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 – 삐 -

   

새벽 5시 30분. 알림이 울린다.

   

<금일 침식체 정리 지원 사업에 나설 용병들은 30분 내로 지원바랍니다. 함께 하는 소대는 펜릴 소대입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 고기방패용병사무소>

   

나는 신경질적으로 알람을 껐다. 최근 리플레이서인지 뭔지의 침입으로 용병을 구하는 일이 잦아졌다. 용병질 하는 입장에서 일이 많은 게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쉴 틈 없이 침입체들을 상대해야하는 건 돈을 떠나서 여러모로 피곤했다.

   

- 오늘도 한탕 하실 거죠?

   

방패병 출신 김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내고 장비를 챙겼다. 침식체 전용으로 만들어진 SL-A2를 손질하는 사이 답장이 왔다.

   

- 당연하지. 언제 일이 끊길지도 모르는 데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사무소 입구에서 보자구.

   

문자를 확인하고 현관을 나가려는 차에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아빠, 또 나가는 거야?”

   

내 딸 현지가 두 눈을 비비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무릎을 구부리고 현지의 눈높이에 내 눈을 맞췄다.

   

“응, 요새 일이 자주 있네. 현지 오늘도 혼자서 준비 잘 할 수 있지?”

   

현지는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작게 속삭였다.

   

“응...”

   

나는 그런 현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몰랐다. 아내만 살아 있었어도, 현지 엄마만 살아있었어도 이렇게까지 현지를 방치한 채 키우지 않았을 텐데. 나는 침식체의 침입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린 아내를 생각하며 주먹을 쥐었다. 현지만은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른 돈을 모아 조금이라도 침식체에게서 안전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나는 현지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아빠가 열심히 돈 벌어서 현지가 내년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엄청 좋고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응...”

   

여전히 현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정수리만 보이는 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내가 문을 닫기 직전, 현지가 문틈 사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 놀이공원 가기로 한 거 잊은 건 아니지?”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닫히고 있는 문 틈새로 현지의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무조건 쉬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

   

사무소 앞은 잠이 덜 깬 용병으로 가득했다. 김 아저씨도 거기 있었다.

   

“여~ 왔어?”

   

김 아저씨는 녹슨 방패를 높이 치켜들며 인사했다. 나는 그의 옆으로 가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들 사무소장의 작전 브리핑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얘기 들었어?”

   

김 아저씨가 내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

   

“무슨 얘기요?”

   

“에디.”

   

“에디요?”

   

“그래, 비정규 정찰대 에디 녀석.”

   

나는 짙은 다크서클이 인상적이었던 에디 피셔를 떠올렸다. 그와 함께 참여했던 작전에서는 언제나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임무도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내던 그였다. 많은 소총수들의 희망이기도 했던 에디. 에디 피셔.

   

“왜요? 에디가 또 무슨 일을 벌려놨어요?”

   

“죽었대.”

   

나는 김 아저씨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용병들이 가장 많이 죽는 때가 잠이 덜 깬 아침이니까 긴장하라는 뜻으로.

   

“에이, 장난치지 마세요. 그 사람 어디가서 죽을 사람 아닌 거 알잖아요.”

   

“진짜야. 딸 죽고 한동안 미친 듯이 침식체 사냥만 하더니 결국 자기도 죽었다더군. 말로는 어떤 카운터를 지키다가 죽었다고는 하던데, 알잖나. 가족 살리려고 일하던 용병들 그 가족 죽으면 금방 따라가는 거.”

   

나는 믿을 수 없어 고개만 계속 저었다. 그때 배가 두둑히 나온 사무소장이 확성기를 들고 트럭 위에 섰다.

   

“고기방패용병사무소장입니다. 아침부터 고생 많으십니다. 그럼 오늘 작전 브리핑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몇 번 콜록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일단 거 문자에 보내드린 대로 오늘은 코핀 컴퍼니의 펜릴 소대가 작전 지휘에 나섭니다. 배당 카운터는 1명이고, 유미나라는 C등급 카운터입니다. 병과는 레인저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브리핑을 마쳤을 때 용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 용병이 손을 들고 외쳤다.

   

“아니, 리플레이서라는 침식체가 변종에다가 기존 침식체들보다 강한데 고작 C등급 한 명에다 레인저라니요. 펜릴 소대면 A급인지 S급인지 디펜더 한 명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 혼자 나와도 위험한 마당에 C등급 한 명이라니요. 이건 아니죠.”

   

용병이 말을 마치자 주위에서는 옹호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관리소장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확성기 사이렌 소리를 몇 번 내더니 거칠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돈도 많이 주고, 용병들 인원도 많이 뽑아서 가는 거 아닙니까. 싫은 사람들은 지금 나가세요. 어차피 더 들어오겠다고 신청한 사람이 한 가득입니다.”

   

관리소장이 강하게 나오자 용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제압병으로 보이는 몇 명만이 침을 뱉으며 현장을 이탈할 뿐이었다.

   

“시벌 요새 용병들 좀 들어왔다고 관리소장하는 꼬라지가 꼭 예전 스튜디오비사이드용병단 보는 기분이구만.”

   

김 아저씨가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며, 그러나 주위에 들리지 않게 귓속말을 해왔다.

   

“에이 그래도 스비는 심하죠. 2천명이나 되던 용병들 다 죽여 버린 곳 아닙니까.”


내가 웃으며 대꾸하자 김 아저씨는 “그건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