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지금 할 일 없지? 나랑 같이 나가자."

"바쁘네만..."

"숨 쉬고 소파에 누워있느라 바빠? 5분 줄테니까 빨리 나와."

"끙..."

메티스의 말처럼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있던 주피터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외출할 준비를 했다.


"오. 멋있게 차려입고 나왔네."

"이렇게 안 입으면 또 내 정강이를 찰 것 아닌가."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말을 말지. 가세. 오늘은 웬 바람이 불어서 나를 불렀는가?"

"꼭 바람이 불어야 같이 외출하는 사이였나, 우리가?"

"남들이 오해할 소리는 하지말게."

"늠드르 으흐흘 스르는 흐즈믈그~~"

메티스는 작정한듯이 주피터를 약올리며 깔깔거렸다.

"오늘은 영화보러 갈거야."

"또 그 허접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나오는 공포영화라면 미리 사양하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혜냥이와 함께는 허접한 영화 아니거든? 그리고 오늘 볼 영화는 낭만적인 영화야."

"호오. 자네가 낭만적인 영화라. 퍽 잘 어울리는군."

"뭐, 뭐라는거야. 그냥 볼 영화가 별로 없어서..."

세월을 이상하게 먹어 들짐승 같이 자란 그녀였지만

주피터는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워하는 메티스에게서 옛날 그 소녀의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었다.

그 때는 참...

"또 노인네 같은 생각이나 하고있네. 청승 그만떨고 빨리 가자고."

"크흠. 그러지."

메티스는 자연스레 주피터에게 팔짱을 껴왔다.

"그래서 오늘 볼 영화 이름은 무언가?"

"토끼드롭스."

"낭만적이라고 하기엔 좀...귀여운 제목이군."

"그런가? 충분히 낭만적인 것 같은데. 아 근데 영화 보고 뭐 먹으러 갈까? 영화관 옆에 오므라이스 집 맛있어 보이던데."

"그럼 거기로 가지. 어차피 내 말은 안 들을 것 아닌가?"

"맞어. 어차피 다른 의견 낼 아저씨도 아니잖아."

언뜻 보면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즐겁게 하다보니 어느새 영화관에 도착해있었다.

"맞다 아저씨. 나 화장실 갔다가 바로 들어갈테니까 팝콘 좀 사와주라. 카라멜 큰 거에 콜라로."

"알겠네."



화장실에 들어간 메티스는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봐도 좀 예쁜 것 같은데.'

그렇게 자신의 얼굴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메티스는

손만 살짝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아, 아저씨. 먼저 와있었네?"

"자네가 늦은거라네. 어서 앉게."

메티스는 엉덩이로 의자를 내리며 쿵 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평일 오후였기에

그 행동에 눈총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아직 영화가 시작하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네만."

"어. 나는 영화 시작 전에 광고 보는 걸 좋아해서."

"그것 참 고상한 취미로군."

"내버려두셔."

메티스는 정말로 광고에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주피터는 그런 메티스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팝콘을 몇 개 집어먹을 뿐이었다.



"흑... 영화 너무 감동적이었어."

"그, 그런가? 재밌게 본 것 같아 다행이군."

"응.. 자기를 키워준 아빠 같은 사람과 이어지다니.. 비현실적이라 낭만적이었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군."

"그렇지? 말했잖아. 엄청 낭만적인 영화라고."

내가 동의한 건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말하고싶은 주피터였지만

굳이 좋아보이는 메티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저녁 먹으러 가자. 아저씨가 사줄거지?"

"그러지. 마음껏 먹게나."

"마음껏은 무슨. 미호 언니한테나 그런 말 해."

"그 여자에게 그런 말 했다가는 주인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걸세."

"푸훗. 맞아. 언니가 좀 많이 먹긴 하지."

야경을 보며 먹는 오므라이스는 맛있었다.

주피터는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메티스는 콜라를 마시며

서로의 접시에 담긴 것을 나누어먹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수다를 떨고

함께 밥을 먹고

몇 번이나 반복한 일들이지만

항상 즐거웠다.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 말라가는 마음에 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도 다른 친한 차일드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즐겁지만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과는 달랐다.

서로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며

메티스와 주피터는 밤의 도시로 나왔다.


"사람 참 많다. 아까 나올때만 해도 많이 없었는데."

"그렇군."

"단답하기 있기야, 없기야?"

"없기라네."

"재미없긴. 하여튼 아저씨 꼬장꼬장한 건 알아줘야 돼."

"꼬장꼬장하다니.."

"어. 포장마차다. 아저씨. 우리 한 잔만 하고 갈까?"

"내 취향은 아니네만... 어울려주지."

"그래? 고마워 아저씨."

그렇게 말하며 메티스는 쌩하고 달려나가

자리를 잡았다.

"우동 두 그릇 떡볶이 한 접시 오뎅 네 개 처음처럼 한 병이요!"

"자네... 식사하러 왔나?"

"어.. 좀 배고파서? 아저씨한테 사달라고 안 할테니까 걱정 마."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군."

포장마차에서 나눈 얘기는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주인과 싸운 이야기.

친한 차일드들이 조심스레 알려준 비밀 같지 않은 비밀.

계약자에 대한 소식.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이제 슬슬 들어가지. 주인도 걱정할걸세."

"그런가? 여기 계산할게요."


포장마차에서 나와 쐬는 바깥공기는 적당히 서늘해 기분이 좋았다.

"매일매일 이런 날만 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매일매일 보낼 수 없으니 이런 날이 특별한 것 아니겠나."

"뭐야. 아저씨 취했어?"

"이 주피터를 뭘로 보는겐가. 그저 솔직히 말한 것 뿐이라네."

"그래 뭐..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

"......"

"저기, 아저씨."

메티스는 주피터를 외면하며 말을 걸었다.

"왜 그러지?"

"우리. 잠깐 쉬었다 갈까."

"......"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주피터가 아니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이게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를 그도 아니었다.

"주인이 걱정할걸세."

"알잖아. 주인은 조금만 걱정돼도 바로 우리 부르는 거. 그리고 주인도 알고있어. 우리 둘 같이 나온 거."

메티스의 고집은 쉽게 꺽일 것 같지 않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자

주피터도 뭐라 말을 해야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는 똑똑하고 눈치도 빠르니 알 거라 생각하네.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

"먼저 들어가겠네. 피곤하군."

주피터는 도망치듯이 그 장소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렇게 가고나면





저 작은 소녀가 우뚝 서서 혼자 소리없이 울 것도



다음날부터 사이가 서먹해질 것도



스스로의 마음을 배신하게 될 것도



모를 남자가 아니었다.









주메구 대회 연습글 썼는데

썩 잘쓰인것같아서 올림



개추누르고 뒤로가기누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