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명한 사실부터 시작합시다. 물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것까지는 건너뛰고요. 당신은 방금 아카라이브의 CYOA 채널에 들어와서 별로 흥미롭지도 않아 보이는 자작탭의 게시글을 조회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었습니다. 이 사실까지는 이미 흐르는 시간과 무한한 평행우주의 노선도에 깊이 새겨져 변할 수 없는 진실이 되었습니다. 동의하시죠? [Y/N]




Choice Your Own CYOA

CᆞYᆞOᆞCᆞYᆞOᆞA

아, 그런데 쿄쿄아 한 잔 하시겠습니까?



Q1. 내레이터가 내미는 쿄쿄아를 받겠습니까?



    고마워요    
당신은 쿄쿄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받아들었습니다. 건네드리는 제가 이걸 설명하는 것도 우습지만 익숙한 일 아닌가요? 아, 사실 이따가 당신이 『CYOA가 뭔지도 잘 모르는 초짜요 입문자』가 되기로 선택한다면 익숙한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어찌됐건 지금은 그조차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쿄쿄아를 받기로 결심했는지는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선생님 본인은 그 이유를 잘 알고 계시겠지만 ― 왜냐하면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까이꺼 받지, 뭐'라고 생각하신 당사자 본인 유어셀프이시므로 ― 내레이터인 저는 이를 알 턱이 없으므로 추론하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 추론을 선생님께 들려 드리고, 최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꿰뚫어본 척해야 하죠. 늘 그런 일입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일까요? '쿄쿄아'가 단지 CYOCYOA라는 제목에서 따와 '코코아'를 비틀어 놓은 시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보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무료로 제공되는 아이템은 일단 수집하고 보는 당신의 컬렉터 기질이 발휘되었을 뿐인가요?
하하, 저를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기로 선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당신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패널티를 가진 대신에, 선생님께서도 상응하는 제약을 품고 계시니까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미 『고마워요』를 선택하신 이상, 그 선택 이외에 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은 봉쇄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도, 또는 욕심을 부려서 두 가능성 모두 가지는 것으로 할 수도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왜냐하면 CYOA니까요. Choice하지 않은 선택지는 이미 Your Own한 Adventure이지 않으며, 우기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조차 없는 것이 법칙이니까요. 저는 활자로 말할 수밖에 없고 선택을 알아들은 척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그림자놀이꾼이고, 선생님은 선택이라는 완고한 장수가 이끄는 군대의 노비나 다름없으신 겁니다. 물론 이 모든 약속된 제약과 스스로에게 맺은 말뿐인 맹세를 깨뜨려 버리고 『아뇨, 됐어요』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문장은 과연 무엇인지 직접 열어 확인해 보는 것도 당신의 선택입니다. 늘 그러했듯이⋯⋯.



    아뇨, 됐어요    
당신은 제가 내미는 쿄쿄아를 구태여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이 결정에 따라 하신 행동을 제가 되풀이해서 설명하는 것도 우습지만 익숙한 일 아닌가요? 아, 사실 이따가 당신이 『CYOA가 뭔지도 잘 모르는 초짜요 입문자』가 되기로 선택한다면 익숙한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어찌됐건 지금은 그조차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왜 쿄쿄아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는지는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선생님 본인은 그 이유를 잘 알고 계시겠지만 ― 왜냐하면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그걸 왜 받아'라고 생각하신 당사자 본인 유어셀프이시므로 ― 내레이터인 저는 이를 알 턱이 없으므로 추론하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 추론을 선생님께 들려 드리고, 최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꿰뚫어본 척해야 하죠. 늘 그런 일입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일까요? '쿄쿄아'가 단지 CYOCYOA라는 제목에서 따와 '코코아'를 비틀어 놓은 시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보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이런 시덥잖고 무의미한 아이스브레이킹 용 선택지에서는 꼭 초를 치는 대답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심술쟁이 기질이 있으셔서일까요?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심술이야말로 이 딱딱하고 이상한 세계를 부수는 유일한 도구일지도 모르니까요.
하하, 저를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기로 선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당신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패널티를 가진 대신에, 선생님께서도 상응하는 제약을 품고 계시니까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미 『아뇨, 됐어요』를 선택하신 이상, 그 선택 이외에 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은 봉쇄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도, 또는 욕심을 부려서 두 가능성 모두 가지는 것으로 할 수도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왜냐하면 CYOA니까요. Choice하지 않은 선택지는 이미 Your Own한 Adventure이지 않으며, 우기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조차 없는 것이 법칙이니까요. 저는 활자로 말할 수밖에 없고 선택을 알아들은 척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라디오 MC이고, 선생님은 선택이라는 고집 센 말이 이끄는 마차의 바퀴나 다름없으신 겁니다.
아, 그리고 『아뇨, 됐어요』를 선택하신 신중한 당신께만 특별히 알려 드리는 겁니다만, 사실 이 선택지랑 위의 선택지는 복사+붙여넣기를 통해서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고마워요』를 선택하셨더라도 선생님이 읽으셨을 내용은 거의 비슷한 글이었을 거란 말이죠. 이거 비밀입니다. 물론 『고마워요』를 선택한 사람이 이 선택지까지 열어서 확인해 보는 그런 치사한 짓을 한다면 소용없겠지만요⋯⋯.




아무튼 정해진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적어도 3개월 이상의 인생을 살고, 인터넷 접속하는 법 정도는 깨우쳐서 이 자리에 이르신 것이겠지만 저로서는 그 외에 무엇이 선생님의 삶에 이미 정해져 있는지 알 방도가 없으며, 그보다도 무엇이 정해져 있는지를 정하는 것조차 당신의 자유이니까요. 예를 들어⋯⋯ 선생님은 남자이시습니까, 여자이시습니까? CYOA의 세계에서는 절대 선생님이 '남자이십니까, 여자이십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께서 어느 쪽으로 가시려 하느냐는 의지이며, 우리는 그것을 선택choice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Q2. 어느 성별이시습니까?



    남자    
예, 그러십시오. 당신은 남자입니다.



      여자    
진짜요? 아니, 아니. 선택은 자유입니다만 보통 이런 대목에서는 현실의 성별과 일치하는 대답을 많이 하시길래 말입니다. 물론 당신이 진짜 여성인지는 제가 무슨 방도로 알겠습니까? 오해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만 이 또한 나레이터의 숙명이자 직업병임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또 딱히 오해한 것도 아닌데 제가 사과 드리고 있는 경우라면 이 또한 이해해 주시길. 아무튼, 당신은 여자입니다.



    기타    
아⋯⋯ 예. 동지를 만나 반갑네요. 저는 피아노 성별입니다. 당신은 기타고요.




뭐, 이런 건 기실 전혀 의미 없는 질문인 겁니다. 왜냐하면 이번 CYOA에서는 플레이어 ― 즉, 선생님 본인 ― 의 사적인 아이덴티티 선택까지는 그다지 요구할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과잉선택이요 과잉설정입니다. 또⋯⋯ 예를 들어서 제가 선생님께 '생각하시고, 고로 존재하십니까?'라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겠죠. 자명하고(라캉이라면 또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군요) 또 그다지 쓸모 없는 사실을 캐묻는 것은 완전 무의미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용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런 일은 많지 않잖아요. 보십시오, 선생님과 제가 이렇게 가까이서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는 잘 없지 않습니까.





Q3. 당신은 CYOA에 얼마나 익숙하겠습니까?



    CYOA가 뭔지도 잘 모르는 초짜요 입문자    
빙고! 아까 전에 일부러 이 선택지를 미리 스포일러한 보람이 있었습니다(설마 Q1의 두 선택지를 둘 다 안 읽고 넘겼을 리가). 또, 일부러 맨 위 1번 선택지로 배치해 놓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중수', '고수'라고 단조롭게 표현해 놓은 나머지 선택지들과는 달리 '초짜요 입문자'라는 재치있는 표현을 써서 딱 이목을 끌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쵸창인생이든 아니든 이 선택지를 가장 먼저 클릭해서 열어 보실 수밖에 없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선택지를 하나하나 차례대로 다 열어서 모조리 읽어 보려고 결심한 분도 꽤나 계실 것이고요.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이런 모자란 자작 CYOA를 그렇게 꼼꼼하게 플레이하기로 선택해 주시다니요. 아니면 그저 게임북을 1페이지부터 차례대로 읽는 야리코미 근성의 연장일까요? 물론 그것도 일종의 몰두라고 생각하자면 이 CYOA의 설계자이자 내레이터인 제 입장에서는 기쁜 일입니다.
한편, '중수', '고수' 선택지를 선택한 다음에 여기로 돌아와서 내용을 열어 보신 분이시라면 제가 저 위에서 의기양양하게 "빙고!"라며 제일 먼저 열어봤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부분을 보며 마음껏 비웃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나름 쪽팔린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미 이 지경까지 CYOA에 대해 음침하고 기분나쁠 정도로 구시렁구시렁 늘어놓고 있는 글을, 아직 뒤로가기 하지 않고 읽고 계신다는 건 아마 CYOA 초보는 전혀 아니실 듯한데⋯⋯ 뭐, 어쩌겠습니까. 아무튼 당신은 CYOA를 잘 모르기 때문에, CYOA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함께 읽으며 이 CYOA를 진행해 나가기로 합니다. 정작 이 CYOA는 그런 설명이 전혀 쓸모가 없는 종류라는 것만 제쳐두고요.



    나름대로 CYOA를 꽤나 즐기고 있는 중수    
좋습니다. 당신은 적당히 CYOA를 즐길 줄 알기 때문에, 이번 CYOA도 적당히 즐기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적당히 즐기는 게 최고니까요. 그리고 이번 선택지에서 유독 이 중수 선택지만 (적당하니) 길이가 짧은데, 나머지 것들도 읽어 보시려면 읽어 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CYOA의 플레이와 이해 전반에 도가 튼 고수    
그런데 말입니다⋯⋯ 고수라는 건 어떻게 정하는 겁니까? 이 해답을 내놓을 수 있으면 고수입니다. 마치 선문답 같군요. 고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면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근데 고수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고수만 가능한 일이죠. CYOA에서는 선생님의 선택이 지극히 최우선순위로 존중되기 때문에 큰 문제를 빚은 적이 없었겠지만 사실 TRPG 같은 분야로 향해 보면 이 '고수라는 설정'의 문제는 큰 난관으로 다가옵니다. 이를테면 지능이 10점 만점에 100점짜리 천재 캐릭터가 있는데, 그 천재 캐릭터가 할 만한 발상을 어떻게 평범한 플레이어가 떠올린단 말입니까? 반대로, 100점짜리 천재 발상이 이미 룰북에 모두 나와 있는 지시대로만 이행하는 것이라면 그건 천재 캐릭터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께서 스스로 CYOA의 최정상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분이시라면 이 선택지가 나중에 또 다른 선택에 영향을 미칠 때도 당신 본인의 노련함으로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겠죠. 그런데 만약 고수가 아니신데 이 선택지를 고르신 거라면, 결국 또 다른 선택의 때가 올 때 이 선택의 의미는 무용해지고, 기로 앞에는 선생님 본인의 본래 실력만이 드러나 결국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제가 무슨 수로 고수의 선택을 제안해 드려야 할지 막막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도 딱히 고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그냥 제가 신경 탁 꺼 버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든 될 테고, 대충 CYOA의 틀은 갖추고 있으니 개추 한 서너 개쯤 받을 테고, 모두에게서 잊힌 채 아카라이브의 불쌍한 데이터 스토리지의 15kb 정도를 잡아먹고, 결론적으로는 제가 책임을 졌을 때랑 아무 것도 바뀌는 부분이 없을 겁니다. 흠흠⋯⋯ 좋네요. 저는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진짜배기 절세고수이시길 믿어야죠. 당신은 CYOA의 고수로, 맞닥뜨린 CYOA를 화려하고 치밀한 플레이로 연재하거나 아무튼 즐겨서 모두에게(또는 스스로에게) 감동과 잠깐의 훌륭한 유희를 선사하기로 합니다.




다음 파트 《CYOA 선택》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