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현은 헛웃음만 지었다. 옛날에도 감은 좋은 후배였는데, 꽤 오래 못 본 사이에 아주 능구렁이가 다 되어버렸다.


한숨을 내쉬며, 일단 이렇게 물었다.


“먼저 하나만 물어보자. 어떻게 내가 그 녀석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한 거냐?”


“이걸 봐요.”


강소영이 자기 스마트폰에 띄운 자료를 내밀었다. 최근 며칠간, 안젤라 파멜라가 습격하고 다닌 클럽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그 클럽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알아보니 전부 파멜라 가문이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있는 업소들이더라고요. 아무리 안젤라가 두목의 딸이어도 조직을 나간지 한참 됐어요. 애초에 경영에 깊게 관여하던 인물도 아니고요. 그러니 그렇게 정확하게 파멜라의 영업장들을 휘젓고 다닌다면 동업자가 있겠죠. 선배만큼 파멜라 가문에 대해 많이 조사했던 사람이 없으니까요.”


“겨우 그런 이유로 확신했다고?”


“확신은 안 했어요. 방금 전에 선배가 확신시켜주기 전까진.”


“......”


최이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누구더러 불여우라는 건지.”


그리고 최이현은 담배를 하나 집어 불을 붙였다. 강소영은 질색했지만 최이현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쨌든 대답은 같아. 해줄 말 없어.”


“이것 봐요. 선배.”


강소영이 골치아프다는 듯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예요?”


어조 자체는 평소처럼 능글맞았지만, 오래 함께해온 최이현은 강소영의 그 미묘한 어조 차이를 알아챘다. 저건 전에 없이 진지한 모습이다.


“안젤라의 목적은 짐작이 가요. 자기 아버지에 대한 복수밖에는 관심 없겠죠. 그런데 선배는 대체 왜 그 녀석을 돕는 건데요? 아직도 파멜라 가문 잡아넣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경찰도 아니잖아요!”


“이봐. 발칙한 후배님.”


최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강소영의 말을 끊고 나섰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올 기회다. 앤지는 영리해. 개인적으로는 믿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녀석의 목적은 확실하잖냐. 네가 방금 말한 것처럼.”


“앤지? 거 참 친근하게도 부르게 됐네요. 아예 사귀지 그래요?”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워. 다 계획이 있어서 하는 일이다. 앤지가 여기저기 들쑤시는 건 마구잡이로 화풀이하는 게 아니야. 나무를 흔드는 거지. 녀석들이 긴장하도록.”


“그 교활한 파멜라 가문 두목이 겨우 그 정도로 긴장할거라고요? 글쎄요. 새벽에 화장실 갈 때 한 번쯤 떠올릴 만은 하겠네요.”


“평소엔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녀석들에게도 중요한 시기다.”


거기까지 말한 최이현은 거듭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군. 하나만 말해주마. 네가 오랫동안 꽁무니 쫓았던 마젤란 교단 있지?”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올 줄 몰랐기에 강소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최근, 강소영은 ‘테라사이드’라고 불리는 전대미문의 대사건에 꽤나 깊게 관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4기동이 오랫동안 쫓았던 마젤란 교단은 그 사건의 주동자인 ‘리플레이서’라는 조직의 하수인이었음이 밝혀졌다. 파란만장한 과정으로 리플레이서가 몰락하는 와중에, 마젤란 교단은 모종의 과정으로 수뇌부가 분쇄되어 와해되었다.


“그 녀석들이 유통하던 위험한 물건 있지 않냐. 엘릭서.”


강소영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몇 번이나 그 약물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렸으니까. 일반인도 복용만 하면 카운터에 버금가는 힘을 얻을 수 있으나, 그 부작용도 심각한 아주 성가신 약물이었다.


“잠깐만, 그럼 마젤란 교단이 망하고 시중에 풀리지 않은 엘릭서들을 회수한 게......”


“그래. 파멜라 가문 측에서 훔쳐갔다.”


이번에는 강소영 측이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테라사이드 사태의 사후처리 때문에 무척이나 정신없는 생활을 보내는 바람에 그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진짜 배후였던 리플레이서가 몰락했으니, 더 이상 엘릭서가 말썽이 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 속 편한 생각을 했었다니.


“하지만 그런 일처리는 주도면밀한 파멜라답지 않은데요. 그 말썽 많은 물건을 돈 될 것 같다고 덥석 집어가다니.”


“그래. 그래서 지금 녀석들이 엘릭서에 정신이 팔려 있을 지금 바깥에서 흔드는 거지. 꼬리를 잡을 수 있어.”


하지만 강소영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요. 경찰한테 맡겨요. 손 떼시라고요.”


최이현은 대답 없이 계속 피워대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이제 할 말 끝났다. 나가.”


그 이후로도 강소영은 계속해서 최이현을 설득하려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결국 강소영은 두 손 들고 사무소를 나가야 했다.


“선배 쓸데없는 고집은 정말 여전하네요.”


“너만할까.”


“이 말은 해야겠어요. 언젠가 그런 태도 때문에 크게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강소영은 내내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기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뒤 밖으로 나갔다.



 

강소영이 나가고 최이현은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워 물었다. 그 한 개비마저 다 태워갈 무렵, 대뜸 허공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라.”


그러자 베란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빼꼼 얼굴을 내민 것은 앤지였다.


앤지는 여태껏 이야기하던 그 강렬한 범행들의 주범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해맑은 표정으로 베란다 문을 드르륵 열고 나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강소영이 앉아 있던 의자에 태연하게 걸터앉았다.


“저 언니 멋지네요. 보통이 아닌데?”


“멋지긴 무슨. 옛날엔 좀 귀여웠는데. 이젠 완전 닳을 대로 닳아서는.”


“그 점이 좋은데요.”


“......”


최이현은 말없이 책상 위에 턱을 괴었다. 앤지도 비슷한 자세를 따라하며 말했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이제 나무는 충분히 흔들었다. 여태껏 앤지가 습격해온 업소들은 모두 파멜라 가문의 주요한 약물 거래 장소였다. 그런 곳을 골라 습격했으니, 이제 조직은 엘릭서의 처분이 곤란해질 것이다. 거기다 엘릭서에 대한 정보도 흘러나갔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조직은 이제 슬슬 초조해질 것이다. 그들이 엘릭서를 확보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여기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녀석들은 그 애물단지를 처분하기 위해 성급해질 것이고, 바로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다.


최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타이드를 만나러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