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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누군가의 구원은... 때론 누군가의 시련이다.






 "레이, 방금 그건..."


 "......"


 "...레이?"


 "...미안, 루크레시아. 오늘은 그냥 가 줘. 나중에 얘기하자."


우수의 찬 표정으로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의 책을 집어드는 레이.

꿈은 곧 과거의 파편이라고 했었지...?

그 말은... 그것은 선도 부장의 생전의 기억.

선도 부장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문 밖으로 나가 빛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레이의 반응을 보아 선도 부장과 레이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영문을 모르겠는 소리였지만.

그리고 선도 부장의 마지막 한 마디.


 "레이를 잘 부탁한다."


오만하게 짝이 없는 선도 부장의 평소 말투와는 다르게 매우 부드러운 말투였다.

진짜로 부탁하는 것 같은...

레이는 대체 뭘까?

이 부실은 또 뭐고?

선도 부장의 꿈에 레이는 어째서 나왔던 걸까?

평소에 가져야 할 의문들이 무더기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레이의 우수에 찬 표정.

지금까지는 보여주지 않았던,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던 레이가

방금 전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했다.

...선도 부장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더는 생에 미련이 없으니까.


......잠깐, 그렇다면...

샬롯은 어떻게 되는 거지?

구원을 받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레이에게 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는 지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부실에는 음악 소리가 가득했지만

내 귀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아침부터 알렌 선생님께 잡혀서 혼나는 것은 좋지 않은 문명이다.

수업 시간에 잤다고 설교하는 게 어딨어?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자고로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의 잠을 잘 자유를 허락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주장이기는 하네.

이번에는 당신이 이겼어요, 알렌 선생님.


곧 있으면 점심 시간이다.

평소처럼 샬롯이랑 같이 옥상에서 도시락 까먹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귀한 시간.

선도부라서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 이외에는 같이 있을 시간이 없다.

그 애도 그 애 나름으로 바쁠 테니까. 

나도 나 나름으로 바쁘......나?

생각해보니 항상 나만 기다리고.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때마침 샬롯이 지나간다.

히키인 내가 유일하게 먼저 다가가서 장난칠 수 있는 친구.

총총 걸음으로 샬롯에게 다가간다.


 "여!"


 "안녕? 밥은?"


 "너랑 먹으려고 아직 안 먹었지."


 "그래? 그런데 나 오늘은 좀 바쁜데... 미안한데 혼자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에~? 평소에는 같이 먹어줬으면서."


 "미안, 진짜 미안."


고개 숙여 사과하는 샬롯.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이런 면은 역시 귀엽다.

다만 그 귀여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샬롯의 팔에 못 보던 게 있었으니까.


 "......샬롯."


 "응, 왜?"


 "...그거... 뭐야?"


 "이거? 완장이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선도 부장의 완장이잖아.

왜 그걸 네가......?


 "왜 그래, 루크레시아?"


 "샬롯, 우리 학교 선도 부장이 누구였어?"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우리 학교 선도 부장은 나잖아?"


......어?

바뀌었어?

선도 부장이... 사라져서

세상이... 바뀐 거야?


 "샬롯,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가 누구인지 기억해?"


 "...누구?"


 "선도 부장 말이야. 설마... 기억 못하는 거야?"


 "너 어디 아파? 선도 부장은 나라니까?"


...누군가는 구원 받음으로서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사람을 잊는다.


...그것이 이 세계의 구원이다.


 "기억해 내!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란 말이야!"


샬롯을 잡고 소리친다.

당연하게도 샬롯은 당황했고

옆에 있던 선도부원들이 나를 제지한다.

그래, 어쩐지 샬롯 곁에 선도부원들이 있던 것부터 이상했어.

선도 부원을 거느릴 수 있는 건 부장 뿐인데...!


 "모두가 잊어도 너만은 잊어서는 안된단 말이야! 그 사람을! 네가... 그 사람을 얼마나 따르고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아까부터 무슨 소릴......"


멀어지는 샬롯에게 계속해서 소리친다.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납득 안되는 상황이 나를 각성 시켜버렸다.


...레이.

그래, 너라면 알고 있을 거야.

선도 부장을 구원함으로서 초래된 말도 안되는 상황을......!






서둘러 부실로 간다.

레이는 당연히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레이!"


 "......알고 있어. 선도 부장에 관한 거지?"


 "......그래.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됐어."


 "......"


 "우리 탓이야. 우리가 그 사람을 구원한 것 때문에... 샬롯이......"


 "네 탓이 아니야, 루크레시아."


아니, 내 탓도 있다.

이렇게 될 걸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어.

하지만 말리지 않았다.

눈 앞의 사람을 구하기에 바빠서 그 뒤에 초래될 상황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샬롯... 샬롯은 이제 어떡해? 평생 그 사람을 잊고 살아가야 하는 거야?"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선 그래."


 "......크윽."


레이가 읽고 있던 책은 선도 부장의 책이었다.

거의 다 읽은 것 같았다.

마치 역사 책을 읽듯이 세심하게 읽고 있다.


 "하지만 걱정 마, 그녀는 기억해 낼 거야."


 "...어떻게?"


 "강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알아보거든."


 "강한 인연... 그 말은!"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손님이 온 것 같다.

그 손님은 놀랍게도

...샬롯이었다.






 "어서 와. 구원부에 온 걸 환영해."


레이는 차를 건네며 샬롯에게 인사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


 "그건 그렇고 루크레시아도 있을 줄은 몰랐어. 알렌 선생님이 신뢰하는 이유가 있었나 봐?"


 "신뢰는 무슨... 알렌 선생님이 여기로 보낸 거지?"


자기가 해결하기 귀찮아서 우리에게 떠넘긴 거겠지.

...아니면 샬롯이 제 발로 찾아왔거나.


 "저기... 그..."


 "잠시만 기다려 줘."







https://youtu.be/q9tcHoD6r0c?si=lUo1d2w2PCjoda4p






레이는 조용히 음악을 튼다.

언제나 음악이 들려오는 부실답다.


 "이건 무슨 음악이죠?"


 "모리스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


뭔가 이름이 묘하네...

뭐, 음악만 좋으면 그만인가?


 "그래서 무엇 때문에 왔어?"


 "...루크레시아와 이야기한 이후 자꾸 머리가 아파서요."


 "나와 이야기한 후?"


아까 그걸 말하는 건가?

설마 떠올렸다거나?


 "선도부실에서 커피를 두 잔 준비하기도 하고, 제가 중앙이 아니라 옆에 서서 걷기도 하고...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루크레시아가 뭐라고 했는데?"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 라고 했어요."


레이의 표정이 조금 굳은 것 같았다.

실제로는 굉장히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느낌과 실제는 차이를 불러다 주는 법이다.


 "대체... 대체 그게 누구죠? 누구길래... 자꾸 제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거에요? 그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혹시... 알고 계세요?"


 "기억해 내, 샬롯! 그 사람은 너에게 있어서...!"


레이가 나를 막아섰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였다.

지금 그렇게 말해봐야 머리를 더 아프게 할 뿐이라고.

그럼...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건가?


 "샬롯...이라고 했지?"


 "...네."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어."


 "...네?"


 "너와 황태자 전하도 그랬지."


레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샬롯은 레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계속 의아해 한다.


 "샬롯 마르티네즈.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가 가장 신뢰했던 기사."


설마 이거...

샬롯의 생전의 기억?

그렇다면 샬롯은 이미 죽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그걸 레이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할 수 없다면서...


"레이 너..."


"구원 기사단의 선봉장, 샬롯 마르티네즈. 그것이 이 책에 쓰여 있는 너에 대한 내용이야."


 "...제가 책에 쓰여 있다고요?"


"전하의 이야기는 곧 네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레이 너, 설마

지금 샬롯을......

'구원'하려는 거야?


내 하나 뿐인 친구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 샬롯."


 "어? 왜?"


 "...레이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어, 그럼... 나중에 다시 올게..."


내 말이 끝나자 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샬롯에게 다가가서 책을 건넨다.

...부장의 책이었다.


 "이건 선물이야."


 "...이걸 왜?"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가 말했어. 자신의 뒤를 맡길 수 있는 건, 내 최고의 기사 뿐이라면서. 그러니 이건 네거야, 샬롯 마르티네즈."


 "...정말... 정말 그렇게 말하셨어요?"


어...? 왜? 어째서?

기억을 되찾은 거야?

안 돼... 그렇게 되면 너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클라레스 엘 아르카데나라는 사람이 실재하는 지. 그래도... 제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건 어렴풋이 알겠어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저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는 그 의지를 믿고 앞으로 나아갈 거에요."


아니야... 안 돼......

가지마... 구원 받지 마...

내게서 멀어지지 마......


 "고민이 조금은 해결된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책은 소중히 간직할게요. 누군가 저를 위해 맡겨 놓은 거니까."


 "그래, 소중히 간직해줘."


 "안 돼, 샬롯! 그 책을 가지고 나가면 안 돼!"


 "미안, 루크레시아. 점심 같이 못 먹어줘서."


 "아니야, 괜찮아! 평생 같이 먹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제발... 떠나지만 마.

나를 두고 가지만 마...!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안 돼, 제발... 그 문을 나가지 마!"


 "...왜 그래?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러니까 그 책 두고 가, 제발!"


 "그렇지만 선물을 두고 갈 수는 없는 걸?"


 "내가 집에 가면서 네게 전해줄게. 그러니 제발...!"


이렇게 필사적인 것이 얼마만 일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다시 영원한 이별을.......


...또다시?

내가... 전에도 누군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던가?


"됐어, 루크레시아. 네게 폐를 끼칠 수는 없지."


아...아...

안 돼.......


 "그럼 가볼게, 내일 보자?"


 "안 돼!!!!!!!"






그렇게 기사는 문을 나섰다.

그녀는 혼자였지만

왠지 그녀의 곁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이 문 앞에 떨어졌다.

이 곳에 남아 흐르는 것은...


죽은 기사와 황태자의 파반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