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중후반, 대조선제국 국회에서 러시아제국을 찬양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 조정은 러시아 대신들을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주었고, 

원산의 절반과 함흥의 절반, 북간도 전체을 내주었다.

하지만, 여당인 제국당이 아주 약간 과반수였을 뿐이었다.

진도부, 전주부, 광주부, 낙안부에서 우세였던 제1야당인 동학당은 싫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목포에 도달하지 못했고, 제주에 가기도 힘들었다.


대영제국은 이 기회를 삼아서 유구 제도와 거문도를 삼키고 진주부에 군대를 상륙시켰다.

동학당은 진주부에 국군을 보내달라고 국회에 호소했다.

조정은 국군을 보내 동학당 당사를 무너뜨리고 당원들을 체포하였으며,

이제서야 내려올 수 있게된 러시아군은 영국군과 대치하였다.

이런 상황에 거제도에 있던 화란국은 러시아와 영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박게 되며,

러시아와 영국은 화란국이란 돌부리가 없어지면서 다툼으로 돌벽한다.

이렇게 사건이 나면서, 친러내각 조선은 러시아를 도왔고,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신라는 중립을 선언하며 싸움에 일단 휘말리지 않고 싶었지만,

영국이 다 터트려 버렸다.

둘 중 누가 이기든 지 자기도 망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순 공화국은 둘 도 아닌

대조선제국에 전쟁물자를 지원하였다.


20년간 끝을 알 수 없었던 전쟁이었다. 영국과 러시아... 막상막하였다.

그래서 누가 이겼냐고? 최소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이겼다.

쇄국을 풀며 갑자기 화란국의 물건을 받아들여서 개화를 하고, 

조선과 신라의 행정력을 잃게된 구룡 지역을 점령하고, 

자연이나 다름 없는 아이누 왕국을 흡수한 뒤 

군사력이 충분해진 일본은 그대로 조선을 삼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