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전사에게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 마법은 현실에는 없는 완전한 가상의 산물이고, 전사는 현실에도 있다는 것.


마법은 어차피 가상의 설정이니까 상상이 자유로움. 한국이나 일본 판타지 소설은 마나가 어쩌니 드래곤이 어쩌니 하는 식으로 마법의 원리를 설명하려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통 서양 판타지는 그런 경우가 잘 없음. 그냥 마법은 마법임. 설명 끝. 구체적인 설정이 없으니까 그만큼 상상의 여지도 많지.


다시말해 마법은 독자들을 납득시키기가 쉽다는 거임. 마법으로 백만대군을 몰살해도, 여름을 겨울로 바꿔도, 흙으로 사람을 창조해도, 그냥 "마법이니까 가능함" 한 마디면 모든 설명이 끝나고 독자들도 토를 달지 않음. 그냥 이 소설 세계관에서는 이게 가능하구나 하고 받아들임.


하지만 전사는 육체와 무기를 이용해서 싸우고, 그건 현실에도 있는 거니까 상상의 여지가 비교적 제한됨. 그리고 독자들의 눈도 마법보다 더 엄격해짐. 마법 한 방으로 백만대군을 몰살시키는 건 "이 세계관은 마법이 엄청 센가 보구나"하고 넘어가도 칼 한 방으로 백만대군을 몰살시키는 건 쉽게 넘어갈 수 없음. 마법이랑 달리 칼은 실제로 있으니까.


납득이 갈 만한 보충 설명 없이 그런 묘사가 나오면 독자들의 반응은 보통 둘 중 하나임.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서 몰입이 깨지거나, 아니면 해병문학 보는 기분으로 뇌 비우고 생각을 멈춘 채 보거나. 일부러 판타지 코미디물로 의도하고 썼다면 모를까 진지하게 썼다면 두 반응 모두 문제가 있지.


즉, 마법은 현실의 제약이 거의 없는 반면 전사는 현실의 제약을 받으니까 파워 밸런스는 마법사가 더 세지기 쉽다는 거임.


그걸 극복할 방법은 간단함. 전사한테도 비현실적인 설정을 주면 됨. 내공, 검기, 오러 같은 게 그 예시지. 그런 설정이 있으면 전사가 산을 베고 바다를 갈라도 독자들이 "이 세계관 전사는 원래 이렇구나"하고 납득함.


하지만 문제는 정통 서양 판타지는 무공이나 검기 같은 게 없다는 점. 정통 서양 판타지의 전사는 보통 그런 거 없이 육체로 싸우기 때문에 전사를 위한 비현실적인 설정은 마법 아이템 정도밖에 없음. 아킬레우스나 지크프리트마냥 마법적인 방법으로 육체를 강화했다는 설정이 붙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고.


네줄요약

1. 현실성에 구애받지 않을수록 파워가 세질 수 있다.

2. 마법은 완전히 비현실적이지만 전사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3. 정통 서양 판타지에는 전사에게 비현실성을 부여하는 설정(무공 등)이 별로 없다. 

4. 따라서 정통 서양 판타지 전사는 마법사보다 약한 경우가 많다. 현실성의 제약이 더 크기 때문에.



CYOA 이야기: 정통 서양 판타지 얘기고 요즘 작품은 꼭 그렇지도 않음. 서양에서 만들어진 선협물 CYOA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