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자료는 금번 발견된 로스트 쉽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한 음성 기록입니다.



20xx년 xx월 xx일.


침식체들의 대공세가 시작된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처음엔 2차 대정화 전쟁의 악몽이 실현될 거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그건 틀렸다.


대정화 전쟁과는 비교도 안 될 재앙이었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침식체는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마천루들은 아지랑이처럼 무너져 내리고 하늘에선 불의 비가 내렸다.


세계는 멸망했다.




20xx년 xx월 xx일.


이 황무지에 좌초된지도 세 달째. 나를 제외한 모든 용병대원들은 죽었다. 대장님을 비롯해서.


추락 직전, 비행형 침식체에게 쫓기는 바람에 속도를 올리기 위해 적재된 화물들을 상당수 버려야 했다. 그 바람에 식량도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혼자 살아 남았기에 그나마 이 만큼이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테지.




20xx년 xx월 xx일.


처음엔, 그저 기뻐했던 것 같다.


침식체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용병은 본래 언제나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는 일이니까.


그저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처음 어느 정도까지는 그 생각이 맞았다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는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터니움이 우리 용병단의 손에 떨어졌으니까.


이제 이런 위험한 일은 그만두고, 아내와 딸과 함께 조용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침식체는 그러고 나서도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그 놈들은 돈벌이가 아닌, 세계를 위협하는 재앙이 되어 갔다.


보고 싶다. 아내와 딸이 보고 싶다.



20xx년 xx월 xx일.


관리국에 계속해서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지만 대답은 몇 주째 없다.


그래. 고매하신 분들께서 전멸한 용병단 하나 수습하는 데 열을 올리실 리가 없지.


하지만 단순히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구조를 해줄 관리국이 이젠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20xx년 xx월 xx일.


대장님과 동료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시작했다.


함선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해 여태 방치해 두고 있었지만, 이제 와선 아무래도 여기서 살아 나가긴 가망이 없을 것 같으니.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지만 별 수 없다.


내 목숨이 끝나기 전까지 동료들 모두를 무사히 묻어줄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유일한 걱정거리다.




20xx년 xx월 xx일.


여전히 관리국으로부터 회신은 없다. 아니, 이제 지구상에 살아 남은 문명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주변의 침식 농도가 점차 짙어지는 것 같다. 여태껏 다이브해본 어떤 이면세계보다 짙다.


점차 이 세계가 이면세계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다. 난 카운터도 아니니, 이게 이성을 가지고 입력하는 마지막 기록일지 모른다.


곧 침식체가 되겠지.


하아, 요즘 들어 날개가 거추장스럽다. 오늘은 집게발을 좀 더 손질하고 잠에 들어야겠다.




20xx년 xx월 xx일.


아직 동료들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진 않았다.


퍽 다행인 일이었다. 아직은 먹을 만하니.




20xx년 xx월 xx일.


관리국. 듣고 있다면 회신 바란다.


여기 아직 생존자가 남아 있다. 나는 살고 싶다.


듣고 있다면, 구조해주길 바란다. 부탁한다. 좌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