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익은 과실 모양의 유방, 탄력적인 허벅지와 색정적인 하이레그, 이를 빛내줄 다리의 문양과 죄악감을 부각시키는 베일,

본 모습으로 드러낸 슈트와 채찍은 또 얼마나 도발적인지!


아크라시아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실로 아름다움을 느꼈다.

비록 스토리에선 되도 않는 흉내내기에 패배했다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몸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난 분명 사랑받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레이드가 끝난 뒤에도 그녀는 분명 다른 마왕후보생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에 어떤 의심도 없었다.


"레이드가 끝났습니다. 듀엣샤 님과 아크라시아 님은 밤세계 행 버스를 타주시기 바랍니다."


곧 있을 점검에 맞춰 듀엣샤와 같은 버스를 타며 밤세계로 떠날 예정이었다.


'불쌍한 것, 내가 떠나면 너 또한 잊혀지겠지.'


아크라시아는 듀엣샤를 동정했다. 물론 호의가 아닌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밤세계 행 버스가 출발하며 이윽고 밤세계 가까운 곳에서 멈추고 듀엣샤가 내렸다.


<아무나 환영해! 암속시티>


듀엣샤는 살짝 웃으며 도시 입구로 걸어들어갔다. 자신의 운명을 대충 받아들였음을 아크라시아는 느꼈다.


'그럼 나도 슬슬 내릴 준비를...'


그러나 밤세계 행 버스는 듀엣샤를 내리기 무섭게 데빌 럼블, 엔들리스 듀얼을 지나 땅끝마을을 향해 달렸다.


"아저씨? 저 저기서 내려야 하는데..."

"아가씨가? 아가씨 광속이잖여!"


광속이 문제라도 되는 것일까? 버스의 속도는 좀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리나케 달려서 도착한 곳의 간판을 보았다. 잘 다듬어져 있지만 벽의 낙서와 기물의 연식이 이 곳의 수준을 짐작케 했다


<환영합니다! 싱글벙글 광속촌>

'샤를은 6타 딜러다!!!'

'집나간 비너스를 찾습니다. 완충과 민첩증가, 공증과 회피율증가, 가속을 달고 도시로 가버렸습니다'

'일하기 싫다 -넵튠-'

└'복에 겨운 *새끼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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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엔 세명의 차일드가 앉아있었다.

레이드 출신 광속을 처음 맞이해보는 걸로 신난 쿠시와 보레아스.

저번부터 입구 지킴이를 한사코 거부하다 짬에 밀려 마지못해 나온 필연의 바리였다.


"치타씨 치타씨! 레이드 출신 광속은 처음 맞이해봐요!"

"그러니까 말이야, 회중시계 좋아하려나? 내 꺼 좀 챙겨왔는데?"

"두 분 다 진정하시죠, 구속형이라고 했으니 회중시계는 보레아스양이 쥐고 계셔주세요."


타이르는 어조와 달리 바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짐승새끼들 아니랄까봐 같이 있기만 해도 정신 사나워 죽겠네.'


이럴 때 만큼은 환생관을 지키고 있던 자신의 분신과 같은 바리의 도량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놈들을 숱하게 보고도 어떻게 그리 초연할 수 있을까?


버스에선 하늘하늘한 옷감에 꽉 끼는 하이레그를 입은 여자가 어벙벙한 얼굴로 내렸다.


자신의 처지를 아직 이해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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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버스 안에서 실랑이가 이어졌다.


"여기까지 오시다니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채널 이블에선 절 안 찾던가요?"

"이블이고 데블이고 일단 광속이면 여기부터 찍고 올라오는 거여, 헛소리 말고 후딱 내려~"


강압적으로 쫓겨난 아크라시아는 미련없이 다시 도시로 향해 올라가는 버스를 보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이 머리가 아려왔다.


"환영해요! 아크라시아씨라고 들었어요!"

"너, 미트라한테 어이없게 졌다면서? 괜찮아! 마왕 차남도 걔한테 한 번 졌거든!"


귀꼬리를 단 두 여성이 아크라시아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아크라시아는 벤치에 앉아있던 부루퉁한 한복 처녀의 젖가슴을 보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예쁘건 몸이 어떻건 여길 나가는 건 요원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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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인도를 받아 들어온 광속촌의 내부는 훨씬 더 심각했다.


'월드보스 에리어'

'레이드 에리어'

'PVP 에리어 쉼터'


구획은 있지만 구별은 없었고,

계획은 있지만 실행이 없었다.


죽지 못해 사는 반송장들의 묘지요 생가였다.


"너구나! 탭 무작위 2인 침묵에 슬라 저주 이효폭발이라고?!"


알몸에 망토만 두른 괴상한 악마, 나탈리스가 아크라시아를 향해 달려왔다. 심히 남사스러웠다.


"분명 엔드리스 듀얼에서 활약할 스킬셋이야! 풀이그부터 해보고 한 번..."

"저 년은 벗고 다니더니 지능도 원시인 수준으로 떨어졌나, 하하하!"


뒤에 나무 아래서 낫에 기대 누워있던 단발의 금발 소년 악마, 로키가 그녀를 비웃었다.


"간만에 시비를 거는 구나? 셋 카인 라우페이 메이커가 할 말이라도?"

"니가 읊은 스킬셋 신캐 레이드 스킬셋이거든? 신문도 똑바로 못 보시네? 안경이라도 맞춰드려?"


레이드 스킬셋.


그 말을 듣자 시체처럼 누워있었던 차일드와 악마들이 일어났다.


"잠깐, 무작위 침묵? 그거 애들한테 상대 하라고 짠 스킬셋이야?"

"뭐 어떻게 막으란 거야, 애들 몇이나 갈렸겠는데?"
"아니 그렇게 나오면 후보생들이 이갈려서라도 안 찾겠다. 개발자 양심 어디 간 거야?"


로키는 간만에 친 분탕에 신이 난 모습으로 미소를 띄웠다.


아크라시아는 반송장들의 압박이 새삼 두려워 할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눈물마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누구처럼 버스터 40층을 치게 시키진 않았지?"


나탈리스의 지적에 로키의 안색이 시퍼래졌다.


다들 분노의 화살을 로키에게 향했다.


"3캐릭 상술..."

"4년 동안 드라이브 약점 방어가 없단 게 말이야?"

"생각해보니 꼴받네, 광속 씹창낸 거에 니 몫도 있단 거 알고 있지?"


제아무리 로키가 광속 1티어 딜러라고 했다만 수십의 압박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자기가 일으킨 불씨가 스스로 꺼질 때까지 산화당할 일만 남은 것이었다.


아직 정신이 어리버리한 아크라시아에게 나탈리스가 말을 걸어봤다.


"어이 신입!"

"...네?"

"슬라는 잘 쓰고?"

"네... 대충 슬라는 잘 써요..."

"그럼 됐어, 여기 애들 탭쟁이가 태반이야."


아크라시아는 생각이 아득해졌다. 정녕 살아서 도시로 올라갈 수 있을 지 의심이 들었다.


'나도 저 반송장들과 함께 하겠지...?'


벌써부터 듀엣샤와 투닥거린 것이 그리워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