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쟤들 괜찮은 거 맞아?"

"글쎄. 잘 모르겠어."

한적한 카페, 구석에 앉아서 커피만 홀짝이고있는 메시에와 로잔나를 먼 자리에서 바라본 악마는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고선 메티스에게 물었다.

자신의 엄마인 로잔나를 찾은것까진 좋았지만 영 어색한 둘의 관계에 일부러 악마가 자리를 만들어줬는데도 둘은 여전히 저런 상태였다.

"메시에는... 어릴 때 로잔나랑 헤어졌다고 그랬나?"

"응. 황제가 죽고 황후가 로잔나를 추방시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더라."

"흐응..."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레몬에이드를 빨아먹는 메티스를 본 악마는 의아해해며 물었다.

"왜 그래?"

"아니, 별 거 아니야. 우리 그만 보고 산책이나 하러 가자."

"어? 왜?"

"잔말 하지 말고 따라와. 둘은 알아서 잘 하겠지."



'...엄..마...'

어릴적부터 강인하게 자라온 그녀에게는 어색한 단어였다.

그녀와 헤어진 직후에는 황후에게 쫓기면서도 매일 밤새 울며 엄마를 찾았지만 언젠가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피가 이어지지 않은 황족들의 손에 길러지며 점점 머릿속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희미해졌지만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잊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찾고, 재회의 기쁨까지 나누었지만 메시에는 여전히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어머니와의 즐거웠던 기억, 어머니가 해주었던 음식, 엄마와 다녔던 곳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고민에 빠져 커피잔을 잡고 까만 커피를 가만히 내려다보고있는 메시에를 본 로잔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고민이 있나요, 공주?"

"아, 아닙니다. 잠시 푸테나로 돌아갈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어서 푸테나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가 알던 푸테나와는 다른 곳이겠지만..."

"비록 황후의 폭정으로 엉망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푸테나는 좋은 곳입니다. 어, 어머니도 보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후후. 그 곳에서 공주와 다녔던 곳들이 생각나네요. 별이 보이는 첨탑과 공주가 좋아하는 꽃이 가득 핀 정원, 그리고..."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머니를 본 메시에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테오파노가 학교에서 어머니를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 양이 많다면서요."

"어머나. 그랬나요?"

메시에의 말을 들은 로잔나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마시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주 집에 놀러와줘요. 공주가 좋아하는 간식들도 많이 만들어둘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로잔나를 배웅한 메시에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



저녁시간이 돼서야 돌아온 테오파노와 로잔나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그 아기 양구름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음... 엄마양구름을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엄마와 떨어지는 건 너무 슬픈 일인걸요."

"모, 모팽."

메티스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모팽은 이미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고있었다.

곧 들려올 로잔나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기다리며 모팽과 함께 귀를 막고있던 메티스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테오파노. 먹고 싶은 건 없나요? 이 엄마가 다 해줄게요."

"어.. 양모양 쿠키가 먹고싶어요!"

"후후. 귀여운 모습이겠네요. 그럼 내일 저랑 같이 만들어요. 분명 즐거운 경험일거에요."

"웬 일이지?"

"마음이라도 읽어보지 그래."

모팽의 무심한 말에 그녀를 살짝 째려본 메티스는 티비로 시선을 옮겼다.

"우는 것보단 낫지. 그나저나 모팽. 우리도 내일 쿠키 같이 만들자."

"쿠키라고요? 저도 만들래요!"

"너는 안 돼. 저번에는 라면을 끓여보겠다고 설치다가 냄비를 다 태워먹었잖아."

"그, 그건 그냥 실수였어요!"

투다거리는 브라다만테와 모팽의 목소리를 들은 로잔나는 둘의 사이에 섰다.

"모팽, 그러면 못 써요. 내일은 다 같이 쿠키를 만들어봐요."

"하아... 마음대로 해. 대신 나는 빼 줘."

"그러지 말고 같이 해요."

다정한 로잔나의 미소를 본 모팽은 몸을 뒤로 빼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숨알 내쉬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까 웃으면서 협박하지 마. 근데 와이어트랑 알브 네프티스는 어디 갔어?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대현이네 마감 도와주러 갔대. 몇 주는 거기 있을거라나봐."

"...테오파노는 여기 있는데?"

"아... 거기 테오파노 계약자도 같이 있거든. 그래서 도중에 빠져나왔대."

로잔나에게 착 달라붙어 어리광을 피우고있는 테오파노를 보고 모팽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당분간 집도 넓게 쓰고 좋네."

"친구들이 그립지도 않아요? 너무해."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누구보다도 친구들이 없는 걸 즐기는 브라다만테를 보고 픽 웃어버린 모팽은 로잔나를 한 번 바라고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혼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중인 은하수의 침대에 앉은 메시에는 창을 내려두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어서 연구를 마쳐야 푸테나로 돌아갈 수 있다, 은하수."

그렇게 말해봐야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은하수의 등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평소같으면 반란군이 오지 않을까 사방을 경계하며 은하수를 지켰을 그녀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고난을 겪으며 자라 단단하게 성장한 메시에에게 이런 상태는 익숙치 않았다.

"어머니... 때문인가."

어머니를 만난 이후로 메시에는 스스로가 조금씩 약해져가는 걸 느꼈다.

푸테나로 돌아가야한다는 마음도, 언제 반란군이 올지 모르니 경계해야 한다는 마음도 자꾸자꾸 옅어져가는 것을 애써 견뎌냈지만 오늘따라 메시에의 머릿속은 더 싱숭생숭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창을 손에 쥐었을 때 은하수가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하품을 하며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려눕는 은하수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메시에는 문득 그녀의 책상이 눈에 띄었다.

여태까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갑자기 생기는 흥미를 참지 못 한 메시에는 잔뜩 쌓여있는 원고지를 하나 집어 열어보았다.



"테오파노! 밀가루를 뜯기 전에 이 앞치마부터 입어야해요."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가위를 집어드는 테오파노에게 앞치마를 입혀준 로잔나는 각양각색의 앞치마를 입고 서있는 모팽, 브라다만테, 메티스를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다들 정말 예쁜 앞치마를 입고있네요. 쿠키 만들 준비는 됐나요?"

"네~~"
"네!!"

활기차게 대답하는 브라다만테, 테오파노와 다르게 모팽과 메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에도 로잔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밀가루 봉투를 집어들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반죽부터 만들어볼까요?"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네."

막 구워져 폭신폭신한 쿠키를 신기한듯 바라본 메티스는 냄새를 한 번 맡아보았다.

"맛있겠다. ...지금 애 같다고 생각했지?"

"잘 아네. 얼굴까지 붉히는게 천상 애 같은데?"

모팽의 놀림에 흥 하는 소리를 내며 메티스는 두꺼운 주방장갑을 낀 손으로 쿠키를 하나하나 떼어냈다.

이미 자신들의 쿠키를 다 굽고 거실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셋을 쳐다본 메티스는 모팽을 빤히 바라보았다.

"모팽은 쿠키 다 구웠잖아. 왜 옆에서 구경하고 있어?"

"그럼 저기 가서 같이 깔깔거리고 놀까?"

"하아... 됐어. 말을 말자."

쿠키를 다 떼어낸 메티스는 어디에선가 작은 용기를 들고왔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냥 먹지 그래?"

"...이건 주인 줄 거야."

"흐음. 악마 걸 말하는 거라면 로잔나가 따로 챙겨뒀는데."

"내가 한 거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얼굴을 살짝 붉히는 메티스의 반응에 멋쩍어진 모팽은 부엌 한구석에 있는 쿠키들을 보며 물었다.

"근데 저건 뭐지? 악마 건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았나?"

"그러게. 아, 메시에 주려나봐."

메티스의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에 모팽은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다.

"메티스. 지금 몇 시지?"

"몰라서 물어? 다섯 시잖아. ...아."

그제서야 매일같이 오던 메시에가 얼굴도 안 비췄다는 걸 알아챈 메티스는 거실에서 웃고있는 로잔나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왜 안 왔을까. 둘이 싸웠나?"

"메시에나 로잔나나 싸울 성격은 아니잖아. 그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해. 로잔나.. 지금 메시에가 안 왔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

그 말에 로잔나를 쳐다본 모팽은 끙 하는 신음을 내더니 메티스의 쿠키를 하나 집어먹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하겠지. 내 알 바야?"

"내 건 왜 먹어?!"

"너도 내 거 먹어."

"모팽, 메티스. 싸우는 거 아니죠?"

"아니야."
"아니야!"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온 악마는 고소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주인. 학교 잘 다녀왔어?"

"말도 마라... 조별 과제인지 뭔지 때문에 몇 시간이나 시달리다 왔으니까..."

"어서 와요. 밥은 먹었나요?"

"응. 억지로 끌려가서 먹고 왔어. 근데 오늘 뭐 했어? 집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아, 기다려봐 주인."

냉장고로 달려간 메티스는 쿠키를 꺼내와 악마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오늘 다같이 쿠키 구웠어. 로잔나가 거의 다 하긴 했는데, 한 번 먹어봐."

메티스가 건네는 쿠키를 우물우물 먹은 악마는 하나를 더 집으며 말했다.

"맛있네. 이게 다야?"

"안에 더 있으니 먹고싶으면 꺼내먹어요."

"잠깐만, 로잔나. 그건..."

메시에 것이 아니냐고 물으려던 모팽은 아차하는 표정을 짓더니 악마에게 말을 돌렸다.

"그 정도 먹었으면 됐지. 간식 먹지 말고 밥이나 잘 챙겨 먹어."

"어? 알았어."

"그러지 마요. 자, 제가 꺼내줄 테니까..."

모팽은 웃는 얼굴로 냉장고의 문을 여는 로잔나의 팔을 소리나게 잡았다.

"모팽!"

그런 모팽의 마음을 읽은 메티스는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모팽은 로잔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건 메시에 주려고 따로 남겨둔 거 아니었어?"

"네, 맞아요. 하지만 오늘 공주가 안 온 걸 어떡하겠어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로잔나의 모습에 모팽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마음대로 해. 난 신경 끌 테니까."

방으로 들어간 모팽은 쾅하는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고

모팽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꺄르르 웃고있던 브라다만테와 테오파노도 놀란 얼굴로 부엌을 바라보았다.

"메티스. 모팽 왜 저러는 거야?"

"난... 몰라."

메티스에 이어 자신을 바라보는 악마의 시선에 멋쩍은 웃음을 지은 로잔나는 면목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뭔가 잘못했나봐요. 모팽은 착한 아이니까 잘 얘기해보면 곧 풀릴 거에요."

"넌 괜찮아?"

"네?"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모팽 녀석, 기분이 안 좋다고 저러면 어떡해?"

"아, 아니에요. 모팽에게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괜한 얘길 했네. 그냥 메티스가 주는 것만 먹을 걸."

"바보."


그 후로 메시에는 며칠동안이나 악마의 집에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던, 다소 둔한 브라다만테와 테오파노도 그녀가 오지 않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로잔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지난 뒤, 산책을 다녀온다며 로잔나가 혼자 외출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브라다만테가 테오파노에게 가 물었다.

"왜 메시에가 안 오는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네요. 사실..제, 제가 한 말 때문일지도 몰라요. 메시에만 챙겨준다는 말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테오파노를 본 모팽은 무심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로잔나는 그 말 별로 신경 안 썼을걸."

"그럼 왜 그러는 거죠? 모팽은 뭔가 알고 있나요?"

웬 일로 진지한 브라다만테의 질문에 고민하던 모팽은 시선을 회피했다.

"몰라. 알아도 말해줄 생각 없어."

"훌쩍... 메티스.. 당신은 알고있나요?"

로잔나의 행동이 자신 때문이라 믿어 훌쩍이는 테오파노의 눈물을 닦아준 메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리고 그건 아마 로잔나와 메시에, 둘의 문제일 테니까 나는 별로 참견하고싶지 않아."

차분한 메티스의 목소리에 진정이 됐는지 테오파노는 눈물을 그쳤다.

"둘이 잘 풀렸으면 좋겠어요."

"글쎄. 그렇게 말처럼 잘 될 지는 모르겠네."

그 말에 셋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모팽은 턱으로 창문 바깥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담벼락에 기대앉아 울고있는 메시에가 있었다.



"모, 모팽. 네가 나가서 말 좀 걸어봐."

"왜 나한테 그래? 나도 쟤랑 안 친해. 테오파노. 너는 쟤랑 말 섞어봤잖아."

"저도 말을 섞어본 게 다에요."

"저 애, 온 몸을 들썩이면서 울고 있어..."

창밖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브라다만테의 목소리에 집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러자  창틈 사이로 메시에가 흐느끼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요. 제가 나가서 데리고올게요."

"아니. 로잔나가 올 때까지 기다려. 아마 우리한텐 저런 모습 안 보여주고 싶어할 거야."

애써 시선을 돌린 메티스는 티비를 키고선 볼륨을 올렸다.

모팽도 이내 식탁의자에 앉아 펜싱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메시에를 계속 바라보던 테오파노와 브라다만테도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았다.




"공주...?"

옆에서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에 고개를 든 메시에의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엉망이 돼있었다.

"어머니..."

"공주! 왜 여기서 울고 있었나요?"

로잔나는 한달음에 달려와 옷소매로 메시에의 눈물을 닦아주려했지만 메시에는 몸을 뒤로 숙여 그녀를 피했다.

"공주?"

"......"

한참동안 말이 없던 메시에는 한참동안 앉아있어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니, 로잔나. 저는 공주가 아니에요. 당신도 황후가 아니고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이 어미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충격받은 로잔나의 표정에도 메시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은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이니 저보다 빨리 알아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난 뒤, 아니. 만나고 난 뒤 당신에 대한 기억들을 되짚어보았습니다. 푸테나에서 함께  있었던 그 기억들을요."

"......"

"어머니와의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감정만 느껴질 뿐, 정확히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도. 자주 가던 공원도. 함께 보낸 시간도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대답 없이 침묵을 고수하는 로잔나의 모습에 메시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카페에서 테오파노가 당신을 기다린다는 말을 하자 당신은 곧바로 일어서 나갔었죠. 그 때 저도 눈치챘습니다. 당신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걸요."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메시에의 목소리는 분노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듣고있기 안타까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공주, 저는..."

"난 공주가 아니야! 말했잖아!"

공주라는 말에 눈을 치켜뜬 메시에는 크게 소리치고선 피가 나오도록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애초에 푸테나 제국이라는 곳도 없는 곳이었어. 여덟째 공주? 세 번째 황후? 웃기지도 않는 소리야. 당신, 황제의 얼굴은 기억해? 그 목소리는? 당연히 안 나겠지.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좋아하던 하우카? 나를 쫓으러 오는 반란군? 그딴 건 없어! 전부 은하수 그 멍청한 계집애의 책 속에서 나온 얘기일 뿐이라고! 너나 나도 마찬가지고!"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낸 메시에는 숨을 헐떡이며 제자리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숨이 안정됐을 때 쯤, 손이 하얘지도록 소매를 쥐고 있던 로잔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 거였군요. 당신과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푸테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전부 제가 그 은하수라는 아이의 책에서 나온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아서였군요."

"맞아. 그래서 우리는 푸테나라는 곳이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거야. 그런 곳은 존재하지도 않는데."

메시에는 땅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창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전부 다 가짜인 것도 모르고 반란군이니 뭐니 떠들어댔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공주, 아니 메시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

"그걸 알게 돼서 당신은.. 저를 미워하게 됐나요?"

"미울 것도 좋을 것도 없어. 애초에 우리는 모르는 사이니까."

메시에의 대답에 창백한 얼굴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로잔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메시에를 마주보는 형태로 털썩 앉으며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을 보고 난 뒤로 나는 몇 번이나 당신이 어릴 적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려 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너무 오랜만에 만난 딸이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죠. 하지만... 당신 얘기를 듣고 나니 모두 이해됐어요."

"그래. 그건 전부 만들어진 기억일 뿐이야."

"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그것 말고 말할 건 없나요?

"그 이상 더 생각할 건 없는 것 같은데."

차가운 메시에의 태도에도 로잔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공주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그 기억이 만들어진 것이고, 제가 정말로 그런 적이 없다고 해도 이 마음의 따뜻함만은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도 은하수가 만든 것일 뿐이잖아."

"그럼 저는 그 분에게 감사하면서 살 거에요. 이런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음과 기억을 저에게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처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제 하나뿐인 딸도요."

말을 맺고서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로잔나의 모습을 본 메시에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모은 무릎 위로 얼굴을 묻으며 로잔나를 본 뒤로 내내 하고싶었지만 마음 속으로만 했었던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엄마..."






"공주. 이건 아몬드를 넣은 거에요. 어서 먹어봐요."

"네 어머니."

로잔나는 양 손으로 쿠키를 쥐고 야금야금 갉아먹는 메시에를 턱을 괴고서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목은 안 막혀요? 우유도 같이 마셔요."

우유를 마시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로잔나의 손길에 메시에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굴을 붉히고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응, 엄마."




메시에가 엄마라고 하는 게 보고싶었음

필력 부족을 뼈저리게 느낀..글이었다..