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 barroca

1화 보러가기






“⋯뭐 하고 있어.”

“뭐, 뭐하긴? 그, 그냥 있었다 왜!”



남자는 거실에 나와 있는 날 보자마자, 신발을 벗으며 입을 연다. 뭐야, 일하러 간다더니. 금방 돌아왔잖아. 역시 거짓말이었어. 그 집주인인가 할아버지 말대로잖아.

그보다, 들키는 줄 알아⋯



“⋯”



뭐, 뭐야. 방문은 왜 봐?

나는 길을 비키는 척, 슬금슬금 방문 앞으로 가서 몸으로 가린다.

계속 쳐다보네! 저게.



“왜, 왜, 왜, 뭐?”

“됐다.”



뭐, 뭐야⋯

나를 지나쳐서 걸어간 남자. 식탁 위에는 아까 먹다 말은 샐러드. 쓱, 하고 보더니 나를 쳐다본다.

비에 젖지는 않았지만, 빗길을 걸은 탓인가 습기에 젖은 갈색 곱슬머리 사이로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 진한 갈색이 아직도 안 먹었네 하고 따지는 듯 움직인다.



으⋯




“먹을 거야! 그, 뭐야. 이상한 할아버지가 왔었어. 집세 내라던데? 너 집세도 안 내고 뭐 하는 거야? 그건 계약이잖아? 나도 알거든 그 정도는.”



남자를 지나쳐서 식탁으로 가 앉는다. 남자는 날 따라 시선을 옮기더니, 앉은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뭐야, 진짜.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고. 흥이다. 포크로 토마토를 찌르니까 푸슛, 안의 씨앗과 수분들이 아래의 채소에 쏟아진다. 아아, 아까워라. 그래도 입에 넣는다. 어쩌라고 하면서 우물거리며 시선을 올린다.



“⋯너, 언제까지 있을 거야.”

“허하 허헤햐! 히허 허흐현⋯”

“다 씹고 이야기해.”



마치 석상 같아서 기분 나빠.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날 만들어낸 연구자들은 이런 식이었겠지. 기분 나빠.

누굴 가르치려 들어. 하면서도, 턱을 움직인다. 음~ 계란이랑 토마토의 식감이 좋아. 잇몸 사이에 끼어드는 이 자극이 좋아. 간질간질, 하지만 아삭거리는 소리도 좋아~


핫⋯!



“가, 갈 거야! 근데, 저거 보라구!”

“⋯”



가리킨 곳에는 거실 뒤, 베란다. 문 뒤에는 내 옷가지. 잔뜩 물을 머금어 고개 숙인 코트와 민소매 원피스. 저게 말라야 갈 거 아냐. 나라고 해서, 뭐, 정체도 모르고? 이런 변태 새끼 집에 계속 있고 싶은 줄 아나.

그보다, 저게 뭐야. 거실 뒤편의 베란다에는 건조기는커녕, 제습기도 없어. 창밖을 때리는 비를 봐. 이런 습기에서는 마를 것도 안 마를 텐데. 뭐 하는 집이야 여긴.



“⋯하긴, 옷이 있긴 해야겠네.”

“⋯응? 뭐가?”




남자는 냉장고를 열더니 주스를 꺼낸다. 아니, 주스가 담긴 유리병을 꺼낸다. 오렌지 주스가 뭐 저렇게 탁해. 남자의 머리보다 짙은 갈색. 아니 저거 주스가 아닌⋯거 아냐?


그걸 꺼내더니, 컵에 따른다. 킁킁, 코끝을 스치는 담백한 내음. 음⋯이건, 차?

차를 왜 헷갈리게 저런데 담아 둬? 하는 표정으로 쳐다봐도 아무렇지 않게 들이키고 있다.


그렇게 컵을 내려놓고, 남자는 돌아선다.




“그런 꼬라지로는 내보내려야 내보낼 수도 없겠다 싶어서.”



뭐라는 거야.



“내, 내, 꼴이 어때서⋯아!”



남자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 시선을 옮기다, 인제야 확인한다.

남자가 어젯밤에 빌려준 베이지색 룸웨어에 여기저기에 튄 드레싱 소스들. 그와 동시에 남자는 나보다 훨씬 체격이 큰데도, 가슴 때문에 떠밀려 드러난 배. 속옷을 차지 않아서, 천 너머로 윤곽을 그리는⋯아아아아아아, 역시 변태 새끼잖아!



“이, 이이이이이, 이이이이이이!”



양팔로 가슴을 가리고서 식탁 의자에서 일어선다. 살짝 어깨를 돌려, 남자를 노려보지만, 관자놀이나 긁고 있어 저 자식! 역시 방심하면 안 돼. 아니, 뭐 방심해도 내가 더 세니까 문제는 없을 거지만.




“여자 속옷은 가지고 있진 않거든. 오히려, 챙기지 않은 네가 나쁘지.”



뭐라는 거야.



“뭐라는 거야! 너 그 방⋯”






“⋯그 방?”



남자가 나를 바라본다. 아, 말실수했다. 아니, 그보다 어딜 보는 거냐고 이 변태야.



“아무것도 아니거든 이 변태야?! 여, 역시⋯너, 너⋯! 나한테 이상한 짓 하려고⋯”

“이상한 짓은 네가 하고 있는 거고. 후우, 다 먹었으면 가자.”

“어, 어딜 가자는 거야?!”






남자는 졸린다는 표정으로, 오른손 검지를 굽힌다. 그걸로 자기 눈을 비비며, 입을 연다.





“옷 사러 가면 되지? 대충 가릴 거 줄 테니까.”

“뭐⋯?”





옷을 사러 가다니?

그, 그렇단 건⋯



본 적 있다. 아니, 주입 당한 기억이 있다. 반짝반짝, 매일 청소하는 타일 위로, 여러 가지 옷이 걸린 곳. 내리쬐는 백색 조명. 한껏 멋 부리며 늘어선 마네킹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전부 웃고 있다. 적절한 소음 속에서 걸음이 번지고, 활기가 흐르는 곳.



“쇼핑몰 가는 거야?!”

“어, 그러니까. 마저 먹어.”

“히하히?!”


진짜지?



“먹고 말해. 옷 꺼내 놓을 테니까 입어.”



재수 없어. 하지만, 쇼핑몰이라니 신난다. 생각해보면 처음 바깥에 나가는 거 같아. 바깥이라, 어떤 곳일까. 분명히 


아, 맞다. 얼굴 가려야지.



“야, 모자 줘. 모자!”









원제

블랙 바로크

-4




















그렇게, 우산을 들고 길을 걸어서 내려온 다음 버스를 탄다. 다리를 하나 지나, 그라운드 원의 중심가로 들어선다. 까만색 뉴스보이 캡에, 남자가 빌려준 커다란 코트. 소매가 길지만 대충 접으니까 뭐 괜찮네. 기장이 안 맞아서 완전 롱코트 같지만 뭐, 어때. 


창가에 서서 바깥을 쳐다볼 때마다 남자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보다⋯바깥이야. 이게 도시.

창을 때리는 비 너머로 보이는 풍경. 그라운드 원, 중심부에 들어선 건물들. 그리고 그걸 두르듯이 흐르는 물길. 


나도 알고 있어. 이건 관리 실패 때 생긴 폭심지. 그래서 대균열 주변의 지형이 저렇게 변한 거지? 마치 노을처럼 일렁이고 있어.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저게 차원 균열을 봉인하는 거고⋯


“내리자.”


남자는 어깨를 톡톡 친다. 

치이익, 하고 버스가 멈추고 드디어 쇼핑몰이다.







“⋯”



우와아아, 하고 감탄을 내지르려다가 참는다. 아, 저 남자!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날 내버려 두고 자기 혼자만 쓱쓱 걸어가고 있잖아. 뭐 알기나 해? 따라 쫓아간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따라가다가 멈춘다.



그야 저 남자가 멈추니까.



“⋯”


슥,하고 가리키는 손가락.

뭔데.




“들어가서 아무거나 사와. 결제는 이걸로 하고.”




뭐야, 하고 돌아본 곳에는 여성 속옷 매장. 마네킹에 입혀진 화려한 색상의 속옷들. 근데⋯ 그쪽은 다른 가게네?!

남자가 가리킨 곳은 키즈?




“어린이 전용 매장이잖아!”

“잘 몰라. 알아서 사 와.”

“⋯아, 진짜.”




남자가 건넨 카드를 가로챈다.

뭐라는 거야. 진짜.


하긴, 뭐. 알겠네. 아무리 변태라도 여성 속옷 매장에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거지? 그야 나도 뭐 처음이지만. 이런 건 쉽지.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밝게 웃으며 맞이하는 점원. 


“어서 오세요. 어떤 거 찾으세요?”

“⋯”

“?”

“⋯”


아, 아. 나한테 물어보는 거구나.

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거더라⋯



“그, 속옷, 사러, 왔는데에⋯”

“아, 그러시는구나. 사이즈는요? 혹시 찾으시는 브랜드라던가⋯”



그게 뭔데. 사이즈도 있어야 해?



“어, 어. 그, 그⋯”

“혹시 잘 모르시면 도와드릴까요?”

“어, 어⋯그⋯네⋯”

“네, 그러면 이쪽으로 오세요.”





탈의실에서 강제로 벗겨지고, 피부가 어떠니 사이즈가 어떠니, 너무 몸매가 좋니, 업 브라가 필요 없다느니, 내 사이즈는 숫자 어쩌고랑 알파벳 뭔데, 여기 브랜드는 크게 나오니까 이걸로 하면 뭐니, 중요한 날에 입느니 마느니⋯하다가, 겨우 나왔다.



“⋯”



남자는 가게 앞 벤치에 앉아 걸어 나오는 날 보고서 일어선다.



“샀어?”

“⋯”

“입고 간다고 말했지?”

“⋯어”

“그럼 가자.”

“어⋯”





어, 엄청 부끄러워. 게다가 엄청 힘들어. 웃으면서 말하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 알고는 있는데. 알고 있는데⋯하아.

그나저나 어딜 가자는⋯



“어서 오세요~”



웃으며 다가오는 점원, 뭔가 거부감이 느껴져서 익하고 남자 뒤로 숨는다. 아니, 아니 안 숨었는데? 그, 그냥 뭐야. 엄청 지쳐서⋯그보다 여긴, 여성복 매장인가.



“여자친구분 옷 고르시러 오셨나 보네요?”

“⋯여자친구 아닙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친구?”



뭐, 뭐야. 여기 사람들. 뭔데 그렇게 가볍게 여자친구니, 남자친구니 말하는 거야. 말이 너무 가벼운 거 아냐?



“그, 그냥. 아는! 동생⋯인데, 요?”

“아~ 그렇구나. 혹시 찾으시는 스타일 있으실까요? 피부도 하얗고, 비율도 좋아서 여기 이 신상.

 신상 어울리실 거 같은데. 이 재킷도 괜찮고, 추위 덜 타시면 이렇게 카디건만 해도⋯”

“⋯어⋯”



하고 시작된 패션쇼. 어떻게 입는지 몰라서 한참을 궁리하고 있으면 점원이 탈의실로 들어와 입혀주고, 나와서 남자한테 보여주고의 반복. 애초에 이 점원 왜 자꾸 저 남자한테 물어보는 거야? 뭘 입어도 ‘괜찮네요’ 밖에 안 하는데. 게다가, 은근슬쩍 내 얼굴에 화장했니 안 했니는 왜 물어봐. 흰 티는 왜 못 입게 하는 거고.


몇 번이고 갈아입혀지다가, 그나마 좀 덜 거추장스러운 갈색 카디건에 블라우스. 무릎까지 오는 랩스커트라는 조합을 골랐다. 뭐가 더 나은지 잘 모르겠는데 자꾸 물어보는 점원이나, 다 괜찮다고 무성의하게 대답하는 남자. 둘 다 짜증 나. 진짜. 


입었던 코트와 티셔츠, 청바지를 백에 넣고서 나와 걷는다.

으, 뭔가, 이 치마 움직이기 불편해. 걸을 때마다 카라 주변의 끈 리본이 찰랑대는 것도 싫고, 게다가 속옷 이거 불편한데.


형태를 잘 잡아주니, 뭐니, 갑갑하기만 해. 역시 원래 입고 있던 게 좋은 건가? 그래서 그런⋯




“응?”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 포근하게 퍼지는 버터⋯? 우유? 뭐지 이거.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 쳐다보다 발견한다. 아, 저거구나. 크레페 가게. 엄청 달콤한 향이나. 




“⋯”



남자가 날 쳐다보고 있다.



“왜! 뭐!”

“⋯먹고 싶어?”



남자는 눈가를 검지로 긁더니, 입을 연다. 아니거든? 그냥 궁금해서 본 거거든?

나도 뭔지 알아. 저거, 근데. 향이, 그냥 눈길이 가게 하잖아.



“골라.”



그 말만 남기고 걸어간다. 뭐야, 진짜. 누가 먹고 싶대?

남자를 뒤쫓는다.



.

.

.




“⋯빨리 골라.”

“아, 잠깐만. 어, 그러니까.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는 아이스크림이 없는 거고, 이건 생크림이랑 라즈베리만 있는 거⋯”



누텔라 초코칩은 또 뭐야? 누텔라라면 그거지? 음~~~ 아니야. 이건 뭔가 맛이 상상이 가긴 해.

민트초코는 배제하고, 어~ 그러면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랑 딸기 크림인데⋯둘 중에 뭘 고르지.

으으으~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랑 딸기 크림이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

.

.



“여기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겨우 손에 쥐어지는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 크레페.

뭐야? 이거 뭐야? 종이로 감싸져 있는데 아직 따뜻해. 근데 안에서는 치즈 케이크가 냉기를 머금고 있잖아. 신기해. 어떤 맛이 나려나. 하다가, 자연스레 남자의 손에 들린 딸기 크림에 눈이 간다.


마치 꽃처럼 크림 위로 솟아나 딸기 슬라이스. 그 위에 뿌려진 시럽과 슈가 파우더. 저, 저것도 맛나 보이는데.



“난 안 먹을 거니까. 그거 먹고 나면 이거 먹어. 그럼 됐지?”

“어⋯그, 고마워.”

“⋯? 훗⋯”



뭐, 뭐야아. 그 코웃음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거지. 돈만 있었으면⋯




“훨씬 비싼 속옷이랑 옷을 사입힐 때는 암말 없다가, 크레페에 감사 인사를 하네.”

“아⋯그⋯”

“됐어. 얼른 먹어. 먹고 나면⋯”



어라, 그런데 뭔가 휑한데. 주변을 바라본다. 크레페 가게 앞의 분수대.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는 그 여자가 스치듯이 지나간다. 기자회견⋯

아⋯!





“모자!!!”




분수대의 난간에서 벌떡 일어서서, 모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이러면 들킬 텐데.

어디지, 어디에 놔뒀지? 아까 그 여성복 매장 탈의실인가?




“이, 이거 들고 있어!”

“먹고 가면 되잖⋯”

“모자 찾아올게!!!”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가리면서 달린다. 모자. 모자. 혹시라도 누가 알아보면 안 된다고. 쇼핑몰을 달려서 여성복 매장까지 금방이야. 아잇, 이 랩스커트 역시 불편해. 트임이 있다지만 다리를 제대로 못 올리겠어. 하지만 코앞. 다 왔다. 웃으며 반기는 점원에게 탈의실에 놔두고 온 게 있다고 말하고서 들어선다.



어디 보자, 모자. 모자.

아, 있다. 찾았다.





“찾았다.”




어.

머리 뒤로, 철컥. 하고 탈의실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손. 차가운 금속이 뒤통수에 닿는다. 순간 헉, 하고 숨이 멎고,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머리는 한순간에 상황을 이해한다.


까르르륵, 하고 해머가 물러나며 약실이 도는 소리. 리볼버. 리볼버라고?



“설마, 이런 대낮에 당당히 돌아다닐 줄이야. 움직이지 마. 머리 날아가.

 얌전히 따라오시지.”













/







“⋯이런 쇼핑몰에 그 GT 유통라인을 불러낸다고? 그게 온다고?”

“예스. 사나이 신동숙. 보고 계십쇼. 경정님. 오히려 이런 탁 트인 곳이니까 의심 살 일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이전에 약쟁이들이랑 친했다 이거 아닙니까.”

“⋯가짜기만 해 봐. 너, 내가 관리국에⋯”

“아휴, 경정님 일단, 위치. 위치를 지켜요. 네?”



쇼핑몰 홀에 앉은 남자의 귓속에서 목소리가 오간다. 관리국 소속. 오피셜 서포트의 신동숙.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지, 오피셜 서포트 지급의 재킷을 입은 채로 여유롭게 딱, 딱. 주변에 이목을 사려는 듯 구둣발로 리듬을 타고 있다. 이건 신동숙의 제안이었다. 이유미는 제지했고, 강소영은 설득했다. 이대로라면 마젤란은커녕, 그 이전에 GT에 마약 수사팀이 무너질 위기. 중간 유통라인을 잡을 필요가 있다. 실마리 없이 중독자들이나 말단만 잡아봐야 척결이 아니라 양산된 피해자에 의해 먼저 무너질 뿐이라는 계산.


강소영의 생각은 적절했다. 신동숙의 말이 옳다면, GT가 성냥. 검은 평의회 소속이었던 성냥팔이의 마약에서 유래 된 것이라면 당연히 마젤란 예언회의 엘릭서와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주축이 무너지고, 그 후에 득세한 엘카노마저 사라진 지금. 남은 세력들은 GT 쪽으로 이동했을 테니까.


다른 팀의 수사 권한을 침범하는 형태가 되긴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실마리는 실마리다. 불러내서 내부 정보를 캐내기만 해도 좋고, 신동숙이 뭔가를 알아채 낸다면 유통자를 붙잡아 심문할 수 있다.


이유미의 반대도 적절했다. 믿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다분히 이유미 개인의 감정이 실린 편견적인 판단일지라도, 카운터 범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강소영은 설득하며, 양자의 주장을 중재하는 척하며 노련하게 이 판을 끌어냈다.


설령 신동숙이 다른 꿍꿍이가 있더라도, 이 포진이라면 역으로 제압할 수 있다. 신동숙의 카운터 등급은 B급. A급인 이유미가 있다면, 만일의 사태도 대비할 수 있다. 게다가 사법 거래로 인한 목의 기구도 있으니. 대화 내용을 들으며 침착하게 대응하기만 하면 될 테니.




“옵니다. 소리 주의해주십쇼.”



신동숙이 왼손가락으로 자신의 스크래치 부분을 긁는다. 2층 난간에서 지켜보던 강소영이 모습을 숨긴다. 후드를 뒤집어쓴 거동이 수상한 남자가 신동숙을 향해 걸어온다. 키는 170 중반. 여리여리한 체구. 여기저기 둘러보며, 감시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모습. 그 태도는 ‘예이~’하고 반갑게 손을 드는 신동숙을 무시하고 앉은 뒤에도 이어진다.


남자는 앉은 뒤에, 마치 우연히 걸터앉았다는 것처럼 신동숙을 바라보지 않고 입을 연다.


“⋯잘 지냈어?”

“어, 그럼 잘 지냈지. 친구야.”

“⋯밥은 먹었고?”

“아, 당연하지. 그러니까 너 주려고 아아 사뒀잖아~ 종이 빨대라서 눅눅해진다. 인마. 얼른 쫙 빨아.”



스윽, 신동숙이 테이블 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자연스레 민다. 그걸 보던 남자는 다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던진다. 꽂힌 빨대가 얼음이 녹아, 살짝 움직이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GT. 그거 물어보려 온 거지?”

“어어, 그래. 어디서 그렇게 물량을 얻었대? 야, 섭섭하게. 나도 한때는 같이 했었는데, 인마. 어? 같이 좀 나눠먹자 임마.”


“⋯”



“왜? 아아 싫어하냐? 아~”



탁, 하고 혀가 튄다. 그것만으로는 주변의 소음 때문에 신동숙의 깨달음을 연출하기에는 부족하다. 아마 핑거 스냅이 딱, 하고 받쳐주었다면 좀 더 확실했을지도 모른다. 신동숙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준비해둔 것을 들어 올린다.


“오케이 사나이 신동숙. 알지알지. 시럽 없어서 그러⋯”




“⋯야, 신동숙.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

“사법 거래로 조직 하나 갖다 팔아서 지금 오피셜 서포트인가 뭔가, 관리국 소속이라며?

 모를 줄 알았냐? 그리고 지금, 굳이 날 불러내?”



남자는 드디어, 신동숙을 바라본다. 그 검은 눈동자에 담긴 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그의 말대로 신동숙은 대가를 지불했다. 그 대가로 남은 징역 분의 노역은 오피셜 서포트로 대체된다. 그라운드 2의 카운터 전용 감옥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을 위해 남자의 동료들을 판 것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날 잡아봐야 아무 의미 없어. 저기, 어디에 경찰이라도 숨겨둔 거 아냐?

 흐흐흐흐, 성냥팔이 형님 밑에서 좀 잘나간다고 재더니 결국⋯”


신동숙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길. 남자는 ‘알만하네’라는 말을 굳이 입에 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라는 듯, 신동숙은 시럽을 들고 웃으며 답한다.



“⋯시럽 그래서 넣어 말어?”

“씨발 새끼가⋯야, 말 못 알아 처먹어? 너한테 알려 줄⋯”



정보는 없다고, 하며 테이블을 내려치는 

듯이 총성이 울린다.

한 발이 아니었다. 연이어 하나 더. 그다음에는 비명. 무언가 쏟아지고, 무너지는 소리.

남자는 다급하게 일어선다. 그건 듣고 있던 강소영과 이유미도 마찬가지.



“이런 씨발, 신동숙 개새끼야. 넌 각오해라.”



말을 남긴 채로 남자는 떠나고, 신동숙의 귀 꽂힌 이어폰에서는 목소리가 겹친다.



“뭐야? 총성 뭐야? 무슨 상황이야?”

“경정님 3층이에요.”

“따라 와, 경위!”




신동숙은 조용히, 시럽을 따른 후.

남자가 버리듯이 내버려 두고 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빤다. 쭈우우웁, 쭈우우웁.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으, 시럽은 내 취향 아니네.”



표정을 구기며, 큰 어깨를 떤 뒤에 일어서는 신동숙.



“읏차⋯그럼, 통발을 확인하러 가보실까.”




































다음 회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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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짭지아가 캐릭터성이 거의 기계에 가까운지라

만약에 감정이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 싶었습니다.

지아는 살면서 채운 그 지식과 세상과의 괴리감을 짭지아가 단숨에 메울 수 없을테니까요.


실제로 지아는 여전히 내츄럴 비틱으로 그 괴리감을 사회성으로 잡지 못하고 있었고,

짭지아의 감정은 태어나길 열등감과 절망에서 시작한만큼

저런 어설픔도 있는게 캐릭터성으로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뭐 곧 보지팡팡이로 단박에 현실을 알게 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