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이 따위로 써 올릴거면 올리지 마!!"

"죄, 죄송하다는 것이다!"

주피터가 내던진 보고서를 주섬주섬 주워들은 구미호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씨잉...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인데 왜 저렇게 화를.. 헉."

보고서의 위에 침자국이 가득한 걸 발견한 구미호는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실수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구미호 대리님. 점심 먹으러 나갈 건데 같이 안 가실래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는 얼굴로 묻는 메티스를 보고 손사래를 친 구미호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는 해 와야지. 수고했네."

한 시간 가량의 수정을 거치고나서야 주 부장의 오케이 사인을 받은 구미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복도에 있는 자판기의 앞에 서 동전지갑을 꺼냈다.

500원짜리 동전을 두 개 넣고 빨간 등이 점멸하는 버튼들을 보며 무얼 먹지 고민하던 중, 아 하고 입을 벌린 그녀는 초점없이 흐릿한 눈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배가... 고파졌다는 것이다."


곧장 서랍을 열고 메모장을 연 구미호는 방문해볼 음식점 목록을 확인하고선 갈 곳을 정했다.

한 손에는 지갑을 들고 회사건물을 나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벼웠다.

그렇게 그녀가 도착한 곳은 회사 옆 사거리에 있는 2층 건물의 만두가게였다.

업무 때문에 점심시간이 늦어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은 가게로 들어가 구석 자리에 있는 테이블에 가 앉은 그녀는 아주머니가 가져다주는 물을 받아 양은컵에 콸콸 부어 그대로 전부 마시고선 메뉴판을 펼쳐보았다.

"고기만두, 김치만두, 튀김만두, 만두전골... 전골은 더워서 싫고, 메뉴는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이다. ...? 잠깐만. 튀김만두는 야채무침이 같이 나온다고?"

야채무침이 뭘까 하고 고민하던 구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 메뉴판에 야채무침이 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구미호의 살랑거리는 꼬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주머니는 다른 손님이 먹고 있는 걸 가리키며 말했다.

"별 건 아니고. 상추에 양배추 잘게 썬 거에 양념 무친 거야. 우리 집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건데 처음 오는 거면 꼭 먹어보라고."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반달모양의 만두를 반으로 잘라 속 안에 빨간 양념이 버무러진 양배추와 상추를 넣는 걸 본 구미호는 입에 군침이 가득 도는 것을 느끼며 주문을 했다.

"저, 저거. 아니, 튀김만두 1인분이랑 고기만두 1인분 달라는 것이다."

"우리 집 양이 제법 되는데 다 먹을 수 있겠어?"

"걱정 말라는 것이다.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양 손에 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만두가 나오길 기다리던 구미호는 아주머니가 큰 쟁반을 가지고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온다.. 온다..! 왔다는 것이다!'

"고기만두 먼저 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감사하다는 것이다. 잘 먹겠다는 것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구미호의 앞에 서빙된 접시 위에는 가지런히 줄과 열을 맞춰 놓인 반달모양 만두가 두 줄로 네 개씩, 총 여덟개가 놓여져있었다.

그리고 함께 내온 둥근 모양의 큼지막한 단무지, 간장을 젓가락이 닿기 편한 위치로 세팅한 구미호는 만두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제법 큰 냉동만두보다도 두 배나 큰 길이에 만두의 자투리까지 꽉꽉 차있는 초록색을 띈 속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며 앞접시에 만두를 하나 집어온 구미호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반으로 갈라보았다.

부드럽게 찢어지며 김을 뱉어내는 만두의 한 쪽을 집어든 구미호는 간장에 찍어먹기 전 먼저 있는 그대로의 맛을 보기 위해 만두를 후후 불고선 입으로 허겁지겁 가져갔다.

'이건...!'

쫄깃쫄깃하면서도 적당히 씹기 좋게 얇은 만두피가 닿음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고기알갱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꼭꼭 씹던 구미호는 무언가 매운 향이 나는것을 느꼈다.

'그리 맵지는 않지만 신경쓰이는 향이라는 것이다.'

반으로 가른 다른 한 쪽의 만두 안을 살펴보았지만 그 매운 향이 무엇 때문인지 몰랐던 구미호는 튀김만두가 나올 때 무엇인지 물어보자 생각하며 젓가락으로 노란 단무지를 집었다.

'중국집 단무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보통 반으로 잘라져있는 그 단무지와 다르게 완전한 원의 형태를 한 단무지에 도전정신이 생긴 구미호는 주위를 한 번 살피고선 입을 벌려 단무지를 한 번에 집어넣었다.

아삭아삭거리는 식감과 함께 베어나오 새콤달콤한 맛은 만두를 먹으며 약간 매워진 입을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그럼 이번에는 간장을 찍어먹어보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쪽을 들고 간장이 너무 많이 묻지 않게 절단면을 살짝 가져다댄 구미호는 하얀  만두피에 간장색이 묻는 걸 보고서 만두를 떼어냈다.

촉촉한 만두를 한층 더 적셔주는 간장의 비쥬얼을 눈으로 먼저 즐긴 구미호는 곧장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다! 맛있다는 것이다!'

간장 없이 먹는 것도 맛있었지만 매운 향과 별개로 약간 심심했던 맛을 잡아주는 간장의 짠  맛은 말 그대로 금상첨화의 조합이었다.

언제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입에서 사라져버린 만두를 아쉬워할 새도 없이 이번엔 방금 전보다 식은 만두를 손으로 집어든 구미호는 꼬랑지를 간장에 살짝 찍어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나 손으로 집어 먹으나 다를 건 없지만 왠지 더 맛있어진듯한 만두를 게눈 감추듯이 먹은 구미호는 단무지를 하나 먹고 스테인리스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맵고 짜고 시고 단 맛의 축제가 벌어진 입 안을 진정시켜주는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난 구미호는 이번엔 다시 만두를 반으로 갈라 손에 들었다.

'이렇게 먹는것도 빼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두 안에 숟가락으로 간장을 떠 조금씩 스며들게 한 구미호는 입으로 만두를 쏙 넣었다.

'이러고, 또 단무지.'

다시 한 번 펼쳐지는 맛의 축제에 황홀해하던 그녀는 아주머니가 접시를 두 개 들고 오는 걸 보고선  접시를 옆으로 치우고 새로운 맛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갔다.

"튀김만두 나왔어요. 이 야채무침은 아래까지 잘 비벼서 먹어야 맛있어."

"알겠다는 것이다! 참. 만두에 매운 향이 나던데, 그건 뭐냐는 것이다."

"매운 향? 아, 그건리 집 고기만두에 부추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 거야. 맛이 없었나?"

"아니, 너무 맛있다는 것이다!"

씩씩한 구미호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주머니는 씨익 웃어주고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자 그럼... 이번엔 튀김만두라는 것이다.'

고기만두와 비슷하지만 노릇노릇한 만두피가 눈을 어지럽히는 튀김만두는 겉만 봐도 바삭바삭한 것이 그대로 보였다.

그 샛노란 튀김만두의 끝을 살짝 물어뜯은 구미호는 단숨에 느껴지는 고소함과 바삭함에 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며 옆에 있는 야채무침으로 눈을 돌렸다.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커다란 양은 볼 안에 수북하게 담겨있는 양배추와 상추, 그리고 그 위에 넉넉하게 뿌려져있는 양념에서 전해져오는 냄새에 더 이상 참지 못한 구미호는 양 손에 젓가락을 들고 마치 비빔냉면을 비비듯 양념을 무치기 시작했다.

흰 양배추와 초록 상추 위에 빨간 양념이 골고루 묻은 것을 본 구미호는 손등으로 이마에 난 땀을 한 번 닦고선 왼 손으로 튀김만두를 집어들었다.

'우선 이것부터 먹어보자는 것이다.'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겉면을 바라보다가 덥석 베어물자 바삭거리는 식감과 함께 당면과 고기가 섞여있는 속이 흘러나왔다.

'앗뜨뜨!'

막 튀겨서인지 뜨거운 만두를 후아후아 하고 입을 식혀가며 반쪽을 먹은 구미호는 미리 섞어둔 야채무침을 크게 한 젓가락 집어 입으로 넣었다.

'오.. 오오오... 오오오오오!!!!'

매우면서도 달달한 양념의 맛과 함께 입 안에 퍼지는 야채의 향긋함은 고기만두와 단무지와의 조합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양념도 적당히 매운 게 너무 좋다는 것이다!'

기세를 몰아 손에 쥔 걸 마저 욱여넣은 뒤, 그녀는 아까 본 손님이 먹던 모습을 떠올리고선 튀김만두를 반으로 쪼갰다.

'분명히 이렇게...'

젓가락으로 만두 안의 속을 한 쪽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무침을 넣은 구미호는 긴장된 얼굴로 한 입에 만두를 먹었다.

마치 처음부터 만두의 속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조화된 무침을 음미하던 그녀는 문득 튀김만두에서는 매운 향이 안 난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당면이 있다는 것을 빼면 크게 다를 게 없는 만두의 속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구미호는 고기만두를 쪼개 튀김만두와 비교해보았다.

'아! 여기는 야채가 적게 들어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야채무침과 함께 나오다보니 당면을 추가하고 속의 야채를 줄인 것이라 생각하며 구미호는 새로운 생각을 해냈다.

'고기만두랑 무침을 같이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혹여 잘 어울리지 않을까 잠시 걱정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만큼 고기만두와 야채무침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두꺼운 튀김만두의 겉과 달리 얇은 고기만두의 피와 야채를 함께 먹으니 야채의 아삭함이 느껴져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튀김만두랑 단무지는...?'

처음 고기만두를 먹을때처럼 튀김만두를 한 입 먹고 단무지를 먹은 구미호는 기대보다 별로인 그 맛에 귀를 축 늘어뜨렸다.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이다.'

다시 야채무침으로 눈을 돌리던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아까 고기만두를 찍어먹었던 간장이었다.

이름은 튀김만두이지만 마치 군만두와 비슷한 비주얼의 튀김만두를 가만히 바라보던 구미호는 테이블 구석에 얌전히 있던 고춧가루 통을 들더니 간장에 팍팍 뿌려댔다.

그러고서 튀김만두를 고춧가루가 섞인 간장에 찍어먹자, 감탄 섞인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이 맛은... 그래! 서비스로 가져다준 군만두를 간장에 찍어먹는 그 맛이라는 것이다!'

물론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에 비할 맛은 아니었지만 익숙한 맛에 신이 난 구미호는 정신없이 만두들을 집어먹었다.



마지막 튀김만두를 먹고, 볼의 바닥에 있는 무침까지 싹싹 긁어먹은 구미호는 빵빵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매일 이렇게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눈을 몇 번 끔뻑거리다가 휴대폰을 본 구미호는 문자와 전화가 몇 통이나 와있는것을 보고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해달라는 것이다!"

"아가씨. 맛있게 먹었어?"

혼자서 맛있게 먹던 구미호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는지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건넨 아주머니는 영수증과 함께 계산을 마친 카드를 돌려주었다.

"최고였다는 것이다! 추울 때 만두전골도 꼭 먹으러 와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건 만두전골이거든."

"바, 방금 먹은 것보다 더 맛있냐는 것이다."

"단골 손님들은 그렇게들 말하더라고. 그런데 아가씨. 핸드폰 울리는데 안 받아?"

통화표시가 떠있는 휴대폰을 보고 꼬리를 바짝 세운 구미호는 손을 흔들어주며 문을 박차고나갔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것이다!"




애써 화를 꾹꾹 참는 주피터 부장과의 통화를 마친 구미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아가면 또 혼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확 도망쳐버릴까 하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손에 들려있는 아이스크림을 보고선 껍질을 까 먹기 좋게 부드러운 상태인 그것을 냠 하고 베어물었다.

곧 퍼지는 달콤시원한 메론 맛에 기운을 되찾은 구미호는 버스정류장 옆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린 뒤 기지개를 쭉 펴고 꼬리를 한 번 털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선 회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