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 barroca




1회 보러가기



“⋯ 아침이다.”


 밤 동안의 식은 공기가 코를 타고 온도를 알린다. 하지만 덮은 이불 속의 미묘한 온기가 따뜻해서⋯

좀 더 있을까 하다가도 이불을 벗어난다. 찹, 하고 장판 위로 내려앉는 발. 바닥도 식어있어서 한기가 찌르르, 하고 다리를 타고 오른다. 잠이 서서히 달아나고, 창가로 걸어간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새가 울고 있다. 창을 열면 차가운 바람을 타고 상쾌한 공기가 들겠지. 바로 옆이 산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푸르스름한 하늘이 서서히 맑아지고 있다. 


“오늘도 맑네.”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벌써 사흘이 흘렀다. TV에서는 기상 조절기의 점검이 완료되었으니 다시 원래 사이클대로 돌아간다며 정해진 날씨만을 알려준다. 난 아직 헨델의 집에 있다. 입고 왔던 재킷과 원피스는 다 말랐지만, 아직 여기에 있다. 


헨델도 나가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헨델은 그 이후로도 똑같았다. 비가 그친 후부터는 아침 일찍 일하러 간다고 나가고, 돌아와서는 밥을 차리고 내 머리를 말리고, 거실에서 그 야한 영상을 본다. 도대체 언제 자는 거야 저 인간은.

하면서도, 이 흘러감이 좋았다.



머리로는 진작 알고 있다.

도망쳐야 한다. 적어도 여기 그라운드 원은 안 된다는 걸.

그리고 찾아야 해. 그 시설에 준하는 장치들을. 안 그러면 난⋯



“⋯”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 녹은 젤리 같은 식감의 투여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헨델이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TV를 본다. 뭐가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웃거나 울거나, 혹은 화를 내고 있었다. 적당히 지루해질 때쯤, 방 안의 이불을 들고 와 덮는다. 그걸로 몸을 두른 채로 채널을 돌린다.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곤충의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봤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다. 성충으로 우화하기 전이 일생의 전체를 차지하는 그런 종들. 성충이 되어 바깥으로 나와서, 2~3개월쯤 교미하고 죽는다. 그러면 그다음 세대가 땅으로 들어가고의 반복. 뭐가 재미있다고 저렇게 사는 걸까.


다른 종, 아니 같은 곤충 중에서도 저렇게 짧게, 무의미하게 사는 게 있을까. 아, 있구나. 하루살이 같은 것들. 지식이 감상을 방해하는 것처럼, 머리가 알려 주는 위험 신호보다 난 이 느긋함에 빠져 있구나. 


이불을 두른 채로 옆으로 쓰러진다. 차가운 장판이 볼에 닿아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치만 뭔가 부족해서⋯



“⋯헨델, 언제 오려나.”




어, 아냐.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그 뭐야, 걔가 있으면 내 머리도 말려 줘. 밥도 차려 줘. 전부 다 해주니까 그런 거지. 편해서 그런 거지, 다른 건 아니야. 진짜야.




“⋯밖에 나가면, 완성체가 되어 시설을 나가면, 뭔가 좀 더⋯”




다양한 무언가. 다정한 무언가. 그런 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불량품이고. 완성품인 그 여자 입장에서는 제거해야 하는 오점에 불과해. 그야, 자기 자신이랑 똑같이 생긴 불량품. 그건 어떤 3자가 보기에는 모조품과도 같은 짝퉁이니까. 




-와, 이건 불량품인가요? 찌그러졌는데요?

-이건 바로크 펄입니다.

-바로크요? 그 음악이나 미술 같은 거요?




슥, 하고 티비 아래의 시계를 바라본다. 오늘은 좀 늦네. 그러고 보니 어제, 목이 말라서 깼었을 때도 깨어있었지. 그 변태. 누구랑 통화하던 거 같던데. 햄스워드가 어쩌고, 무슨 소란이 어쩌고, 돈을 빌린다던가 뭔가. 했었던 거 같다. 졸려서 잘 못 들었지만, 아, 그러고 보니 걔가 통화하고 있어서 어젯밤에 물을 마시러 못 나갔네? 이씨, 짜증 나. 돌아오면 아까 본 그거 차리라고 해야지. 만나탕! 맞나? 이쁘게 차려입은 여자 연예인들이 엄청나게 신나게 먹던 그거. 맵다면서도 붉은 뺨으로 계속 먹던 게 기억난다.



-어원은 같은데, 찌그러진 진주를 바로크 펄이라고 하거든요.

-아~

-그럼 상품 가치가 없을 거 같은데.

-아뇨, 찌그러진 것도 그 나름대로 사이즈와 광택만 있으면 최근에는 이렇게⋯



음⋯?

저거, 그거잖아.


TV에서 리포터와 주얼리 전문가가 감탄하고 있는 물건. 찌그러진 진주로 만든 주얼리. 마치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가지 같은 형상의 진주가 장식된 목걸이. 저거, 그 방에 있던 거랑 비슷한데.



-최근에는 각종 주얼리 업체에서도 바로크 펄을 활용한⋯

-찌이이이이이이익



“뭐야?”


깜짝 놀라서 이불을 걷어찬다. TV 위를 덮으며 날아가는 이불과 일어서는 나. 아, 맞다. 이거 벨 소리지. 누가 온 거야? 헨델이라면 그냥 들어 올 거고⋯하며, 조심스레 현관으로 다가간다.

탕, 탕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무, 무섭게 왜 이래. 하고 들여다본 현관문 외시경에는⋯


아, 그 할아버지네. 집주인이라던.


문을 연다.



“역시 누가 있었네⋯ 음? 넌 왜 아직 있어.”

“⋯그⋯아는, 동생이라구요⋯”

“흥, 돈 주고 여자놀음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그것도 아닌가 보구먼.”



뭐, 뭐야. 보자마자 짜증 나게. 돈 주고 여자 놀음⋯? 아, 이. 이 늙은이가 누굴더라

그런 어, 업소녀같이⋯!



“비도 안 오는데, 며칠 전부터 낮에 바스락바스락. TV 소리 들리길래 와 봤다.

 그래서, 그놈이 집세는 언제 준다던?”

“⋯모, 몰라요. 저는. 좀 있으면 오니까 그때 물어봐요.”


팔짱을 끼더니, 흐으음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왠지 무서워. 쪼, 쫄지말자. 이 늙은이는 그냥 그 회장이랑 닮았을 뿐이잖아. 히, 힘도 내가 더 세고? 그리고 전에 날 봤는데도 못 알아본 거 보니까 그 여자도 모르는 것 같아.



“⋯흠⋯ 어이, 아가씨.”

“왜, 왜요.”

“엮이지 말라고 했었지?”

“그, 그런데요.”

“그놈 정신병자야. 정신병이라고.”



화, 확실히 맨날 야한 거나 보고 있고, 자기 할 말만 하긴 해. 그, 그치만 정신병자라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유일하게 나를⋯



“끝까지 돌봐줄 거 아니면 엮이지 말고, 딴 데 가.

 괜히 같이 있다간, 아가씨도 그 문둥이도 피만 볼 거라고.”

“⋯마, 말 안 해도 그, 금방 나갈 건데요⋯자, 잠시 있는 거니까⋯시, 신경 쓰지 말라구요.”

“허, 그래? 그러면 나가기 전에 그 놈 좀 어찌 구워삶아서 집세 좀 내라고 해주련?

 이 늙은 놈으로 3층까지 올라오는 게 쉬운지 아나”



그 말과 함께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간다. 뭐야, 자기 할 말만 하고. 저 할아버지나 헨델이나 둘 다 거기서 거기네 뭐. 알고 보면 둘이 손자거나 그런 거 아냐? 아니지, 그러기엔 헨델은 좀 아저씨 같았지. 그러고 보니 몇 살일까. 헨델. 20대인 거 같긴 한데, 30대일까? 음⋯모르겠어. 


철문이 비명을 지르고, 문이 닫힌다. 이불을 뒤집어쓴 TV가 뭐라 뭐라 말하고 있다. 텅 빈 집.



“그나저나 뭔데 아직도 집세를 안 냈대? 돈이 없어서 어제도 그런 전화를⋯”



응? 돈이 왜 없어? 생각해보니 그거 있잖아.



“히히, 그거면 헨델도 돈 걱정 없겠네! 뭐.”



아까 본 방송에서 흘러나온 걸 기억한다. 바로크 펄. 현관 바로 앞. 쓰지 않는 방, 책상 위에 놓인 케이스. 비싸 보이던데, 그거 팔면 되는 거 아냐? 하고, 무심코 문고리를 잡는다. 아차, 이거 잠겨 있었지. 하지만, 한 번 해봤으니까 알아.


쉽게 잠금장치를 열고, 들어선다. 거실이나 헨델의 방과는 다른 분위기의 방. 금방이라도 방 주인이 돌아올 것 같이 관리 되어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웃기네 이거. 먼지 하나 없어, 거실이나 자기 방은 청소도 잘 안 하는 거 같더니. 


“읏차, 이거지?”


책상 위의 케이스를 집어 올린다. 딸깍, 하고 열리는 케이스. 융에 감겨 있는 주얼리. 찌그러진 검은색들이 한 줄을 타고 늘어져 있다. 음⋯맞는 거 같은데. 좀 다르다. TV에서 본 건 진주색이었는데 이건 검네. 블랙 펄 같은 건가? 


손으로 집어서 들어 올려서 자세히 쳐다보니까, 뭔가 좀 상해있다.

아, 맞지. 진주는 기름이나 피부에 닿으면 부식되니까.




“뭐야, 그럼 이거 못 파는 거잖아.”




쓰는 것 같지도 않고, 왜 이런 곳에 놔둔 거래.

에이, 하고 케이스에 담아서 다시 내려놓는다. 




“응?”



전에는 눈에 들어 오지 않았던 책상 위의 물건들. 공책, 필기구. 그리고 태블릿. 커버를 벗기고, 켜본다. 충전기가 꽂혀 있네. 하긴 뭐, 요새는 적정 용량에 충전을 멈추니까 상관없으려나 하고 들어 올린 태블릿. 화면이 켜지고, 아 역시 락이 걸려있네.


에이, 재미없어. 하고 내려놓자. 알림이 쏟아진다.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똘빡빙구 : 무슨 일 있는거 아니지?]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똘빡빙구 : 지금 어딘데?]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똘빡빙구 : 왜 전화 안 받아?]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똘빡빙구 : 오빠 조금 있으면 갈테니까 바로 집에 가]

[부재중 통화]

[부재중 메시지 : 아직 안끝남]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똘빡빙구 : 이제 봤네 오늘 길어질듯]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

[똘빡빙구 : 어제는 미안해. 요새 좀 피곤해서 화내서 미안하다. 대신에 돈 보내뒀으니까, 그걸로 친구랑⋯]

[부재중 통화]

[오빠 : 일어났어?]

[부재중 통화]



뭐, 뭐야 이거.

핸드폰이랑 연동 된 게 나오는 건가. 


전화 많이도 했네. 게다가 이거 심지어 엄청 오래전 알림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나가.”

“어?”



낮은 목소리. 헨델이었다. 돌아본 곳에는 헨델이 서 있었다.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서 나를 노려보고 있어. 나머지 한 손이 그 방에서 나오라는 듯 현관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 뒤에 칼로 찌르듯이, 한 번 더 낮은 목소리가 커진다.




“나가라고.”

“아, 아니⋯이건 그러니까⋯”





“나가라고 씨발!”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런 뒤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헨델은 흥분했어. 침착하게 잘 설명하면, 괜찮을 거라는 건 머리의 생각. 뜨거워진 건 내 얼굴만이 아니여서⋯



“왜, 왜 욕을 해? 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안 들려? 거기서 나와. 나오라고.”




목이 멘다. 왜 그렇게 화를 내? 이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이야? 비록 다정하거나,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너만큼은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잖아. 변태이긴 해도, 날 도와줬고⋯근데 그렇게 말하면⋯!



“니, 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나갈 거야! 나가면 되잖아!”

“⋯물건 원래대로 돌려놔.”

“내가 도둑질이라도 할까봐? 이씨!”




진정해. 이건 내 잘못이야. 잠겨진 방에 집주인 동의 없이 들어 온 건 나야. 얹혀사는 주제에, 먼저 잘못한 건 나야. 머리가 몇 번이고 타이르지만, 뜨거워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가면 되잖아!”




태블릿을 침대에 내던진 뒤에, 남자를 밀치고서 현관으로 나간다. 아무 신발이나 되는대로 신고서, 달린다.



뭐야, 뭐냐고. 왜 나한테 그런 말 해?



탕탕탕, 계단을 내려서 달린다. 어디로 달리는지는 모른다.



‘나가라고 씨발!!!’



그 표정. 격앙된 그 얼굴. 미간에 모인 주름. 목에 선 핏대. 붉어진 피부.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만져보지 않아도 귀가 뜨거워진 걸 알 거 같아. 왜? 왜? 나한테 왜 그래?


달린다. 뛰면서, 이리저리 뒤섞인다. 냉정한 머리의 사실 판단. 헨델의 얼굴, 여러가지들이 전부 뒤섞여서 마치 칵테일이라도 만드는 것 같아서 웃겨. 찔끔 삐져나온 눈물이 흘렀다는 그 자체가 부끄럽고, 싫어서 날아가도록 뛴다.



아, 아아아아아아.

짜증 나.

전부 다 짜증 나.



불량품이라서? 역시 불량품인데 마음 같은 걸 가져서? 그래서 이렇게 되는 거야?

그래서 뭐든 이렇게 되는 거야? 왜 다 나만 못 잡아서 안달인 건데?





아니, 그건 네 잘못이야.

도의적인 부분을 빼고서라도, 처음부터 넌⋯




“시끄러워!”



머리를 헤집는다. 그래도 달리는 건 멈추지 않는다. 밤거리가 온통 번져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하지만 발과 몸이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는 걸 알려 준다. 그래서, 더 짜증 나. 불량품인 주제에 원본에 가깝게, 탁탁하고 말하는 게 짜증 나. 


불량품이 낳은 마음 같은 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거 같잖아.


이럴 거면, 이럴 거면, 차라리 태어나질 말던가. 그냥 내 손에서 식어가던 그 아이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슬며시 웃으며 죽어⋯





무서워.




그건 무서워.









/






“신동숙⋯!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2층 계단을 여유롭게 올라오는 신동숙에게 이유미가 포박을 마치며, 소리 지른다.

주변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배관이나 혹은 난간에 수갑을 차고 있고, 강소영이 통화를 하는 모습. 그 뒤로는 화재경보를 확인하는 소방관과 시설관리 직원.

신동숙은 짧은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이야, 우리 경정님 대단하시네요. 벌써 다 처리하셨네.”

“말 돌리지 마. 너 뭐 하다가⋯”

“그 GT 약쟁이 쫓아가려다가 그만 놓쳤지 뭡니까. 하아, 사나이 신동숙이 이런 추태를 또 보여드리고 마네요.”

“너⋯!”

“경정님. 신원확인 했습니다. 저 사람들 하나같이 알파트릭스 엔터테이먼트 소속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확인차, 연락을 해봤는데 그룹 비서실장이라는 분이⋯”



강소영이 걸어오다, 신동숙을 보더니 말을 끊는다. 경계. 신동숙도 눈치챈다. 명백하게 정보공유를 꺼리고 있다는걸. 하지만, 멋쩍게 웃으며 걸어간다. 



“알파트릭스 엔터테이먼트라구요? 영화라도 찍었나?

 게다가 그 비서실장이면⋯엇차, 죄송합니다.”



그 능글맞은 웃음이 잠시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단말을 꺼낸다. 전화였다.



“예스. 사나이 신동숙입니다.”

“아~ 아이리 선배님 무슨 일이시죠?”

“네? 아이스크림이 없다? 그건 큰일이네~”

“아~ 하겐다즈요? 저 사법 거래라 월급도 없는데 이러면 진짜 곤란합니다 하하하하”

“하지만, 사나이 신동숙. 사드리겠습니다. 예예. 잠시만요, 일하는 중이라.”



수화기를 가린 채 신동숙의 허리가 굽는다. 이유미를 올려다보는 위치까지 내린 뒤 내보인 미소.



“저, 관리국 선배가 전화가 와가지고, 잠시 좀⋯”



두 눈을 꼭 감는 이유미. 땋은 보라색 머리칼이 떨리며, 조금씩 솟아오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쏟아내기 직전의 모습. 그걸 아는 강소영은 그런 이유미의 양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당긴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미소.



“아, 네. 얼른 통화하고 오세요.”

“아 이것 참, 후딱 갔다 오겠습니다.”



그렇게 2층 복도로 빠져나가는 신동숙을 보며, 이유미가 강소영을 돌아본다.



“경위! 저거 업무태만이야. 일단 우리랑 협조한다고 했으면⋯”

“알아요. 경정님. 근데, 여기서 우리끼리 다투고 있으면⋯”




“연락받고 왔습니다. 그쪽이 제4 특별기동 수사대 맞나요?”



또각. 방금 신동숙이 재빠르게 지나간 통로로 여성이 걸어온다. 그녀를 뒤따르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 



“당신은⋯”



새하얀 코트. 깔끔하게 정돈된 갈색 머리칼. 그와 대비되게, 모든 걸 불태울 것 같이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 철그럭 거리며 코트 아래에서 소리를 내는 세검.




“반갑습니다. 알파트릭스 그룹, 회장 보좌직과 비서실장을 겸하고 있는 이진이라고 합니다.”









/









정처 없이 걸었다. 깨닫고 보니 도심지. 전에 헨델과 달렸던 곳. 싫어, 그런거. 방향을 틀어 간다. 어디로가는지는 몰라. 그냥, 걸어간다. 갈 곳이 없다.


아, 여기.


하고 TV에 나온 그라운드 원의 거리 중 하나라는 건 알겠지만 그게 전부. 지나치는 사람들은 흘끗흘끗 나를 바라본다. 그야, 룸웨어에 헨델 신발 아무거나 신고 나왔으니까. 꼴이 이상하겠지.


가로수가 이어지고, 상점가가 나온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어딘가 들뜨는 음악들.

여기저기 비추는 조명들.



저 기뻐보이는 가로수들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걸까.

지나치는 사람들은 전부 모르는 얼굴이다.

근데, 나를 쳐다보고 갔다는 건 나를 알아본다는거겠지. 


아무래도 좋아.

가려고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

돌아가려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


엄마로 보이는 손을 잡은 저 어린아이는 어디론가 가겠지. 손에 든 탕후루를 들고 어디론가 가겠지.

돌아가겠지.


근데, 나는⋯




돌아 갈 곳은 없고, 갈 곳도 없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이름도 없다. 내 자리는 이미 완고하게 그 여자가 차지하고 있다. 난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




하하, 하하⋯하.

죽어버릴 걸. 차라리 거기서 다 함께 죽었어야 했어. 싫어. 싫다. 주저 앉는다. 길가에 주저 앉아서 얼굴을 가린다. 무릎을 덮는 얼굴.


눈물이 찔끔, 또 찔끔. 그만 좀 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다 알고 있는데.




그 여자한테 가면⋯

살려달라고 빌면, 목숨은 살려줄까?




머리가 답한다.

그럴리 없다. 불량이라고 해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프로토 타입을 살려두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언제 또 그 고모라는 작자처럼 이용하려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불과, 며칠 전에 어떻게든 살겠다고 한 거 같은데.

금세 이렇게 되었네. 웃긴다. 마음이라는 건 이런거야? 일주일도 지킨 말을 지키지 못하는거구나.



거리를 지나는 소음. 한 번씩 멈추는 발걸음. 자동차 소리. 시끄러운 음악. 즐거운 이야기소리.



당신네들은 용케도, 이런 나약해 빠진 것과 함께 사는구나. 마음이란 거.



-꼬르르륵.



“배고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배는 고파. 웃겨 진짜. 짜증 나. 어떻게 이런 게 완성이야? 차라리, 죽어간 그 아이들쪽이 더⋯




“뭔 일있어?”




고개를 든다. 거기에는 금발에 짙은 피부를 가진 남자.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귀에는 피어싱. 툭 튀어나온 코. 다정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뻗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다음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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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재업.



설마했던 금태양 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