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메티스. 안녕?"

"안녕하세요."

"학교 갔다 오는 길이니?"

"네."

"참, 저번에 형광등 갈아주신 거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아버님한테 좀 전해드릴래?"

"...알겠어요."

메티스는 옆집에 이사 온 여자가 신경쓰였다.

소파 밑에서 발견한 그 잡지가 신경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봐도 예쁜 얼굴과 고혹적인 표정,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신경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뒤에 어머니, 아버지를 붙이며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그 사근사근한 말투가 신경쓰이는 것 역시 아니었다.

메티스가 신경쓰이는 건,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아빠를 좋아한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자신이 괜한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지바처럼 예쁘고 능력있는 여자가 왜 자신의 아빠같이 나이많고 꽉 막힌 남자를 좋아한단 말인가?

그래서 처음 떡을 가지고 왔을 때 보았던 그 표정도

실수로 옆집에 잘못 들어간 아빠에게서 풍겨오던 그 향수냄새도

별 생각없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시로 자신의 집에 들리며 지바가 아빠에게 보여주는 미소와 말들은 아무리 보아도 사랑에 빠진 여자의 그것이었다.

애초에 젊고 예쁜 여자가 옆집에 들락거리는 것 이 흔히 있는 일인가하는 생각에 빠진 메티스는 부엌에서 마늘을 빻고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지바가 올 때마다 버선발로 나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아주었다.

혼자 살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서인지, 아니면 지바가 대화가 잘 통하고 예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빠 역시도 지바가 올 때면 헛기침을 하며 안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메티스는

'그 사람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지 마!'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자신 역시 지바를 매몰차게 대하지는 못했다.

만날 때마다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하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소파에 앉아 생각에 빠져있으려니 부엌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티스, 너 오늘 학원 안 가니?"

"오늘 학원 쉬는 날이라고 했잖아."

"아참, 그랬지? 그럼 이따 쓰레기 좀 버리고 와."

"밖에 추운데..."

"그럼 엄마가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까지 버릴까?"

"아, 안 한다곤 안 했어."

평소 같으면 소리라도 빽 질렀을테지만 옆집 여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지도 모르는 엄마가 안쓰러워 메티스는 고분고분하게 엄마의 말을 들었다.

한창 도전 데빌가요에 나오던 세이빈을 넋 놓고 바라보던 메티스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티스, 저녁 먹어."

"응, 이것만 보고 갈게."

아빠가 봤으면 엄마가 밥 차렸는데 뭐 하는거냐면서 소리를 쳤겠지만

아빠는 야근 때문에 늦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세이빈의 멋진 기타연주를 다 본 메티스는 만족한 얼굴로 의자를 빼 식탁 앞에 앉았다.

"그 세이빈이라는 애가 그렇게 좋아?"

"세이빈이 얼마나 멋진데. 내 친구들도 다 세이빈 좋아해."

"그래서 학원도 빠지고 콘서트 다녀왔니?"

후후 웃으며 자신의 밥 위에 고기반찬을 올려주는 엄마를 본 메티스는 괜스레 투정을 부렸다.

"그, 그 얘기는 갑자기 또 왜 하고 그래!"

"우리 딸이 어떻게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서."

"그래서 그 뒤로 안 그랬잖아..."

"엄마도 알고있어. 참, 국은 어때? 맛있지?"

"응. 시원해. 근데 있잖아 엄마."

"응?"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는 엄마의 얼굴에 메티스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옆집 지바 아줌마.. 좀 이상하지 않아?"

"지바 씨? 왜?"

"아니 별 건 아니고... 요즘 보통 이웃끼리 그렇게 친하게 안 지내잖아. 근데 자꾸 우리 집 오고 그러는게 좀 이상해서..."

"지바 씨는 혼자 사는 게 외로워서 그러시는 거야. 너 혹시라도 지바 씨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내가 바보야? 그런 말 안 해."

차마 '우리 아빠한테 관심있는 것 같아'라는 말은 하지 못 한 메티스는 밥그릇에 있던 밥을 모두 국그릇에 퍼 말았다.




"엄마, 나 쓰레기 버리고 올게."

"안에 캔도 들었으니까 잘 버리고 와. 참, 아빠도 곧 온다고 하셨으니까 만날 수도 있겠네?"

"만나도 모른 척 할 거야."

"또 그런다. 아빠 보면 같이 손 잡고 들어와."

속으로 메롱하고 대답한 메티스는 양손에 쓰레기를 잔뜩 들고서 엘레베이터를 탔다.

자신의 동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재활용 터에는 이미 쓰레기가 많이 쌓여있었다.

비닐을 먼저 버리고 플라스틱,캔, 종이 순으로 재활용을 마친 메티스는 혹시 아빠가 올까싶어 아파트의 입구를 살폈다.

엄마한테는 아빠랑 같이 오기 싫다고 말했지만 다음 세이빈 콘서트를 위한 용돈이 필요했던 메티스는 이런 곳에서 점수를 따놓아야 생각해서였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그 곳엔 피곤한 얼굴로 걸어오는 아빠가 보였다.

"아..."

빠, 하고 부르려던 메티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빠의 옆에는, 다졍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지바가 있었다.


"여보, 어서와요."

"응. 오늘 야근은 그리 오래 하지 않아서 일찍 왔어. 메티스는?"

남편의 질문에 에르제베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쓰레기 버리고 오더니 문 쾅 닫고 들어가는 거 있죠? 왜인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해요."

"뭐? 메티스! 당장 안..."

"당신 그랬다가 또 메티스랑 한달동안 얘기 안 하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잘 말해볼테니까 당신은 씻고 나와요."

남편이 씩씩대며 욕실로 들어간 걸 본 에르제베트는 조심스럽게 딸의 방문에 노크했다.

"딸, 자?"

'아니.'

"엄마가 쓰레기 버리라고 해서 기분 나빴어?"

'그게 왜 기분 나빠... 그런 거 아니야. 금방 나갈테니까 밖에서 기다려줘.'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응.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한다고 걱정이 사라질 리 없지만 에르제베트는 하는 수 없이 소파로 가 앉았다.

"메티스는 나왔어?"

"아직 방에 있어요. 그리고 당신 메티스한테 뭐라 그러지 마요. 애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봐."

"무슨 일?"

"모르겠어요. 학원 쉬는 날이라 집에서 잘 놀다가 밥도 잘 먹었는데 쓰레기 버리고 오니까 갑자기 기분이 상해있었어요."

"쓰레기? ...언제 버리러 나갔는데?"

"당신 들어오기 전에요. 당신 만나면 같이 들어오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나?"

턱을 괴고 걱정스레 고민하는 아내를 본 주피터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더듬었다.

"괘, 괜히 애한테 그러지 마. 아, 아빠랑 다니기 싫은 시절도 있는 거지."

평소라면 남편이 말을 더듬는 걸 바로 알아챘을 에르제베트지만 딸에 대한 걱정이 귀를 멀게 해 그저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메티스, 아빠 출근하시는데 나와야지."

잠옷차림의 메티스는 뚱한 얼굴로 나와 아빠를 바라보았다.

"애, 애 잠도 부족할텐데 왜 그래? 메티스, 들어가서 더 자."

"그래도 얼굴은 보고 나가야죠. 메티스, 인사해야지."

"...다녀오세요."

무뚝뚝하게 대답한 메티스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딸을 본 에르제베트는 한숨을 내쉬며 남편의 옷깃을 펴주었다.

"메티스가 요새 사춘기라 저러나봐요. 당신이 이해해줘요."

"그래야지. 그럼 다녀올게."

황급히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에서 손인사를 하던 에르제베트는 어딘가 허전한 기분을 느꼈지만 개의치않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래서 있지. 문학쌤이랑 수학쌤이랑 같이 있는 거 봤다니까?"

"정말?"

친구들이 한창 대화꽃을 피우는 와중에도 메티스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책상에 엎드려만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말하려 했지만 자신의 아빠를 안 좋게 생각할까봐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이었다.

"메티스. 메티스!"

"다 들리니까 큰소리 치지마."

"아까부터 왜 이렇게 엎드려있어?"

"...다비,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애랑 팔짱 끼고있는거 보면 어떨 것 같애?"

메티스의 질문을 흥미롭게 들은 다비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X 같겠지."

"그치...?"

"응. 오해고 뭐고 할 것 없이 바로 명치를 쑤셔줄거야."

주먹으로 정권을 지르는 흉내를 한 다비를 보며 웃은 메티스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아빠와 함께 팔짱을 끼고 돌아오던 지바가 자꾸 생각나고

자신이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는 아빠가 떠오른 메티스는 다시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그렇게 아빠와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한 채로 주말은 다가왔다.

그런 상태로 이틀동안이나 같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니 메티스의 마음은 영 불편했다.

"엄마, 나 숙제하고 나올게."

"그래, 이따 장보러 갈 건데 같이 갈 거니?"

"으응. 나 집에서 좀 쉴게."

"네 아빠랑 둘이서만 가면 재미 없는데."

빙그레 웃으며 말한 엄마를 본 메티스는 복잡한 심정으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시조 짓기... 이런 숙제는 대체 왜 내는 거야?"

형식에 맞춰서 대충 쓰려 했지만 잘 해야한다는 생각에 한참을 낑낑대던 메티스는 문학숙제를 마무리하고 침대 위에 벌라덩 드러누웠다.

이제 수학 숙제랑 지리 숙제만 하면 주말 숙제는 끝이네.

하고 생각하던 메티스는 초인종 소리에 온 몸을 긴장시켰다.

주말, 이 시간에 초인종을 누를 사람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택배 아저씨나 지바. 그리고 택배를 시키는 건 보통 자신뿐인데 최근 주문을 한 적은 없으니 분명 지바가 초인종을 누른 게 분명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메티스는 문을 열고 나가지는 못 하고방문에 귀를 바짝 붙였다.

하지만웅웅대는 소리만 들려올 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지바와 엄마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다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와 아빠의 말소리만이 들려왔다.

마음속으로 백을 센 메티스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거실로 나갔다.

어쩐지 초조해보이는 아빠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메티스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다녀갔어?"

"응. 오후에 공항에 가야하는데 택시업체가 파업중이라서 네 아빠한테 부탁하러 왔다더라."

"그래서?"

"그래서? 이따 네 아빠가 데려다주기로 했지."

"아, 아빠가 왜? 장보러 가는 거 아니었어?"

"그래도 이웃이 급한데 돕고 살아야지. 장이야 내일 봐도 되는 거고."

아무것도 모르고 한가하게 말하는 엄마가 답답했던 메티스는 아빠를 째려보았지만 아빠는 말없이 자신의 시선을 회피했다.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지만 메티스는 꾹 참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너 숙제해야 한다면서."

"거의 다 했어. 지바 아줌마 짐도 들어주고 드라이브도 하고 올래. 가서 맛있는 거 있으면 맛있는 것도 먹고."

"얘는. 얼마 전엔 지바 씨 싫다면서? 그래 그럼. 당신, 괜찮죠?"

"어? 어. 괜찮지."

"메티스 맛있는 것도 좀 사주고 와요."

"알았어."

"그럼 언제 나가?"

"2시에 나가기로 했어. 점심은 안 먹고 나가도 되지?"

"응."
"응."



어색하게 아빠와 함께 나오니 지바는 이미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서 나와있었다.

"감사해요 주피터 아버님. 주말에 귀찮으실텐데."

"아닙니다. 짐은 저한테 주시죠."

"아줌마 짐을 왜 아빠가 들어? ...내가 들게."

커다란 캐리어를 뺏어든 메티스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화장을 한 지바의 모습을 엄마와 비교해보던 메티스는 흥 하며 콧김을 내뱉었다.

'우리 엄마가 훨씬 예뻐.'

"메티스, 안녕? 너도 가는 거니?"

"...네."

"애가 나가고 싶다고 떼를 써서요."

"후훗, 괜찮아요. 저도 메티스랑 친해지고 싶었는걸요."

넉살좋게 말하며 자신의 팔짱을 낀 지바의 가슴을 보던 메티스는 아빠를 인정사정없이 째려보았다.

'가슴도 우리 엄마가 더 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비행기 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했네요."

"죄송해요. 차가 이렇게 하나도 안 막힐 줄은... 참, 공항 앞에 맛있는 화덕피자집이 있는데 제가 대접해드릴게요."

'흥, 내가 없었으면 두 명이서 오붓하게 먹었겠지.

"아닙니다. 이웃끼리 도운 건데 대접은요."

"도움을 받았으면 성의를 보여드려야죠."

지바의 말에 너털웃음을 지은 주피터는 둘을 내려주고 주차장에 차를 대러 갔다.

"메티스, 화덕피자 먹어본 적 있니?"

"아니요."

"맛있단다. 네 나이대 애들이면 다들 좋아할거야."

"네."

단답형 대답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메티스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메티스의 마음 안에서 지바는 나쁜 사람이었으니까.

마침 주차를 마친 주피터가 돌아오자 그제서야 지바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걸 본 메티스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고르곤졸라 피자랑 토마토파스타, 치즈오븐 스파게티 주세요. 콜라도 세 잔 주시고요."

"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자신을 째려보는 메티스와 눈이 마주친 지바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입을 삐쭉이며 시선을 돌리자 지바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언제쯤 피자가 나오나 기다리고 있을 때, 휴대폰 전화벨이 울려왔다.

"여보세요? 응 모아 경리. 그거? 옆 부서의 xx대리 지금 없어?"

주피터는 지바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선 가게의 문을 열고 나갔다.

단 둘이 남게 되자 메티스는 이 때야말로 기회라 생각해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아줌마, 우리 아빠 좋아해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시치미 떼지 마요. 아줌마 우리 집에만 오면 아빠 보면서 웃고, 저번에도 아빠가 술 취해서 집 잘못 찾았을 때 아줌마 향수가 났고 얼마 전에도 우리 아빠랑 팔짱 끼고 들어왔잖아요."

속사포처럼 내뱉는 메티스의 말을 들어주던 지바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그렇게 보였니?"

그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걸 느낀 메티스는 뜨끔하며 대답했다.

"네. 나는 아줌마가 이혼한 것도, 혼자 사는것도 아무것도 신경 안 써요. 근데 우리 아빠한텐 엄마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빠랑 잘 해볼 생각하지 마요."

서빙되어온 콜라잔을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지바는 하아 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구나. 하지만 메티스, 내 말 한 번만 들어줄래?"

메티스는 다비의 말이 생각났지만 지바의 슬퍼 보이는 표정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내가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한 건 사과할게. 하지만 나는 너희 아빠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란다. 친절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그러면 왜 그랬는데요?"

"우선 너희 아버지에게서 내 향수 냄새가 났던 건... 토를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야."

".........네?"

"너희 어머니가 너무 미안해하실까봐 말을 못 했어. 그리고 팔짱을 끼고 들어온 건 전 남편이 자꾸 내 주위를 서성거리는 게 무서워서 그랬던 거야. 못 믿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게 다란다."

이럴 때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메티스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럼.. 왜 우리집에 올때마다 아빠 보면서 웃었어요?"

그 질문에 지바는 볼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조금 부끄러운데, 나는 메티스 네 말대로 이혼한 여자잖니. 그래서... 단란해 보이는 너희 가족이 너무나 눈부셔 보였단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 뿐 아니라 어머니, 그리고 너를 볼때마다 항상 웃었던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지바는 자신을 보면 항상 미소를 지어주었다.

가끔 평일날 엄마를 보러 왔을 때도 그랬고.

아직 완전히 지바를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오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메티스는 침울한 모습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괜히 제가 착각해서..."

"아니, 내가 오해할만한 일을 한 게 잘못이지. 죄송해하지 마렴. 아, 스파게티는 여기 놔주세요."

마침 음식이 나왔고 지바는 식기를 차례차례 각자의 자리에 놓아주었다.

"메티스, 나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했을텐데 이거 먹고 마음 좀 풀어."

"...네."

대답과 다르게 깨작깨작 먹는 메티스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지바는 그녀의 옆자리로 가 스파게티를 둘둘 말아주었다.

"아, 해볼래?"

지바의 눈치를 한 번 본 메티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때, 맛있지?"

"...네."

그 대답에 만족했는지 지바는 미소지으며 자신의 접시에 피자를 한 조각 덜어 썰었다.

"그리고 아까 말 심하게 해서 죄송해요."

"응? 아..."

'이혼 얘기를 꺼낸 게 신경쓰였나?'

잠시 생각하던 지바는 짐짓 화낸 체를 하며 말했다.

"맞어, 나 화났어."

지바의 말에 메티스는 움찔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제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고 지바 언니라고 불러줄래? 예전부터 신경쓰였거든."

먹기 좋게 썬 피자를 내미는 지바를 본 메티스는

"응, 언니..."

하며 조심스레 그 피자를 받아먹었다.





"언니, 잘 다녀와!!!"

"응, 메티스도 엄마아빠 말 잘듣고있어!"

배웅을 마치고 돌아선 메티스의 얼굴은 밝아보였다.

"그런데 둘이 원래 그렇게 친했나?"

"아까 얘기하면서 친해졌어. ...그리고 아빠. 집에 가면 언니랑 팔짱 끼고 온 거 엄마한테 다 일러줄거야."

"그, 그걸 어떻게!"

"용돈 줘도 안 돼. 아빠는 엄마한테 혼 좀 나야 돼."

울상을 한 주피터는 아내에게 바칠 뇌물을 조수석에 태우고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지바 씨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메티스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응... 그래서 사과했어."

"으이구, 우리 철없는 딸. 그걸 말이라고 하니? 지바 씨는 그럴 사람 아니야."

꿀밤을 맞은 메티스는 히잉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잘 끝나서 다행이지, 지바 씨가 정말 기분 나빠하면 어쩔려고 그랬어?"

"알겠다니까. ...그런데 엄마. 하나 물어봐도 돼?"

호기심 가득한 딸의 눈빛에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에르제베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물어보렴."

"지바 언니가 진짜 아빠 좋아하면 어떡할거야?"

"글쎄? 그다지 신경 안 쓰일 것 같은데?"

"왜?"

그 질문에 혹이 나지 않았는가 확인하려 거울 앞에서 낑낑대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에르제베트는 말 없이 방문을 열었다.

"왜냐니까?"

끈질긴 딸의 질문에 에르제베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야, 네 아빠는 세상에서 네 엄마를 제일 좋아하거든."

사춘기 메티스가 재밌어서 또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