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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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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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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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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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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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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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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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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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가보지. 즐거운 주말 보내게."

계산을 마친 주피터는 메티스와 함께 어디로 가버렸다.

"그런데 카카 씨, 두 분 사귀는 거 알고 있었어?"

갑작스러운 상아의 질문에 카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뭐야. 그거 비밀로 하려고 그러는 거야? 카카 씨. 나는 1년 전부터 두 분 사귀는 거 알고 있었어."

"네? 정말요?"

"나 말고도 다른 부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대충 알 걸?"

"회사에서는 전혀 그런 티 안 내시던데요?"

"잘 보면 보여. 메티스 대리님은 몰라도 주 부장님은 은근히 헛점이 많거든."

그 말에 마음속으로 동의한 카카는 이제 무얼 해야하지 라는 생각에 잠겼다.

결국 상아의 손에 이끌려간 그녀는 놀이공원, 노래방, 술집, 그리고 상아의 방까지 간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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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시간 출근한 카카는

회사건물 1층의 자판기로 향했다.

지폐를 먹여도 자꾸 뱉어내는 바람에 자판기를 발로 한 번 차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 카카는

밖에 있는 자판기에 생각이 닿았다.

다시 뱉어내진 지폐를 들고 밖으로 가니

자판기 앞에서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한 명이 가만히 자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왠지 어릴 적 카쿠스가 생각난 카카는 가까이 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가 음료수 하나 뽑아줄까?"

큰 눈동자를 한 그 아이는 가만히 카카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정말? 그럼 나 오렌지주스 마셔도 돼?"

그 모습이 귀여워 카카는 한 번 씩 웃어주고 자신의 음료수와 오렌지 주스를 하나 뽑았다.

"잘 마실게. 고마워."

"착한 아이네. 근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누굴 좀 기다리고 있었어."

"그랬구나. 언니는 이제 들어가봐야 되는데, 괜찮지?"

"응. 일 열심히 해 언니."

생긋 웃어주는 그 얼굴에 힘을 얻은 카카는

씩씩하게 자신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카 씨. 이것 좀 관리부 지바 대리님한테 가져다주고 올래?"

"네. 갔다가 한 대 태우고 올게요."

"그래. 오늘 급한 일 없으니까 좀 뭉개다 와도 돼."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온 카카는 상아가 건네준 서류뭉치를 들고서 한 층 위에 있는 관리부로 향했다.

"어머, 이따 내가 가지려 가려했는데. 고마워요."

지바 대리는 약간 처진 눈매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약간은 매서운 자신의 눈매가 신경 쓰인 카카는 지바가 준 사탕을 하나 받아들고서 도망치듯이 옥상으로 향했다.

점심시간 후 한 대씩 할 시간도 지나서인지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구석에 앉아 혼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어 입에 문 담배를 집어넣고서 다기가보니

아침에 보았던 그 아이였다.

"여기서 뭐 해?"

"아. 아침에 만났던 언니다. 나 지금 밥 먹고있어."

"맛있어?"

"응. 언니도 좀 먹을래?"

이미 점심을 먹어 배부른 카카였지만

정성스럽게 구워진 문어모양 소시지의 유혹을 참기는 힘들었다.

"나 먹어도 되는 거야?"

"응. 난 많이 먹어서 배불러."

"그럼 하나만 먹을게."

"어때, 맛있어?"

카카는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보였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아이는 까르르 웃고서 도시락의 뚜껑을 덮었다.

이 아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한 카카였지만

구태여 그걸 물어보지는 않았다.

"참. 이거 먹을래? 난 사탕 잘 안 먹어서."

"나 주는 거야?"

"그래. 많이 먹고 많이 커야지."

"근데 난 이제 클 나이 아닌데?"

약간 새초롬한 표정으로 항의하듯이 말하는 그 표정이 귀여워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니

아이는 표정을 풀고선 도시락을 가지고 문으로 향했다.

"언니. 또 보자."

"그래. 계단 조심해서 내려가고."

아이가 사라진 후에서야 카카는 편한 마음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선배. 다녀왔어요."

"잘 뭉개다 왔어?"

"네. 이 앞에서 아이스크림까지 하나 사먹고 왔어요."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니

안쪽 방에서 주피터가 어떤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누구랑 얘기하고 계시는 거예요?"

"아우로라 이사님이라고 계셔. 주 부장님 입사하시기 전부터 일하셨다더라."

"역시 이사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니나보네요."

그 때, 끼익하며 안쪽 방의 문이 열렸다.

"그럼, 다음 회의 때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걱정하지 마."

카카는 혹여 실례가 될까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슬쩍 보니 상아도 아까 다 처리한 서류를 들여다 보고있었다.

그 이사라는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서 후 하고 한숨을 뱉으려는 찰나,

갑자기 그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언니! 오렌지 주스랑 사탕 준 그 언니 맞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본 그 아이가 자신의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이사님?"

"주피터! 아까 내가 얘기한 언니가 이 언니야."

"...언니?"

카카의 책상을 한 번 살핀 아우로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이번에 경리 뽑았다더니 이 언니였구나. 안녕? 난 아우로라야. 언니 이름은 뭐야?"

"어...네? 아 내 이름... 아니, 제 이름은 카카라고 합니다."

횡설수설하는 카카를 귀엽게 쳐다본 아우로라는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하나 꺼내 카카에게 주었다.

"이거 한 번 쓰긴 했는데, 거의 새 거야. 언니 찾으면 주려고 아까 챙겨뒀어."

"감...사합니다."

"오늘 나한테 보여준 호의에 대한 답례야. 주피터! 그럼 나 이제 진짜 가볼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네 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바라보기만 했다.
"선배... 저 얼어죽으면 저, 저희 집에 묻어주세요..."

"카, 카카 씨 집을, 엣취! 내,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이력서에 썼잖아요."

"그, 그랬나?"

"헛소리들 그만하고 일이나 해."

"이, 이 상태로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항의하는 상아를 째려본 메티스는 의자를 뒤로 재끼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로.. 꺄아아악!"

"메티스 대리님은... 집 아니까 지, 집에 묻어드릴게요."

옷을 잔뜩 껴입어서 넘어진채 바둥바둥거리는 메티스를 구하러 오는 충직한 부하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 년들아!"

"애, 애초에... 이런 상태에서 일을 하라는게, 엣취! 이, 이상한 거라구요."

"누구는 몰라서 이래? 까라면 까야될 거 아냐!"

한겨울날 뻥 뚫려있는 창을 바라보며 카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취! 창문집이 다 쉬는 거예요?"

"나도 몰라. 신입! 빨리 와서 나 좀 일으켜줘!"

오들오들 떨고있는 카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어난 메티스는 옷을 한 겹 벗어버렸다.

"...춥긴 춥네."

"그, 그렇다니까요. 엣취!"

"이러다 너희 감기 걸려서 못 나오는 거 아냐?"

"진짜 그럴 것 같아요..."

"주 부장님은 또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고. 저희 그냥 어디 짱박혀 있으면 안 돼요?"

"그러면 퍽도 되겠다. 내가 이따 따뜻한 거라도 사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카카는 눈물까지 글썽였지만

그 불쌍한 모습에도 상아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화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카 언니, 나 왔어!"

"어, 어서 오세요."

지난 번 일 이후로 아우로라는 틈틈이 카카를 보러 사무실에 들리고는 했다.

덕분에 구미호에게마저

'왜 그랬어...'

하는 말을 들은 카카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왜 그렇게 떨고있어?"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카카는 말 없이 창가를 가리켰다.

"어쩌다가 저런 거야?"

"아침에 어린 애들이 공놀이 하다가 깼다나봐요. 그런데 하필 오늘 창문하는 집이 다 쉬어서..."

"아, 그 방이 여기구나."

메티스의 설명을 들은 아우로라는 춥지도 않은지 빈 의자에 앉아 카카의 옆으로 다가왔다.

"일은 잘 돼?"

"네... 추워도 일은,, 취! 해야 하니까요."

약간 원망 섞인 그 말에 메티스는 헛기침을 하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사님은 아, 안 추우세요?"

"나? 난 괜찮은데?"

"그러다가, 취! 감기 걸리세요. 제 옷이라도 입고 계세요."

얇은 정장차림의 아우로라에게 자신의 파카를 입혀준 카카는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많이 춥나보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야?"

"그야, 아직 , 취! 근무 중이니까요."

코를 훌쩍이는 카카를 아우로라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오늘 이 사무실 추울테니까 오전근무하고 퇴근하라고 했는데?"

"네? 저는 그런 말 못 들었는데요?"

"이상하다. 분명 주 부장한테 말해뒀는데."

"...지금 몇 시죠?"

"정확히 3시 12분이요."

당장이라도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의 메티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분노를 조절했다.

"저, 그럼 퇴근해도 되는 거예요?"

"응. 방이 이런데 일을 어떻게 하겠어."

카카가 입혀준 파카를 돌려준 아우로라는 휴대폰을 꺼내며 문을 열었다.

"추웠을텐데 고생들 많았어. 다음주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메티스 대리님...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나, 나도 몰라!"

"어쨌든 퇴근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주 부장님이 그런 실수 하실 분이 아닌데..."

"그러게. 오늘은 그냥 이럴 운명이었나봐."

"선배! 같이 가요!"

사무실 문을 잠그고 뒤따라오는 카카를 바라본 상아는 메티스에게 물었다.

"그럼 오늘 뭐 먹으러 가요?"

"먹긴 뭘 먹어. 일찍 퇴근했으니까 집에나 가."

그 말에 뛰어오자마자 침울해진 카카의 모습에 메티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신입 먹고 싶은 걸로. 괜찮지?"



"카카씨, 오랜만이네?"

외투를 의자에 걸치며 말하는 상아에게 카카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오랜만은요. 어제도 봤잖아요."

"응? 그랬나? 이상하게 엄청 오랜만에 본 것 같네."

책상 위의 서류를 대강 정리하던 상아는 글자가 잔뜩 적힌 종이를 읽더니 카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카 씨. 카카 씨는 꿈 같은 거 있어?"

"꿈이요?"

갑작스런 질문에 카카는 눈동자를 돌리며 생각하다가 힘없이 대답했다.

"없...어요. 그냥 사는 데만도 바빠서..."

"하긴. 나도 꿈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야. 그래도 희망사항 정도는 있어."

"그게 뭔데요?"

"귀여운 후배랑 회사일 하는 거."

떨떠름해진 카카의 얼굴을 본 상아는 피식 웃으며 보고있던 종이를 건냈다.

"반쯤은 농담인데, 반은 진심이야. 잘 생각해봐 카카 씨."

건내받은 종이의 위에는 데스티니오피스 신규사원 채용 공고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걸 본 카카는 상아를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서류에 집중하고 있었다.

"......"




"그래서, 신입한테 채용공고를 보여줬다고?"

담배냄새를 싫어하는 메티스가 굳이 옥상으로 올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업무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돌파했을 때.

두 번째 경우는 후배가 진지한 상담을 요청할 때.

"네. 원래 보여줄 생각은 없었는데, 카카 씨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담배연기를 내뿜는 상아의 얼굴은 메티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혼란한 얼굴이었다.

"정이 많이 들었나봐?"

"...정이라는 단어. 저랑은 안 어울리는 말이네요."

"그래?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하여튼... 옆에서 보고 있으면 위태위태해 보여서 챙겨주고 싶은 아이에요."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는 몰랐는데?"

수심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비벼끄는 상아를 보던 메티스는 상아의 등을 쳐주며 말했다.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야. 너는 계기를 줬으니 이제 결과는 기다려봐야지."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이 오늘따라 더 쓸쓸하다.

들어오자마자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물어 불을 붙인다.

니코틴이 폐를 훑고 가니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 맑아진다.

'카카 씨는 꿈 같은 거 있어?'

팔자 좋은 이야기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꿈은 무슨...

"......"

하지만 선배의 말대로 나한테도 희망사항 정도는 있다.

여유있는 상아 선배를, 일에 치이는 메티스 대리님을 보면서 그들과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자신에게는 과분한 희망사항이지만.

따끔한 손의 감각에 담배를 떨어트린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카카는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상아와 따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상아도 그녀에게 따로 묻지도 않았고, 궁금해하는 티도 내지 않았다.

다만 카카의 눈이 날이 갈수록 퀭해지는 것에서 그녀에게 무언가 변화가 있음을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상아 너도 알잖아. 우리 회사가 큰 회사는 아니어도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니라는 거."

"그랬죠. 한 달이라는 시간으로는..."

"힘들겠지."

"......"

"나도 신입이 기적적으로 합격이 되면 좋겠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둬. 네가 너무 기대하는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이야."

"기대하면, 안 되나요?"

"안 돼. 괜히 마음 흐트러져서 업무에 지장주지 마."

메티스를 째려보던 상아는 이를 빠드득 갈며 외투를 입고선 나가버렸다.

'저런 표정, 오랜만에 보네...'

"빨리 들어와라. 퇴근해야 되니까."




퇴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 카카는 상아와 함께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있었다.

외투를 입고 있어도 유독 추운 날씨에 볼이 빨개진 카카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선배."

"응, 카카 씨."

"저번에 보여주신 그 신입사원 채용 있잖아요. 저 그거 지원했어요."

"그거 이미 결과 발표 되지 않았나?"

"네. 이미 아시겠지만 그... 서류에서 불합격됐어요."

카카는 머쓱하게 웃고 있었지만 분명히 그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겠지.

상아 역시 아쉬웠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위로의 말을 건냈다.

"기회는 앞으로도 더 많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 다음에 지원하면 분명..."

"저, 그... 이건 다른 얘긴데요. 저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했어요."

카카의 말에 상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우리 회사 경리직, 조건이 나쁜 것도 아니잖아."

"친구네 회사에 자리가 났다고 해서요. 여기의 경리직도 좋지만 좀 더 안정적인 직장에 가려고요."

상아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 그 회사는 언제 가는 거야?"

"당장 오라고 해서 이 쪽 경리는 오늘 그만두고 그 회사엔 모레부터 나가기로 했어요."

카카의 말에 상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게 된다고? 인사부에 말은 한 거야?"

"아우로라 이사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잘 처리해준다고 하셨어요."

"...잘 됐네. 오늘 저녁엔 회식이라도 할까?"

"급하게 나가는 거라 저도 준비를 해야 해서요. 메티스 대리님도 따로 자리를 만든다고 하진 않으셨어요."

"대리님한테도 이미 말했구나."

"네. 선배한테 제일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는거예요."

"뭐,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까?"

상아의 건조한 말에 카카는 억지로 웃으려 했지만 추위 탓인지 웃음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감사한 사람한테 이따위로밖에 못 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듣기 싫은데."

"......"

"내려가서 하던 업무나 마무리해. 나는 더 있다가 들어갈테니까."

몇 번이나 카카가 뒤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아는 애써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봤자 서운함만 더 커질테고, 아쉬움만 더 커질 뿐이니까.





"상아, 좋은 아침."

"과장님..."

"이렇게 기운 없는 상아는 처음 보는데?"

구미호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도 좋진 않았다.

"메티스, 우리 저녁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까?"

"네. 과장님이 사주시는거죠?"

지난 밤 야근으로 다크써클이 눈 밑까지 내려온 메티스는 건조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참, 카카 씨는 잘 갔대?"

"저야 모르죠. 나중에 이사님한테라도 물어볼까봐요. 저도 부장님한테 들었는데 신.. 아니 카카, 이사님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나봐요."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 그러실 분이 아닌데."

"지금 없는 사람 얘기는 해서 뭐 해요."

상아의 낮은 목소리에 사무실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래... 이제는 없는 사람이지."

카카와 가장 친했던 상아인만큼 서운함도 크다는 걸 아는 메티스는 별 말 없이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아무리 마음이 허전해도 몸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회사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