


“아, 서윤이로군. 들어오게.”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서윤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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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흑힐 극태쥬지에 박혀 앙앙거리는 서윤까지 쓰려고 했는데 귀찮아졌다



이야기의 편의를 위해 고의적으로 작중 설정의 일부를 무시했음을 알림


사실은 다 써가다가 ‘이게 맞나?’ 싶어서 나무위키 뒤져봤는데 시발 다틀렸어 ㅋㅋㅋ


그런데 이제 와서 고치긴 귀찮아서 걍 냅둠. 팬픽이니 이해 좀 부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