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방관 같은 직종들은 현재로선 대부분 PMC등이 도맡아서 하고있다.
시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은 '국가'라는 유령을 억지로나마 유지하기 위해
겉치레로 흔적만 남겨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서 불이 나더라도,
그들에게서 불을 끌 수 있는 능력,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지 둘 다 찾아보기 힘들다.
차라리 돈만주면 확실히 일을 처리해주는 민간단체나 용병이 훨씬 믿음직한 세상이다.
소수의 돈 많은 자들을 위한 시설들만이 그나마 간신히 제 기능을 다하고있다.
사람들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고있다.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판자같다. 보호받지 못한다.
사람 같은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현재 대부분의 생산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파괴를 위한 것들이다.
'침식체'라고 불리는 것들을 죽이기 위한 병기.
시가지 작전을 위해 낡은 건물들을 무너뜨리는 용도의 폭탄.
전투용 특수외골격. 더 강한 함선.
예전에 식품, 음료를 만들던 공장들이 이제는 인벌류트 톱니바퀴를 생산하고있다.
진짜 생명. 이 말이 가지는 무게감이 너무나도 큰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저 작은 개 한마리 기르는 것 조차도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는게 최선인 이 세상에서는 더할 나위없는 사치다.
넘쳐흘러 주체할 수 없는 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일반인들이 펫샵에서 구할 수 있는 건 AI가 탑재된 기계로 된 애완동물들이 대부분이다.
목장과 농지를 갖고있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대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세태 때문에 동물구조대라는 카운터집단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고한다.
가로수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진작에 사라졌다.
언제있었는지 모를 전투들로 불타 없어졌거나
뿌리째 뽑혀서 마치 화석처럼 회갈색으로 말라비틀어져 굴러다니거나
그마저도 노숙자들이 그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위해 가져다 땔감으로 써버렸다.
하긴 비가오는 날이면 집안의 온갖 오목한 것을 내다가 빗물을 받아 쓰는 마당에
국가가 나서서 가로수를 관리한다고하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테지싶다.
이제 인류는 차원도약을 할 수 있게되었지만
홍차에 우유를 타는 일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나나하라 가문이라는 곳에 정원사로 고용되었다.
2.
"이런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지도 모르겠는 녀석을 정녕 집안에 들이겠단 말씀이십니까"
호위무사로 보이는 소녀가 나를 노려보며 옆의 또 다른 소녀에게 물었다.
"응 맞아 치후유." 소매가 넓은 기모노 복장을 한 아담한 체구의 소녀가 가볍게 답했다.
나나하라 치나츠
나나하라 가문, 이제는 사양길을 걷고있는 가문이다. 전대 당주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저 작은 소녀가 카운터로 각성해서 당주로 추대되어 그나마 가력을 유지하는 중이다.
라고 같이 면접을 보러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언뜻 들었다.
"더 유능한 능력자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하필이면 저런...."
"충분해. 내가 바라던 인재야."
나 또한 역시 카운터다. 이 말을하기 부끄러울정도로 보잘것없는 능력이지만.
무얼 숨기랴. 나의 능력은 '식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마음이라고 해봤자 대화를 할 수있는 것도 아니다. 새삼스럽지만 식물은 대화를 할 수 없다.
'난 연약한 꽃이랍니다' 하고 말을걸어오는 식물형 미소녀는 어딘가의 협곡에 있을 수도 있겠다.
다만 줄기 어디쯤 병이 들고, 언제쯤 열매를 맺고, 어떤 가지를 쳐야 잘 성장할 수 있는지
그 정도를 아는것이 전부다. 어렴풋이 알게된다.
능력의 내용만큼 각성할 때조차 별 볼 일 없었다.
그래도 카운터 능력을 각성할 때 나름 침식파장이 있기는 했다.
작은 방 하나정도 크기였다는게 사소한 문제라면 문제겠다.
새벽 공원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뒤늦게 깨닫고나니 '아 그렇게 된것이군.'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는게 제일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도시에서 카운터가 한 명 각성할 때마다 침식파장의 영향이 뉴스 헤드라인으로 다루어지던데.
특집방송도 하고.
내 경우는 유머게시판에나 안올라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정말 다행히도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능력을 각성했다. 스물 조금 넘어서였다.
어릴적부터 이런 쓸모없는 재능을 가져봤자, 꼴에 능력자라고 카운터 아카데미 같은곳에 들어갔겠지.
16살의 나이에 경찰에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아예 경정을 달아버리는
그런 녀석들이 바글바글거리는 틈바구니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겉돌았을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을 필요로하는 곳을 찾아 '카운터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떠날 때
교실 뒤편에서 말없어보이는 맹한 여자애랑 북극점 결사대 굿즈나 만지작거리고있었을 것이다. 왠지 느낌이 그렇다.
차라리 지금처럼 일반학교를 나와서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게
운이 좋았던거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어렴풋이 알게된다' 뿐이지, 말끔한 조치를 취하는 것 까지는 내 능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전에 부러지려는 줄기에 부목을 댔다가 너무 세게 묶은 나머지 며칠 뒤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적이 있었다.
애초에 손재주가 그다지 좋지 않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참 불공평하다.
알토인지 알트인지 어느 카운터집단에는 아공간 주머니를 만들어내는 본래 능력이 있으면서도
전투까지 잘하는 카운터도 있다던데.
3.
".....D급 이하니까."
치후유가 떠난 방에서 치나츠 당주가 태블릿 화면을 내게로 향한채로 말을 걸었다.
"네?" 잠시 딴 생각에 제대로 듣지 못한 내가 되물었다.
"방은 정원 근처 바깥채에 있는 방에서 머물도록하고. 숙식제공하는 대신 월급은 이정도로 줄게. D급 이하니까"
숫자가 많이 빈약하다. 0이 하나부족한거같은데. 아니 두갠가?
"거부권은 없어. 어차피 갈곳도 없잖아. D급 이하니까."
자꾸 D급 D급하는게 거슬린다.
바라던 인재 어쩌고 하던것도,
적당히 떨거지 능력자를 싼값에 부려먹으면서
정원을 과시하려는 몰락 귀족다운 허세가득한 발상에서 유래한 것이 틀림없다.
"방금 속으로 귀족주제에 되게 쪼잔하게 구네 하고 생각했지"
놀라운걸. 혹시 댁네 능력이 'D급 카운터 마음을 아는 능력'이냐고 되물을 뻔 했던 걸 간신히 참았다.
하마터면 같은 부류의 능력자라고 착각할 뻔했잖아.
한마디 한마디가 아프게 쿡쿡 찔러온다. 장미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하 당치도 않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집에서 능력껏 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이곳은 안전하고. 밥 걱정도 없다.
있으나마나한 능력이지만 나름 살릴 수 있다.
"흐응 그래 말은 잘하네. 오늘부터 우리 정원일은 너에게 전부 일임할게. 다시 정성껏 가꾸어줘. 나름 좋아하는 곳이었거든."
순간 건방지기만 했던 소녀의 표정에서 어딘가 쓸쓸한 그늘이 잠시 드리워졌다가. 이내 다시 걷혔다.
"그러죠. 혹시 일 잘하면 월급 ㅇ..."
"그럼 피곤할텐데 이제 정원 한바퀴 둘러보고 들어가서 쉬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닫이문이 닫혔다.
심지어 '정원' 뒤 부터는 창호지 건너편에서 들려온 나머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장미는 취소다. 오늘부터 저 여자는 할미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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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겠지만 재밌게 읽으면 고마울거같음
읽는거랑 쓰는거랑 천지차이란걸 적으면서 깨달았다 ㄹㅇㅋㅋ
문학대회 홍보차 + 개인적인 흥미 위주로 적었음
좀 암울하고 피폐한 세계관을 좋아해서
카사 공식 배경 설정이랑은 좀 다를수도있어
불편햇다면 ㅈㅅㅋㅋ
+ 카사챈배 문학대회 많이 참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