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 barroca



1회 보러가기




“싫어, 하지 마!”




싫어. 이런 건 싫어. 몽롱한 정신. 동시에 파고드는 기분 좋음. 남자의 혀가 다가온다. 싫어. 손을 들려고 하지만, 힘이 안 들어 가. 그냥 기분이 좋아.


싫은데, 싫은데.




“움, 츄르르르릅. 제 점수는요? 씨발꺼 합격 목걸이 드립니다!”

“으으으으윽, 하, 하지⋯마⋯!”




고개가 타고 흐른다. 내 가슴에서 흐른다. 벗겨진다. 바지가 벗겨지는데, 손에 힘이 안 들어가. 기분 좋아. 그게 싫어.





“자세히 보니, 너 그 회장년이랑 닮았잖아? 뭐더라, 알파트릭스 회장! 맞아! 그 년이랑 닮았네. 캬, 그 년. 무슨 회장이라는 년이 몸매가⋯”




스스슥. 천이 살을 타고 오르는 소리.

벗기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나랑 그 여자를 비교 하지 마.

난⋯




“하지⋯말라고오⋯”


“오오오오오오, 첨엔 가출한 보징언 줄 알았는데. 이야~ 이건, 쥑이네. 흐아, 앙다일뷰~ 제가 한 번 열어 봅니다!”





미쳤어.

미쳤어.

기분 좋아.

이 상황 자체가, 아니 그냥 전부 다.



기분이 좋고, 싫어.




목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무언가가, 자꾸 뇌를 찔러. 온 몸이 다 열리는 것 같아. 심장이 뛰면, 그 피가 온 몸을 통해서 다 터져나가는 것 같아.




기분 좋아.



하지 마.





“피, 피피피피피, 핑크----!

 핑크다아아앗!!!”




“앙다일뷰 속에는 핑크가 있었다아아아!!!”




“내가 골드로져다아아아아!!! 아아아! 물론, 이 세상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고말고!”







미쳤다.

미쳤다.

내 가랑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남자도.

지금 기분 좋아하는 나도.



전부 미쳤다.

싫어. 싫어.





뇌가 이상해.

머리가 안 움직여.



그 어느 때처럼 판단 해줄 텐데. 

객관적으로, 칼로 자르듯이. 뭘 잘못 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국, 불량품.

결국 찌그러진 존재.





찌그러져?







“홀롤로롤로로로로로, 아아아! 라프텔은 있었다! 그저, 한 참을 웃었다! 지금 내가 핥기 전까지는!”







-어원은 같은데, 찌그러진 진주를 바로크 펄이라고 하거든요.

-아~

-그럼 상품 가치가 없을 거 같은데.

-아뇨, 찌그러진 것도 그 나름대로 사이즈와 광택만 있으면 최근에는 이렇게⋯








하지 마.






“하지⋯마, 누가, 누가⋯ 제발⋯!”





약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다. 그 반면, 미친 것 같이 날뛰는 남자의 혀가 다가온다. 하지 마.


제발, 제발.

누가, 누가⋯



도와 줘.







제발.






“가즈아아앗, 고무고무우우우웃!!!”







제발.

눈을 꼭 감는다. 

이것도 지나갈까, 그 때 연구원이 우릴 가둘 때처럼. 불량품이네 하고⋯


아, 왜. 그 얼굴이. 헨델의 얼굴을 떠올리는거야.

어차피⋯





“좆같은 펀치!!!”

“으아아아악!”






문이 박살 난다. 그다음은 내 가랑이에 있던 남자. 날아가서, 벽에 부딪혀 비명을 내지른다. 



뭐야? 도대체⋯







“⋯하, 지켜만 보려 했는데. 이건 아니지. 진짜.”





눈앞에는 커다란 남자. 문을 부수고 들어 온 남자.

한 손으로 오른쪽 주먹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1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 짧게 친 스포츠머리. 번개가 지나다니는 듯, 관자놀이에서 이어진 스크래치. 흰색 재킷.


누구야.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뒤로 물러선다. 그래봤자 침대. 하지만, 팔로 몸을 가린다.




“⋯”



기절한 금발 남자를 보고 난 후에 거구는 나를 쳐다본다. 내려보고 있다. 그 보라색 눈동자가 주변을 이리저리 보다 내 눈을 보고 있다. 뭐야, 무서워.


저, 저 사람⋯


카운터다.




주먹만으로 문을 박살 내는 게 달리 있을 리 없다.

왜? 왜?


머리가 혼란스러워. 하지만 기분 좋아.




“GT를 맞았나. 뭐⋯금세 낫겠지.”




“다, 당신은⋯”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지만, 하⋯

 뭐, 어쩔 수 없다면 없겠네.”


“뭐, 뭐라는 거야⋯!”




남자는 인중을 긁다가, 입을 연다.




“어이, 프로토타입. 이건 변덕이야, 그냥 우연에 가까운 행운이라고.”



무슨 소리야.

그보다 프로토타입이라고? 저, 저 남자는 날 알고 있어. 내 정체를⋯


도, 도망처야 해. 침대 위에서 버둥거린다. 하지만 아직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 꼴을 보니까, 답이 없네. 넌 그냥 자살해라.”



“어⋯?”







“어차피, 넌 이 세상에서 못 버텨. 이름도 없어, 아는 사람도 없어, 기댈 곳도 없어, 지켜야 할 것도 없어, 꿈도 없어, 목적성도 당연히 없어.”




뭐, 뭔데 네가⋯





“후우, 자살해라 그냥. 차라리 그게 나아. 더 이상 살아봐야 좋은 꼴 못 봐. 내 입장상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뭐 변덕이니까.”



싫어.




“시, 싫어⋯니, 니가 뭔데? 뭔데 나한테⋯”




“하아아아아아아.”


하고, 머리를 긁는다.






“뭐, 좋아. 듣든 말든. 도와준 것도 변덕이니까. 아, 그래. 널 찾는 사람이 있더라?”



날 찾는 사람? 누구야. 그 여자인가?



“중심가로 통하는 다리를 비를 맞으면서, 뛰어서 오고 있더라고. 웃기지? 너 같은 불량품이 뭐라고. 뭐⋯나름의 값어치는 있겠지만 그게 뭐라고 그치?”



“너, 너너너, 너 뭐야⋯!”



“어이구, 그 늙은이가 만든 것치고는 대가리가 잘 안 굴러가나 보네. 뭐, 불량품이니까 어쩔 수 없나. 후우우우, 그럼. 잘 있어라. 또 보자고.”



남자가 걸어간다. 문밖으로 걸어서 나간다.

뭐야, 도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보다, 다리를 뛰어오고 있다고?

도대체 누가⋯














원제

블랙 바로크

-8









대강이지만, 챙겨 입고 나서 나온다. 기절한 남자는 일어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야. 아직 손발이 저리지만, 괜찮아. 하고 건물을 빠져나와서 알았다.



카사 모텔이라고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여기에 있었던 거구나.





바깥은 비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쓸 우산도, 살 돈도 없다.

그건 전부 그 금발 남자한테도 나온 거니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걸음을 옮긴다.




비가 내린다. 그때처럼, 처음 세상에 나와 도망쳤을 때처럼. 비가 내린다. 물을 먹은 옷보다, 머리가 무거운지 고개가 자꾸 쳐진다. 이마랑 턱선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떼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이어지는 길.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모르는 걸 걷는다.



차가, 지나가고 화를 내고. 빵빵.



걷는다.



그러다가, 어느새 중심가를 빠져나가는 다리. 여길 빠져나가서 언덕을 오르면⋯





“⋯”




척, 척. 젖은 몸이 움직인다. 걸을 때마다 남자의 몸에서는 비가 내린다. 비 때문에 내려간 온도라고 해도 뜨거운 숨. 그러니까 입김이 된다. 비에 맞아 금세 사라지지만.




“⋯”

“헨델⋯”




헨델이었다. 날 보더니 멈추는 걸음. 거센 숨. 비에 맞아도 지지 않으려는 듯 토해내는 숨결.




“너⋯너, 도대체⋯”



다가온다.

보자마자, 왠지 눈물이 났다. 나도 움직인다. 팔을 든다. 헨델, 나 있지⋯













https://www.youtube.com/watch?v=otYn65yMvUM&list=PLoRyB3OVL7hH4GWwXBNjNMaPG3b1VGJdY&index=25




“너 미쳤어? 뭐 하자는 거야?!”




돌아간 고개가, 그라운드 원을 둘러싼 호수를 보게 만든다. 뭐야, 나, 나 지금 뺨 맞은 거야? 왜?


쏴아아아아.



내리는 빗속에서 멈칫, 그다음에 헨델을 본다. 돌아본 곳에는 비에 맞아, 얼굴 전체에 흐르는 눈물. 헨델이 있었다.



“갈 곳도 없는 주제에 뭔데, 니가 나가고 지랄이야!”


그 말에, 감정이 터져 나온다. 방금까지의 일들.

너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뭔데 때려? 네가 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가라며?!”




-쏴아아아아아아.

-빠아아앙.



시원하게 내리는 비, 아스팔트에 고인 물을 버스가 치고 지나간다. 허벅지까지 젖는다. 하지만 끓는 감정은 식지 않아서.



“나, 나 있지? 어? 그냥 이쁘니까, 다 사주더라?”

“그 여자랑 닮았다는 거 하나만으로⋯”

“나도, 나도, 싫어!”





헨델이 다가온다. 내 손을 잡는다. 뿌리친다.



“근데, 싫었어. 웃어주는데, 다 웃어 주는데. 엄청, 엄청 싫어서⋯ 근데, 술 마시니까, 좋다고 해주니까⋯!”




하지만.




“근데, 결국 아무도 안 봐줘. 날 안 봐 줘. 난, 여기 있는데. 나도 여기 있는데. 난⋯난 쓸모 없는 거야?

난, 태어나면 안 되는 불량품이야? 찌그러진 불량품이라서 뭘 해도 안 되냐고?!“





하지 마.

인제야, 머리가 움직인다.

이걸 헨델에게 말해서 뭐 해.



헨델은 상관없는데.



눈앞이 온통 뿌옇다.

젖은 룸웨어가 기분 나빠. 속옷까지 젖어서, 아까 남자가 젖힌 감촉이 생각나서 기분 나빠서⋯





“난 그 여자가 아닌데, 그 여자랑 닮았으니까, 그냥 그거만으로 내 껀 없냐구! 으으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으으, 난 대체⋯”




가슴에 손을 뻗는다. 헤집어서 마음이라는게 있다면 꺼내서 짜부라트리고 싶다. 하지만 없다. 가슴을 쥐어짜도 내리는 건 비 뿐.



헨델이 내 손목을 잡는다.



“놔!!! 나한테 손대지 마!!!”



뿌리치자, 헨델의 표정이 굳는다. 그 전에 본 적 없는 표정. 손목을 잡았던 팔이 떨리고 있다.


목젖이 떨고 있다.


나보다, 더 두려운 듯. 내 뒤에 무언가 있듯 떨고 있다.



“하아, 하아⋯ 싫어. 싫다구. 이런 거⋯ 이런 건, 내가 바랬던 현실이 아니란 말이야⋯”



“윽, 으으으으으으윽⋯”





헨델이 쥐어짠다. 떨리는 팔을 내리치며, 미친 것처럼. 아니 이미 미쳐있던 사람처럼, 내려친 후에 다른 팔을 들어 올린다. 나한테 뻗는다.




“돌아가자.”


어디로?




“어디로!!!”



돌아갈 곳은 없다. 그렇다고 나아갈 곳도 없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가, 마음마저 가져버렸다. 그 간단한 현실을 이제 안다. 


내가 갈 자리 같은 건 이미 없다. 그 여자가 있으니까, 내가 트럭으로 와도 안 되겠지. 이미 그 트럭째로 날아갔으니까.



하하, 하하하하⋯


하.

하하.




“괜찮아.”



그런 말을 하는 헨델이 떨고 있다. 아까랑 다르게, 떨고 있다. 괜찮다는 말에 신뢰감이 하나도 없어.


다시 한번 뿌리친다.




“시끄러워, 네가 뭘 아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말에, 비가 내리고. 헨델의 갈색 눈동자 위로 비가 내려서. 비가 내렸다.







푸르게 뜬 입술이 움직인다. 덮은 눈꺼풀. 뿌려쳐진 탓에 갈 곳을 잃은 손.






“내 여동생은⋯카운터 범죄자한테 죽었어.”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난 살았지. 그래서 널⋯”








팔려고 했어.







버스가 또 지나간다. 빗물이 아래에서 위기를 덮친다. 이제서야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때의 대화.






“헨델인가?”

“어, 헨델이다.”

“자경단도 도와주고는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최근 그라운드 원의 경계가 심해져서 어지간해서는”

“알고 있어. 그래서 햄스워드쪽에 물건을 부탁해뒀어.”

“⋯진짜, 하려고? 괜찮겠어? 외벽을 날려버린다는 건.”

“그 정도 소란이 아니면, 죽이러 들어 올 수가 없잖아.”

“⋯흠, 돈은? 그만한 물건이면 상당한⋯”

“돈은 걱정하지 마. 대체할 만한 건 준비할 거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어디서 빌리기라도 한 모양이지?”

“아니, 그 투자기금에서도 빌리진 못했거든. 대신에⋯”








잠결에 들었던 통화.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러면 왜?







“그러면 왜!”

“처음 주웠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니가⋯”














니가 사람이었으니까.











비는 내리고 있는데 멎는다. 전부 다 멎어서, 대신에 눈물이 흐른다. 





“그냥 닮은 클론인 줄 알았어. 그 회장의 클론이라면 비싸게 팔 수 있었으니까. 근데, 내가 곁에서 본 너는 그냥 사람이었다고.”

“마음이 없는 클론이 아니라, 모조품 같은게 아니라, 찌그러진 불량품이 아니라⋯”





“사람⋯처럼, 느껴져서⋯”






아.







“이제 와서 팔라고? 네 몸뚱아리를? 어떻게!!!

 지내봐서 알았어. 넌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어린아이야. 내 여동생이 어릴 때처럼 똑같이, 순수한⋯ 사람이라고! 그걸, 그걸, 팔라고?”



“그 새끼를 죽이기 위해서?!”




“어쩌라는 거야 씨발!!!”





“널 팔면!!!”







헨델, 남자는 절규하고 있다. 지친 눈. 다크서클 아래로 비가 파고든다.





“돈이 들어와. 그걸로, 지금 일하고 있는 내벽에 설치할 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그걸 쓰면!!!”




“자경단이 그라운드 원에서 그 새낄 죽일 거야. 죽여줄 거야. 그러면 난! 드디어, 겨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래, 겨우!!!”




“복수를, 할, 하악⋯수 있어.”

“근데 너는?”



“웃고, 울고, 화내고, 짜증 내고, 슬퍼하는 널 어떻게 하면 되는데?”




“차라리, 차라리, 감정 같은 게 없었다면 내가 그 조각조차 알 수 없게, 그랬다면⋯ 왜! 왜!”





아, 아아. 아아아아.

비가 내린다. 비가 계속해서 쏟아붓는다.





왜 나는, 그 때.





마음 같은 게 태어나서.



증명을 해도 의미 없는 게 태어나서.







“씨바아아아알!!!”






내 손을 붙잡으며 헨델이 쓰러진다. 그 절규 때문에 이번에는 뿌리치지 못했다. 비가 내리고 있다.


흘러가도록, 전부, 전부 다. 흘러가도록. 하지만 흘러가지 못하고, 찌그러진 타일 위로 고인 물웅덩이. 거기에 우리만 남았다.




“사람이었다고. 내 여동생처럼, 살아 숨 쉬는⋯”






























다음화 보러가기







========================================================


빌드업 거의 다 끝났다. 남은 시간은 6시간. 그 안에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