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 barroca





1회 보러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l7XhHc3nSWs











  “진호야. 알겠지? 지아는, 이제 니가 지켜야 해.”


그 말의 무게를 잘 모르겠지만, 알았다.

사고가 났다. 우리가 태어난 곳에, 큰 사고가. 하늘이 터져나가고, 구름이 찣겼다. 그게, 차원균열이라고 했다.


찣겨진 하늘에서, 어제 엄마랑 밥을 먹은 식탁 아래에서, 형석이랑 공을 찼던 운동장에서, 떡볶이를 사서 몰래 먹은 문구점 아래에서, 



괴물들이 쏟아졌다.



불길이 피어오르고, 비명과 울음이 흘러나온다. 코아 아파. 따가워. 하지만, 연기와 그을음에 엉망이 된 엄마가. 웃었다.


나를 안았다.

지아를 안았다.



“그래, 우리 아들. 착하지. 지아도⋯”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우리를 밀었다.

달려, 뛰어.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말고 뛰어. 계속.




엄마는 우리를 민 다음, 앞으로 나갔다. 작디 작은 보수 도끼를 들고서.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 내가 곧, 엄마를 따라 잡을 나이가 되어간다. 그런 여성이, 보수도끼를⋯

그 연약한 몸으로. 머리는 타고, 그을려서 새까만 얼굴로. 가녀린 손가락으로.




침식체 앞에 섰다.




지아를 품에 안았다. 오빠 어디 가? 아빠는? 엄마는? 하고 몇 번이나 물어서, 무서워서, 싫어서, 나도 싫어서, 연기 때문에.


몇 번이나 울었다.

울고 울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가면 되지.



엄마의 비명이 들려와서, 지아를 더 세게 안았다. 오빠하고, 내 가슴을 치는 지아를 더 세게 안았다.



갈 곳도 없는데, 돌아갈 곳도, 없는데.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지아의 울음이 멎을 때까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달려서⋯

















원제.

블랙 바로크

-13













“오빠, 오빠가 왜 사과 해? 나 잘못 한 거 없어.”


그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랑 8살 차이 나는 동생. 지아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아서 하마터면 교무실에서 울어버릴 뻔 했다는 걸 넌 모르겠지.


하지만, 난 널 위해 고개를 숙였고 너는 삐져서 교문을 빠져나올 때까지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았지.

알고 있었을 거다.


그게 우리 상황이라는 걸.

내 뜯어지는 가슴을 너도 알았으니까, 참다 못해서 너도 울었잖아.



“왜, 왜, 오빠가 사과해? 걔가 뭐라했는지 알아? 오빠보고, 버러지 새끼랬어. 그 딴 새끼한테 자라니까, 거지라고! 그랬단 말야. 왜, 왜애애애애! 오빠가 그런 말 들어야 해? 오빠, 우리 오빠, 단 한숨도 못자고 일 만 하는데, 손이, 손이, 어어허허헉, 어어허허허헉, 이런데, 이런데, 나하고 싶다 그러면 다 해주는데, 왜⋯”


엉망이 된 니 얼굴을 내가 닦으려다가, 더러워진 손이 신경 쓰여서 바지만 만지니까. 안겨들었던 걸 기억해. 핸드크림 좀 잘 바르고, 좀⋯

하다가, 미안하다고 울었지.



난 괜찮아.



그럼 우리 약속 하나 할까.

공부 열심히해서,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그렇게⋯그래서, 니가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업 얻으면 그 때는 오빠 좀 도와주라.


그 때까지만 우리 참자.


넌, 하고 싶은 걸 해. 대신, 뭘 하든 열심히.

도둑질 하지말고, 나쁜 짓 하지말고, 독하게 버티자.



“나쁜 짓 왜 하면 안 돼? 걔네가 먼저⋯”

“그러면, 여태껏 버틴게 무의미해지잖아.”




후회해.

진짜, 진심으로 그 말을 후회해.

지금도 후회해.

할 수 있다면, 그 날의 나를 찾아가 배트로 후려쳐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되도록 짓이기고 싶어.

그 마음 뿐이야.




“친구가⋯그, 이상한 약을 한다고 그래서. 따라가서 말렸거든. 그 후부터⋯”


너무 끼어들고 그러면 안 된다. 네가 위험해지면 어쩔 뻔했니.


“뭐야아, 어쩌라고 그럼. 아, 맞다. 병원은 가 봤어?”



괜찮아. 손목이 가끔 저릴 뿐이야.



“뭐가아아, 나는 뭐만 하면 병원 데리고 가면서. 진짜 병원 안 갈거야?”



괜찮아. 잠깐이야 그것도.




“자기 할 말만 해. 씨.”



혹시 용돈 필요 해?

친구랑 놀러간댔지?



“됐어. 맨날, 나보고 옷 사입어라. 뭐라 하면서, 자긴 맨날 그 허름한거만 입고 다녀.”



우린 제복 주니까.




“그거 말고, 좀⋯그 여친이나 다른거 하려면 깔끔한 것도 있어야⋯아냐, 됐어. 오빠랑 말 안해.”




올 때, 아이스크림 사올게. 아니다, 치킨이 좋아?




“히, 나 돼지되라고?”



웃는다. 그러면 너도 웃는다. 이씨하면서, 옆구리를 치겠지. 






전교 우수상. 2학년. 홍지아 양 단상 앞으로.




“우리 오빠는 소방관입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구합니다. 그 전에는 매일매일, 닥치는대로 일을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오빠는 나랑 8살 차이밖에 안나는데, 손이 엉망진창입니다. 가끔, 저를 쓰다듬는데, 너무 거칠어서 화가납니다.


핸드크림을 좀 바르면 좋을텐데. 제 말은 듣지 않습니다.


자기는 다 떨어져가는 고물같은 핸드폰 쓰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단말이랑 태블릿, 전부 최신으로 사서 가져와요.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와서 제 머리를 말리고 빗겨줍니다. 저는 오빠의 삶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을건데, 분명히 있을텐데, 전부 다를 바치는 건 이상합니다.


오빠니까? 부모님이니까? 그렇지만, 수많은 이야기 나 기사에서 아이를 버리는 부모, 동생을 버리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 오빠가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서 면학을 하고 있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그게 달갑지 않을 때도 있겠고, 귀찮을 때도 있겠죠. 하지만, 부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이 소중한 기회, 이 시간을 놓치지 말고, 면학 외에도 있는 힘껏 이 생활을 즐겨주세요. 저는, 그려려구요. 


무엇 하나 빠짐없이 즐기고, 배우고, 함께해서, 언젠가 오빠에게⋯ 전해, 전해⋯전해, 전해⋯줄, 수우우우웁, 흡, 네! 있도록. 


그려려고 합니다.”




서프라이즈. 그래, 서프라이즈. 태어나서 처음 받은 서프라이즈. 그저, 소감만 말하면 되는데 넌⋯그렇게 장문으로, 아아⋯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하는지 알까? 당장이라도 엄마를 데려 와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빠도 봤으면.

지아가 저렇게, 아아. 아아아⋯






“오빠, 오늘은 일찍 들어 와?”



-늦는 다니까 몇 번 말해. 하 진짜.

아마 늦을걸.



“그리고 내가 선물해 준 건 왜 안 차?”



-아, 걸리적 거리잖아.

알았어. 찰게 찰게.




“핸드크림도 좀 바르고? 어? 사람 말 좀 들어.”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잔소리야? 하, 진짜.

알았어. 그렇게 할게.






“하, 얜 또 뭔 전화를 이렇게⋯”

“아~ 바빠 죽겠는데, 더럽게 안 받네.”




“네, 갑니다. 가요. 아뇨, 여동생이 전화가 와서요. 출동이죠?”







“저희 고양이가 배관에서 안나와서요⋯”

“저기요, 아니, 무슨 배관을 헤집어서 먼지가 나왔는데, 그냥 가요? 소방관이라는 사람이?”

“치우고 가요. 아니, 뭔 이런 병신잡것 같은 새끼들이 있어?”

“아, 이거 보여요? 우리 셰미 발톱이 지금, 아휴. 진짜 됐다, 이름 뭐에요?”




소방교. 홍진호입니다.







“아, 무슨 전화를 이렇게 안 받아.”

“하 됐다. 문자도 안 보네.”







“그래도~ 아침에 화났을테니까,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뭐야 저거. 공원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원래, 이런 거 보여드리면 안 되거든요. 법정 증거에 가까운거라. 게다가 보호자한테... 

진짜 특별힙니다."



-오빠, 오빠아앗, 아아악

-오빠는 씨발, 내가 니 오빠다. 자지오빠닷!!!

-싫어, 제발, 제발⋯!

-아 거 씨발년 존나 시끄럽네. 아주 강간 당한다고 광고를 하세요.

-커헉, 커헉, 오빠.

-오빠아앗, 오빠아아앗, 오빠아앗, 아아앗

-오빠 정액 꿀렁꿀렁 간다제~

-그러게 왜 형님 하시는 일에 끼어들고 지랄?

-하악, 하악, 하악, 싫어⋯!

-이 씨발년이 깨물어? 어디 더 깨물어 봐

-억, 억, 억, 억 어컥, 그만... 아팟⋯오, 오빠아아... 살려줘어어⋯

-오, 씨발 와꾸가 괜찮으니까 울어도 이쁘네.

-오빠아아아아앙, 아아아, 아아흐으으으으으으

-보지나 더 조여 봐 씨발련아.

-더 때려 줘? 조일래 안 조일래?

-으으흐으으으, 으으으, 으으으으.



CCTV 속의 지아는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목이 터져라 불렀다. 얻어 맞아서, 눈두덩이 부어 오를 때도, 좌변기에 머리를 집어 넣어졌을 때도, 주먹으로 맞을 때도, 몇 번이나.



계속, 계속,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더러운 살덩이들에 갇혀,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그 때 나는.

알지도 못하는 여자네 집 고양이가 배관에 기어들어갔다고, 그 사이를 기어다니고 있었는데.

있는 욕 없는 욕 먹어서, 기분이 나빴는데.




그것도 모른채.

그것도, 하하하하, 하하하⋯모른채.



내 이름을 부르는데,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토록 불렀는데, 오빠란 새끼는 고작, 고작, 초과근무수당 2만 크레딧 더 벌겠다고.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데.



그랬는데.















처음에는 도와주던 이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이미 지아를 괴롭혔던 놈, 셋은 죽었으니까. 남은 건 신동숙 하나.


엄벌에 처하게 해달라는 시위를 도와주던 소방관 동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그렇겠지.


날 이용하려던 변호사나 정치권도, 내 태도에 질려서 떠나갔다. 그저, 그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나오지 말아줘. 그거면 된다. 제발.


왜냐면⋯




“히이이익, 히이이이이익! 오, 오지 마!!!”

“때, 때리지 마! 자, 자지 빨게요⋯!!!”



지아는 미쳐버렸으니까.



‘아 참, 핸드크림 좀 바르고 쓰다듬어. 거칠거칠해~’


하면서도 웃던, 그 모습은 더이상 없다.

이젠 그럴 필요도 없어졌을까.




“⋯오빠, 내가⋯미안해.”



가끔씩 제정신이 돌아오면 그 말만 반복하며 운다.




껴안아 줄 수도 없었다. 발작하며, 자해하는 지아를 껴안아 줄 수도 없었다. 자꾸, 손이 자기 가랑이를 타고드는 감각에, 손만 봐도 주먹이 떠올라서 미칠 것 같다는 말에.



그 때처럼.

그 연기를 숨겨주던, 엄마의 비명의 가려주던 때처럼.


껴안아 줄수도 없었다.





“오빠, 미안해⋯”




미안할게 어디있어.

내가 더, 미안해.





“솔직히, 말씀 드리죠. 지아양은 입원해야합니다. 아니, 격리⋯를 추천드립니다.”

“네?”

“사건 당시 그 작자들이 사용한 약물, 성냥입니다. 이게 CRF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서 뇌를 녹이는 구조라서요. 뭐 상세한 건 다르지만, 그런거라⋯”




“지아가, 침식증후군이라도⋯”

“아뇨, 차라리 그러면 저도 편합니다.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의사로써 저는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오해하지마세요. 지아양은 CRF반응이 느껴집니다. 약에 절여진 겁니다. 평생을 발작과 정상으로 돌아옴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겠죠.



안타깝지만 그건, 이미.








인간의 삶이 아닙니다.

끔직한 그 때의 공포와, 기억이 현실을 뒤바꾸면서 나타날 겁니다. 손만 보면 무섭다고 하죠? 약물이나, 치료로 나아질 단계가 아닙니다. 이 단계까지 가면, 거의 PTSD, 약물, CRF 종합적인 문제라 솔직히⋯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지아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잘못했잖아.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잘못 했잖아.



이건 아니잖아. 이런 건 아니잖아.




“저, 보호자님⋯!”



“이런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에요. 제 바지를 잡는다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요!”


“현실적으로 생각 하실 선택을 드리는거에요!”


“그러니까, 하⋯보호자님!”





제발, 지아를 구해 줘.

지아를 살려 줘.


어쩌면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데? 뭐라도 할 수 있어. 지금까지, 뭐든 했어. 똥을 먹으면 되는거야? 염산을 들이 부으면 되는거야? 할게. 가죽이 벗겨진채로 소금 밭에 뛰어들라고 해도 할테니까.

돈이 필요하면, 신장을 팔아서라도 마련할테니까.


제발.

제발.

내가 지아에게⋯




약속했단 말이야아아아, 나 엄마랑 약속 했단 말이야아아아, 지아, 지아, 지아 흑⋯약속 했는데에에에⋯






“오빠, 이제⋯나 괜찮아. 힘들지?”

“아냐, 안 힘들어.”

“뭐가 안 힘들어!!! 오빠, 왜 커튼 뒤에 있어?”

“미안해, 내가⋯”

“뭐가, 뭐가 미안한데. 왜 그러는데. 나⋯나 때문이잖아⋯”

“아니, 넌 잘못한 거 하나 없어. 지아야. 괜찮아. 다 괜찮아 질거야. 치료 잘 받고, 잘 때는⋯”




잘 때는, 유일하게 지아 곁에 있을 수 있다.

입원실, 늦은 밤. 새벽 2시가량. 지아가 약에 취해 잠들었을 때. 그때 겨우 너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언제나 부풀리던 볼이 사라졌어. 얻어 맞아, 내려 앉은 광대를 보조하는 기구. 자꾸 머리를 쥐어 뜯으며 자해하니까 잘라버린 머리. 

손톱으로 긁으니까 씌운 장갑. 


지아야.


손을 잡는다.

앞으로 3시간.


내가 너를 볼 수 있는 시간.

아마, 오래가지 못한다고 나도 알고 있었다.



격리가 아닌, 평범한 입원을 바란 순간부터.

돈을 버티지 못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




문득, 니가 어릴 때 TV로 본 그로니아 전승축제를 가보고 싶어했단 걸 깨닫는다. 다음 번 면회 때에는 말하자. 나으면 보러가자고.


출근은 6시.

앞으로 2시간.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그런데, 어째설까.

졸려서, 지아야.


장갑은 낀 너의 손을 쥐었는데, 졸려서⋯















/










소녀는 잠에서 깨어난다. 길고 긴 잠이었다. 삼일에 한 번, 그 악몽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악몽이었다고 하는 시간만큼은 그대로여서 저지른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는만큼 무섭다.


그날도 똑같았다.


그녀의 오빠는 결코 모를 것이다.

소녀는 때때로, 그 손에 제정신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자신과는 다른 온도, 거칠거칠한. 닳을대로 닳은 손에 잠결에, 일어났다는 걸.


그리고 울었다는 걸.


자신의 오빠를 보자마자 구역질이 나서, 그 구역질을 떠올리는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서, 가슴을 쳐도 가라앉지 않아서.


그게 너무 슬퍼서,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자신은 괜찮다. 하지만, 오빠는 무슨 죄야? 저거 봐. 나보다 더 좀비야. 사람의 몰골이 아니야. 하루에 4시간을 여기서 엎어져서 보내. 그걸로 잠을 떼워. 


그는 모를 것이다. 그가 원무과 과장에게 무릎을 꿂고, 사정하는 모습을 소녀가 봤으리라고. 말로써 들었을거라고, 병실 앞에서 의사의 구두를 핥으며, 사정하던 걸 소녀가 알고 있을거라고는.



몰랐을 것이다.



커튼 너머의 남자는 몰랐을 것이다.




소녀는 몸을 일으킨다. 폐가 아프고, 가랑이가 가렵고, 이미 구역질이 올라와서 아침에 먹은 죽이 위액처럼 이빨에 걸린다. 몇 번이고 토를 해서, 이미 이는 노인의 이가 되어버렸다.



일으킨다. 그저 일으킨다.



소녀는 미쳤다.

그것만큼은 진실이다.


지금은 일부만 제정신일뿐 미쳤다.



그녀에게 현실을 뒤바꾸는 힘은 있다. 하지만, 현실과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바꿀 수 있는게 없다. 



걸을 때마다 가랑이를 타는 손이 느껴져서 토한다. 벽에 손을 짚으니 차가워서 그 날의 변기를 떠올린다. 그 차가운 도기의 감촉. 눈알이 제멋대로 구른다. 그럼에도 걷는다.



걷는다. 걷고, 걸어서⋯


환자복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 가랑이를 타고 있던 손조차 느껴지지 않는 한기. 난간 위에 선다.

가능하다. 그녀는 카운터니까.



가능하다.




소녀는 더이상 자신의 오빠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니까. 더이상, 망가지지 말았으면 하니까.




그런 의미로, 선물했던 건데. 자신의 팔에 있다.

울음이 터졌다.


울음이, 터졌다.




미안해서, 미안해. 미안해⋯오빠, 오빠아⋯

그 날은 오빠의 선물을 사러 간 날이다. 손목 보호대를 안 찰거라면 이거라도, 하는 마음에 친구랑 고르러 갔던 날.


그래, 성냥이라는 마약에 빠진 친구와 함께.


바로크 펄, 주얼리를 샀다. 오빠에게 들이밀면 알았어. 그냥 보호대 찰게. 하고 못내 받아들이겠지. 그런 사람이다. 



선물이 상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절대 안 쓰는 사람. 소중한게 너무 소중해서, 차라리 자신이 다치고 마는 사람.



돌아 오던 길에, 덮쳐졌다.

그대로 세 명에게 끌려 갔지만 주변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원래 그런 곳이니까.


저항했다. 오빠가 곧 올테니까. 오빠라면, 언제든 달려 와 줬으니까. 학교에서 싸웠을 때도, 우산이 없을 때도, 차비가 없어서 걸어가다가 발이 아파 전화했을 때도, 언제든.



하지만 오지 않았다.

불러도,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건, 오빠의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그럼 내 잘못일까.




으으응, 그만하자.

응. 그만.





오빠, 미안해.












/

















남자는 꿈을 꾸었다. 간만에, 잠이라고 할 수 있는 잠에 들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은 금세 불길이 치솟는다. 그 날이 된다. 그 날. 그가 어머니와 마지막 약속을 나눈 날.




“헉⋯!”



“허억, 허억, 허억, 허억⋯”




그 죄스러움이 그를 깨웠다. 다하지 못한, 지키지 못한 그 자책감이 그를 깨웠다. 안경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일어나자마자 손으로 침대를 더듬는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눈으로 확인 했는데, 침대를 몇 번이나 두드리며, 확인한다. 점점 울상으로 변해간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난타 공연이라도 하듯, 침대 위를 두들긴다. 입이 벌어져서, 끓는 주전자 같은 소리를 낸다.



“지아야? 지아야? 지아야⋯? 어디, 어디, 어디 갔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튼을 확 젖힌다. 침대 아래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처럼, 목이 끓는다.


그렇게, 침대에 없다는 불안감에 남자가 머리를 들자. 창 밖에, 무언가 떨어진다.





-쿵.





“아.”







머리가 이해하는 걸 때린다. 내려치고, 때리고, 부수고, 할 수 있었다면 남자는 자신의 뇌수를 꺼내어 잘근잘근 씹어 먹었을거다.

그러니까, 뛴다. 달린다. 복도를 달리다가, 미끄러졌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굴렀다. 



“하악, 하악, 하헤헤에에엑, 하악”



총을 맞은 들짐승처럼, 살려고 피를 흘리며 뛰는 것처럼 달린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바깥으로. 바깥으로.



로비를 빠져나와, 현관을 돈다. 숨이 거칠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본관 오른쪽 산책로를 꺾어서⋯






“⋯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좀비인양. 양 손을 뻗으며 바들바들 걸어간다. 그 앞에는 햄버그용 고기들이 떨어져있다.

누구짓일까, 뼈까지 섞여있다. 털도 정리되지 않았다. 고약한 냄새의 내장까지.


“흐, 흐히히히, 히히히히히,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는 그걸 모은다. 모으고 모아서, 품에 안아서 햄버그를 만드려고 뭉친다. 하지만 흐른다. 남자의 품 안에서 흘러서, 옷을 더럽히고, 남자의 얼굴을 더럽히고, 남자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엉망진창.


양파가 들어있던 걸까.




“아하하하하, 하하하, 안 돼⋯ 안 돼⋯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핰, 히히히히히히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 킷⋯”



햄버그를 뭉치는 일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남자는 침까지 흘려가며 뭉친다. 흩어진 걸 모아, 가슴에 뭉쳐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그럼에도 뭉친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하하하하, 아아아아. 아아아아⋯!”






그걸 뭉쳐서, 품에 안고, 주변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런 엉망진창인 햄버그 같은 건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아무도 관심 없는데.




“누가, 누가⋯ 제발, 아아아아아아아아. 안 돼해해해해해해핵 해해해해해헤헤헤헥, 히히히히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윽, 으흐흐흐흐흑, 아아아아⋯지아, 지아⋯ 아, 아하아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

.

.

.











“뭐야, 너 왜 집에 안 들어가고 그러고 있냐.”

“⋯”




할아버지 이거 봐요.

이게 지아래요.

이 작은 항아리가. 지아래요.





“⋯이놈아, 산 사람을 살아야지.”




할아버지 들어봐요.

저. 여태 진짜 힘들었거든요.

하루에 몇 시간 자지도 못해서, 힘들었고, 소방관이 되기 전에는 일하다 졸았다고 뺨을 맞고⋯

진짜, 진짜, 힘들었어요.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어요.

몇 번이고⋯



하지만, 집에 오면 지아가 공부하고 있고, 제가 오면 웃으면서 이제 오냐면서 핀잔을 줘요.



“⋯일어나라. 이놈아.”



저, 이제. 소방관도 잘렸고, 일도 많이 안해도 되요.

지아가 없으니까요.

이제 힘들 일이 없는데.

근데, 그런데⋯




“저, 너무⋯너무, 너무 힘들어요오오오⋯죽을 거⋯같은데, 죽지 않아, 지아는 죽었는데, 왜? 왜해? 나는 왜? 힘들어요⋯가슴이 여기 왼쪽이 막⋯”



“일어나 이놈아. 배고프지? 밥 먹을까?”



“울었는데, 이미 말라버릴 정도로 울었는데, 근데⋯”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어요. 잠이 와서, 잤어요. 저, 진짜, 저, 진짜, 인간 쓰레기인 거 있죠? 아핰, 아핰, 학학학학, 아⋯아아아아아아.”


“그게 당연한거야. 이놈아. 언제까지 사람이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거야. 그러다간 마음이 다 망가진다고. 찌그러져버리는거야!”









진짜, 그러네.










-오늘, 드디어 공판이 끝났습니다. 가해자 신씨는 징역 10년을 구형받고, 그라운드 2에 있는 카운터 전용 교도소로 이송 됩⋯



“죽어버려 씨발새끼야!!!”


“총⋯! 막아!”

“저런 미친!”


-엇, 신씨가, 몸을 날려 난입한 총기 난사범을 제압합니다.



“야, 내가 너 살려준거다. 니 동생까지도.”



지랄하지 마.

지랄하지 마.








10년이라고? 웃기지 마.

지아는 모든 걸 잃었어.

나는 모든 걸 잃었어.





아무것도 필요없어.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데.




죽여버릴거야. 반드시.





-오빠, 오빠아앗, 아아악

-오빠는 씨발, 내가 니 오빠다. 자지오빠닷!!!

-싫어, 제발, 제발⋯!

-아 거 씨발년 존나 시끄럽네. 아주 강간 당한다고 광고를 하세요.

-커헉, 커헉, 오빠.

-오빠아앗, 오빠아아앗, 오빠아앗, 아아앗

-오빠 정액 꿀렁꿀렁 간다제~

-그러게 왜 형님 하시는 일에 끼어들고 지랄?

-하악, 하악, 하악, 싫어⋯!

-이 씨발년이 깨물어? 어디 더 깨물어 봐

-억, 억, 억, 억 어컥, 그만... 아팟⋯오, 오빠아아... 살려줘어어⋯

-오, 씨발 와꾸가 괜찮으니까 울어도 이쁘네.

-오빠아아아아앙, 아아아, 아아흐으으으으으으

-보지나 더 조여 봐 씨발련아.

-더 때려 줘? 조일래 안 조일래?

-으으흐으으으, 으으으, 으으으으.

-오빠, 오빠아앗,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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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부디 이 마음이여 무뎌지지말아라.

제발, 제발. 내가 죽이기 전에 죽지 말아라.

내 모든 걸 써서, 널 죽일테니까.

제발.

제발.




미안해. 지아야. 몇 번이고 너의 고통을 보며, 내가 빌게. 내가 아플게. 미안해. 미안해.

엄마, 미안.



미안해.














“아니거든?”

“씨이, 지 할 말만 해”

“뭐야아아, 내껀?”

“아, 이건, 그, 그, 뭐야⋯뭔데!”







그 보랏빛 눈동자를 기억한다.

어린아이처럼, 지아처럼, 웃던 그 얼굴. 쏙 들어가던 보조개. 밀리는 볼살에, 히힛하는 웃음소리.

들썩이는 어깨. 





아니구나.

아직 남았구나.

전부 다 타버렸는데, 아직 남았구나.

아직도 남았구나.



아직⋯!
















다음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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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다고 하실까봐 미리 복선을 다 깔아드린 레후.

거의 모든 복선 회수에 성공했음.


초반부 야한 영상 계속 돌려 보는 것 -> 자기 동생 강간씬을 돌려 보며 복수심을 불태움.

정신병자->정신병 안 걸리면 못 버티는 상황을 만듬


카운터사이드 세계관에서 카운터 범죄자에게 모든 걸 잃은 소시민을 그려보고 싶었다.


어떤 의미로 헨델=홍진호는 최지훈의 오마쥬에 가깝겠네.


가능하면 저 곡은 이 이야기 전체 테마를 쓸 때 도움이 많이 되서, 연속 재생해서 보는 걸 추천









앞으로 2회 정도면 끝인데. 힘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