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와 일반인의 완력 차이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거기다 앤지는 워낙 기분이 안 좋은 데다 술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힘 조절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만 운이 안 좋았어도 얻어맞은 양아치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보고도 도망치지 않은 동료 양아치도 문제였다. 어리석게도 곧장 앤지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앤지는 그대로 자신보다 훨씬 우락부락한 그 팔을 붙잡고 반대 벽으로 날려버렸다.
그런 소란이 일어나자 바텐더는 기겁하며 테이블 밑으로 숨었다. 역시 처음부터 느낌이 안 좋더니. 저런 미친년 받는 게 아니었어!
그리고 바텐더는 지체없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여기 정신 나간 카운터 하나가 매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중이라고.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최이현이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가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처음엔 그냥 평범한 술자리 싸움판인 줄로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득 돌아본 가게에서 날뛰고 있는 것이 불행히도 아는 얼굴이었다.
“야, 야 임마! 앤지!”
최이현은 앞뒤 가리지 않고 그대로 술집 안으로 뛰쳐들어가 뒤에서 앤지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이미 눈앞도 분간 못하는 앤지는 그대로 최이현을 메쳐버리려 했다. 그나마 최이현이 전직 카운터 전담반으로서 경험이 풍부했기에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 날아가 볼썽사납게 처박혔을 것이다. 뭐, 필사적으로 여자 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도 그리 멋들어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진정 좀 해! 나야! 나라고!”
“어라... 아저씨?”
그제야 정신이 든 앤지가 가까스로 진정할 때였다. 별안간 바깥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최이현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 사람이 많은 번화가를 뚫고 들어오는 경찰차가 어디 있어?
그리고 동시에 답을 눈치챘다. 하나 있었다. 정말 신묘한 운전실력을 정신 나갈 정도의 난폭운전에 써먹는 경찰이.
“강소영...”
카운터 범죄로 신고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4기동이 여기에 왔다!
그 순간, 가게 안으로 시퍼런 칼을 든 소녀가 하나 뛰어들어왔다.
“우왓!”
이유미는 볼 것도 없이 곧장 앤지에게 달려들었다. 카운터 사이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죽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최이현은 앤지의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자세를 추스르고 상황을 보니 이유미의 몸통박치기에 날아간 앤지가 엉거주춤 일어서는 중이었다. 그 와중 이유미는 그대로 커다란 칼을 앤지에게 휘둘렀다. 놀란 앤지는 턱을 들어 간신히 피했지만 이내 날아온 발차기는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앤지의 입에서 숨이 터졌다. 그리고 테이블을 몇 개는 부수며 가게 구석으로 처박혔다. 그 소란 와중에도 바텐더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먼지가 걷히고 앤지가 콜록대며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고개를 들자 최이현은 뭔가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이거... 열받네...”
앤지도 결국 그 호전적인 파멜라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적자였다. 난데없이 얻어맞고 나자 그 호전성이 고개를 들고 만 것이다. 지금 앤지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이유미를 바라보았다.
“저 콩알만한 계집애가 감히 누구한테......”
심지어 물어 뜯을 것 같은 기세로 씩 웃기까지 했다.
“근데 가슴은 나보다 큰 것 같아서 더 화나네?”
최이현은 말리려 했지만 이미 앤지는 움직이고 있었다. 낭패였다. 앤지의 카운터 등급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4기동에 새로 배속된 신임 경정은 최소 A 마이너스는 되는 고등급 카운터였던 것이다. 싸워서 득 될 일은 없을 게 뻔했다.
하지만 열받은 앤지는 이미 꼬마 경정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유미는 재차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앤지는 어릴 때부터 온갖 전투 기술을 훈련받은 몸이었다. 희한한 몸놀림으로 옆으로 슬쩍 빠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유미의 칼날을 한 발로 밟고 바닥으로 내려 꽂았다. 갑자기 몸의 균형이 흔들려 당황한 이유미는 칼을 빼내려 했지만 앤지의 팔꿈치가 턱을 올려치는 게 더 빨랐다.
“범죄자가...!”
이유미는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거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근접해 있는데도, 앤지는 대체 어떻게 하는지 굉장히 강한 힘이 담긴 주먹질을 짐작도 못하는 방향에서 마구 퍼붓고 있던 것이다. 힘 자체는 고등급 카운터인 이유미의 기준에서 별것 아니었지만, 그렇게 쉴 새 없이 공격이 쏟아지니 대처할 틈이 생기지 않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얻어 맞던 이유미는 이내 움직임이 봉해졌던 오른손의 무기를 번쩍 들었다. 완력만은 앤지가 당해내질 못했다. 앤지는 그대로 몸 전체가 붕 떠올랐다. 그리고 자세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등으로 떨어졌다. 앤지가 떨어진 커다란 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병들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잠시 고통에 신음을 흘리던 앤지의 입에서 곧 킬킬대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이유미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저, 저건 뭐야? 미친 년인가?”
앤지는 웃음을 뚝 그치고 테이블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가엔 여전히 실실대는 미소가 남아 있었다.
“얘, 꼬마야. 너 힘 세다. 척 보니 최소 A급은 되겠는데? 이 언니는 몇 등급이게?”
“그딴 거 알 게 뭐야! 넌 이미 폭행죄에 기물파손죄, 공무집행방해죄라고! 순순히 안 따라올 거면 때려눕혀서 끌고 갈 거니까 어디 부러지기 싫으면 얌전히 따라와!”
하지만 앤지는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고 고개만 살짝 갸웃할 뿐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기물파손은 너도 같이 했잖아?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야?”
“입 다물랬지!”
“카운터 등급으론 내가 질 것 같은데. 결혼정보회사 등급으로 싸워볼래?”
“......”
이유미는 질렸다는 얼굴로 대화를 포기했다. 살다살다 싸우면서 저런 헛소리를 남발하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강소영이 부리나케 가게 안으로 들어온 것은. 강소영은 난장판이 된 내부를 보고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탄했다.
“경정님! 하여간 성질 좀 죽이라니까! 이게 다 뭐예요! 시말서 쓸 때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어라?”
그리고 강소영은 그 안에 자신이 아는 두 얼굴, 즉 앤지와 최이현이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움찔 세웠다.
두 카운터가 다시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최이현은 그 직전에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돌적이기로는 둘 다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으니 거의 둘 사이에 끼어서 쥐포가 될 각오를 하고 달려든 셈이었다.
그리고 천만다행히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유미는 그래도 경찰이라고 멈춰섰고, 앤지는 최이현의 얼굴을 보고 흠칫하며 멈췄다. 최이현은 자기가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헐떡이며 말했다.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여태껏 해온 일 다 망쳐버릴 셈이야!”
앤지는 그제야 자기 처지를 좀 떠올렸는지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쟤가 먼저 시비걸었다고요......”
“무슨 초등학생이냐! 경찰이랑 싸워서 뭘 어쩌려고 생각 없이 구는 거야!”
앤지가 할 말이 궁해 머쓱하게 물러나자 이제 최이현은 강소영 쪽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이번 일은 정말 미안하다. 나도 예상 못한 일이었어.”
하지만 강소영은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기 선배... 지금 주변을 한 번 둘러봐요. 이게 사과 한 마디로 끝날 일인지.”
그 말을 듣고 반응한 것은 이유미였다.
“선배? 저 사람이? 경찰이었어?”
“네, 뭐. 제 사수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경정님 선배도 되겠네요.”
최이현은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나가야 했다.
“미안하다.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지금은 체포돼선 곤란해. 이미 이 만큼 난리 친 것만으로도 골치아프다고. 그래도 한때 동료로서 마지막 부탁이다. 한 번만 봐줘.”
“......”
강소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만 푹 내쉬었다.
“하여튼 시말서 쓰는 데 도움도 안 될 사람들이... 휴, 잘하는 짓인가 모르겠네. 그래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빨리 가요. 그리고 어지간하면 이제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제 눈앞에 좀 나타나지마요.”
“무슨 소리야, 강소영 경위! 미쳤어? 범죄자들이라고!”
“국밥 한 그릇 사줄 테니까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경정님.”
“지금 나랑 장난해?”
그 사이 최이현은 잽싸게 앤지의 손을 잡고 술집을 빠져나갔다.
“고맙다.”
여전히 두 경찰은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추격은 없었다. 최이현은 최대한 빨리 그 일대를 벗어났다.
한참 뛰고 나서야 최이현은 앤지의 손을 뿌리치듯 놓았다. 그리고 무섭게 앤지를 노려보았다. 앤지는 얼마 전까지 그렇게 호승심을 드러내며 싸움에 열을 올리던 모습이 무색하게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 그게, 아저씨. 제가 잘못한 건 맞긴 한데요......”
“넌 정말 다루기 힘든 녀석이구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순식간에 어그러질 수도 있었어. 미켈레를 무너뜨리는 게 네 소원 아니었냐?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일 수 없어?”
앤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주변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경솔하게 행동한 거 맞아요. 사과할게요.”
그리고 앤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래도 가끔은 정말 저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언제나 꿈에 삼촌이 나와요. 여러 기억이 뒤섞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깨고 나서 생각도 안 나지만. 제 이름을 부르는 건 언제나 진짜처럼 생생해요. 앤지. 앤지......”
여전히 앤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꿈을 꿨어요. 삼촌이 죽던 날의 꿈을. 깨어나고 나서는 도저히 모르겠는 거예요. 여기가 어딘지, 내가 잠들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그렇게......”
하지만 최이현은 냉정하게만 말할 뿐이었다.
“그런 건 변명도 못 돼. 미켈레 앞에 붙잡혀 가게 되면, 그런 핑계를 대면서 살려달라고 빌 거냐?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야. 네 사정은 충분히 유감이다만, 감정적으로 시작한 일을 감정을 배제하고 진행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결국 너나 나나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 아니냐?”
그 말을 듣고 나서 앤지는 얼굴을 감쌌던 손을 내렸다. 눈물 자국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요. 맞는 말씀이네요. 죄송해요. 전... 이제 그만 가서 쉴게요. 걱정 마요. 사고 더 안 칠 테니까.”
그리고 앤지는 최이현을 지나쳐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이용한다는 말하지 마요. 그런 건 싫어해요. 전 처음부터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같이 일할 생각도 안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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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6화 정도로 끝내려고 했던 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고 말았다
이 정도 분량을 쓸거면 그냥 개인 작품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갈데까지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